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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5년 11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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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9쪽 | 458g | 142*222*30mm |
ISBN13 | 9788937420122 |
ISBN10 | 8937420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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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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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10월의 굿즈 : POINT OF VIEW 북커버/스탬프/유리 티포트/페이퍼 아크릴 문진/북 백/저널 노트
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26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돌이켜보면 꼭 그 시절에 읽지 않으면 안되는 책들이 있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읽지 않으면 큰 울림을 간직할 수 없다. 나이를 먹고 다시 읽어 보면 그 시절 발견하지 못한 혹은 깨닫지 못한 것들을 얻을 수 있지만, 20대에 이 책을 처음 읽는다면? 글쎄 크게 와닿지 않을 것 같다.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 또한 고교시절이나 적어도 대학 2학년이 되기까지는 꼭 읽어봐야 하는 소설이다. 한 남자의 자아찾기는 비장하고 썸뜩하다. 유려한 문체에 동공이 확대되고 청춘의 고뇌가 고스란히 담긴 사념적인 문장에 심장과 뇌에서 스파크가 인다.
너는 말이다. 한번쯤 그 긴 혀를 뽑힐 날이 있을 것이다. 언제나 번지르르 하게 늘어놓고 그 실천은 엉망이다. 오늘도 너는 열여섯 시간분의 계획을 세워놓고 겨우 열시간분을 채우는데 그쳤다. 쓰잘 것 없는 호승심에 충동된 여섯 시간을 낭비하였다. 이제 너를 위해 주문을 건다. 남은 날 중에서 단 하루라도 그 계획량을 채우지 않거든 너는 이 시험에서 떨어져라. 하늘이 있다면 그 하늘이 도와 반드시 떨어져라. 그리하여 주정뱅이 떠돌이로 낯선 길바닥에서 죽든 일찌감치 독약을 마시든 하라.
젊은 시절 이 책을 읽으며 그렇게 다짐을 하고 다짐을 했건만, 아직도 고치지 못했거나 이루지 못한 것들이 많다. 청춘소설이기 보다는 구도소설 같다. 한 가난한 문학청년의 일기를 훔쳐보고 있는 듯하다. 마음 속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 그 칼을 버리기까지 그는 젊음의 고뇌와 채 여물기도 전에 져버린 절망을 향해 사자후를 토해낸다. 검정고시와 대학시험을 앞두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채찍질을 하며 써내려간 글들은 다시 읽어봐도 아랫입술을 깨물게 하는 비장함이 어려있다.
21년전인 1991년 영화로 개봉되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곽지균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정보석, 이혜숙, 배종옥, 옥소리, 조재현 등이 출연했다. 이문열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과 함께 가장 잘 만들어진 영화이기도 하다. 대학생으로 분한 옥소리는 황홀하게 예뻤으며, 이혜숙의 천상 여자 같은 모습, 배종옥의 술집 작부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정보석은 연기는 좀... 제29회 대종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총 8개 부문으로 상을 탄 작품이기도 하다.
방황 없는 청춘이 있을까?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방황은 두갈래 길이다. 하나는 책으로 가방을 채워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외면적인 방황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내면으로 날선 칼날을 들이대며 독백, 자아문답으로 이루어지는 방황이다. 자신의 내면에서 답을 찾으려는 그의 여정은 사람들과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그 만남을 통해 젊음과 청춘에게 이별을 고한다. 근데 그게 끝일까?
시인들이 흔히 논해 온 것처럼 삶이 하나의 긴 여행이라면 그 굽이굽이에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 또한 길동무로 부를 수 있으리라. 그들 중에는 단 한번의 마주침으로 스쳐가 버리는 사람도 있고, 또는 첫 만남의 서먹서먹함이 가시기도 전에 헤어져 종내에는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버리는 사람도 있다. 너무도 갈림길을 빨리 만나 가슴 속의 애뜻한 연모를 미처 드러낼 경우도 없어 잃어버리고 만 첫사랑의 소녀나, 우리가 준비 없이 맞닥뜨린 삶의 비참과 공허에 시달릴 때 빛처럼 다가오던 말씀과 외로움을 함께 나눈 지난 날의 벗들처럼 그 어떤 시간의 파괴력으로부터도 살아남아 문득문득 그리움으로 떠오르는 이들이 있다.
그 어떤 시간의 파괴력으로도 살아남아 문득문득...그건 사람만이 아닐 것이다. 책도 그러하리라. 내게 이문열의 <젊은날의 초상>이 그러하다. 절망과 좌절, 외로움, 분노, 자기성찰, 무조건적인 사랑. 이런 것들은 20대 초반, 청춘의 다른 이름인 줄 알았다. 특권이라 착각한 적도 있다. 살아보니 아니더라. 절망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그 절망 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이 소설은 말한다.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라고.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출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데미안>도 좋고, <노르웨이 숲>도 좋지만 이 책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시간의 파괴력으로부터 살아 남은 이 책은 여전히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행간마다 내 청춘의 고뇌와 절망이 담겨있다. 추억이 있다. 이 책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내 청춘과 추억이 그립다는 증좌이다. 나는 나를 더 혹독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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