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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2월 1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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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64쪽 | 766g | 150*220*30mm |
ISBN13 | 9791160803235 |
ISBN10 | 1160803234 |
2024년 02월 27일 ~ 2024년 05월 10일
2024년 04월 12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3월 21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3월 18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3월 20일 ~ 2024년 04월 30일
4월의 굿즈 :책가도 독서대/스마트폰 거치대/우양산/북 스토퍼/우드 센서 무드등
2024년 03월 29일 ~ 2024년 04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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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역사를 다룬 책을 보면 항상 뒤통수를 맞아왔다. 외워서 시험까지 봤는데, 그게 사실이 아니래. 한의학에 대한 관심과 이번에는 어떤 뒤통수를 맞을까 하는 기대감에 인삼을 다룬 묵직한 책, '인삼의 세계사'를 읽어보았다. 역시나. '인삼 = 조선만의 대표상품'이었던 내 국사 상식을 이 책은 첫 페이지부터 여지없이 깨주었다. 첫 페이지에 인삼의 명칭과 분류가 나온다. 응? 인삼의 명칭? 고려인삼의 영문명 ginseng은 일본식 발음이 와전된 거 아니었어? 아니다. 오히려 중국에서 인삼을 부르던 'xianshen'이 유럽으로 건너가 변천되어 ginseng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응? 인삼이 유럽으로 건너갔다고? 인삼은 17,18세기 유럽 셀럽의 기호품일 정도로 유명한 중국산 상품이었다. 해외에 파견된 컨설팅회사 직원 역할을 했던 예수회 신부들은 그렇다 치고(책에는 예수회 선교사의 역할이 자세히 다뤄져있다), 교과서에서 많이 들어봤던 그 이들, 철학자 존 로크, 라이프니츠, 분류의 칼을 휘둘러 식물학을 정립한 '린네'(역시 책에서 식민지 개척에서 식물학, 식물원의 역할, 향신료 및 식물의 독점 생산과 플랜테이션의 기원이 자세히 다뤄져있다), '보일의 법칙'의 그 보일, 심지어 장 자크 루소까지. 인삼을 언급하며 애용했다. 왜 그랬을까? 왜 인삼이 중국도 아닌 생면부지 유럽에서 슈퍼스타가 되었을까? 먼저 중국인의 인삼 사랑이 한 몫 했다. 중국의 문화였다고 한다, 아플 때 무리해서라도 인삼을 사먹는 것이. 명나라 말기 전염병이 돌면서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는 절실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부모가 아픈데 인삼 한번 안 쓰고 돌아가시면 자손이 욕을 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만큼 우리나라에서는 수출 상품이라 공급이 적어 상류층만 접근할 수 있었나보다. 중국인의 인삼 사랑이 이 정도였으니, 중국의 문화나 기술, 특히 식물학을 중심으로 한 의약학에 관심이 있던 유럽인들이 인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당연했던 것이다. 그러다 급기야 18세기에 캐나다에서 인삼이 발견된다(!)
진심으로 놀랐다, 화기삼의 존재에 대해. 화기삼? 꽃 화, 깃발 기, 인삼 삼. 이 단어 하나에 인삼의 세계사가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기는 미국의 깃발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미국 동부에서 발에 채이게 나던 인삼을 중국에 수출하기 시작하면서, 중국인들이 처음 본 미국 국기의 별모양이 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아니, 미국에서도 인삼이 난다고? 우리나라에서만 나는 게 아니었어? 진시황이 불로장생의 약초를 찾다찾다 제주도까지 와서 구해간 게 바로 인삼이라던데? 아니었다. 인삼은 크게 보아 두 종류였던 것이다. 고려인삼과 화기삼. 유럽인들이 인삼을 알게 되면서, 북미에도 인삼이 난다는 게 밝혀진 것이다.
유럽의 인삼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려인삼은 몸에 열을 내는 작용을 하지만, 화기삼은 아니라는 것이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한편으로, 미국에서는 수출을 위해 질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던 화기삼이 고려인삼과 다를 바 없다는 맹신이 굳혀져 갔다고 한다. 왜 굳이 맹신을 했을까. 인삼이 무려 미국의 1호 수출품이었으니까. 중국으로 팔면 무조건 수십배의 이익이 나는, 돈이 되는 상품이었으니까. 화기삼이 고려인삼보다 못 할 게 뭐냐, 포장이나 가공술만 익히면 화기삼도 고려인삼처럼 비싸게 팔 수 있다는 심리였다고. 수입품에 관세를 매기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동종상품인지 여부, 즉 둘 다 인삼이라는데 화기삼이 고려인삼과 같은 상품인지 여부부터 따진다. 동종상품을 따질 때, 물리적, 화학적인 구성부터 시작해서 수출대상국 소비자가 두 상품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문화심리학적 분석까지 가미된다. 그렇게 보면, 중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화기삼은 2등급 인삼으로 취급되었다는 점에서 동종상품은 아니었다. 그런데 돈이 되니까. 왜 좋은지 모르겠지만 비싸게는 팔고싶어.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문화를 배척하고 폄하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인삼을 재배하는 태도. 이런 태도가 반영되어, 서양 역사에서 인삼의 흔적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었다.
책을 읽다가 압도당했다. 번역 역사서에서나 보던 '한 페이지에 각주 2, 3개' 기술을 시전하시는 이 작가님은 어떤 분이실까? 이름도 신비스러운 설혜심 교수. 인삼의 재발견이었을 뿐만 아니라, 역사학자의 발견이었다. 철저히 1차사료나 신문, 잡지 등 2차사료를 통해 추론하고 기존 주장을 번복해나가는 걸 읽고 있다보면 살짝쿵 역사적 추론을 시도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정도였다. 30페이지가 넘는 참고문헌에 직접 인터뷰까지 진행하는 꼼꼼함과 서말의 구슬을 꿰어낸 저자의 역사학적 훈련이 어우려져 용이 되어 승천한 책이다. 학부때 똑똑하다 싶은 애들이랑 얘기하다 보면 결국 역사적(역사학이 아니라) 서술로 빠지길래 얻은 결론이 '똘똘이들은 이유를 캐다 캐다가 결국 원형의 모습을 찾아내고 나서야 납득을 한다'는 거였는데, 저자와 대화를 하면서 예의 그 똘똘이를 만난 느낌이었다. 간간이 역사학적 배경지식을 얻을 수도 있었는데, 가령 다음과 같은 서술은 인간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는 주옥과 같은 명제였다.
"인류학과 역사학은 한 집단이 다른 문화와 충돌할 때 나타나는 반응을
흔히 '유비'와 '대립화'라는 두 범주로 풀이해왔다."
뿐만 아니라, 애초에 한의학에 대한 관심에서 이 책을 읽어보고 싶었는데, 한의학과 관련한 다양한 참고문헌을 얻게 되었다.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이 어떤 흐름으로 저술되었고 유럽으로 흘러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고, 생약을 중시하는 동종요법이란 연구방법론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국의 방대한 의서, 일본이 막부시절부터 인삼을 조사하여 남긴 기록서 목록은 빈약한 우리의 의서와 비교되어 아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고전서에 기대 한의학이 전통에만 답습한다며 한의사를 두고 '한무당'이라며 손가락질 하는 비판에 대해서는 인삼을 바라보던 서구인의 시선이 오버랩되었다.
"자신들의 전통을 보존하는 동양의 행위는 곧 서양에 대한 거부로 읽히고
'아집'과 '독선' 같은 개념으로 포장되었다."
이 책을 읽고나니 냉장고 구석에 있던 정관장 홍삼이 다시 보였다. 인삼이 해독제인가 각성제인가, 진통제인가 아니면 정력제인가 논의 끝에 학습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 결과가 뇌리에 박혀서. 영국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보자. 인삼을 복용시킨 집단이 성취도, 집중도가 더 높았으며 덜 피곤해했다니. 인삼이 만병통치약이라는 건 허상이었다 할지라도, 수천년 간 문화적으로 인정받아온 유익한 점을 십분 활용해야하지 않겠나. 그리고 저 정관장 홍삼 안에 '문익점의 목화씨'를 떠올리게 하는, 개성의 삼업인 3명 등이 한국전쟁 당시 목숨걸고 종자를 구해옴으로써 명맥을 유지하게 된 개성인삼이 담겨져 있다는데. 구한말, 조선을 먹여살렸던 '19세기의 반도체, 인삼'. 숨겨진 슈퍼스타였을 줄이야.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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