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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6년 05월 3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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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5쪽 | 409g | 153*224*20mm |
ISBN13 | 9788936436926 |
ISBN10 | 8936436929 |
얼리리더를 위한 6월의 책 : 리유저블컵 3종 세트 증정
2024년 06월 01일 ~ 2024년 06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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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초등학교 책상엔 어디나 가운데 금이 그어져 있었다. 자를 대고 똑바로 그은 금도 있고, 볼펜 같은 걸로 지워지지 않게 확실하게 그어놓은 것도 있고, 심하면 칼로 파서 아예 골을 만든 것도 있었다. 이혜경의 <틈새>는 내게 그 금을 생각나게 했다. 이건 내 것, 저건 네 것이었다. 이 세상은 내 세상이고 저 세상은 네 세상이고. 금을 넘어오면 내 것이 되는 거였다. 팔꿈치라도 넘어가면 큰 일이 났다.
그런데 그 금 그어진 세상은 사실 어른인 우리 가운데에도 늘 있었던 것이다. 어느 새 우리는 바른 길, 정답의 길, 하나뿐인 길을 만들어놓고 그에 맞춰 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려놓은 동그라미나 네모에서 살려고 노력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해지는 것이다. 또한 거기에서 벗어나면 아웃사이더였고 마이너리그였고 루저였다. 이혜경의 이 작품집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모두 너와 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의 경계를 그리고 세상과 뚝 떨어진 섬을 그리고 문 안과 문 밖을 그리고 또한 두 세상 사이의 틈새를 그리고 있다.
첫 단편 <물 한모금>이 한국 내 외국 근로자, 흔히 산업연수생이나 불법체류자라고 일컫는 동남아인들을 그린 작품이라 너무 쉽게 가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묘한 거부감으로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솔한 감정 전달과 오바하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유지하는 작가의 글 솜씨에 빠져 어느 새 마음속 긴장이 풀어졌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세상의 일상 이야기도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단순하게 풀어나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그 가운데 생각할 거리, 깨달음…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조금씩 스며들었다. 단순하고 명료한 명제들인데도 흔히 의식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일상의 금, 그 금들이 우리의 구체적인 생활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상들을 단아하게 그리고 있다.
<그림자>에서 주인공은 밤중에 전화를 받으며 속으로 말한다. ‘넘어오지 말라고.’ <섬>에서 주인공은 잠을 못 자게 하는 기억에 대해 말한다. ‘큰 독에 장아찌 담그듯 차곡차곡 집어넣고 넓적한 돌로 단단히 눌러놓은 기억은, 조금만 틈을 보여도 부글부글 끓어넘쳤다.’ 마지막 구절에서 그 실체를 확인한다. ‘이 밤, 잠 못 드는 또 한 영혼이 문밖에서 숨죽인 목소리로 부른다. 나야.’ <문밖에서>에서는 여러 명이 모이던 모임에 안 나오게 된 이유를 말하는 한 친구의 말이다. “그런 일들이 여러번이었어. 아닌데 아닌데 하면서도 휩쓸리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일들, 어떤 땐 별자리목걸이였고, 어떤 땐 [꿈풀이 사전]을 갖추는 거였고, 어떤 땐 누구 한 사람의 사생활에 관심을 집중시키는 거였고.” <늑대가 나타났다>에서는 마을에서 늘 다른 데를 그리워하던 아이가 막상 먼데에 나와서는 날이 저물자, ‘늑대와 친척인 그’의 자전거에 올라 정겨운 ‘늑대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얘기이다.
이혜경은 특별한 재미가 있는 얘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소재나 기상천외한 주제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이혜경의 소설은 전혀 가볍거나 쉽지 않다. 술술 읽히고 단순한데 의외로 은근슬쩍 어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이면에 있는 이혜경이 생각하는 ‘금’, 그 금은 지금 내 마음속에도 내 생활 속에도 내 사고 속에도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깨닫는데, 끄집어내는데 더 어렵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늘 당연히 받아들였던 그 금에 대한 얘기를 이혜경은 우리의 여러 모습을 통해 담담하게 풀어냈다. 은근한 힘이 느껴지는 이혜경의 작품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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