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4월 27일. 남쪽의 대통령과 북쪽의 국무위원장이 남한과 북한의 땅을 나란히 넘는 순간 코끝이 찡했다. 몇 달 전 세계 정세를 생각하면 꿈 같은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략…) 평화의 무드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서울 역사에 서 있는 자신을 보기도 한다. 플랫폼 여기저기에는 평양행, 베이징행, 블라디보스토크행 열차 시간을 알리는 전광판이 붙어 있다. 누군들 그렇지 않을까. 우동 먹으러 일본의 가가와현까지 가는 세상에, 그보다 가까운 평양에서 평양냉면을 먹을 수 없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었다. 분단으로 섬나라 아닌 섬나라에 살았던 우리에게 이 땅이 유럽까지 이어진 대륙이었음을 실감하게 할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가끔 롤러코스터에 탄 것처럼 현기증이 난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늙다리 미치광이’와 ‘꼬마 로캣맨’이라고 서로를 맹렬히 비난하던 두 정상이 손을 맞잡게 될 줄 알았겠는가. 오, 반전도 이런 반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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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여기에 누구도 모를 또 다른 반전 하나가 있다. 북한 관련 소설집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은 건 이미 3년 전이었다. 당시엔 이런 책이 과연 나올 수 있을까 의아했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이 북한 관련 소설을 쓰고 있었을 그 시간, 나는 이 소설집의 미래를 걱정했었다. 하지만 결국 북한에 대한 소설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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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어부로 평생을 성실히 살았으나 납북된 후, 뒤늦게 간첩으로 몰린 아버지의 이야기가 있다. 평양에서 NGO 단체 일원으로 일하며 북한 여인과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와 남한의 대학 입시에 ‘북한 역사’가 선택 과목으로 지정된 미래의 어느 날, 북한 최고 핵물리학자를 인터뷰하러 가는 남한 기자 이야기도 있다. 북한예술단에서 만난 한 여자의 연애사는 특정 인물을 연상시키며, 간첩으로 몰려 비극을 되풀이하는 남자의 이야기 역시 현존하는 인물을 별 수 없이 떠올리게 한다. 현실에서 길어온 작가의 상상력이 북한의 장마당과 평양의 거리와 그곳 사람들의 내면 풍경을 소환한다. 책을 다 읽을 즈음, 종점에서 내리지 못해 얼떨결에 경주로 가는 ‘나이트버스’에 탑승한 인디밴드 음악가가 부르는 노래가 떠올랐다.
나이트 나이트 괜찮아요. 나이스 나이스 괜찮아요.
과연 지난 몇 십 년간은 나이트, 밤과 어둠의 시절이었다. 하지만 어둠을 밀어내는 것은 빛이다. 진짜 빛을 보기 위해 우리가 때로 사막에 가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지나친 낙관을 경계해야 하지만 어느 시절엔 그저 믿어보고 싶을 때도 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겠지만, 어느 시절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이스 나이스 괜찮다.”는 저 노래가 서로에게 닿아본 적 없는 땅, 한라에서 백두까지 들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