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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2년 12월 0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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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332쪽 | 710g | 153*224*30mm |
ISBN13 | 9788937486302 |
ISBN10 | 893748630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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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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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전과 달리 자서전을 대하는 자세는 약간 모호하다. 한 인생의 일대기를 추적하며 느끼는 감동과 경외감이 한 축이라면, 자서전을 쓴 주체(대부분은 Ghost Writer라 불리는 대필작가의 몫이므로)가 본인인지 혹은 대필작가인지에 따라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또 다른 축이다. 잡지 편집자로 일하며 몇 차례 자서전(그룹 회장 혹은 CEO) 작업을 진행했기에 더더욱 그럴 지도 모른다. 예상보다 픽션적 요소가 강하게 반영된다고 할까?
자서전을 읽는 이유는 소설 읽기와 다르지 않다. 내가 살아보지 않은 인생을, 그것도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의 삶이란 얼마나 흥미로운가? 내 경우에는 ‘책’ 관련 담론들의 자서전(혹은 평전)에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평생 1만 권의 책 읽기와 영혼을 잃지 않는 편집자 되기’란 나름의 화두를 세운 터라, 앞서간 분들의 삶을 통해 흔들림 없는 열정의 근거로 삼을 수 있고, 무엇보다 시행착오를 줄이며 그들이 안내하는 인생의 행로를 미리 따라가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자서전은 아니지만, 열린책들 홍기웅 대표의 1년치 일기 모음(2004년?)인 ‘통의동에서 책을 짓다’, 항상 좋은 장정과 기획으로 신뢰할 수 있는 마음산책의 정은숙 대표의 ‘편집자 분투기’, 이제 신생을 벗어나 나름의 서고를 쌓아가고 있는 휴머니스트 김학원 대표의 ‘편집자란 무엇인가?’ 등 가끔씩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찾아 읽는 책들이다. 인생 선배이자 업계 선배들의 삶 자체가 내겐 좋은 인생 교과서처럼 다가온다.
한국 출판계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민음사 박맹호 회장의 자서전 <책>이 얼마 전 출간됐다. 업계의 영향력이나 공로에 비해 언론에 자주 노출되지 않았던 박맹호 회장의 이야기라 관심이 컸다. 한국 단행본 출판의 현대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민음사가 걸어온 지난 47년은 그야말로 한국 출판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표지는 박맹호 회장이 친히 발굴하여 대한민국 북디자인의 새영역을 개척한 정병규(정디자인) 선생이 맡았다. 크라프트 용지에 ‘책’을 문자도 형태로 표현했는데, 먹박과 은박의 후가공은 물론 ‘박맹호 자서전’이란 세로쓰기가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풍긴다.
1933년 출생하여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아버지와의 불화, 서울대 진학 후 소설쓰기에 대한 열망 등이 흥미진진하다. 이후 1966년 청진동 옥탑방에서 ‘민음사’ 시대를 연 이래 2013년 현재까지의 삶을 다룬 후반부는 나름나름으로 내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평생의 지기인 고은 시인과의 인연도 새로웠고, 잠깐이지만 노무현 대통령과의 일화도 눈에 띈다.
민음사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우선 얼마 전 세계문학전집 300권을 돌파하며 각종 언론을 떠들썩하게 했던 기억이 난다. 시인들의 로망이랄 수 있는 김수영 문학상을 처음 만들었고, 1977년 제정된 ‘오늘의 문학상’을 통해 한수산, 이문열을 비롯하여 김혜나와 최민석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외에도 ‘오늘의 시인 총서’, ‘대우학술 총서’, ‘이데아 총서’ 등 지난 47년 동안 5,000여 권의 단행본을 만들어내며 한국 출판의 뿌리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인상 깊었던 장면을 꼽자면, 세련된 책 장정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그 첫 번째다. 편집디자인회사에서 오래 밥 벌어 먹고 있는 지라 그의 생각에 열렬히 박수를 쳤다. 요즘 대형서점을 나가보면 표지 디자인과 제본 방식에 있어서 시대를 선도하는 단행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어쩌면 박맹호 회장과 홍지웅 대표 등과 같이 인문학적 사고, 디자인적 심미안을 두루 갖춘 출판계 원로들의 노력이 지금의 출판시장을 만들지 않았나 싶다.
두 번째는 민음사에 대한 그의 비전이다. 민음사를 종합대학만큼의 지적 영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키우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하여 돈 되는 것만 좇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소명의식을 갖고 인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의 연구를 지원하고, 총서를 내고 있다. 어찌보면 지금의 민음사가 그 정도의 영향력은 충분하지 않나 싶다. 덧붙여 박맹호 회장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킨 게 일정 부분 1980년대부터 시작된 단행본 업계의 ‘출판운동’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말한다. 맥락을 따지자면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책’에 대한 그의 열정이다. 책쟁이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듯, 그의 책에 대한 운명도 유년시절 결정됐다. 당시 유복한 집안(보은에서 첫 손에 꼽히는)에서 태어나 아버지와의 불화도 겪었지만, 책과 음악을 멘토 삼은 그가 ‘나는 책을 통해 만들어졌고, 따라서 책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되었다.”라 술회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최고의 책이라 꼽는 조지 오웰의 <1984>나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 로맹 롤랑의 <베토벤의 생애> 등만 보더라도 유년시절의 지적 사유나 책을 통한 인생의 좌표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재 민음사는 비룡소, 황금가지, 세미콜론, 민음인, 사이언스 북스 등 많은 임프린트를 거느리고 있다. 정확하게는 친족 경영이라 할만한데, 다양한 영역에서 그들이 원하는 출판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내가 늘 부러워하는 부분은, 편집자와 저자와의 만남이다. 뗄래야 뗄 수 없는, 톰과 제리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편집자는 수많은 저자를 통해 새롭고 다양한 세상을 만날 수 있으며, 저자 또한 편집자를 통해 독자와의 원활한 소통이 가능해진다.
박맹호 회장이 책에서 밝히는 낯익은 이름들에 감회가 새로웠다. 4K로 불리던 김현, 김치수, 김주연, 김병익과의 인연, 이문열을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과의 만남, 1980년대 정권의 탄압으로 폐업 위기에까지 몰렸던 ‘수요회’ 활동,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의 주빈국으로서의 당시 상황 등 어찌 보면 한국 현대사와의 아픔과 희망이 교차했던 사건과 인물들로 가득하다.
물론 민음사의 공만 있는 건 아니다. 최근 산문집 ‘나는 잘 웃지 않는 소년이었다’를 낸 작가 김도언 님은 ‘지금 작가들은 어떤가. 문단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는 문학 메이저 출판사 ‘빅4’(창작과비평사,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민음사)의 관리 체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줄 안다.’라고 말한다.
출판 업계도 갈수록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시장 논리에 내몰리면서 빈익빈 부익부의 폐해가 눈에 띈다. 거기에 동네책방의 몰락과 대형서점의 횡포, 인터넷 서점의 제살 깎기 경쟁 등 수많은 난제가 산재해 있다. 이런 속에서 민음사의 뚜렷한 상생 혹은 사회적 책임활동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출판사한테 사회적 책임활동을 하라면 그게 어불성설일지도... 당장 생존이 급선무인 곳이 대부분이므로)
지금 현재도 ‘종이 책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다.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후에 대한민국의 출판시장은 어떻게 변모할까? 앞으로 종이 책은 점점 더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가면서 하나의 예술 매체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앱과 웹의 획기적인 진화를 통한 e-publishing이 대중화될 것이다.
그런 속에서 문학 메이저 출판사(열린책들이나 자음과 모음까지 포함해서)들은 오로지 책을 ‘진심으로 짓고’, 다변화되는 트렌드에 부응하되 ‘시대의 소명의식을 잃지 않는’ 온전한 출판을 해야 할 것이다. 점점 독자들은 냉정하고, 까다롭고, 변덕스럽다. 독자의 마음을 남보다 일찍 간파했던 박맹호 회장의 선견지명이 언제까지 유효할 지 두고 볼 일이다. 책쟁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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