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도서관에서 흥미롭기도 하고 다소 날카로운 듯한 느낌의 제목을 가진 ‘착한 모자는 없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모자가 착하다니?’ 정말 알 수 없는 궁금증이 몰려왔다. 모자가 사람도 아니고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말이다. 과연 이 책 안에 숨겨진 진실은 뭘까? 이 책의 미스터리를 파헤쳐 보고 싶은 생각에 책을 빌려 읽었던 것 같다.

 ‘셀레네’라는 달 위에 한 나라가 있다. 이곳은 부와 권력에 따라 1구역부터 13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부정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나라를 다스리고, 정부가 만든 ‘토끼 귀’라는 앱을 통해 국민의 자유로운 소통을 억압하고 있다. 부정부패로 가득한 셀레네 지역의 정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반정부 색을 가진 사람들을 분노 바이러스에 걸렸다는 죄 명목하에 가장 최하위인 13구역으로 은밀하게 퇴출시키고, 자유와 권리를 억압한다. 이런 셀레네의 잘못된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바로잡기 위해 주인공 이든과 셀레네의 국민들은 무능한 정부를 몰아내기 위한 시위를 벌이며, 행복한 세상을 만든다는 이야기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나는 학교에서 사회 시간에 ‘민주주의와 정치’에 관하여 배웠던 적이 있다. 이 책은 민주주의와 올바른 정치, 인간의 존엄성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떠올려준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토끼 귀’라는 앱과 분노 바이러스는 국민을 억압하고 오직 정부의 이익에 의해 조작되어 만들어진 것들이다. 마치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있었던 언론탄압을 연상시켰다. 문득 1980년에 일어난 간선제 반대로 시작된 5.18 민주화운동을 사회 시간에 과제로 조사했던 일이 기억났다. 이 책에 나와 있는 부조리한 정치 상황과 심각한 정부의 탄압이 5.18 민주화 운동 때와 비슷하게 느껴졌고, 이 책의 주인공 이든처럼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끝까지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 이든은 작은 불씨가 되어 국민들과 함께 무능한 정부에 맞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힘겹게 시위를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불공정한 사회에 맞서 희망과 용기를 내어준 주인공 이든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지금 좋은 세상에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주인공 이든의 할머니가 이야기해 주신 액자식 우화 중 ‘착한 모자는 없다.’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가 제일 궁금했던 이 책의 제목의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숲속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크고 멋진 모자 하나로 이 구역의 왕이 되기 위해 동물들이 싸움을 하게 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이 모자를 쓰게 된 동물은 최대 권력을 가지게 되고 자연스럽게 힘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다른 동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자유를 억압하기도 한다. 권력을 나쁘게 쓰면, 즉 나쁜 모자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 나온 부정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도 셀레네 지역 주민들의 인권을 무시하고, 자유를 억압하며 정부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나쁜 권력을 휘두르는 나쁜 모자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과거에도 있었던 부패된 정부와 나쁜 모자를 쓴 역대 대통령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맨 마지막 장면에서 사람들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하나의 촛불이 여러 개의 빛들로 번져 전진하며 부조리한 정부에 시위하는 장면이 내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자유로운 세상을 바라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느껴졌다.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나쁜 모자가 다스리는 불합리한 세상에서도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희망을 품고 굳센 의지로 나아가는 주인공 이든의 행동을 본받고 싶고, 나도 어려운 환경에 처했을 때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권력이란 모자를 쓰게 된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할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항상 마음속에 되새기며 약자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착한 모자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착한 모자가 훨씬 많다는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나는 다짐했다.

삼 년 전, 그러니까 내가 3학년 때 내게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이름도 예쁜 그 애는 바로 서윤이었다. 서윤이는 다른 친구들에게 언제나 다정했다. 아마도 우리 반 여자애들 전체가 서윤이와 친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윤이는 모두에게 다정했지만, 모두와 함께 다니지는 않았다. 언제나 자신이 친하다고 생각했던 무리랑만 다녔던 것이다. 그 때부터 나는 서윤이 무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윤이 무리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나를 찾아왔다. 마치 예고되지 않은 소나기처럼 갑작스럽게.

서윤이 무리가 되는 방법은 간단했지만, 어려웠다. 딱 한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되는데, 그 규칙이란 바로 서윤이를 주인님처럼 모셔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기꺼이 서윤이의 시종이 되었다. 그러나 친구를 친구가 아닌 주인처럼 모셔야 한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서윤이는 늘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하려고 했다. 우리에게는 가위 바위 보도, 제비뽑기도 다 아무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어차피 모든 것들은 서윤이의 머릿 속, 마음 속에서 결정되는 대로 따르면 됐으니까. 결국 그 친구는 우리 반의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독재자의 명령에 따르는 비겁한 시종이 되었다. 서윤이의 독재는 무려 일 년 동안 계속되었고, 나의 비겁한 시종 생활도 무려 일 년 동안 계속되었다. 사실 나는 이 기억을 굉장히 떠올리기 싫었다. 그런데 <착한 모자는 없다>라는 책을 읽으며 자연스레 이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왜 이렇게 나쁜 기억은 오랫동안 마음 속에 머무르는 걸까.

<착한 모자는 없다>라는 책에는 거대 기업 첸을 운영하는 회장이 등장한다. 그는 거대한 재력과 권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일 수 있는 자였다. 어느 날에는 국민들 모두에게 투표권을 주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휴대폰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첸의 재력과 권력에 영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첸이 주는 것들은 달콤하고 편안한 것이었으므로, 첸만 거스르지 않는다면 그것들을 계속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엄연한 대통령이 있음에도 결국 셀레나라는 세계를 움직인 건 바로 독재자 첸이었다. 나는 첸의 모습에서 서윤이의 모습을 보고 말았다. 정교하게 사람들의 마음속에 침투해 모든 것들을 조종하는 첸의 무서움을 분명 서윤이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든의 등장으로부터 첸이 설계한 첸의 세상을 무너진다. 이든과 국민들이 진정한 민주주의, 진실한 세상을 찾기 위해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진실은 재력과 권력보다 언제나 큰힘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걸 나는 그들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나는 후회한다.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불의에 맞서고자 하는 의지를 갖지 못했던 나의 나약함을. 만일 그 때 내가 서윤이 앞에 나서서 잘못된 서윤이의 사고방식과 행동을 말하고, 함께 고쳐나가자고 했다면 어땠을까? 서윤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는 못했더라도 아주 조금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깨달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이미 지나간 시간은 과거를 돌이킬 힘을 가지지 못한다. 현재만 바꿀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순간부터는 결코 거짓에 순응하지 않겠다고, 용기를 내야 할 때는 다치더라도 목소리를 높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결코 현실조차 바꿀 수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