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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9년 09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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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826쪽 | 2,800g | 152*215*8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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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읽으며 역사가로서의 유발 하라리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다.
● 절대적 객관성은 없다
카는 ‘절대적일 뿐만 아니라 영원하기도 한 객관성’이란 없고 그것은 ‘일종의 비현실적 추상’이라고 말하며, “역사에서 필요한 것은 역사가가 받아들인 어떤 객관성의 원칙이나 규준에 따라서 과거에 관한 사실을 선택하고 배열하는 일인데, 그 일에는 반드시 해석의 여러 요소가 포함된다”라고 했다. 이 말에서 우린 이걸 유추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념과 가치문제에서 손대기 까다로운 영역인 ‘민족, 종교, 돈, 정체성, 자유, 인권’ 등등이 우리가 만든 ‘허구 이야기’라고 말하며 전작 『사피엔스』에서 구체적인 해석을 제시하였다.
● 역사가의 역할
“말이 끄는 마차 시대나 초기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로 돌아갈 수 없듯이, 로크의 이론이나 자유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소규모의 개인주의적 민주정으로, 19세기 중반에 영국에서 부분적으로 실현된 그 민주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고발에 대한 진짜 답변은 앞에서 말한 폐해들이 그 나름대로의 교정책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치료방법은 비합리주의를 숭배하거나 근대 사회에서의 이성의 확대된 역할을 부인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이 수행할 수 있는 역할을 점점 더 철두철미하게 의식해야 한다는 데에 있다.”(『역사란 무엇인가』)
개별 분야 연구자들로부터 비판과 논쟁의 화살을 맞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유발 하라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등 광범위한 분야를 넘나들며 일반 독자와 소통에 힘쓰고 있다. 역사가로서 그는 정말이지 이성이 수행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E. H 카가 ‘188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1920년대의 역사가가, 1920년대의 역사가보다는 오늘날의 역사가가 객관적인 판단에 더 근접해 있다’고 말하고 있듯이 사망한 카가 하지 못한 역사가의 역할을 유발 하라리가 지금 잘 해주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생명기술과 정보기술의 혁명은 기술자와 기업가, 과학자 들이 만들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결정이 어떤 정치적 함의를 갖는지 거의 알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대표하지 않”(『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고, “세계화, 블록체인, 유전공학, 인공지능, 기계 학습” 등의 수많은 신비한 단어들과 현상 속에서 점점 자신이 사회와 무관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상황에서 역사가로서 이 시대 인간으로서 그는 누가 시키지도 않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 인간이여! 그에게서 모자란 점은 다른 누군가가 또 해주겠지!
● 해석의 순환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진보를 ‘역사 서술의 근거가 될 과학적인 가설’이라고 본 액턴의 설명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원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역사 외적이고 초이성적인 힘에 과거의 의미를 예속시킴으로써 역사를 신학으로 바꿀 수 있다. 원하기만 한다면 여러분은 역사를 문학─의미도 중요성도 없는, 과거에 관한 꾸며낸 이야기와 설화들의 묶음─으로 바꿀 수도 있다. 그 이름에 걸맞은 역사는 역사 그 자체 안에서 방향감각을 찾아내어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다. 우리가 어딘가로부터 왔다는 믿음은 우리가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믿음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미래의 진보 능력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사회는 과거의 진보에 대한 관심도 이내 포기할 것이다. 내가 첫 번째 강연의 첫머리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역사관은 우리의 사회관을 반영한다. 지금 나는 사회의 미래에 대한 그리고 역사의 미래에 대한 나의 믿음을 밝힘으로써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유발 하라리 인류 3부작 완결 편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 대해 앞선 저서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재탕이라는 평을 자주 듣는데, 역사가는 메시아가 아닐뿐더러 역사가 그렇듯이 우리의 사고도 직선적 진보가 아니라는 걸 카의 저 말이 대변해준다. 우리는ㅡ인간이 만든 직선적 인과틀일 뿐인ㅡ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톺아보며 살아가는 존재다. “민주주의는 유권자가 가장 잘 안다는 생각 위에 서 있고, 자유시장 자본주의는 고객은 언제나 옳다고 믿으며, 자유주의 교육은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하도록 가르”쳤지만 지금 이 현실의 모습이 말해 주듯이 '절대적 가치'도 ‘합리적 개인’도 우리의 환상 기대치일 뿐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주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 개인의 합리성이 아니라 대규모로 함께 사고할 수 있는 전례 없는 능력 덕분이었다"라고 말한다. 같이 생각하자.
● 21세기의 우리
유발 하라리는 인류의 세 가지 주요 과제가 "핵 전쟁, 기후변화, 기술 혁신에 따른 파괴"라고 보았다.
"인류가 직면한 커다란 질문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고통에서 벗어나느냐"이다"라고 하며 추상과 경험의 대비를 보여줬지만 그것들이 우리 인간을 이뤘듯이 나로선 그게 크게 다른 말이 아니다.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렵기에 그럼에도 살아야 될 의미를 찾는다. 둘 다 어렵고, 의미(허구 이야기 - 민족, 종교, 돈, 정체성, 자유 등등)를 찾는 것과 고통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평생 시행한다. 혼동과 혼돈 속에서 오간다고 할 수 있겠다. 유발 하라리는 다음 말로 이어간다. "모든 허구적 이야기를 포기하면 이전보다 훨씬 명료하게 실체를 관찰할 수 있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안다면 아무것도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로서는 나라는 육체와 정체성이라는 인지적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에겐 참 어려운 일이다. AI가 전방위적으로 유입되면 더욱 혼란해지겠지. 그래서 하라리는 그전에 시급히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유발 하라리는 <한국인을 위한 7문 7답>에서 '고통'(감각적 경험)과 '괴로움'(정신적 반작용, 쾌락에 가까운 실체의 거부)은 다르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은 책 참조)
불교에서 세상을 "고(苦)"로 보듯이 유발 하라리는 이 책 내내 실체와 허구를 구분해 파악하는 방법으로 "고통" 살피기를 강조한다. 흡사 부처가 생로병사를 목도하고 대오각성해 출가한 것이 연상되었다. 실재/현실의 비참에서 현실적 초월의 길을 만들자는 것. 이 또한 종교적이고 사상적이지. 그러나 이 유발 하라리 교(?)는 "희생, 영원, 순수, 구원"을 들먹이지 않는다. 그보다 "Do It Yourself", "호쿠스 포쿠스(Hocus Pocus) X는 Y!(X를 Y로 변하게 할 때 외는 주문)”
말미에 "명상" 수련 얘기가 나와서 역시 불교적 세계관이 있었어 했다. AI 맞대응 중 하나로 이걸 거론할 줄이야; 나도 한땐 정말 이 방법으로 해탈을 하고 싶었죠ㅜㅜ
푸코와 트럼프도 명상을 좀 했더라면...
뭐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방안이고 큰 틀에서의 해법은 부족적 사고방식 tribal mindset에서 벗어난 "전 지구적 사고"가 모아져야 한다는 것. 미래는 AI 데이터 vs 인간 지성 싸움이랄까. 『호모 데우스』에서도 했던 얘긴데, 문제는 정부나 소수에 의한 디지털 독재,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이 결합, 불평등의 심화로 슈퍼휴먼 계층 출현 상황이면 "전 지구적 사고"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 지금도 이미 고전적으로 말하면 '부르주아 vs 프롤레타리아' 상황이니까. 인간의 어리석음은 끝이 없고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공감과 유대, 헌신, 사랑, 인권 등도 허구 이야기다. 그걸 실행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답 없다. 점점 심화되는 국가주의, 테러, 종교 분쟁, EU 연합의 흔들림, 브렉시트, 난민 문제 등의 현재 시점의 큰 흐름이 아니더라도 무수한 사회 문제에서 우리는 그걸 보고 있지 않은가.
● 한 가지 의문 – 왜 그는 ‘젠더’를 다루지 않았는가
유발 하라리는 이 책에서 ‘환멸, 일, 자유, 평등, 공동체, 문명, 민족주의, 종교, 이민, 테러리즘, 전쟁, 겸손, 신, 세속주의, 무지, 정의, 탈진실, 공상과학 소설, 교육, 의미, 명상’이라는 21가지 제언을 다루었다.
정부가 젠더 문제를 왜 무시하는지 짧고 굵게 언급하고 지나가는데 자신도 차별받는 성소수자이면서 왜 중요한 젠더 문제를 챕터로 안 다뤘을까. 생명 공학 발전으로 그런 구분이 무의미해질 거란 전망도 했지만 당면 시점에서 문제 해결 조짐이 안 보이면 내 예상에 그건 책으로 따로 낼 거 같다. 미셸 푸코가 그랬듯. 제발 내주길.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정체성. 우리는 외부 세계를 통해 나라는 관념을 종합하며 다시 외부를 규정하는 순환 구조에 있다. 각자가 정립한 정체성으로 인한 충돌이 지금의 현재를 만들고 있다고 봐야 한다.
나는 유발 하라리가 미셸 푸코(& 아감벤)에서 답보 상태인 생명정치의 새로운 열쇠를 가지고 온 거 같다.
이들이 한 쌍으로 묶일 줄 상상도 못했다.
※ 책 편집 오류
◇ 오타 (p345)
진 지구적(x) -> 전 지구적(o) : “하지만 지금 우리는 진 지구적 차원의 문제들로 고통받으면서도 전 지구적 공동체는 이루지 못한 상태다”
◇ 문장 중복(p441) : “파시즘은~” 부분 중복된 거 같음
“간단히 말하면, 민족주의는 나의 민족은 고유하며 나는 내 민족에 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가르치는 데 반해, 파시즘은 내 민족이 가장 우월하며 나는 내 민족에 대한 배타적인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파시즘은 내 민족이 그저 특별할 뿐 아니라 가장 우월하며, 나의 유일무이한 정체성도 민족 정체성뿐이고, 나는 내 민족에 고유한 의무를 넘어 배타적인 의무를 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상상을 넘어 불멸로 가는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2013년 5월 14일 <뉴욕타임즈>는 앤젤리나 졸리가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기로 했다는 기사를 냈다. 졸리는 유방암에 걸린 것인가? 아니다. 그녀는 유방암에 걸리지 않았다. 그러면 그 징후를 느낀 것인가? 정확히 말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녀는 유방암에 걸렸을 때 느끼는 징후, 곧 통증이나 불편함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는다고 선언했다. 유전자 검사 결과 그녀는 BRCA1 유전자가 위험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 이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들이 유방암에 걸릴 확률은 87%였다.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비교적 젊은 나이에 유방암으로 사망한 탓에 졸리는 유방암에 생래적인 두려움을 지니고 있던 차였다. 그녀는 유전자가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자기 내면에서 울리는 목소리보다 첨단의학이 전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졸리는 유방을 절제하는 ‘선택’을 하게 된 셈이다.
유발 하라리는 『호모 데우스-미래의 역사』(김명주 옮김, 김영사, 2017)에서 컴퓨터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미래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유방 절제 수술을 선택한 졸리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미래의 생명을 거는 사피엔스의 상황을 분명히 보여준다. “졸리는 실제 삶에서는 건강을 위해 사생활과 자율을 희생했다.”(457쪽)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사생활과 자율을 희생하는 건 인간을 자율적인 존재로 보는 자유주의의 전제를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유방을 절제하는 일을 졸리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일 뿐이다. 그녀는 인간의 몸을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는 생명공학의 기술적 성과를 바탕으로 유방 절제술을 선택한다. 기술이 인간의 선택-자율성을 지배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지은이가 제목으로 삼은 ‘호모 데우스Homo Deus’는 생명을 창조하는 인간을 가리킨다. 생명 창조의 중심이 신에서 인간으로 바뀌는 순간을 지은이는 ‘호모 데우스’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 창조는 물론 과학기술을 통해 이루어진다. 18세기에 이루어진 과학 혁명은 이제 인간이 생명을 창조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고 있다. 7만 년 전의 인지 혁명과 1만 2천 년 전의 농업혁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이러한 생명 프로젝트는 그러나 사피엔스의 멸종이라는 또 다른 문제와 대면하고 있다. 먹이사슬의 중간 정도에 머물러 있던 사피엔스가 인지 혁명과 농업 혁명을 거쳐 먹이사슬의 정점에 서는 과정은 『사피엔스』라는 책에서 이미 다루어졌다. 사피엔스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오르면서 숱한 (거대)동물들이 멸종의 길을 걸었다. 사피엔스는 ‘협력’의 힘으로 자기보다 덩치가 큰 동물들과 싸워 이겼다.
과학 혁명을 통해 인류를 괴롭혀 왔던 기아, 역병, 전쟁을 통제할 수 있게 된 사피엔스는 불멸, 행복, 신성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미래를 향한 주저 없는 발걸음을 떼고 있다. “짐승 수준의 생존 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39쪽)라고 지은이는 주장한다.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은 과학기술이 수행한다. 이미 인류는 인간 능력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지능은 인간보다 높지만 의식은 없는 인공지능의 출현은 사피엔스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만큼 치명적인 존재이다. 기술은 이론상으로 인류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생명공학자들은 죽음을 인간이 넘어서야 할 질병으로 생각한다. 신의 영역으로 생각했던 불멸을 기술적으로 사고하는 일만으로도 인류는 이미 사피엔스의 너머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점점 더 나은 도구를 만들어 고대의 신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도구만이 아니라 몸과 마음의 능력에서도 고대의 신들을 능가하는 초인간을 창조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신성은 사이버 공간만큼이나 일상적인 것이 되어 그 경이롭고도 경이로운 발명품을 우리는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인간이 신성을 얻고자 할 거라고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그런 업그레이드를 갈망한 만한 이유가 많고 그것을 달성할 방법도 많기 때문이다. 유망해 보였던 길이 막상 가보니 막다른 길이라 해도, 다른 길들이 열려 있을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인간 게놈이 함부로 손댈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해도,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인터페이스, 나노로봇,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길까지 막히는 것은 아니다. (76~7쪽)
기술의 발달은 도구의 발달을 의미한다. 불과 몇 십 년 전이라면 고칠 수 없던 질병을 인류는 하나하나 정복해가고 있다. 인간의 유전지도가 완전히 해독되면서 과학은 인간이 불멸에 이르는 길을 열어놓고 있다. 이제 인간은 마음의 안정조차 생화학적 기제에 매달리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지칭된 마음마저도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결과라는 걸 과학자들은 주장한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항우울제를 복용한다. 약이라는 생화학 물질이 인간의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는 얘기다. 다른 동물들과 대비되는 특성으로 내면의 자율성을 주장했던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도구에 제 몸과 마음을 맡기고 있다. 호모 데우스는 이리 보면 인간의 자율성을 부정하는 이론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지은이의 말대로라면, 인류가 호모 데우스로 진화하는 순간 인류는 인본주의와 결별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승자로 자리매김한 이유를 지은이는 허구를 창조하는 능력에서 찾은 바 있다. 허구는 상상의 질서를 세우는 힘이다. 동물들은 소수 인원으로 집단을 만들지만, 인간은 수백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도시나, 수억 명이 사는 국가를 만든다. 드넓은 공간에서 개별적으로 사는 이 존재들을 묶는 건 상상으로 구성된 제도이다. 이를테면 이 글을 쓰는 나는 ‘한국사람’이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과연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기나 한 걸까? 한국이라는 나라는 다만 약속의 체계일 뿐이다. 상상의 공동체라는 말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주식회사도 실제 사물은 부재한 상상의 산물이다. 사피엔스는 이런 상상의 힘으로 지구를 정복했다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사피엔스라는 공동체의 환상, 구체적으로 말하면 ‘협력’의 원리에서 그는 사피엔스를 정복자로 만든 원인을 찾아낸 셈이다.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하늘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오면서 우주 전체의 성질이 변했다. 신, 뮤즈, 요정, 악귀 들로 바글거리던 외부 우주는 텅 빈 공간이 되었다. 반면 지금까지는 날 것의 감정들을 처박아두던 별 볼일 없던 공간이던 내부세계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고 풍부해졌다. 천사와 악마는 세상의 숲과 사막을 떠도는 실제하는 실체에서 우리 심리 안의 내적 힘으로 탈바꿈했다. 천국과 지옥도 구름 위 어딘가에 있고 화산 밑 어딘가에 있는 실제 장소에서 마음의 내적 상태로 해석이 달라졌다. 우리는 가슴 안에 분노와 증오가 불붙을 때마다 지옥을 경험하고, 적을 용서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가난한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눌 때마다 천상의 기쁨을 누린다. (323쪽)
사피엔스를 하나로 묶는 상상의 질서는 불멸의 신을 향한 숭배에서 인간의 감정으로 옮겨왔다. 지은이의 말마따나 의미와 권위의 원천이 ‘인간’으로 옮겨지면서 우주 전체의 성질 또한 변했다. 천국과 지옥은 인간의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안=마음에 있다. 신이 사라진 자리를 인간이라는 주체가 차지한다. “신을 믿는다면 그것은 내 선택이다.”(326쪽)라는 말을 중세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면의 자아를 중시하는 인본주의는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는 중심이라고 선언한다. 과학 혁명과 더불어 강화된 인본주의를 지은이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적, 진화론적 인본주의로 나눈다. 각각 자본주의, 사회주의, 나치즘(부정적 의미에서)으로 대변되는 세 가지 인본주의는 지금 ‘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영역으로 통합되고 있다.
신이 있던 자리에 인본주의를 집어넣은 사피엔스의 사고 체계는 생명공학이 발달하면서 또 다른 ‘허구’로 인식되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얘기하는 인간의 자유의지는 생명공학의 맥락에서 보면 허구이다. 생화학적 알고리즘의 결과로 인간의 행동을 판단하는 생명공학은 “우리가 약물, 유전공학, 직접적인 뇌 자극을 통해 그 유기체의 욕망을 조작하는 것은 물론 통제까지 할 수 있다는 뜻”(393쪽)으로 사용된다. ‘단일한 자아’라는 인본주의의 환상이 무너진 자리를 생명공학의 통제 기술이 채운다. 묘하지 않은가? 신을 몰아내고 인간이 차지한 자리를 이제 기술이 인간을 몰아내고 차지한다. 기술이 주권자가 되는 세계를 우리는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기술이 주권자가 되는 세계는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인공지능이 반역을 일으켜 인간을 지배하는 허구 속 세계가 현실로 다가오는 듯도 하다.
지은이는 인류의 미래를 데이터교가 지배하는 세계로 바라본다. “데이터교는 우주가 데이터의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떤 현상이나 실체의 가치는 데이터 처리에 기여하는 바에 따라 결정된다고 말한다.”(503쪽) 한마디로 컴퓨터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생화학적 알고리즘이든, 전자 알고리즘이든 수학적 법칙에 따라 움직인다. 데이터교를 지배하는 것은 효율성이다. 자본주의가 왜 공산주의와의 경쟁에서 이겼겠는가? 지은이는 바로 이 효율성에서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데이터 교도들은 ‘만물 인터넷 Internet-of-All-Things’에서 훨씬 더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을 보고 있다. 인간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물들이 만물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세상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다른 건 몰라도 인간의 사생활은 아마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인본주의는 몰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은이는 데이터교에서 “18세기 이래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위력적인 종교 혁명”(533~4쪽)이 일어날 거라고 예측한다. 데이터교가 신을 몰아낸 인본주의자들에게 말한다. “신은 인간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인간 상상력은 생화학 알고리즘의 산물이다.”(534쪽)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당연히 있게 마련이다. 지은이는 “우리가 인간 중심적 세계관을 버리고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을 채택하는 즉시 인간의 건강과 행복은 보잘것없는 문제처럼 보일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사피엔스가 멸종시킨 그 숱한 동물들처럼 데이터 홍수 속에서 사피엔스는 존립을 위협받을 수도 있다. 지은이는 생명이라는 장대한 관점에서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어쩌면 사피엔스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핵심을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끊임없이 되새겨야 할 질문들이라는 말이다.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544쪽)
지난해 3월 바둑 프로기사를 대표한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 알파고의 세기의 대결 이후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커지면서 많은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제3차 산업혁명의 성숙국면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지만 인공지능의 발전이 사회 진화는 물론 인간의 일자리 대체 나아가 인간의 몸과 두뇌를 지배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들까지 나오면서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명의 이기와 세련된 문화, 첨단과학기술이 인간의 한계에 따른 필요와 욕망에서 비롯되었듯이 인공지능 역시 더 똑똑해지려는 욕구가 빚어낸 산물이라 진단하고 있다. 등장한 이래 인류가 지속적으로 독점적 위치를 강화해온 지난 역사를 고려해보면 상당히 혼란스럽고 새로운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갈림길에 도달한 셈인데 이런 시점에 전작「사피엔스」에서 별 볼일 없던 영장류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이 행성을 지배하게 됐는가라는 질문을 탐구했던 유발하라리가 미래인류를 전망한「호모데우스」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책은 인류의 새로운 의제라는 제목으로 시작되는데 인류가 수천년동안 공통의 근심거리였던 기아, 역병, 전쟁을 경제성장으로 어느 정도 통제하게 되면서 전례없는 번영, 건강, 평화를 얻게 되었다는 분석 아래 다음 목표는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경제와 더불어 기술, 특히 생화학적 발전이 노화와 비극이라는 인간의 생물학적 기질을 신처럼 제어하려는 데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또 이를 뒷받침할 방법으로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인조인간 만들기), 비유기체 합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세가지 목표가 과거에 기반한 예측한 미래상임을 고려하여 시간을 되짚어 호모사피엔스가 동물과 다르게 특별한 종이 되었는지, 또 여기서 유래한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어떤 세상을 만들어 나갔는지, 현재 우리 앞에 놓인 어려움과 미래가 무엇일지로 논의를 전개해간다.
우선 인류가 지구 대기와 바다, 야생 환경에 미친 영향으로 새로운 지질 시대가 도래했다는 의미에서 제기된 인류세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듯, 호모 사피엔스는 수렵채집 단계를 벗어난뒤 농업혁명을 통해 동물들의 대량멸종과 가축화를 이루어냈다. 농업혁명 직후 생겨나 펴져나간 기독교를 비롯한 유신론적 종교 역시 인간에게 특정한 제약을 안겨주기는 하지만 동식물계를 통제할 권한을 부여하면서 확실한 우위를 점할수 있게 하였다. 그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구적 개념인 법과 돈, 신, 국가, 기업 등을 믿는 능력을 바탕으로 한 대규모의 유연한 협력이었다. 이를 통해 지구에 우뚝선 호모사피엔스는 연구를 바탕으로 질병치료와 전쟁수행, 식량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과학의 힘과 사회구조를 만들고 유지하는 종교의 질서가 만나는 근대적 계약으로 나아갔지만 도덕, 아름다움같은 의미를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자 인류 스스로 의미의 창조자가 되는 인본주의를 믿고 숭배하기 시작했다. 그 뒤 인본주의는 인간의 경험이 의미와 권위의 최종 원천이 된다는 인식은 공유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주의, 타인들의 감정과 내 행동이 타인의 경험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관심을 두는 사회주의, 갈등과 자연선택을 중시하는 진화론으로 분화되었다가 냉전을 거치며 자유주의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이 인본주의는 유전공학, 생명과학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은 여러 알고리즘의 집합으로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며 외부 알고리즘이 인간을 인간 자신보다 더 속속들이 알게되는 단계에 들어서게 되면서 존립기반을 잃고 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전공학을 통해 육체와 두뇌의 기능 등이 향상된 소규모 특권집단이 나타나 역사상 최초로 초인간과 보통의 인간으로 나뉘는 생체계급사회가 출현할 위험에도 처해있다. 그리고 인간이 동물을 밟고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종국에는 인간을 데이터 처리 시스템으로, 역사는 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데이터교 가 인류를 정복할 수 있음을 주장하며 끝을 맺는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인류에게 다가오는 미래가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음을 기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여 보여주고 있으나 인공지능과 생명공학과 같은 기술의 영향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의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당부한다. 하지만 생명의 장대한 관점으로 볼때 유럽난민사태,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같은 당면문제와 지구온난화, 불평등의 증가와 같은 중장기적 과제들보다 과학 특히 데이터교의 교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우리의 지평을 넓힘으로써 그 영향에 대비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진보진영의 몇몇 이론가들이 이번 4차 산업혁명 단계에서 주어질 많은 과제와 함께 사회혁신을 고민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것을 들으며 크게 공감한 적이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무인운송수단․3D프린팅과 같은 물리학적 기술과 사물인터넷․빅데이터․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연결 디지털 기술, 유전편집․인공지능과 인간의 연결이 중심이 되는 생명공학기술 등 각각의 기술발전 전망과 그 영향에 국한해서 지금의 시대를 진단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보여준 문제의식과 탐구는 우리 앞에 펼쳐질 격랑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한 사회, 한 국가가 아닌 인류전체가 지혜를 모아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2016년에 읽은 최고의 책이라고 생각했던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가 새로운 책을 썼다. '호모 데우스'라는 이름을 듣고서 바로 연결되는 것이 별로 없었다. 고작 아마데우스 정도이다. 아마별 연관은 없을 것이다. 서론에서는 과학 낙관적인 의견이 나온다. 사피엔스는 결국 불멸이라는 업적을 이룰 것이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 불멸은 계속 신의 영역이었다. 신의 영역을 얻은 인류는 호모 데우스(사전을 찾아보니 dues가 신이라는 뜻)가 된다. 서론에서 '특이점이 온다'를 쓴 레이 커즈와일에 대한 얘기가 잠깐 나오는데 그가 생각한 나노봇이나 유전자공학에 대한 청사진을 좋게 받아들인 것 같다. '특이점이 온다'를 읽을 때는 그의 주장과 근거 사이에는 불필요한(장황한) 내용이 많아서 미래의 청사진을 삐딱한 시선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하라리는 다르다. 전작에서 확실히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이 책이 기대될 수 밖에 없다.
'사피엔스'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 이 책을 말할 수 없다. 종교, 과학, 자본주의가 만든 엔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전체를 관통한다. 이런 서술 방법으로 우리가 살아왔던 방식을 설명했는데 상당히 그럴듯하고 매력적으로 들렸다. 읽으면서 고래를 끄덕이고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부분이 꽤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흑인 노예를 옮기는 부분에서는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이야기에 깊게 빠져들었다. 마지막에는 우리 사피엔스가 지나야 할 어떤 문이 있고 그 열쇠를 그 책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긴장감을 계속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점쟁이가 과거에 대해서는 그럴듯하게 맞추지만 미래에 대해서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하듯이, '사피엔스'의 결말은 아쉬움을 남게 했다. 그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내용으로 '호모 데우스'가 만들어졌길 기대하면서 읽었다.
1부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통해서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느꼈다. 인간은 영혼이 있고 동물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가축을 도살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살아왔다. 지금도 일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살고 있다. 감정과 의식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는 것이라서 그렇지 못한 동물은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계는 사람마다 다르고 구분 짓는 경계가 매우 모호하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다른 동물을 부릴 수 있는 것일까? 단순히 지능이 높아서일까? 저자는 사피엔스의 연합하는 능력을 꼽았다.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시스템을 만들어서 군중을 결집하는 능력은 지구상의 다른 종들보다 사피엔스가 뛰어나다.
2부에서는 사피엔스가 군중을 결집하는 도구들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작용해왔는지 설명하고 있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은 아녔다. 결과론적인 해석이지만 시대를 해석하는 도구의 전환을 매력적으로 설명한다. 자연과 공존했던 시대에는 애니미즘이라는 사상을 기반으로 살았다. 농업의 발명으로 사피엔스는 자연을 개척하고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었는데 많은 수를 통제하기 위해서는 우상숭배가 필요했다. 우상숭배는 그리스도교, 가톨릭, 기독교, 이슬람교로 나뉘는 과정을 거쳤다. 근대에 와서는 종교의 전쟁을 넘어서 종교와 과학의 대립으로 바뀌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다음에는 인본주의가 기존의 종교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또다시 인본주의는 공산주의 자유주의로 나뉘면서 현대까지 설명한다. 내용을 요약할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어렵다.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했다고 말하기 힘들다. 2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중세, 근대, 현대에 이르는 역사와 정치, 사상,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진다. 어떤 단락은 몇 번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거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던 부분도 있다. 나는 이 책에 단 한 문단도 하라리처럼 쓸 수 없을 것이다. 한 줄 한 줄에 정말 많은 정보(이 정보들을 충분히 신뢰할 수 있다면, 나는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전작이 너무나도 훌륭했기 때문에!)를 담고 있다.
2부의 결론은 이렇다. 인간의 집단의식은 결국 자유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 인본주의 문명은 앞으로 인간의 수명, 행복, 힘을 극대화하려 할 거라는 점은 불 보듯 훤하다고 말한다. 3부에서는 이런 방향성이 현대의 과학기술과 결합했을 때 가까운 미래의 청사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
3장에서는 자유주의라는 허구가 현대의 유전공학, 뇌과학이 밝혀낸 사실과는 반대된다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렇다고 자유주의, 자유의지, 자아라는 개념이 당장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안심시킨다. 다만 점점 힘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말한다. 사피엔스의 역사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이념도 얼마든지 동시에 존재해왔다. 다윈의 '진화론'이 나왔을 때 곧바로 그리스도교가 사라지지 않았다. 젊은 남녀의 사랑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기사도 정신과 남녀의 금욕을 강조하는 그리스도교도 동시대에 잘 작동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뇌과학과 유전공학이 지지를 얻는다면 자유의지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 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나는 인공지능은 결코 인간과는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 분명 있다고 생각해 왔다. 유발하라리도 의식과 지능을 분리해서 설명하고 있다. 의식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지능에 관하여 알고리즘을 활용할 여지는 엄청나다. 인공지능이 우리가 가진 결정능력보다 앞서는 부분이 많아지면 질수록 점점 더 많은 권한을 가질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여기까지 듣고 기계에 정복당해서 인간은 노예가 될 것이라는 상상이 자동으로 된다. 영화나 소설에서 많이 다뤄온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라리는 개인의 자유의지는 거대한 알고리즘을 속 어떤 부분으로 흡수된다고 한다.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블로그에 쓴 글을 업로드 하고 공유하면서 '나'라는 개인은 네트워크에 포함된다. 여기서 의식에 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는다. 유명한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서는 하라리가 말한 네트워크에서 의식이 깨어나는 상황을 가정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니체가 떠올랐다. 근대를 망치로 깨부순 니체처럼 '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이 지배하는 현대의 세상을 '데이터교'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변환 될 것이라고 파격적인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파격적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정말 그럴듯하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사피엔스가 된 것처럼 호모 데우스로 진화하는 과정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니체는 당시 중세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시스템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역사, 철학, 종교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하고 패턴을 발견했다. 하라리도 현대의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역사, 철학, 종교, 과학 등 다양한 분야를 연구한 뒤 어떤 패턴을 발견했다. 그리고 다음 시대를 보여주었다. 이런 방법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다. 게다가 니체보다 훨씬 쉽게(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분명 있었지만)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도 있다.
책 마지막 장에 나온 하라리의 물음에 대해서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책을 보면서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내용에 대해서도 깊게 알고 싶은 생각이 있다. 생각할 게 너무나도 많은 책이다.
600페이지가 넘는 이 책 첫 단원의 제목은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로 시작한다.
저자가 굳이 인류를 ‘사피엔스’라고 부르는 이유는, 현재 우리는 인간이 유일하게 불과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이라고 알고 있지만 10만 년 전에는 최소 여섯 가지 인간의 종이 살고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첫
번째 Chapter 인 ‘인지혁명’에서 현대 인류만 존재하게 된 이유를 밝힌다.
15만 년 전에 동아프리카에 나타난 사피엔스가 불과 7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벗어나 전 세계로 퍼져 나가며 다른 모든 인종이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학자들은 이를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인지 능력’으로 인한 것이라고 규명한다. 인지 혁명으로 인하여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이 바뀌며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이 생겼기 때문이다. 인지 능력의 특징 중 하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종교’나 ‘신화’와 같은 집단 의식이 발생하고, 단순한 표현에 불과한 동물들의 의사소통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유연한 ‘언어’를 가지게 된 것이며, 수십 혹은 수백의 무리를 넘지 못하는 자연 생태계의 다른 어떠한 집단과 달리 수천 혹은 수만 명이 모일 수
있는 현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유발 하라리는 말콤 글래드웰이 소개한 바 있는 ‘150명의 한계’와 비교하며, 동물뿐만
아니라 인간도 자연 상태의 인간은 결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집단의 크기는 제한적임에 주목한다. 하지만
사피엔스는 하나의 ‘제도’에 단합하여 보다 큰 무리를 이루었고, 이 덕택에 동물들뿐만 아니라 다른 인류도 정복하였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사피엔스는 먹이사슬의 중간 정도의 위치에서 최상층부로 급속히 올라가게 된 순간이었다. 유발 하라리는
얼마 전 한국 방문을 방문하여 어느 토론에서, 많은 이들이 ‘인지(Cognition)’와 ‘지능(Intelligence)’의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인공 지능은 지능은 사람보다 뛰어나지만, 인지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는 설명과 함께, 인간이 진정 기계와
차이 나는 점은 ‘인지 능력’이란 것을 강조하였다.
우리는 누구나 인류의 발전이 농업혁명 덕분이라고 배워왔다. 그러나
그는 두번 째 장인 ‘농업혁명’에서, 농업혁명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최대의 사기’라고 주장한다. 그는 여기에서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총, 균, 쇠’의 내용을 많이 빌려왔다. 이로 인하여 더 여유롭고 더 풍요한 삶을
즐기던 수렵 시절의 인간이, 좁은 지역에 모여 제한된 종류의 곡식에 의존하여 질병과 영양실조로 허덕이면서도
소수의 권력자들의 안녕을 위해 다수의 인간들이 생산과 노동에 매진하여야 하는 하락된 삶의 질을 감수해와야 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작은 변화가 축적되어 여러 세대 동안 사회가 바뀌었지만 그때쯤엔 과거에 다른 방식으로 살았다는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였고, 특히 인구 증가로 인하여 ‘돌아갈
다리가 불타버렸다’라고 표현한다. 그는 역사를 이렇게 정의한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이러한 농업혁명을 일으킨 것 또한 ‘상상 속의 질서’를 가능케한 신화와 종교, 제도와 같이 ‘상상할 수 있는’ 능력 덕분이었다.
BC 1776년 경의 함무라비 법전과 같은 것은 당시의 지도자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고,
AD 1776년의 미국 독립선언문 또한 그러한 성격이었으나, 이 시대를 사는 많은 사람들은
반드시 그것이 합리적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평등’의
개념에서, 바빌론 인들은 귀족과 노예로 구분되어 결코 평등하지 않다고 받아들인 것처럼, 평등을 주장하는 미국 독립선언문 또한 여자와 흑인들까지 자신들과 평등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급 제도와 국가라는 실체가 아닌 인간이 만든 것에 의해 이를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인다. 그에 비해 자연에는 합리적이라거나, 합의에 의한 것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신선한 주장에 이어 인류 사회에 존재하는 제도의 실체와 미래의 인류 역사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인류의 상상력은 화폐와 재산이란 것을 통해 ‘가격’과 ‘가치’라는 것을 만들어
내었으며, 구체적으로는 ‘신용’이라는 것을 만들고 ‘경제’라고
부른다. 과거의 다신교 문화에서 일신교로 바뀐 인류의 역사를 보여주고,
미래의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가 없다는 이유를 설명한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2단계 카오스계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이며(내일의 날씨와 같이),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석유 가격
예측과 같이).
여기에서 유발 하라리가 지속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공유할 수 있는 사피엔스의 능력이다. 흔히 ‘추상적인 것’이라고
말하는 개념이다. 인간의 사회는 ‘신화’의 성립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은 롤로 메이의 ‘신화를 찾는 인간’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신화나 종교, 심지어 사회 제도 또한 인간이 서로를 인정하기에 유지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이
‘화폐’란 때로는 종이조각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1조 달러’짜리 짐바브웨 지폐를 한국에서는 종이조각에 불과한 것과
같은 이치다. 한편으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는 그의 주장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설명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를 보는 우리는 몇 백 년, 몇 천 년의 시간을 한 번에 훑어보며
사람들의 업적과 그 사회의 변화를 평가하지만,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백 년도 채 안 되는 삶으로 그
변화를 이루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결정적으로 현대 문화를 이룩한 것은 산업혁명과 맞닿은 과학혁명이란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제1장의 인지혁명을 통해 인류가 추구해온 것은 우주와 자연세계에
대한 이해였지만, 실질적인 과학의 발전은 비교적 근래에 이루어졌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그노라무스 ignoramus - 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이에 대하여 고대의 전통 지식은 오직
두 종류의 무지,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모를 수 있지만 그보다 현명한 누군가에게 물으면
해결할 수 있었고, 전통 전체가 모를 수 있지만 그게 무엇이든 중요치 않은 것이기에 관심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과학은 중요성을 따지지 않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했고, 한
개인보다 더 현명한 자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 얘기는 공자가 자로에게 ‘모른다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은 의미다. 그러한 차이를 유럽에서 빈 공간이 많은 세계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는 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최소 130권이 넘는 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특히 미래에는 ‘사피엔스가 아닌 인류와 다시 한 번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식시킨다. 하지만 모든 학문이 지향하는 바와 같이 저자가 추구하는 것도 우리의 ‘행복’이다. 농업을 통해 인류가 정착하고, 산업과 과학이 발달하였지만, 우리의 삶이 과연 수렵채집인보다 더 행복할까? 란 그의 진지한 물음 앞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한다. 그가 말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다’란 문구처럼, 인류의 미래는 아무리 좋아지더라도 새로운 의무에 갇히게 될 뿐이다. 좋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위한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인간. 무엇이 되려하는가?>
이 책은 하찮은 유인원이 지구의 정복자가 되어가는 과정과 지구에 군림하며 변화시킨 역사의 시간을 길게 서술하고 있다. 인류의 빅히스토리라 할까. 대부분의 역사서는 역사를 서술하며 인간 삶의 의미를 찾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는 가치나 의미는 별 쓸데없는 이야기이다. 전적으로 과학적인 진화의 과정으로 인간사를 서술한다.
하라리는 10만년전 6종(種)의 인간‘종’중에서 인류의 조상이된 ‘종’은 사피엔스 하나 뿐이라고 한다. 즉 사피엔스는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전 인류의 아버지인 셈이다. 그렇다면 사피엔스는 어떻게 최후의 정복자가 되었을까. 하라리는 사피엔스의 다른 인간‘종’ 살육을 암시한다. 여기에 더해 사피엔스에게만 있는 고유한 언어 덕분에 역사의 시작을 만들었다고 본다. 이러한 출발을 기점으로 7만년전 아프리카를 배회하던 하찮은 유인원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쳐 지구의 막강한 권력자가 된다.
인지혁명(7만년전) : 인지혁명이란 약 7만년전부터 3만년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는지 입증할 수는 없지만 가장 보편적인 대답은 우리 언어의 놀라운 유연성이다. 동물의 언어는 사실만을 말하지만 인간은 뒷담화와 허구를 말할 수 있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여도 많은 숫자가 모여 협동을 하려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허구는 단순한 상상을 넘어 집단적으로 상상 할 수 있게 한다. 많은 허구들이 모여 커다란 집단이 협력하는 유례없는 능력을 갖게 하였고 이것은 자연적 규모인 150명 이라는 결정적 임계치를 넘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농업혁명(12,000년전) : 인간이 250만년간 먹고 살기 위해 사냥했던 동물과 채집했던 식물은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자라고 번식한 것들 이였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약 1만년전 완전히 달라진다. 인간이 생활하는 방식의 혁명이 바로 ‘농업혁명’이다. 사피엔스가 땅에 씨를 뿌리며 경작을 시작했을 때는 분명 수확량이 늘어 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배고픈 채로 잠들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피엔스는 예상하지 못했다. 수확량이 많아지면 아이들이 더 많이 태어나리라는 것을.
농업혁명은 더 나은 식사와 더 많은 여유시간을 가져오기는커녕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고 사회 서열화와 착취, 가부장제의 길을 열었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 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124p참조)
농업혁명 이래 인간사회는 점점 규모가 크고 복잡해진다. 복잡한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서 인간의 상상력은 고도로 정교해진 신화를 만들어 내야했다. 기원전 첫 밀레니엄동안, 거대한 인류를 지배할 보편적 질서가 될 후보군이 세 가지 출현했는데 바로 화폐, 제국, 종교이다. 이 위대한 신화는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혁명적인 세상의 기반이 된다.
과학혁명(5백년전) : 하라리는 과학혁명의 위대함이 바로 ‘무지의 발견’에 있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전통 문화에서 사람들은 인생의 중요한 질문에 대해 이미 해답을 갖고 있다고 믿었다. 성경이나 쿠란에 답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 근대인은 많은 질문들에 대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해답을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찰과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도 성직자들과 달리 과학자들은 많은 중요한 질문에 대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한다.
과학, 제국주의, 자본주의는 서로서로를 떠받치고 있다. 과학과 자본주의는 제국의 확장을 위한 도구와 자금을 지원했다. 또한, 제국과 과학은 자본주의의 등장에 필수적이었다. 자본주의가 계속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제국의 확장과 과학의 발전 덕이었다. 제국은 시장과 원자재를 공급하고, 과학은 새로운 에너지나 생산의 효율성을 확대 시켰다. 최근의 급격한 경제성장을 과학적 발전이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이 바로 새로운 종교 ‘자본주의’다. 전 인류가 역사상 유례 없는 하나의 신(물신)을 믿고 있다. 이 막강한 신 덕분에 인류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세상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과학혁명은 인류 역사를 바꾸는 결정적인 세가지 혁명중에서 하라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다. 왜냐하면 과학혁명은 인류 역사뿐만 아니라 생물학 자체와 우주의 경로 자체까지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생명이 출현한 이래 40억 년 동안 자연선택의 법칙이 지배했다. 바이러스건 공룡이건 자연 법칙에 따라서만 진화해왔다. 하지만 이제 과학은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을 지적 설계(intellectual design)로 대체 하고 있다. 인지혁명 덕분에 인간은 별것 없는 유인원에서 세상의 주인으로 변했다. 과학혁명은 인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지금의 과학발전의 속도를 보면 초인간을 만들어내는데 정치적, 윤리적 반대 말고는 전혀 장애가 없어 보인다. 인간과 인공지능(AI)의 결합, 인간의 유전자 조작, 생명연장 혹은 불멸 등 하라리는 여러 가지 과학발전의 미래상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발전의 열매는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받을 수 없다.
세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모든 인간사의 문제는 단 한 가지 ‘인간불평등’이다. 현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이 사실을 자랑스러워 한다. 계급제도와 인종차별이 곧 인간개체의 능력 차이는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50년, 100년 후에는 실제적으로 생물학적 계급차이가 생길 수 있다. 과학에 관련된 고급정보는 소수가 독점할 것이며, 상류층은 지적설계로 더 건강하고 더 영리하며 창의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역사상 유례없는 불평등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있다. 인지 기능이 월등히 뛰어난 컴퓨터가 인간의 많은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면 ‘쓸모없어지는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새로운 세상에서 인간의 ‘쓸모’는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무용해질 수십억 명의 인간을 어떻게 할까? 하라리는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어떤 경제 모델도 갖고 있지 않고 과학발전의 방향이 어떻게 진행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힘을 얻는 데는 극도로 우수하지만 그 힘을 행복으로 바꾸는 능력은 힘을 얻는 능력보다 훨씬 못하다. 오늘날 우리는 선조들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그다지 더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과학발전이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난 인간사를 보면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면 만약에 닥칠 비극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라리는 가장 고전적인 답변을 내 놓는다. ‘자신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심신까지 바꾸는 능력을 포함한 유례없는 힘을 갖게 된 현실 앞에서, 우리가 누구이며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정한 질문은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가 아니라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싶은가?”일 것이다.> 라는 문장으로 마무리 된다.
저자는 세계사를 배우지 않는 이스라엘에서 학생들을 위한 흥미로운 강의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책을 썼다고 한다. 글쎄다. 하나님의 뜻을 내세워 막강한 힘으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이 이웃이라 그런지 제국주의와 힘의 논리에 대해서 참으로 간단하게도 정리를 한다. 우리에게 아직도 제국주의의 후유증이 남아서 인가. 불편하다. 책 전반에 흐르고 있는 거대 협력체들에 대한 암묵적 찬성은 또 어떤가. 인류변화의 방향성에 인간 개인이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면 그저 명상에 잠겨 평상심을 찾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같다. 거대한 흐름을 개인이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끊임없이 미세한 균열을 만들어 정치체계를 완성하고 윤리를 만들어 가는게 후손들을 위해 우리가 해야할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
책의 재미만큼 철학이 따라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건 내가 인간을 너무 믿어서인가.^^
과학도서 읽기를 올해 목표로 정했지만 물리/화학/우주/생물/의학/공학 등 다양한 분야가 혼재되어 있고 걸맞는 책을 찾기도 어려워 부담이 됐는데 『사피엔스』를 읽으며 다윈보다는 미래 기술 과학 분야나 생명 과학 분야에 대해 조금 더 읽겠다고 결심했다. 원래 관심 없던 분야인데, 늘 과학 지식은 가장 아래층부터 차곡차곡 차근차근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필립.K.딕의 『유빅』을 읽을 때 등장한 기술들이 아직 도래하지 않았지만 곧 도래하리라는 기대에 신났다. 예를 들면, 최근 기사에 원숭이 머리를 이식하는 작업이 성공해서 곧 사람에게도 시험 가능할 거라는데, 성공을 주장한 중국은 혈관 이식에만 성공한 거라지만 언젠가 가능한 날이 오면 사람에게도 가능해지고 그러면 과학 기술 개발 끝에 늘 등장하는 인간의 윤리적 문제는 한층 심각해질 것이다. 또 몇 백 년 안에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 마』에 나오는 만들어진 아이들이 단지 개발 수준이 아니라 윤리성 문제를 뛰어넘어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우를 갖게 한다. 인간의 한결같은 소망은 결국 지금 가능한 120년을 훌쩍 뛰어넘는 무한한 수명일까.
리뷰를 미래에서 시작했지만 『사피엔스』는 아주 옛날, 유인원이 수렵 채집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래된 역사와 오지 않은 미래를 동시에 한 권으로 끝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 반면, 한 권의 책이 다음에 읽을 수없이 많은 책을 불러온다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주 오래 전부터 계속되어왔고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정말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날이 올까. 저자는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세 개의 중요한 혁명을 지적하면서 여러 개의 호모 종 중에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에렉투스는 사라지고 호모 사피엔스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유를 추적한다. 왜 골격과 뇌가 훨씬 더 컸던 네안데르탈인은 사피엔스를 능가하지 못했을까. 오늘날 인간이 사육하는 소, 돼지, 양, 개와 다를 바 없던 호모 종 중 하나인 사피엔스는 왜 지구상 모든 생명체를 지배하는 종이 되었을까.
영화가 담아내는 과학 이야기는 대체로 어느 시점에 그치기 때문에 유흥거리를 벗어나기 힘든 면이 있었다. 『사피엔스』는 스토리를 가진 과학 에세이이자, 과학을 담은 인문 에세이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유익하며, 적지 않은 사진이 이해를 돕는다. 큰 틀에서 긴 시대에 접근하기 때문에 흡수력이 빨라야 하지만 그래서 지루할 틈이 없다. 잘 읽히면서도 순간순간 생각할 문제를 던진다. 갑자기 뿌듯해지는 종에 대한 자부심은 그리 오래 가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 거대한 시대의 토론장에 초대받은 느낌이 끝까지 이어지는 건 분명 서술의 장점이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로, 세계사를 강의한다. 그는 과학자가 아니라 역사학자 그리고 인문학자다. 과학을 내러티브화하고 스토리화하는 능력은 그가 역사를 가르치기에 가능할 것이다. 과학전공자가 과학에 대한 글을 쓸 때보다 비과학전공자가 과학에 대한 글을 쓸 때 대중에게 친숙한 건 아마도 지식을 서술하는 능력/감각 때문일 것이다. 역사 분야든 진화론 분야든 전문가가 지성을 과시하는 식의 서술이 아니다. 서술방식이 통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쉬움을 참작할 만한 작가의 노력은 누구나 읽고 이야기하기 쉽게 쓴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인류사라는 점이다.
과거를 알고 미래로 나아가는 자는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워 미래에 써먹을 줄 안다. 도구 사용, 언어 사용, 직립보행,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 사피엔스가 사피엔스이기 위해 선택한 선택들이 우리를 만들었듯, 미래 어느 시대에 또 사피엔스 종처럼 똑똑한 종이 나타나지 말란 법 없다. 유전 공학과 로봇 공학이 인간 본성을 해칠 만큼 심각하다면 사피엔스 종이 우위에 있다고 가장할 경우 제어할 무언가가 아무도 없다는 게 가장 문제다. 다른 생명체들이 글을 읽을 줄 안다면 이 책을 보면서 종을 유지하고 발전시킬 모의를 시작할 것 같다. 많은 것들을 정리할 수 있었고 또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었다. 관련 분야를 많이 읽은 독자는 저자의 결론이 뻔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얻는 게 단 하나 뿐이라도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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