이재용의‘삼각산의 요새 북한산성’ 북한산성에 대한 찬사 그리고 역사에 대한 위로의 서사시
'삼각산의 요새 북한산성'은 사진가 이재용이 북한산성과 현재 북한산으로 불리는 삼각산을 촬영한 사진집이다. 작가가 2010년부터 12년 동안 수백 차례에 걸쳐 11.6km에 달하는 북한산성을 탐사하고 취재한 기록이다. 그런데 단순한 풍경 으로서의 기록이 아니다. 북한산성의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집인 동시에 그 피사체에 대한 인문학적, 건축학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북한산성의 곳곳에 숨겨진 역사와 의미를 꺼내 펼쳐놓은 이 책의 사진과 서사는 깊이와 넓이가 일반적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 역사적 사실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또한 축조방식에 대한 건축학적 정보도 상세하게 제 시했다. 사진과 인문학, 건축학적 정보를 조화롭게 엮어 완성한 독특한 작품집이다.
사진 작업의 주제에 대해 고민하던 이재용은 북한산 등산 도중 돌에 걸터앉아 무심히 그 돌을 어루만졌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엔 섬광 하나가 지나갔다. 평범했던 성곽의 일부분이 새로운 존재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2010년 1월1일 새벽 이재용은 카메라를 들고 북한산을 올랐다. 그날부터 작가의 북한산성 작업이 시작됐다. 이재용은 또한, 북한산성과 북한산에 대한 고서부터 현대의 논문까지 모두 찾아 읽었다. 방대한 독서를 거듭하자 작가의 시선이 달라졌다. 보통사람 들이 알아챌 수 없는 북한산성의 특별한 장면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북한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숙종임금이 견고한 성곽의 필요성을 절감해 축성을 추진한 성곽이다. 어떤 화포의 공격에도 견딜 수 있도록 돌 쌓는 방식을 바꿔 지은 튼튼한 산성이다. 그런데 산성 축조 후 한반도 내에서 전쟁이 없었다. 조선 말, 극도로 국력이 쇠약해진 조선은 전쟁도 없이, 허무하게 일본에 합병되고 말았다. 백성들은 전쟁을 대비해 정성껏 북한산성을 세웠지만, 실제로 써보지 못했던 안타까운 성곽이다. 이재용은 그런 북한산성에 특별한 애정을 느꼈고, 사진 작업에 몰두하게 됐다.
이 책은 북한산에 대한 역사적, 문화적 해설로 시작한다. 그런데 그 상세함이 예사롭지 않다. 백운대와 인수봉의 설경, 목도리 같은 구름에 휩싸인 삼각산, 저무는 태양의 빛을 받아 아늑하게 빛나는 봉우리들을 담은 사진들도 환상적으로 펼 쳐진다. 또한, 곳곳에 조선의 임금들과 문인들이 북한산에 대해 지은 시구(詩句)들이 등장해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북한산의 아름다움에 대한 시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책에 게재한 모든 사진 아래 그 피사체의 위도와 경도를 표기했다. 이는 피사체들의 역사적, 건축학적, 군사학적 의미에 대한 확인이고 그 존재들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다.
이 책의 가치는 북한산성의 내밀한 곳을 보여준다는 것에 있다. 수문, 수문지, 돈대, 체성 등 옛 성곽에 대한 전문적 지식이 없으면 찍을 수 없는 구조물들을 담은 사진과 구체적이고 간결한 설명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북한산성 성벽의 디테일과 특징을 포착했고 또한 성벽의 구조, 건축학적, 과학적 특징을 설명했다. 고축, 반축, 반반축, 여장 등 성벽을 쌓는 방식에 따른 형태를 담았고 그것에 대한 기술적, 인문학적 해설을 덧붙였다.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등 다양한 문과 성곽, 누각, 비석들에 대한 사진과 이야기도 이어진다.
이재용의 사진과 글을 따라가다 보면, 북한산성에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쌓은 구조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놀란다. 또한, 그 모든 것을 정밀하게 촬영하고 설명한 작가의 열정과 끈기에 감탄하게 된다. 이재용은 하나의 피사체를 여러 계절과 각도에서 담았다. 그래서 그의 사진들은 시각적 재미를 준다. 피사체를 최적의 빛에서 촬영하기 위해 작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해 뜰 무렵이나 저물 무렵에 산을 올랐다. 그래서 대상들의 본래 모습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었다.
책은 기본적으로 '선형구조(linear structure)'로 이루어져 있다. 독자는 작가가 구성해 놓은 순서에 따라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콘텐츠의 흐름이 중요하다. 이재용은 부분을 담은 사진과 넓게 찍은 사진을 적절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사진과 글의 배열도 매끄럽다. 글의 내용은 구체적이고 세밀하지만 길지 않다.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글과 시원하고 맑은 사진들이 조화를 이루었다.
‘삼각산의 요새 북한산성’에 등장하는 235장의 사진들 가운데 이 책을 상징하는 하나의 장면을 고른다면 성덕봉 치성에서 눈 쌓인 능선 위의 대성문과 성곽, 그 뒤로 석양을 받아 빛나는 서울 도심을 담은 작품이다. 북풍한설을 맞으며 서울을 묵묵히 내려다보고 있는 북한산성을 담아낸 이 사진은 신하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북한산성을 건립한 숙종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는 것 같아 뭉클하다. 이재용의 '삼각산의 요새 북한산성'은 우리 민족의 지혜와 안타까움을 동시에 함축하고있다. 그의 작업은 북한산성에 대한 찬사이자 우리 역사에 대한 위로의 서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