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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2년 05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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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00쪽 | 152*210*20mm |
ISBN13 | 9788934958017 |
ISBN10 | 8934958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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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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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는 한승원 작가의 강 문화 에세이집이다. 이 책에는 남도의 서정, 역사적 내력을 지닌 길, 강의 생명력 등이 주역처럼 등장한다. 강이 생명력을 지닌 존재인 것은 강은 순환하는 넋이고 여신의 다른 이름이라는 저자의 말을 통해 설명된다. 이 책이 다룬 주요 강들은 영산강, 황룡강, 극락강, 지석강, 적벽강 등이다. 한승원 작가의 책에는 강에 더해 산과 그 산을 수놓는 사찰, 암자, 폐사지 등이 등장한다. 강을 다룬 책에 산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산이 강의 발원지이기 때문이지만 무엇보다 강과 산이 대극적(對極的)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산이 사찰, 암자, 폐사지 등과 연결된다면 강은 호수, 습지 등과 연결되거니와“산을 보면서 기상을 키우되 물을 통해서 가라앉힐 줄 아는 힘을 기르지 않으면 성정이 범처럼 사납기만 하게 된다.“(55 페이지)는 저자의 말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산과 물의 그런 선명한 대비이다. 물과 산의 그런 남다른 관계는 탐욕을 가라앉히고 자연에 절로 절로 친화하려고 애쓰는 의지와 다시 기회를 엿보아 탐욕을 쟁취하려는 의지가 공존해 있다는 정자(亭子)의 위상(56 페이지)을 생각하게 한다.
맛과 빼어난 풍경, 차별받고 배제된 서러운 역사를 지닌 남도는 이청준, 조태일, 이승우, 임철우, 곽재구, 고재종 등의 문인을 낳은 땅이기도 하다. 동학농민전쟁, 조정래 작가가‘태백산맥’을 통해 묘사한 지리산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 활동, 광주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진 5, 18 학살은 남도와 관련된 대표적인 슬픈 역사의 아픔이다. 동학농민전쟁 이야기는“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란 말을 추억처럼 떠올리게 함으로써 슬픈 역사의 한 자락을 차지하는 동학농민전쟁을 선명하게 부각시키기도 한다. 광주에서는 영산강을 극락강이라 부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희덕 시인의‘ 극락강역’이라는 시에 나오는 극락강역은 영산강역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영산강의 다른 이름인 극락강, 무등산의 다른 이름인 수미산(須彌山: 저자는 자신의 사전 속에서 무등산은 수미산으로 적혀 있다고 말한다.)은 불교적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만난다.
식영정(息影亭), 소쇄원(瀟灑園) 등 유명 정자나 정원 등도 남도의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다. 식영정의 남쪽 산줄기 끝 시냇가에 환벽당(環璧堂)이란 정자가 있다. 이 정자를 세운 김윤제의 사위가 바로 그 유명한 송강 정철이다. 그런데 가사 문학의 대가인 정철은 정여립 모반 사건의 국문(鞠問)을 맡아 연루자 1,000여명을 죽게 했다. 그도 어쩔 수 없는 당쟁으로 얼룩진 시대정신에 붙들린 선비였을 뿐이다. 그런 연고(緣故)로 나는 송강 정철의 감상(感賞)에는 아름다움과 악마적인 광기가 동시에 들어 있었던 모양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남도 그 중에서도 광주, 변산 일대는 백제의 유민들이 통일 신라에 저항하던 본거지였다. 이때 반전(反戰)과 관계된 원효가 등장한다. 반전운동을 편 그를 김춘추가 자기의 과부 딸 요석공주 집에 강제 연금시켰는데 그 사이에 설총이 태어났다.(69 페이지) 원효의 파계(破戒)는 세속적 관심으로나 종교적 관점으로 풀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의 비유에 능한 저자에 의하면 초의 스님(1786 - 1866)과 다산 정약용 선생(1762 - 1836)의 만남은 서로를 받아들여 안고 사랑하며 굽이쳐 흐르는 위대한 두 영혼의 만남이었다.(115 페이지) 초의차(草衣茶)의 5대째 계보를 이었다는 선학(禪學) 박사 박동춘 교수 역시 다산이 초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는 물을 활용한 비유(‘맑은 차 적멸을 깨우네’257 페이지)로 저자의 문제의식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나주 운흥사 벽봉 밑에서 머리를 깎은 초의 스님이 대단한 선지식이 있다는 화순 쌍봉사를 찾아 간 것을 운흥사에서 발월한 계곡물이 쌍봉사 계곡에서 흘러온 지석강물과 몸을 섞은 다음 영산강으로 흘러든다는 말에 비유해 설명하기도 한다.
남도에는 차茶가 나지 않는데도 다도면(茶道面)으로 불리는 내력이 있다. 전남 강진의 다도면이 그곳으로 차가 나지 않는데도 다도면이라 불리는 사연은 봄철 보릿고개에 배를 졸이면서도 차를 따서 관리들에게 바쳐야 했던 백성들이 시달리다 못해 애물단지인 차밭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다.(164 페이지) 남도는 유배지였던 만큼 수탈의 아픔이 곳곳에 서린 곳이기도 한 것이다. 그것은 일제에 의해 식량을 수탈당한 곡창 나주에도 해당하는 사연이다.‘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에는 서원들도 많이 등장한다. 미수 허목을 봉안한 미천서원(眉泉書院, 나주), 문정공 김인후를 봉안한 필암서원(筆巖書院, 장성), 고경명을 봉안한 포충사(褒忠祠, 광주), 기정진을 봉안한 고산서원(高山書院, 장성), 조광조를 봉안한 죽수서원(竹樹書院, 화순), 정개청을 봉안한 자산서원(紫山書院, 함평), 김종직, 김굉필 등을 봉안한 해망서원(海望書院, 화순 춘양) 등.. 그러고 보면 남도는 서원의 고향이기도 하다.
비로자나불과 함께 종이로 만든 지불(紙佛)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는 장성 백양사의 말사인 나주 불회사의 경우는 특별해 보인다. 화순 운주사의 천불천탑(千佛千塔) 역시 남다른 사연을 지녔다. 이 천불천탑은 황석영 작가와 저자의 다른 해석을 맛볼 수 있는 장치이기도 하다.‘장길산’을 통해 드러난 바 황석영 작가에 의하면 천불천탑은 핍박받는 민중들의 구세주 대망이 개벽 세상에 대한 염원 즉 미륵(彌勒) 하생(下生) 신앙으로 드러난 것이다. 반면 한승원 작가에게 천불천탑은 죽은 다음에 가게 될 극락정토를 대망하며 자신들의 미래의 모습을 조각한 무지렁이들의 작업의 결과로 해석된다.(206 페이지) 저자(한승원 작가)는 불상(佛像)들이 못생겼고 심지어는 부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듯 싶은 것들도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얼굴이 머리에 관념화된 까닭에 타인을 그리려 해도 곧 자기 자신을 그리게 된다는 한승원 작가의 논리에는 설득력이 있다. 너무나도 다양해 체계가 없고 제 각기 서로 다른 모습으로 드러난 천불은 한승원 작가의 논리에 설득력을 더한다. 하지만 불상이 잘 생기고 못 생기고가 미륵 상생 신앙과 하생 신앙을 가르는 기준이 되는가, 하는 의문을 낳는다. 물론 미륵 하생 신앙이든 상생 신앙이든 민중의 염원이 담긴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저자의 관심은 서원/ 유교와, 사찰/ 불교 가운데 어디에 더한 관심을 보이는 것일까? 그 궁금증에 답이라 할 수 없지만 하나의 단서(端緖)가 되는 문장이 있다.“대개의 유학자들은 사각형적인 삶을 중시할 뿐 열어 놓는 삶을 가벼이 여긴다. 그리하여 향교나 서원은 담을 드높이 쌓고, 높은 대문을 달아놓고 권위와 숭엄함을 과시한다. 그와 반대로 도학적인 삶, 불가적인 삶은 무위자연과 자유자재의 삶을 지향한다. 때문에 대개의 절들은 대문도 없고 드높은 담도 쌓지 않는다.”(236, 237 페이지)
그런데 조선조의 깨어 있는 선비들은 뜻있는 스님들과 교유했다. 다산, 추사가 그들이다. 다산, 추사에 더해 초의를 하나로 분류하면 차(茶)를 통해 교유한 내력이 드러난다. 그러나 초의스님은 차(茶)로 알려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선사(禪師)였고 탱화(幀畵)를 그리는 금어(金魚), 서예가, 시인, 화가였다. 저자는‘강은 이야기하며 흐른다’를 통해 역사가 깃든 길을 자신이 걷고 있다는 이야기를 여러 차례 한다. 그 길들 중 가장 가슴에 남는 길은 다산의 유배길이다.“월출산을 오른쪽에 끼고 누릿재를 넘어야 하는”“3층 석탑 하나가 남아 있는 월남사지를 거치고 수백 마리의 청룡들이 꿈틀거리는 듯한 차밭을 지나 백운동에 이른다”는 길이다. 저자는 해남 두륜산 대흥사의 일지암으로 가며“절은 왜 산속에 있고 암자는 왜 그 절 뒤편의 더욱 고요하고 그윽한 숲 속에 자리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왜 그 고요한 곳에 자리한 암자를 찾아가는가”란 질문을 화두처럼 제시한다. 저자 스스로 제시한 답에 의하면 절과 암자는 그 어떤 병원에서도 치유받을 수 없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 위해 가는 치유의 그윽한 시공이다.
해남, 하면 흔히 땅끝이 연상된다. 하지만 나주 출신의 정끝별 시인이 말했듯“사실은 바다가 시작되는 곳은 죄다 땅끝”일 것이다.(‘그리운 건 언제나 문득 온다’140 페이지) 해남은 고정희(1948 - 1991), 김남주(1946 - 1994)라는 두 뛰어난 시인을 낳은 땅이다. 저자의 글에서 진도에서 나고 목포에서 자란 김현(1942 - 1990, 본명 김광남)이라는 이름이 거론된 것은 색다르다. 작가, 시인, 화가, 예술가들이 거론되어온 자리에 문학평론가가 언급되었기 때문일까. 목포라는 이름에는 목(木)이라는 한자가 쓰이지만 그 목은 서해와 남해를 가르는 목(길목이라 할 때의 그 목)이다. 저자는‘벽암록’에 들어 있는 일화개세계기(一花開世界起: 꽃 한 송이 피어나니 세계가 일어난다)란 구절을 들려준다. 영산강 물줄기가 섞여 있는 바다 한 자락이 출렁거리면 모든 세계 바다가 출렁거릴 것이라는 저자의 문장은 광주와 전남의 젖줄인 영산강(榮山江)에 대한 최고의 찬사(讚辭)이다. 저자의 인문학적 탐사에 편승해 넉넉하고 풍성한 여행을 함께 할 수 있었음을 감사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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