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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장편소설 『누운 배』로 21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사랑의 이해』 『관리자들』 『광인』이 있다.

작품 밑줄긋기

신*람 2026.04.21.
p.328
나는 비로소 내가 되겠지만, 그 나란 얼마나 보잘것없는가? 하지만 망설이기만 한다면 내 뒤에 쌓이는 날들은 나를 더 늦고 무모하고 무책임하게 만들 터였다. 배를 끌어 올릴 때 그랬듯, 운명에 맡겨야 할 것은 운명에 맡겨야 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내가 하고, 나머지는 담대하게 기다리는 것 뿐이었다. 나는 내 인생을 완전히 망쳐버릴 수도 있었다. 앞길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것이고 결국 시간이 흘러야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인생을 살아지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보이는 대로 봐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보이는 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라면, 인생은 단지 요행과 허무일 따름이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만 봤기 때문에 저 배를 썩도록 내버려뒀고 썩은 다음에야 일 으켰으며 일으킨 다음에야 썩은 줄 알았다. 내 인생을 보이는 대로 볼 수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이치와 진실을 통해 똑똑히 들여다봐야 한다.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아직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을 때 그래야 한다. 나는 이미 누웠는지도 모르지만, 너무 오래 누운 것은 아닐 것이다.
신*람 2026.04.21.
p.327
나는 내 젊음을 고생스럽게 써서 내가 늙어서도 잘할 수 있는 것을, 익힘이 되고 경험이 돼 젊은 사람은 결코 할 수 없을 만큼 잘할 수 있는 것을 찾고 해내야 했다. 내 젊음과 노력, 삶에 대한 애착을 모두 쏟아부어 할 일이라는 것이 있다면 나는 늙어서도 소일거리를 찾지 않을 것이다. 나보다 젊은 사람의 피를 빨아 젊음을 유지하려 는 괴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신*람 2026.04.21.
p.326
내가 가는 곳이 어느 회사, 어떤 나라라는 것에 얽매이는 대신 몰락에서 비켜서기 위해, 썩어가는 누운 배가 되지 않기 위해 내가 할 것은 결정이었다. 회사원이 돼야 한다는, 어떤 회사라도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에서 벗어나 내가 내 인생을 결정한다고 할 때, 바로 그 결정이었다. 가슴이 탁 트인 듯 들이쉰 숨은 한숨으로 잦아들었다. 덜덜 떨리면서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자유의 촉감이었다. 스스로 말미암는다는, 내가 내 목적이자 결과가 된다는 것, 자유였다. 글을 쓰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막연했다. 나는 정말 그럴 수 있을지, 그러면 어떤 사람이 될지 몰랐다. 자유는 그것에서 비롯하는 불안과 현기증을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람 2026.04.21.
p.276
"그 사람들은 정녕 늙지 않았습니다. 어떤 물건들은 골동품이 되듯, 그 사람들도 다른 어떤 사람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사람으로 남지 못합니다. 대리든 과장이든 차장이든 또 사장이든, 어떤 것이든 되지만 대부분 사람으로는 남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뱃사람들은 사람이었고 사람으로 남았습니다. 내가 부르고 기억하는 건 사람입니다. 사람이 사람만큼 잘 기억할 수 있는 것 이 또 있을까요? 아무리 귀엽게 키우던 강아지나 고양이도 대개 사 람만큼 오래, 선명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습니다. 나는 아직도 내가 만난 뱃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래서 말합니다. 뱃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신*람 2026.04.21.
p.275
그 사람들은 늙어 보였다. 조각칼로 파낸 것처럼 골 진 이마, 녹슨 쇠처럼 그은 살갗, 수십 년 바닷바람이 빗고 털고 말렸을 성긴 머리숱, 핏줄이 불거졌지만 굵지는 않은 팔뚝. 하지만 늙은 것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 색이 엷어진 홍채는 먼 곳을 잘 볼수 있었고 옹이 진 관절은 바람이 바뀌고 바다가 뒤집히는 것을 일기예보보다 정확하게 알았다. 손이 더뎌도 낭비가 없었기 때문에, 열 가지 일을 해도 한 가지 일을 하듯 한결같고 깔축없었다. 쉬 지치지도 않았다. 일의 끝을 알았기 때문에 끝을 보기 전까지는 손을 쉬지 않았고 쉬지 않는 손은 젊은것들의 허둥대는 손보다 더 많은 일을 더 야무지게 해냈다. 노화의 흔적은 노화한 결과가 아니라 세월이 낸 흠집 같았다.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고 그래서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았다.
신*람 2026.04.21.
p.193
황 사장이 일갈했다. " 정말, 화가 납니다, 화가 나! 어떻게 자신의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모르고,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전망도 의지도 없이 말하고 대처할 수 있습니까? 왜 사실에 기초해 생각하고 판단하지 않고 해오던 방식대로, 편한 대로 결정하려고만 듭니까? 왜 여러분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 또 여러분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 다다를 수 있는 최상의 결과에 대해 욕심부리지 않습니까? 왜 처지에 따라 생각만 하고 의지에 따라 생각하진 않습니까? 생각들 하란 말입니다, 생각을! 지시를 받고 지시대로 하려고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나는 사장으로서 여러분이 내 뜻대로 무조건 따라오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간단히 말해, 나는 여러분이 돈을 벌어오길 바랍니다. 협박하고 갈취해서 벌어오는 게 아니라 일을 해서, 생산을 해서 벌어오길 바랍니다. 그러자면 같은 시간, 같은 자원과 공수를 들여서 더 많이 생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아닙니까? 그게 단지 사장이나 임원들 말만 으로 가능합니까? 또 준비 없고 변명뿐인 회의와 토론으로 가능합니까? 판단을 해야 합니다. 구분 짓고 검증해서 올바른 방책을 찾고 똑바로 결과가 나오도록 생각을 하고, 그다음에 일을 해도 해야 하는 겁니다. 덮어놓고 일만 할 게 아니라, 나무가 넘어갈 자리를 미리 봐놓고 넘어갈 때까지 도끼질해야 한단 말입니다!'
신*람 2026.04.21.
p.184
모든 것이 올바른 목표가 그리는 순환 속에 있습니다. 그 순환에서 벗어나 있다면, 단지 벗어나 있는 게 아니라 순환을 깨는 겁니다. 진화하지 않는다는 건 퇴행이고, 똑바로 하지 않았다는 건 단지 똑바르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잘못했다는 겁니다. 말이 파놓는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중간은 없고 유보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더 좋아지거나 더 나빠질 뿐입니 다. 이건 흑백논리가 아닙니다. 옳고 그르다거나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할 수 없다면 알아야 할 것을 충분히 알지 못했다는 뜻이지 그런 구분이 없다는 게 아닙니다. 올바른 방법을 찾고 실행해나가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모두 망하고 맙니다. 더 빠를 수도, 늦을 수도 있지만 결국 망해버리고 맙니다. 필연입니다. 편을 갈라 세워 선택하거나 손 놓고 내버려둘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겁니다.
신*람 2026.04.21.
p.182
책임을 진다고 하지만 사실 책임이라는 걸 누가 온전히 질 수 있습니까? 흘러버린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 책임은 지겠다고 하는 순간 이미 지나가버립니다. 책임은 나중 일이고 실은 허울이나 다름없습니다. 감독이 그만둔다고 망해버린 시즌이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실행과 역할을 찾고 그 역 할에 걸맞은 사람을 뽑고 그 사람들 발목을 잡은 불필요한 사람을 솎아내는 게 감독, 즉 관리자와 책임자의 일이고 최선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다고 팀이 항상 승리만 하는 건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이길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건 사실 아닙니까? 이길 수 있다고 믿을 때 선수들은 분명 더 빨리, 더 많이 뛰지 않겠습니까? 팀이 팀으로서 작동하고 성능을 내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커다란 원이, 선순환이라고 부르는 것이 생기는 겁니다. 올바른 목표가 올바른 방법을 찾고 올바른 방법이 올바른 실행을 찾고 올바른 실행이 올바른 역할을 찾아서 각 역할들이 제대로 자기 역할을 해내면, 올바른 실행이 나오고 올바른 실행이 올바른 방법을, 올바른 방법이 올바른 목표, 즉 이기는 결과로 나오는 겁니다. 나이가 많고 적고, 어느 쪽이 이기고 지고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습니다.
신*람 2026.04.21.
p.177
결국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과거입니다. 이미 일어나고 지나간 것을 어떻게 바꾸는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할 테지만 나는 다르게 봅니다. 과거야말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겁니다. 링 위에서 똑바로 못 했다면 이유가 뭐겠습니까? 링에 오르기 전까지, 링 밑에서 똑바로 안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견디고 헤쳐나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과거, 되레 우리 발목을 잡고 억압하는 과거, 인습, 껍데기뿐인 규정과 규제, 타성, 그런 것들 이야말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현재를 돌파하는 데 도움 주는 것들, 전통, 통찰, 지혜라고 부르는 것, 아니 더 쉽게 말해서 지금도 쓸모 있는 것,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것, 많은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옳고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것만 과거에 남겨둬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미래를 전망합니까? 현재에 근거해서? 현재를 어떻게 인식합니까? 그것들은 모두 조각나 있는 정보에 불과하고 그 모든 갓을 우리는 지나간 것, 경험이라는 실로 꿰서 인식합니다. 과거에 비춰 미래를 보는 겁니다. 따라서 과거가 혼탁하면 미래도 혼탁하고 과거가 없다면 미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 껍데기와 쓰레기들, 우매하고 모호한 것들을 모두 걷어치우면 당연히 새로운 미래가, 또 더 싸워나가기 수월한 현재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훈련다운 훈련을 한 선수에게 링이 새로워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신*람 2026.04.21.
p.154
예전에 우리말로 배를 짓는다고 하지 않고 배를 모둔다고 말했습니다. 모둔다는 말은 모둠 지어 끌어온다는 뜻입니 다. 모둔다, 이 말만큼 조선을 쉽고 분명하게 내 마음에 각인하는 말은 없습니다. 모둔다는 것은 이것저것을 끌어다 놓는 것과 다릅니다. 보기 좋게, 쓰임에 맞게, 그것이 하나로 어울려 각각의 이름이 아니라 모둠이라는 한 덩어리로 부를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배 한 척을 생산한다는 것은 자재를 모둠 짓고 도면을 모둠 짓고 여러 지식과 고안을 모둠 짓고 영감을, 또 시행착오를, 그리고 그것을 모둠 짓는 사람을 모둠 지어가는 과정입니다. 그 낱낱의 모둠을 다 시 모두어 배라는, 거대하고 존재하지 않던 모둠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모둔다, 나는 이 말 위에 서서 조선소를 경영하겠습니다. 한국 직원, 중국 직원 가리지 않고 모든 직원의 능력과 노력을 모두어 우리 조선소가 건조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탁월한 선박, 우리가 건조할 수 있는 최상의 선박을 건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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