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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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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문선명 | 김영사 | 2009년 03월 09일 리뷰 총점8.5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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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3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383쪽 | 632g | 148*210*30mm
ISBN13 9788934933755
ISBN10 8934933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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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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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저자 : 문선명
1920년 1월,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다. 현재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총재이다. 일본 와세다 대학 전기학과를 졸업하였으며 미국 리커대학교, 아르헨티나 라플라타대학교 및 미국 버디언대학교에서 수학하면서 명예법학박사학위, 미국 성서신학대학에서 명예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54년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설하였으며 「워싱턴 타임스 Washington Times」,「세계일보」를 창간하기도 했다. 전세계의 기아와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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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서평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인으로 살아온 문선명 총재의 감동의 드라마!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넘어 미국과 중동, 러시아와 남미에까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고난과 승리의 대장정! 통일교 문선명 총재는 우리 민족, 아니 전 세계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바로 그 현장에서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평화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었고,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은 바로 온 인류가 겪어야 했던 고난 바로 그 자체였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 사태까지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의 한복판에서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평화를 일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한 인간의 고난과 승리의 일대기가 이 책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대한민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옥고, 평화를 설파하기 위해 갔던 곳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수차례, 어떤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오직 평화를 위한 길을 가라는 하늘의 뜻을 믿으며 평생 사랑과 평화의 길을 걸어온 그의 일생을 진솔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문선명 총재가 아흔이 넘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진정한 자기 고백이자 내면의 기도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구촌의 화약고라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소련의 크레믈린까지 직접 뛰어들어가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세계평화의 다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고, 때로는 기아로 허덕이는 제3세계 국가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파라과이의 오지까지 들어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았으며, 지금도 유니버셜 발레단과 같은 문화사업에서 환경운동에까지 힘쓰며 전 세계 방방곡곡을 평화와 사랑의 손길로 보듬고 있는 문선명 총재,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이 책을 통해 최초로 세상에 공개된다!

“나에게 삶은 어느 누구와도 의논할 수 없는 고독한 노정이었습니다.
이제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내 마음 속의 폭풍 같은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


세계를 무대로 사랑과 평화를 일구어온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처음으로 밝히는 90생애의 진솔한 이야기! 끝없는 박해와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인류 행복의 길을 개척해온 한 인간의 눈물과 회한, 꿈과 비전, 열정과 인류애!

나는 평생을 평화를 위한 일에 몸 바쳐 왔습니다. 평화라는 말만 떠올리면 지금도 목이 메어 눈물이 쏟아집니다. 세계가 하나 되어 평화를 누리는 날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감격스러울 수가 없습니다. 평화란 그런 것입니다. 생각이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말이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를 그리워하고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1989)에서 『신화는 없다』(1995)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1998) 『아름다운 원칙』(1989)까지, 이 시대 진정한 거물들의 삶과 인생, 철학과 비전을 생생하게 그려냈던 김영사가 폭풍 같은 한 세기를 보낸 또 한 명의 삶을 조명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을 넘어 미국과 중동, 러시아와 남미에까지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통일교 문선명 총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3년의 기획기간을 거쳐 2년 여의 기간 동안 집필과 탈고, 거듭된 원고 수정 작업 끝에 출간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과 냉전,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 사태까지 전쟁과 분열로 점철된 20세기의 한복판에서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평화를 일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한 인간의 고난과 승리의 일대기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만큼 문선명 총재는 우리 민족, 아니 전 세계 역사의 고비고비마다 바로 그 현장에서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며 평화의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었고,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던 그의 삶은 바로 온 인류가 겪어야 했던 고난 바로 그 자체였다. 일제 식민통치 시대와 북한 공산정권, 대한민국과 미국을 넘나들며 이어지는 옥고, 평화를 설파하기 위해 갔던 곳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적도 수차례, 어떤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오직 평화를 위한 길을 가라는 하늘의 뜻을 믿으며 평생 사랑과 평화의 길을 걸어온 그의 일생을 진솔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는 이 책은 문선명 총재가 아흔이 넘어 처음으로 세상에 내놓는 진정한 자기 고백이자 내면의 기도이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구촌의 화약고라는 팔레스타인 지역과 소련의 크레믈린까지 직접 뛰어들어가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면서 세계평화의 다리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고, 때로는 기아로 허덕이는 제3세계 국가들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파라과이의 오지까지 들어가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 안았으며, 지금도 유니버셜 발레단과 같은 문화사업에서 환경운동에까지 힘쓰며 전 세계 방방곡곡을 평화와 사랑의 손길로 보듬고 있는 문선명 총재, 그동안 밝히지 못했던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가 이 책을 통해 최초로 세상에 공개된다!

민족과 종교를 초월해 진정한 세계인으로 살아온 문선명 총재의 감동의 드라마
우직한 시골 소년이 하나님을 만나 평화의 세계를 알기까지


하나님은 왜 나를 불렀을까요? 아흔이 된 지금도 날마다 하나님이 왜 나를 부르셨는가를 생각합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나를 선택하셨을까요? 외모가 잘나거나 인격이 훌륭하거나 신념이 강해서가 아닙니다. 나는 고집불통에다 어리석고 보잘것없는 소년일 뿐이었습니다. 내게서 취하실 것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는 마음, 하나님을 향한 애절한 사랑이었을 겁니다. 언제 어디서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마음을 갖고 살며 고난을 당할 때에도 사랑의 칼로 고통을 끊을 수 있는 사람을 찾다가 나를 부르신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시골 소년이었습니다. 지금도 나는 지독하게 하나님의 사랑에만 목을 매고 사는 미련한 사람입니다.

문선명 총재가 하나님의 뜻을 직접 들은 것은 열여섯 되던 해 부활절 전야였다. 1920년 일제 식민치하에서 태어난 그가 목격한 민족의 현실은 처참했다. 더군다나 세계적으로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전쟁의 소용돌이와 그 속에서 계속되는 인간의 고통,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의문은 그를 더욱 깊은 혼란에 빠뜨렸다. 목사였던 셋째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집안 모두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독실한 신앙생활을 하던 그는 고통으로 가득한 현실에 대한 답을 찾고자 밤낮으로 기도에 몰두했다. 그리고 그날 그의 눈앞에 나타난 예수님은 고통 받는 인류를 구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에게 예수님의 현현은 하나의 해답이었고 그날 이후 그는 흔들림 없이 하나님의 뜻길을 가게 된다. 한 겨울에도 방 안에 불 한번 지피지 않고 전차 값이 아까워 흑석동에서 종로까지 걸어다니면서도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남에게 주어야 마음이 편하고 그것도 모자라면 다른 사람의 것을 가져다가라도 남들 도와줘야 직성이 풀리던 고집쟁이 문선명 총재는 그렇게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받아들였다.
그 후로 그의 바람은 오직 하나였다. 세상을 겹겹이 에워싼 담장과 울타리를 깨끗이 헐어버리고 하나 되는 세상을 만드는 것, 종교의 담장을 허물고 인종의 울타리를 넘어서 부자와 빈자의 틈을 메운 뒤 배고픈 사람도 없고 눈물 흘리는 사람도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의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그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고난과 박해 앞에서도 뜻을 굽힐 수 없었다. 서울과 도쿄에서 유학을 하면서 그의 이런 의지는 점점 더 굳어졌다. 서울에서는 한강 다리 밑에서 거지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그들의 아픔을 함께 했고, 도쿄 유학 시절에는 조선소에서 막노동을 하며 학비와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나가와의 빈민굴에서 어려운 이들과 함께 하며 노동자 중의 노동자,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가 이렇게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이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앞으로 겪게 될 고난의 시작이었다.

“이단은 없다!”
교파 없는 교회, 교회 아닌 교회를 꿈꾸며


욕을 먹으면 오래 산다고 하는데 욕먹은 만큼 다 살려면 나는 아직도 백 년은 더 살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밥으로 채운 배가 아니라 욕으로 채운 배가 남들보다 몇 배는 될 테니 나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사람입니다. 평양에 가서 교회를 시작했을 때 나를 그렇게 반대하고 돌을 던지던 기성교회가 부산에서도 역시 나를 반대했습니다. 교회를 제대로 시작도 하기 전부터 시시콜콜 시비를 걸어왔습니다. 이단, 사이비는 내 이름 앞에 붙는 고유명사였습니다. 아니 내 이름 문선명은 이단, 사이비와 똑같은 말이었습니다. 이단이니 사이비니 하는 접두사 없이 그냥 이름만으로 불려본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광복 이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달랑 성경책 하나만을 들고 평양으로 올라가 교회의 문을 열었다. 작고 보잘것없는 교회였지만 조금씩 소문이 퍼지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서울과 동경에서 유학을 하면서 수백 번 성경을 읽고 또 읽고, 밤을 새우며 눈물과 땀으로 기도에 매진한 결과 얻게 된 그의 해답과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교인들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위기감을 느낀 기성교회의 반발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그들의 고발로 흥남감옥에 투옥된 그는 살을 에는 흥남의 추위, 견디기 힘들 정도로 혹독한 강제노역과 굶주림 속에서도 결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고,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강철처럼 더욱 확고한 믿음을 다진다.
2년 8개월의 투옥생활 끝에 6. 25전쟁과 함께 풀려난 그는 부산 피난 시절을 거쳐 서울 장충동에 자리를 잡고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世界基督敎統一神靈協會)란 간판을 건다. ‘세계기독교’는 동서고금에 걸친 기독교 전부를 의미하고, ‘통일’은 앞으로 나아갈 목적성, 그리고 ‘신령’은 부자관계의 사랑을 중심으로 한 영육계의 조화를 암시한 표현이었다. 특히 통일은 하나님의 이상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한 문 총재의 이상이었다. 그렇게 어떤 교파에도 속하고 싶지 않았고 또 다른 교파를 만들 생각 없이 시작된 문 총재의 교회에 대한 기성교회의 반발이 다시 시작되었다.
대학가 전도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이화여대와 연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교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대학은 위기감에 휩싸였다. 그리고 마침내 연대와 이대는 문선명 총재를 따르는 학생들과 교수들을 퇴학 및 퇴직시키는 학교 역사상 전무후무한 극단적인 선택을 내렸다. 일이 일파만파 퍼지는 것을 걱정하며 교회로 찾아오는 학생들을 말리기도 했지만 그들은 막무가내였다. 기숙사에서 나가지 못하게 막으면 담을 넘는 것도 예사였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문 총재는 사이비 종교집단의 지도자로 매도되었고 문 총재의 서울교회도 사이비 종교집단이라는 이미지가 박혔으며 기성교회의 반발은 더욱 심해졌다. 그리고 결국 1955년 7월 13일 문 총재는 병역기피라는 죄목으로 다시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다. 또다시 쇠고랑을 찼지만 문 총재에게 이것은 해방의 세계를 향해 도약하기 위한 발판일 뿐, 그에게 좌절을 안겨줄 수는 없었다.
문 총재가 생각하는 교파 없는 교회를 원했다. 참된 종교란 자기 교단을 희생해서라도 나라를 구하려 들고, 나라를 희생해서라도 세계를 구하려 들고, 또 세계를 희생시켜서라도 인류를 구하는 것이었으며 어떤 경우든 교파가 우선일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그에게 사이비나 이단 논쟁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 선택한 선교의 길
나비가 되기 위한 애벌레의 인내와 끈기로, 미국 정신혁명의 아이콘이 된 레버런 문


강연에는 종파를 초월한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였습니다. 설교 중에 “여기 장로교 있는가?” 하고 물으면 “여기요, 여기!” 하며 손을 드는 청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또 “가톨릭도 있나?” 하고 물어도 여기저기서 손을 번쩍번쩍 들었습니다. “남침례교는?” 하고 물으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요, 저요!” 하는지요. 내가 “자기 종교 놔두고 왜 나에게 설교를 들으러 오는 거요? 어서들 돌아가요. 돌아가서 자기 교회에 가서 말씀 들어” 하면 와! 와! 하고 탄성을 질러댔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장로교며 침례교의 지도자들이 교회 청년들을 이끌고 찾아왔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레버런 문’은 미국 사회의 정신 혁명을 뜻하는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55년 광복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과의 국교도 수립되기 전 문선명 총재는 일본에서의 선교를 위해 선교사를 파견하기로 결심한다. 국교가 없었으니 일본 비자를 받는 것도 불가능했고 밀항을 통한 불법 입국만이 유일한 길이었다. 일본으로 파견된 최봉춘은 불법 입국으로 두 번이나 추방당하고 세 번째 체포된 상황에서 다시 극적인 탈출을 감행하며 일본에 정착했고, 그렇게 극적으로 일본에서의 선교활동은 뿌리내리기 시작한다.
일본뿐만이 아니라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국가에서도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공산주의와 민주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던 냉전 시절, 공산권 국가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다. 소련에서는 선교사들이 KGB에 발각되어 강제추방을 당하기도 했고, 차우세스쿠의 독재정치가 극에 달했던 루마니아에서는 비밀경찰 에게 미행을 당하고 전화를 도청당하는 일도 예사였다. 1973년에는 30여 명이 한꺼번에 검거되어 그중 한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오랜 고통의 시간을 보낸 뒤에 날개를 달고 나비가 되는 모습을 빗대어 나비작전이라고 불린 공산권 국가에서의 선교활동은 큰 아픔을 감내한 만큼 커다란 나비가 되어 날개를 펴기 시작했다.
청교도 정신을 근간으로 한 미국에서의 선교활동도 시작되었다. 처음 미국인들이 문 총재의 강연에 보인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이제 겨우 전쟁의 굶주림 속에서 살아난 한국이라는 보잘것없는 나라에서 온 종교 지도자가 어디서 감히 미국을 상대로 회개하라는 소리를 하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총재의 순회강연은 날이 갈수록 화제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고 우주와 인생에 관한 근본원리를 비롯하여 미국의 건국정신을 일깨우는 강연 내용이 퇴폐와 나태의 나락으로 빠져들던 미국인들에게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미국인들은 문 총재의 강연을 통해 의식 혁명을 이루었던 것이다. 특히 젊은이들은 파더 문(Father Moon) 혹은 레버런 문(Reverened Moon) 이라고 부르며 문 총재를 따르기 시작했고 그의 강연에는 종파를 초월한 다양한 젊은이들이 모였들었다.
마침내 1976년 9월 18일,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인권행진을 벌이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대규모 집회를 열었던 워싱턴 모뉴먼트에서 30만 명의 인파가 운집한 가운데 성공적인 집회를 이끌게 된다. 머리카락 색깔이며 얼굴색이 모두 제각각인,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 보내신 모든 인종이 다 모인 정말 세계적인 집회였다. 그해 연말, 『뉴스위크』는 문선명 총재를 1976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철의장벽 크레믈린의 고르바초프도, 지구의 마지막 붉은 광장 김일성도 통일교 문선명 총재의 평화와 사랑 앞에서는 모두가 마음의 문을 열 수밖에 없었던 드라마보다 가슴 뛰는 이야기!

지금이야 다들 평화통일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평화통일을 주장하던 때는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이 무서워 감히 평화통일이란 말을 사용하기조차 겁나던 시절이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줄곧 평화통일을 주장해왔습니다. 지금도 누가 “어떻게 해야 한반도가 통일됩니까?” 하고 물으면 내 대답은 한결같습니다.
“남한 사람이 남한보다 더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 사람이 북한보다 더 남한을 사랑하면 오늘이라도 한반도는 통일됩니다.”

1990년 8월 2일 이라크의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며 지구의 화약고 중동에 전운이 감돌자 문선명 총재는 측근을 통해 각 종단의 지도자들을 모아 중동회담을 제안했다. 물론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문 총재는 중동에 전운이 감돌 때마다 열두 차례나 목숨을 걸고 팔레스타인의 지도자인 아라파트를 직접 만나 중동평화를 위해 중재에 나섰다.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건 그의 행보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종교를 허용하지 않는 공산국가 소련과 북한에까지 넘어가 평화의 종교를 설파하며 평화외교관으로서의 막중한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냉전시대가 막바지로 치닫던 1990년 문 총재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고르바초프를 만나 진정한 개혁을 성공하려면 종교의 문을 열어야 한다며 그를 설득했다. 그리고 한국과 수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 결과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은 86년 만에 국교를 맺게 되었다. 소련의 붕괴를 직감한 문 총재는 소련 붕괴 이후 한반도 평화를 대비하기 위해 김일성 주석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물론 김일성과의 만남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문 총재를 국제적인 승공운동의 괴수로만 알고 있던 북한에서는 문 총재의 방북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지만 수차례에 걸친 설득 끝에 1991년 11월 김일성 주석의 초대를 받고 북한을 방문하여 한반도 비핵화선언과 국제 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협정에 조인할 것을 건의한다. 문 총재가 일주일의 여정을 마치고 평양을 떠나자 연형묵 총리를 수반으로 한 북한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여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체결되었고 이듬해 1월 30일 북한이 IAEA의 핵사찰협정에 조인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이후 1994년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했을 때에도 북한은 일체의 외국 조문객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문 총재만은 예외였다. 한국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이 배치되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문 총재는 조문사절을 보냈고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는 신의가 바탕이 되자 김정일 위원장도 마음을 열고 조문사절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처럼 제아무리 첨예하게 대립하는 나라라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것이 바로 문 총재의 지론이며 지금까지 그가 실행에 옮긴 사랑과 평화의 원칙이다. 무차별적인 폭력집단이라 낙인찍힌 팔레스타인인들도, 국제적으로 교류의 문을 닫아 건 북한도 모두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보듬고 대화한다면 그들 역시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온다는 사실을 문 총재는 목숨을 건 수십 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직접 보여준 것이다.

"땀은 땅을 위하여, 눈물은 인류를 위하여, 피는 하늘을 위하여"
세계를 품고 마음속의 국경을 지워버린 세계인이 되어


종교와 인종을 한데 어우르는 평화세계를 만들기 위한 길은 한없이 고단했습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치이고 때로는 능력에 치이는 일이 수없이 많았지만 나는 그 사명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나와 함께하는 식구들이나 동료들이 너무 힘들어 비명을 지를 때면 차라리 그들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가다가 싫으면 돌아설 수도 있고 하다 하다 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나 나는 그럴 수도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하고 그들을 향해 하소연한 적도 있었습니다.

문 총재는 지금도 전세계의 기아와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이르와 콩고, 가이아나, 파라과이, 브라질 등에 학교를 세우고 농업과 공업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인류가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는 모델로 브라질 자르딘 지역에 새소망 농장을 만들었다. 이곳에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함께 설립해 브라질 사람만이 아니라 전 세계 사람 누구나 새소망 농장에 와서 일하고 먹고 배울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다가 솟아올라 육지가 된 탓에 아직도 짠물이 올라오는 파라과이의 차코에 직접 들어가 피폐한 주민들의 삶에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들에게 직접 낚시를 가르쳐주고 그렇게 잡은 고기를 팔아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강가에 냉동 창고까지 지어주었다. 또한 학교를 세워 이 지역 사람들을 교육시킴으로써 자신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나갈 수 있는 기반을 닦아주었다. 배고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빵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침으로써 근본적인 해결방법을 채택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식물의 서식지이며 하나님이 지은 창조물의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는 브라질의 판타날 지역을 보전하기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는 지금 세계가 한몸이 되는 새로운 역사를 꿈꾼다. 전세계를 하나로 이어줄 국제평화고속도로가 그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해저터널로 연결하고 러시아와 북미 대륙을 가르는 베링해협에 다리를 놓아 지구를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아프리카의 희망봉에서 칠레의 산티아고까지, 그리고 영국의 런던에서 미국의 뉴욕까지 전 세계 어느 곳이듯 막힘없이 달려갈 수 있는 글로벌 통합 프로젝트를 그는 계획하고 있다. 금전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국가 간의 미묘한 갈등까지 모두 해결해야 하니 분명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 당장은 모든 사람이 불가능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지금까지 걸어온 모든 길 역시 누구도 가능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매번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며 세계평화를 위한 길을 걸어왔다. 이처럼 지금 세계의 인적자원과 지하자원의 불균형을 조절해 세계적인 부의 평준화를 이루어줄 이 프로젝트 역시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그는 단언한다. 그리고 국제평화고속도로라는 물리적 소통의 공간을 넘어서 초종교 지도자들의 지혜를 합한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말한다. 뜻을 세우는 데 있어 좁은 국토을 탓하는 우를 범하지 말고 국경을 넘어 전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할 일을 찾으라고, 그리고 단순히 일신의 영달을 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람들과 사랑과 평화를 나누는 데 힘쓰라고 . 그는 그렇게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으로 거듭나기를 당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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