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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2년 11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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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7쪽 | 414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82815935 |
ISBN10 | 8982815937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10월의 굿즈 : POINT OF VIEW 북커버/스탬프/유리 티포트/페이퍼 아크릴 문진/북 백/저널 노트
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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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운’ 살에 뒤돌아보다
서른 살은 누구에게나 삶에서 처음 마주치게 되는 큰 고개다. 태어나서부터 줄곧 앞만 보고 내달려온 우리의 발걸음은 서른 고개 앞에서 비로소 그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한다. 얼마나 왔나 가늠해보려고 지나온 길을 자꾸 뒤돌아보게 되는 것도 서른 고개를 오르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때로는 그 뒤돌아봄이 지나쳐서 아주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 주저앉음은 오히려 남은 고갯길을 마저 오르게 하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렇게 주저앉아서 우리가 뒤돌아본 풍경이 따스한 추억의 불빛이라면 말이다.
서른 고개에서 우리를 이렇게 맥없이 주저앉히는 것은, 십중팔구 거칠고 야비한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생활을 몇 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되는 삶의 가파름일 텐데, 누구나 서른쯤 되면 그 가파름을 넘어서는 힘이 되어 줄 젊음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게 된다. 그걸 깨달은 이에게 서른 살은 ‘설운(서러운)’ 나이일 수밖에 없다. 서른이 되면 우리는 삶을 겨우 지탱할 뿐이다. 그 서러움이 서른 살을 통과하는 우리를 자주 주저앉히고 자꾸만 뭔가 위안이 될만한 추억을 찾아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리라.
서른이 넘어가면 누구나 그때까지도 자기 안에 남은 불빛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게 마련이고 어디서 그런 불빛이 자기 안으로 들어오게 됐는지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면 한때나마 자신을 밝혀줬던 그 불빛이 과연 무엇으로 이뤄졌는지 알아야만 한다. 한때나마. 한때 반짝였다가 기레빠시마냥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게 된 불빛이나마. 이제는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불빛이나마. (79~80쪽, 「뉴욕제과점」)
2. 불빛 하나 : 은빛 눈송이와 보랏빛 등꽃
경북 김천시 역전 뉴욕제과점의 막내 아들이었던 소설가
아이가 자라면서 점점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듯이 자신의 집이나 다름없었던 뉴욕제과점에서 시작된 작가의 추억은 이웃과 학교로 넓어진다. 여러 이웃들이 있었겠으나 작가는 동네 평화시장에서 신천상회를 했던 은재네를 잊지 못한다. 은재네가 작가의 기억 속에 가장 인상적으로 새겨진 이웃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광주항쟁을 겪고 나서 마치 대척지를 찾아 망명하듯 경상도 땅으로 이주해 온 ‘깽깽이들’이었기 때문이리라(또다른 이유라면, 은재는 그 당시 작가가 좋아했던 여학생이었을 수도 있겠다). 그들은 낯선 땅에서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입에 붙은 전라도 사투리까지 스스로 파기해야 했고, 그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그들의 가슴속에 새겨진 상처는 깊고 또한 숨길 수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리고 상처가 아물어 더이상 아프지 않은 것처럼 언제부터인가 경상도 사투리가 살갑게 들리기 시작했다. 니 와 그카는데? 이, 가시나가. 어느 날인가, 제발 방 좀 깨끗하게 쓰라며 언니 행세를 하려는, 이제 간호대학 신입생이 된 언니와 그런 말을 주고받다가 놀라서 말을 그치고 서로 얼굴만 마주 봤다. 잠시 후, 우리는 먼저 서로의 입을 치려고 낑낑대다 한참을 웃었다. 물론 집에서는 여전히 표준어로 말했지만, 학교에서 우리는 조금씩 사투리로 말하고 있었다. 경상도 사투리로. 여전히 우리의 별명은 깽깽이였지만, 이제 그 욕설이 우리 가슴속을 헤집어놓지는 못했다. 한동안 동네에 나타나던 미친 여자도 어디서 죽었는지, 아니면 고향으로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우리는 제법 경상도 가시나로 자라고 있었다. (52~53쪽, 「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
이러한 이웃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는 일이란, “그 칼날의 생김새를 닮은 그 무늬와 결을 하나하나 되짚는” 방식을 통하여 그들에게 처음 상처를 가한 칼날이 무엇이었는가를 묻는, 그럼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그 상처를 위무하려는 작가적 양심의 소산일 텐데, 제법 아문 이 상처를 여전히 건드리면서 아프게 헤집어놓는 사람이 다름아닌 학교의 윤리선생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다. 그렇지만 권력의 이념을 전파하는 최첨단 조직으로 기능하는 곳이 바로 학교이고 또한 그러한 교과목이 바로 국민윤리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리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문제가 되는 폭력은 권력이 행사하는 이러한 은밀한 폭력뿐만이 아니다. ‘왕따’나 ‘삥뜯기’ 또는 ‘패싸움’처럼 학생들 사이에 일상화된 폭력, 그리고 훈육이라는 미명 하에 교사들에 의해서 자행된 학생 체벌 등 물리적 폭력 역시 지난 날 우리의 학창시절을 물들이고 있는 어두운 기억들이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는, 작가의 중학교 시절 동급생이었던 고아원 출신의 한 소년으로 말미암아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마는 학교 폭력의 실상을 내성적인 문체로 그려내고 있는 단편이다.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어두운 추억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이 기억을 불러내서 우리에게 들려주는 목소리에는 따스함이 느껴지는데, 나쁜 기억조차도 아름답고 따스한 불빛들로 물들이는 이 신비로운 힘이야말로 우리가 추억에 그렇게나 기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가는 바람이 불어왔겠지. 등나무 잎들이 흔들렸다. 원재는 등꽃이 주렁주렁 매달렸던 자리를 올려봤다. 지난봄, 그 많았던 보랏빛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얼마나 많은 보랏빛들이 저물고 나면 여름이 찾아오는 것일까?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등꽃 그 빛들은 스러진다. 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원재는 등나무 그늘 아래에 섰다. 그 얼굴이 일그러지다가 그대로 멈췄다. 원재는 멍하니, 마비된 듯한 표정으로, 이제는 사라진, 그 봄날의 정경을, 바라봤다. 등나무의 색은 초록빛이고 보랏빛이고 노란빛이고 붉은빛이다. 꽃향기 머금은 가는바람이 원재와 태식의 머리 위로 보랏빛 꽃등을 떨어뜨리며 지나간다. (253쪽,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
3. 불빛 둘 : 소문의 어둠을 밝히는 이성의 빛
작가가 기억하는 공간이 좀더 넓어져서 뉴욕제과점과 신천상회 이웃과 등나무가 있는 학교를 모두 포괄하는 세계인 우리 동네, 즉
지금 죽어가는 것들, 아니 이미 죽은 것들, 예컨대 가까운 이웃끼리 추렴한 돈으로 시장에서 수박을 사와 화채로 만들어 먹던 여름밤 정경, 길모퉁이 이름 없는 식당의 알 빠진 플라스틱 주렴 너머로 잊을라 치면 벌어지던 동네 어른들끼리의 주먹다짐, 장이 서는 5일마다 평화시장이나 아래장터 등 재래시장으로 구름처럼 몰려들던 시골 사람들 등은 우리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생생하게 살아 있던 것들이다. 그렇게 생생하게 살아 있던 것들 중에 또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소문이었다. 소문은 어디선가 태어나 사람들의 입을 거치며 살이 붙고 성장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마치 바람이 건드리고 사라지면 플라스틱 주렴이 크게 넘늘거리다 서서히 잦아드는 것처럼. 소문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간 동네는 전과 약간 달랐다. 사람들은 조금씩 세상에 대해 잔인한 마음을 지니게 되기도 했고 한 움큼도 안 되겠지만 삶에 대한 희망을 얻기도 했다. (121~122쪽,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
동네에 나도는 이러한 소문들이 사실로 드러나는 경우도 적지 않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의 입을 건너 다니는 동안 비틀리고 부풀려져서 처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딴판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이렇게 변형된 소문은 때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되기도 하고 진실을 은폐하는 허위가 되기도 한다. 교도소 복역을 마치고 다시 마을에 나타난 패륜아 ‘이수여인숙 똥개’의 등장이 불러일으킨 소문이 그 동네 아이들에게 키워준 공포심을 한 소년의 시선을 빌려서 아주 실감나게 그려 보이고 있는 「똥개는 안 올지도 모른다」가 전자의 경우라면, 동네 사람들에게는 실로 우스꽝스럽고 쓰잘데없는 호기심으로 가득 찬 희화적인 인물로 여겨진 한 공중보건의의 집요하고도 일관된 행적을 통해서 소문이라는 것이 때로는 공동체의 미덕으로 위장한 위선이자 악이며 더 나아가 범죄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후자의 경우라 하겠다.
어떤 경우이든지 소문이 이렇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때 우리가 소문에서 보게 되는 것은 비이성적인 어둠인데, 그 어둠을 밝혀주는 것은 과학과 이성(理性)의 빛이다. 평화동 80번지의 공중보건의가 마을에 떠도는 소문 속의 ‘거대한 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하여 방독면을 쓴 채로 어두운 복개천 내부로 걸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학으로 무장한 이성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만든 얘기처럼 보이지만, 그 소문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줍니다. 즉 마을 사람들이 장티푸스를 옮기는 거대한 쥐를 죽였다는 점이죠. 말했다시피 장티푸스를 옮기는 종은 이 세상에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밖에 없습니다. 무언가가, 장티푸스가 퍼진다는 두려움 때문에 죽었다면 그것은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뿐입니다. 여러분들은 거대한 쥐새끼라거나 문둥이라고 부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죠.” (227쪽,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즉, 마을 사람들이 몇 해 전 마을에 퍼졌던 장티푸스 확산을 막기 위해 잡아 죽인 다음에 복개천 안쪽 깊숙한 곳에 던져버린 것은 사실은 거대한 쥐가 아니라 당시 인근 베드로마을에서 탈출한 나환자였다는 것을 그는 과학적 지식에 의거하여 논증해 낸 셈.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된 이 놀라운 살인 사건을 밝혀낸 공중보건의의 설명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서 부인된다. 그가 이성의 빛으로 밝힌 소문의 진실은 “어이 쥐포선생, 다 좋은데 으사선생이 뒈졌다고 말하는 호모 사피리인가 사카리인가가 대체 또 무슨 짐승이여?"라는 생청스런 소리에 묻히고 만다.
4. 불빛 셋 : 반딧불이와 연등과 멧돼지 눈빛
그러니 소년은 그러한 소문이 지배하고 있는 마을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 법. 즉 소년이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집과 이웃과 학교와 동네를 벗어난 더 넓은 세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작가가 눈을 돌리게 되는 세계는, 심리적으로는 내가 아닌 타자를 나의 세계에 처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첫사랑의 세계이며, 물리적으로는 내가 살던 동네를 벗어나서 처음으로 밟아 보는 낯선 땅, 낯선 지방이 된다.
하지만 사랑이란, 특히 열일곱 나이에 생애 처음으로 해보는 첫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처음 하는 사랑이기에 아무런 경험이 없어서 말을 꺼내기조차 힘들고, 또 겨우 말을 꺼냈다고 해도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망가져버릴 아름다운 사랑이기에 참으로 두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마치 어릴 적 병 안에 잡아넣고 바라본 반딧불이처럼 말이다.
그날 저녁, 아버지를 따라 무주 남대천에 가서 반딧불이를 봤어. 온 저녁하늘로 그 은은한 따뜻함을 뿌리는 반딧불이들이 어찌나 예쁘던지! 아버지와 아는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를 잡아 준비해 간 빈 병에도 넣었지. 한 마리씩 넣을 때마다 병 안의 공기는 신비스럽게 바뀌어갔어. 그 아름다운 빛을 머리맡에 바라보다가 잠들었는데, 다음날 깨어보니 모두 빳빳하게 죽어 있었어. 그 아름다웠던 빛은 끔찍하게 생긴 곤충이었던 거야. (108쪽, 「첫사랑」)
단편 「노란 연등 드높이 내걸고」의 여주인공 ‘예정’이 수의(壽衣)를 만드는 보살들의 모임에서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대웅전 앞마당에 연등을 내거는 이유는, 결국 이렇게 죽은 모습으로 귀결되고 만 자신의 사랑(낙태한 아기)을 위해서이다. 그리고 죽은 아기의 아버지였던 방위병 ‘봉우’ 역시 ‘예정’을 만나러 가는 어두운 산길에서 “아기가 죽으면서 봉우의 마음속에서도 뭔가가 죽어나갔”음을 비로소 아프게 깨닫는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사랑은, 특히 첫사랑은 때론 이렇게 고귀한 한 생명의 죽음마저도 초래할 정도로 힘겨운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 소설집을 펴낸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작가 스스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으로 꼽은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대학 영문과 신입생이자 군 입대를 앞두고 있는 ‘나’가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와 함께 했던 겨울 멧돼지 사냥을 소재로 삼은 이 단편은 생명의 소중함이라는 다소 진부할 수도 있는 주제를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있는 작가의 발군의 솜씨가 돋보인다. 이는 멧돼지를 거의 잡았으나 놓아줄 수 밖에 없었던 사냥 이야기를 서사의 중심에 놓으면서 그 실패의 이유에 대해서는 곁가지 이야기들로, 즉 세 등장 인물 각자가 지니고 있는 삶의 경험들로 제각기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나’로서는 그해 5월 학교에서 열린 집회 도중 목격한 한 학생의 분신자살 현장 모습이 어른거렸기에, 삼촌의 경우에는 멧돼지의 눈에서 그가 예전에 목숨을 걸고 사랑한 ‘물망초 여자’의 눈망울을 보았기에, 그리고 도라꾸 아저씨는 오래 전 비슷한 상황에서 단지 공명심 때문에 죽이지 않아도 되는 어미 멧돼지를 쏴 죽인 적이 있었기에, 다들 멧돼지를 쏴 죽일 기회가 한 번씩 있었는데도 제대로 쏘지 못하고 만 것이다. 결론 삼아 도라꾸 아저씨의 입을 빌려 작가가 말하고 있는 다음의 말이 전혀 허언이나 가벼운 말로 들리지 않는 것은, 이 투박한 말이 이들 세 사람이 자신들의 삶에서 온몸으로 경험한 바를 고스란히 요약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 봐라, 리기다소나무도 있고 직박구리도 있다. 저래 다 살아가고 있는 거라. 산 것들 저래 살아가게 하는 일이 을매나 용기 있는 일인가 나는 그때 다 깨달았던 기라. 내가 해수구제한다꼬 싸돌아다니민서 짐승들 쏴 죽인 것도 용기 있어서가 아이라 나하고 마누라하고 애새끼들하고 먹고살아갈라고 그런 거라는 걸 그때야 알게 된 거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도라꾸가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사냥꾼인 줄 알았던 거라. 그라고 나니까 어데 약실에 돌멩이 하나도 못 집어넣겠더라.” (176쪽,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이렇게 생명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미물이라도 두루 소중한 것이며,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그 어떤 삶이든지 살아가는 것이 죽는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용기 있는 것이라는 진실의 자각이야말로, 소년
5. ‘설은’ 살에 앞을 바라보다
이러한 추억의 불빛들에 비추어 볼 때, 서른 살 전후하여 우리를 서럽게 하는 가파른 삶이란 세상이나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닌 바로 자신의 탓이라는 깨달음에 비로소 이르게 된다. 그래서 인생이란 “나이가 스무 살 정도는 더 많은 사람을 앞에 두고 앉아 ‘모더니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바로잡는, 그런 게 아니”라는 때늦은 후회에 이르게 되고, “내가 자라는 만큼 이 세상에 어딘가에는 허물어지는 게 있다는 사실”을 안타깝지만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서른 살은 ‘설운(서러운)’ 나이이기도 하지만 ‘설은(설익은)’ 나이이기도 하다. 인생에 대해서 이젠 알 것 다 알아버린 나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고 넘어야 할 고개도 많은 나이다. “어짜피 人生이란 그런것이 아니겠냐”라고 써놓은 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아니겠냐’의 ‘겠’과 “냐’ 사이에 ‘V자’를 그려놓고 ‘느’를 부기한 아버지의 편지를 읽으면서,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가 어떻게 다른지 아직도 모르겠다고 작가가 고백하고 있는 것도 그가 아직 ‘설은’ 살이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는 올해 마흔이 되었지만 이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을 쓰던 시기는 서른을 전후한 시기였다.)
내게 보낸 편지에서 “어짜피 人生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아버지는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가 어떻게 다른지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 나도 내 아이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편지를 쓸 때쯤이면 그 차이를 알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나도 왜 아이는 자라 어른이 되는지, 왜 세상의 모든 불빛은 결국 풀풀풀 반짝이면서 멀어지는지, 왜 모든 것은 기억 속에서만 영원한 것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내 다음 아이들이 자라게 되면,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그 정도의 짧은 시간만 흐르고 나면 나도 ‘아니겠냐’와 ‘아니겠느냐’의 차이를 알게 될 것이다. (82쪽, 「뉴욕제과점」)
이처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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