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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문학 단편소설 2집 (큰글씨 특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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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문학 단편소설 2집 (큰글씨 특별판)

현진건, 김유정, 채만식, 김남천, 한설야 저 외 2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BOOKK(부크크) | 2021년 01월 18일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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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주의 문학 단편소설 2집 (큰글씨 특별판)

이 상품의 시리즈 (2개)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1년 01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336쪽 | 148*210*30mm
ISBN13 9791137233065
ISBN10 113723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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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저자 소개 (7명)

저 : 현진건 (玄鎭健, 빙허(憑虛))
호는 빙허(憑虛). 일제 당시 현실을 아이러니적 수법으로 고발하고 역사소설로 민족혼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소설가. 1900년 8월 8일 대구에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경운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호는 빙허(憑虛)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1912년 일본 세이조중학에 입학, 1915년 이순득과 혼인했다. 1918년에는 상하이에 있는 둘째 형을 찾아갔고, 그곳의 호강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귀국한다. 일본 도쿄... 호는 빙허(憑虛). 일제 당시 현실을 아이러니적 수법으로 고발하고 역사소설로 민족혼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던 소설가. 1900년 8월 8일 대구에서 대구 우체국장이었던 경운의 4남으로 태어났으며 호는 빙허(憑虛)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1912년 일본 세이조중학에 입학, 1915년 이순득과 혼인했다. 1918년에는 상하이에 있는 둘째 형을 찾아갔고, 그곳의 호강대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한 뒤 귀국한다. 일본 도쿄[東京] 독일어학교를 졸업하고 중국 상하이[上海] 외국어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20년 [개벽]에 단편소설 「희생화」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들어섰다. 이 작품은 신교육을 받은 두 남녀의 사랑이 봉건적인 관습 앞에 가로막히는 사연을 그렸다. 문단으로부터 그다지 긍정적인 평을 받지 못했으나 1921년 「빈처」를 발표하면서부터 작가로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현진건이 활동한 시대는 봉건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이자 일제 강점기였다. 그는 식민 지배 아래 핍박받는 우리 민족의 수난상과 사회 하층민의 빈곤의 참상을 폭로하고 고발했다. 현진건은 일제에 대한 끈질긴 저항과 강렬한 민족의식을 작품으로 표현한 작가로서, 서양 문화를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가 맞닥뜨린 새로운 시대의 모순에 비판적인 의식을 유지했다.

1936년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일할 때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살 보도사건으로 구속되어 1년간 복역했다. 신문사를 떠나 양계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불우한 시기를 보낸다. 그 뒤 동아일보에 『무영탑』을 시작으로 장편 역사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으나 『흑치상지』의 연재가 중단되고, 『조선의 얼골』 또한 금서처분을 받는 수난을 당했으며, 1943년 4월 25일 연재 중이던 마지막 작품 『선화공주』를 채 마무리하지 못한 채 술을 아니 마실 수 없게 만들었던 세상을 떠나고 만다.

대표작은 「빈처」, 「술 권하는 사회」, 「운수 좋은 날」, 「B사감과 러브레터」 등과 장편 『적도』, 『무영탑』 등이 있다. 현진건은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사실주의적 한국단편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로,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로 평가된다.
저 : 김유정 (KIM, YOO-JUNG,金裕貞)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 데뷔작인 『소낙비』를 비롯하여 대부분 농촌을 무대로 한 작품을 많이 남긴 한국의 대표적인 문학가이다. 노다지를 찾으려고 콩밭을 파헤치는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을 그린『금 따는 콩밭』, 머슴인 데릴사위와 장인 사이의 희극적인 갈등을 소박하면서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봄봄』등 한국의 옛 농촌 정서를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답게 풀어내 그만의 문학세계를 그려나갔다. 그 밖에 『동백꽃』, 『따라지』 등 다수의 단편이 있다.

1908년 1월 11일, 우리나라 최초의 인명(人名) 기차역인 ‘김유정역’이 있는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일곱째이자 그로서는 안타깝게 차남으로 태어난다. 1914년, 유정 일가는 서울 진골(현 종로구 운니동)의 1백여 칸짜리 저택으로 이사하는데, 셋째 누이 김유경은 이곳을 유정의 출생지로 증언한다. 1915년 어머니가, 2년 뒤인 1917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고아가 된다. 9살, 유정은 아직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가장이 된 형 유근은 동생을 돌보는 대신 주색잡기에 빠져 산다. 유정은 책상 위에 놓인 어머니 사진을 들여다보곤 하며, 친구들에게 어머니가 미인임을 자랑하기도 하며,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하고 횟배를 자주 앓으며 소년기를 보낸다. 또한 말더듬이어서 휘문고보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늘 그 일로 과묵했다. 1929년, 한 번의 휴학을 거쳐 휘문보고를 졸업한다. 그동안 형의 금광 사업 실패와 방탕한 생활로 가세는 몰락한다. 1930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지만 결석으로 인해 곧 제적당한다. 스스로는 더 배울 것이 없어 자퇴했다고 했지만. 이후 얼마간의 방랑 생활을 거친 후 귀향, 야학당을 여는 한편 농우회, 노인회, 부인회를 조직 농촌계몽 활동을 벌인다. 그 와중 늑막염이 폐결핵으로 악화한다.

1933년, 서울로 돌아온 유정은 누나들 집을 전전하며 폐결핵을 견뎌야 하는 삶을 산다. 그런 유정을 안타까워하던 친구 안회남이 소설 쓰기를 권유, 「산골 나그네」와 「총각과 맹꽁이」를 연이어 발표한다. 그리고 1935년「소낙비」가 『조선일보』신춘문예 현상모집에 당선되고, 「노다지」가 『조선중앙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정식으로 등단한다. 1935년에는 〈구인회〉의 일원으로 참가하였다. 이후 1937년, 스물아홉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소설 30편, 수필 12편, 그리고 번역 소설 2편을 남긴다.

죽기 한 해 전인 1936년 가을, 이상으로부터 “유정! 유정만 싫지 않다면 나는 오늘 밤으로 치러버릴 작정입니다. 일개 요물에 부상당해 죽는 것이 아니라 27세를 일기로 불우한 천재가 되기 위해 죽는 것입니다!”라는 동반자살 제의를 받지만, “명일의 희망이 이글이글 끓습니다”라는 말로 거절한다. 하지만 이듬해 3월 29일, 세상을 떠나고 만다. 자살을 먼저 제의한 이상보다 19일 먼저. 사인은 둘 모두 폐결핵. 같은 해 5월 15일, 요절한 두 천재의 죽음을 기리는 합동 추도식이 치러진다. 발기인은 이광수, 주요한, 최재서, 정지용, 이태준, 박태원, 그리고 안회남 등 25명. 1938년, 김유정의 첫 책, 제목은 『동백꽃』이 삼문사에서 출간된다.

대표작으로는『금따는 콩밭』,『봄봄』,『따라지』,『두꺼비』,『동백꽃』,『땡볕』등이 있다. 일제 강점의 혹독한 현실 가운데에서 주로 회화적인 해학의 오목거울을 통해 어둡고 삭막한 농촌 현실과 그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농민들의 곤궁한 삶을 제시하였다.

김유정의 소설은 인간에 대한 훈훈한 사랑을 예술적으로 재미있게 다루고 있는데 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많은 사람을 한 끈에 꿸 수 있는 사랑, 그들의 마음과 마음을 서로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을 우리의 전통적인 민중예술의 솜씨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작가의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리석고 무지한 인물들은 웃음을 자아내는 동시에 주인공의 가난하고 비참한 실제 삶과 이어져 진한 슬픔을 배어나게 하는 등, 해학과 비애를 동반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또한 사건의 의외적인 전개와 엉뚱한 반전, 매우 육담적(肉談的)인 속어, 비어의 구사 등 탁월한 언어감각으로 1930년대 한국소설의 독특한 영역을 개척하였으며 약 2년 동안 30여 편에 가까운 작품을 남길 정도로 작품활동을 활발히 하여 한국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 그 후 폐결핵에 시달리다가 1937년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따 경춘선 철도에는 김유정 역이 있기도 하다. 그의 사후 1938년 처음으로 삼문사에서 김유정의 단편집『동백꽃』이 출간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깊은 감동적으로 남아있다.
저 : 채만식 (蔡萬植, 백릉白菱, 채옹采翁)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하여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재직했으며, 1936년 이후로는 창작에 전념하며 풍자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5년 낙향하여 1950년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새길로」(『조선문단』)로 등단 후 290여 편... 호는 백릉(白菱), 채옹(采翁). 1902년 전라북도 옥구에서 출생하여 임피보통학교,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그 후 와세다대학 부속 제일와세다고등학원을 중퇴했다. 조선일보사·동아일보사·개벽사 등의 기자로 재직했으며, 1936년 이후로는 창작에 전념하며 풍자성이 농후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45년 낙향하여 1950년 이리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1924년 단편「새길로」(『조선문단』)로 등단 후 290여 편에 이르는 장편·단편 소설과 희곡·평론·수필 등을 썼다.

장편 「인형의 집을 나와서」(1933)·「탁류濁流」(1937)·「천하태평춘」(1938)· 「금(金)의 정열」(1939) 등과 단편「레디메이드 인생」(1934)·「치숙」(1938)·「패배자의 무덤」(1939)·「맹순사」(1946)·「미스터 방(方)」(1946) 등이 대표작이다. 1942년 조선문인협회가 주관한 순국 영령 방문 행사와 1943∼1944년에 국민총력조선연맹이 주관하는 예술 부문 관계자 연성회, 보도특별정신대 등 친일 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저 : 김남천 (金南天, 본명:김효식(金孝植))
1911년 평남 성천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다. 1930년 카프 도쿄 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1931년 호세이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하기도 하였... 1911년 평남 성천에서 출생하였다. 1929년 3월 평양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도쿄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였다가 1929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입하였다. 1930년 카프 도쿄 지부에서 발행한 [무산자]에 동인으로 참여하였고, 1931년 호세이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귀국하여 카프의 제2차 방향전환을 주도하였으며, 김기진의 문학 대중화론을 비판하고 볼셰비키적 대중화를 주장하기도 하였다.

1931년 제1차 카프 검거사건 때 조선공산주의자협의회 가담 혐의로 기소되어 2년의 실형을 언도받았으며, 1934년 제2차 카프 검거사건 때도 체포되어 복역하였다. 1935년 임화·김기진과 협의하여 카프가 경기도 경찰국에 해산계를 낼 때까지 조직에 충실하면서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을 추구하였다. 8·15광복 직후에는 조선문학건설본부를 조직하였고, 1946년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을 결성하여 좌익 문인들의 구심점 역할을 담당하던 중 1947년 말 경 월북하여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서기장까지 올랐으며, 한국전쟁 때는 조선인민군 종군 작가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작품으로는 장편소설『대하』외에 연작소설인『경영』, 창작집『소년행』『삼일운동』『맥』등이 있으며, 1953년 휴전 직후 남로당계 박헌영 세력 제거와 관련해 ‘종파분자’로 지목되어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본명은 한병도(韓秉道). 1900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났으며 경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22세에 동경 유학길에 올라 니혼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이때부터 소설을 습작했다. 귀국한 뒤 1925년 26세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그날 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뒤 1927년에 카프 재조직에 참여하여 본격적인 카프 이론가로 등장하면서 작품 창작도 병행,... 본명은 한병도(韓秉道). 1900년 함경남도에서 태어났으며 경성고등보통학교를 거쳐 함흥고등보통학교를 졸업했다. 22세에 동경 유학길에 올라 니혼 대학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고 이때부터 소설을 습작했다. 귀국한 뒤 1925년 26세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에 「그날 밤」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뒤 1927년에 카프 재조직에 참여하여 본격적인 카프 이론가로 등장하면서 작품 창작도 병행, 「프롤레타리아 예술선언」 「문예운동의 실천적 근거」 등의 평론을 발표하며 카프 내부의 논쟁에 활발히 참여하였다.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이기영과 함께 조선프롤레타리아문학동맹을 창설하고 위원장을 맡았으나 곧 임화 중심의 조선문학가동맹에 주도권을 빼앗기고 월북했다. 1947년 북조선문학총동맹 중앙위원장을 맡은 뒤 여러 요직을 두루 역임했으며 특히 김일성의 정권 창출에 기여하여 정치적 중심에 섰다. 또 북한문학의 전범이 되는 작품들을 집필해 북한 문단의 초기 활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1953년 무렵 임화, 김남천, 이태준 등 남로당 계열 문인들의 숙청과 비판에 앞장섰으며, 그 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신 역시 숙청되어 1962년 자강도의 수용소로 추방되었다가 1976년 고향 함흥에서 사망했다.
저 : 최서해 (曙海, 학송(鶴松))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 1901년 함북 성진군 임명면에서 빈농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학송(鶴松)으로 어려서 부친 혹은 서당을 통해서 한문 공부를 많이 했다. 1918년 간도로 들어가 유랑 생활을 시작해서 부두노동자·음식점 심부름꾼 등 최말단 생활을 전전했다. 1923년 봄에 간도에서 귀국하여 회령역에서 노동일을 했으며 이때부터 ‘서해(曙海)’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했다. 춘원의 『무정』을 읽고 크게 감명받고 동경에 있는 춘원과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1924년 「토혈」 「고국」으로 등단했다. 1925년에 조선문단사에 입사하여 중견 작가로 인정받기 시작했고, 김기진의 권유로 카프에 가입했다. 1927년에는 조선문예가협회의 간사직을 맡았으며 전해에 휴간한 조선문단을 남진우가 인수하여 1월에 다시 입사하지만 4월에 또 실직했다. 위문 협착증을 앓던 그는 대수술 중에 과다 출혈로 1932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문학은 '체험문학', '빈궁문학', '저항문학'으로 규정된다. 몇 명의 엘리트의 눈으로 바라본 일부의 삶이 아니라 실제 체험을 통한 대다수의 극빈층의 생활상을 날카롭게 표현해 그들의 울분과 서러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호는 포석(抱石). 조선에서 태어난 소비에트 연방의 작가이다. 1923년에 희곡 「파사」를 발표하고, 1924년에는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출판했다. 이 시기의 희곡이나 시는 종교적 신비주의·낭만주의의 색채가 짙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활동 초기에 관념적인 시를 지었으나 1925년 8월 카프에 창립위원으로 참가하면서 자전적 단편소설인 「땅 속으로」 발표를 기점으로 혁명적 투쟁을 그리는 작가로 변모했다. ... 호는 포석(抱石). 조선에서 태어난 소비에트 연방의 작가이다. 1923년에 희곡 「파사」를 발표하고, 1924년에는 시집 『봄 잔디밭 위에』를 출판했다. 이 시기의 희곡이나 시는 종교적 신비주의·낭만주의의 색채가 짙었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활동 초기에 관념적인 시를 지었으나 1925년 8월 카프에 창립위원으로 참가하면서 자전적 단편소설인 「땅 속으로」 발표를 기점으로 혁명적 투쟁을 그리는 작가로 변모했다.

1927년 [조선지광]에 발표한 대표작 「낙동강」은 카프 문학사에 있어 신경향파 소설로부터 목적의식기의 소설로 방향 전환을 이룩한 걸작으로 평가되었으며, 특히 김기진은 「낙동강」을 “1920년 이후 조선 대중의 거짓 없는 인생 기록이자 획시대적인 작품”으로, 조명희를 “제2기에 선편을 던진 작가”라 평했다.

조명희는 일제의 탄압으로 인해 1928년 소련으로 망명하였는데, 망명 이후에도 하바롭스크 등지에서 시와 소설을 집필하는 한편 농민청년학교 교사와 조선사범대학 교수 등을 역임하며 고려인 후학을 양성했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중앙아시아 지방으로 이주되었으며, 1938년 예조프의 ‘대숙청’ 당시 KGB에 의해 일본 간첩으로 몰려 4월 15일에 사형언도 받고 5월 11일 소비에트 연방 하바로브스크에서 총살당했다. 사후 약 20년이 지나 흐루쇼프 정권 때 소련작가연맹회원으로 복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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