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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08년 07월 0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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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4쪽 | 402g | 153*224*20mm |
ISBN13 | 9788937481888 |
ISBN10 | 893748188X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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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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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디트 헤르만의 <단지 유령일 뿐>을 여행 가방에 넣은 건 몇 가지 사소한 계기의 우연적 연쇄 때문이었다. 아는 사람의 추천을 받았고, 추천을 받아 책을 샀고, 책 표지, 그러니까, 길 위의 자동차에 탄 한 쌍의 남녀 그림은 묘하게 길을 떠나고 싶게 만들었다. 그리고 뒤표지에는 소설가 조경란의 "어디 먼 데로 떠날 때마다 나는 유디트 헤르만의 책을 갖고 간다"라는 추천사도 쓰여 있었다. 게다가 책 속 일곱 개 단편의 공간적 배경이 모두 여행지라고 하니, 여행길 친구로 더할 나위 없이 좋게 느껴진 건 어쩌면 당연했다. 하지만 나는 대만 지우펀의 조용한 숙소에서 첫 단편 '루스(여자 친구들)'을 읽으며 내 선택이 무척이나 큰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도, 이야기에 어떤 구구절절한 설명을 덧붙일 필요도 없는 '루스'지만 대충 요약하면 이 정도 되겠다.
'아주 오랜 친구 루스의 남자 친구 라울을 사랑하게 된 주인공이 먼 길을 떠나 그를 만나 하룻밤을 보내지만, 사실, 그것은 그다지 별 볼일 없는 일임을 깨닫는다. 주인공은 오히려 사소한 일상의 순간들이 주는 행복, 그러니까, 그네에 앉아 귤을 까며 아이들이 등교하는 모습을 보는 그런 작은 순간들이, 친구를 배신하고 몇 시간 기차를 타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그와 하룻밤을 보내는 것 보다 행복한 일임을 느낀다. 그리고 그녀는 루스와 함께하는 익숙하고 사소한 시간으로 돌아간다.'
조용하고 쓸쓸한 여행지에서 일상의 사소한 행복을 묘사하는 책을 보는 건 분명 고역이었다. 게다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막 비집고 나올 때는 더더욱. '루스'의 주인공은 "... 난 너와 반대로 나를 잃어버리길 원하고 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길 원해. 그리고 그건 내가 여행할 때만 가능해. 또 가끔은 사랑을 받을 때도.(p. 33)"라 말하지만, 결국 그녀가 여행과 사랑을 통해 발견한 건,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질 수도 없다는 당연한 사실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 당연한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기 위해 매번 여행길에 오르는 지도 모를 일이지만, 여행지에서 새삼스럽지 않은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건 거의 '필연'이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책을 덮어 여행 가방 가장 깊숙한 곳에 넣었고 두 번 다시 여행 중에 이 책을 펴지 않았다.
<단지 유령일 뿐>을 다시 읽기 시작한 건,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에 너무 빠르고 완벽하게 적응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낯선 공간이 아닌 익숙한 공간에서 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은,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더 이상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감상에 시달릴 필요도 없었고, 사소한 내 일상을 그리워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책을 마음 편히 읽을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셈이다.
새롭게 읽기 시작한 <단지 유령일 뿐>은 뭔가 묘한 구석이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일상적인 것을 넘어 지나치게 사소하다 느껴질 정도다. 도대체, 이게 소설이 되긴 해, 이런 느낌이랄까. 클라이맥스도 없고, 갈등도 없으며, 심지어 문체에서는 어떤 유의 감정의 진폭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10년 동안 알고 지낸 애매한 관계의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미국으로 떠났고, 그 친구의 떠나는 뒷모습을 보니 뭔가 아련한 느낌이 들더라.' 딱 이 정도 내용으로 유디트 헤르만은 일곱 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극적인 긴장감도 그럴듯한 플롯도 없는 소설이 재미있게 읽히는 건 분명 희한한 일이다. 심지어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문장에 슬며시 웃거나 슬퍼하는 자신을 보거나, 위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면, 그 희한함은 절정에 이른다. 이건 분명, 이야기 자체 보다는 작가가 공들여 만들어 놓은 감정의 흐름에 대한 무의식적 동조 때문이다. <단지 유령일 뿐>은 그런 소설이다. 나른하고 건조하고 심심한 이야기가 어느 순간, 사소한 감정의 진폭을 만들어내고 그것에 동조하게 만들며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그것은 느리고 조심스러운 변화다. 나긋나긋하고 느릿한 소설 속 문체처럼 말이다.
그런 느낌의 변화는 유디트 헤르만이 아주 사소하지만 결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묘사하는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거의 대부분의 일상은 무척이나 하찮기 마련이지만, 그 하찮은 순간에 불현듯 개입하는 아무것도 아닌 감정이 때론 거대한 사건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예를 들어, 10년 친구가 미국으로 떠나든 말든 내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고 나 역시 그것을 잘 알고 있지만, 그 친구가 떠나는 뒷모습을 볼 때 느끼는 '순간'의 아련함이 내 일상에서 가장 이질적이면서도 가장 강렬한 감정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유디트 헤르만은 그런 순간을 포착하고 근사하게 묘사해 깊은 잔영을 남긴다. '단지 유령일 뿐'의 엘렌이 버디의 손을 꼭 잡는 장면이나, '아쿠아 알타'의 주인공이 잠시 열어둔 기차 창문 사이로 밀려오는 따뜻한 공기를 느끼는 장면처럼. 그리고 어떤 감정에 대한 애매하지만 탁월한 표현들...
... 3월에 그들은 집수리를 시작하고, 4월에 요니나는 요나스를 생각하는 걸 그만둔다. 그것은 간단하지만, 그녀는 그만두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그만둔다. 그것 대신 다른 것이 시작될 거라는 것 없이 뭔가 끝나 가는데도, 그건 요니나에겐 새삼스럽고 전에는 전혀 경험한 적 없는 상황이다. 요나스를 생각하지 않고 잠드는 건 힘이 든다. 하지만 그를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 그의 털모자와 녹색 눈, 자제심 부족과 변덕스러움, 행복, 대체 그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뭔가 다른 생각이 떠오르기 전에 잠이 먼저 찾아온다. - '차갑고도 푸른', p. 109
... "모든 이야기는 끝이 있어." 하고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들 이야기도 끝이 있고 그 끝을 알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걸 듣고 싶은지 그에게 묻고 싶다. 그걸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 "미래를 상상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어, 야콥. 언젠가 아니면 지금 바로 다른 사람에게 다음 번 이야기를,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거라는 생각을 그만둘 수가 없어." 하고 말할지 모른다. ... 그가 갔으면 한다. 그는 갈 것이다. 다만, 아직은 아니다. - '어디로 가는 길인가', p. 243
그녀는 불친절하고 모호하고 흐릿한 표현을 주로 사용하지만, 그 애매한 표현은 깊은 행간을 만들어낸다. 책을 읽다 문득(그것이 우연이라도) 그 행간의 의미를 찾게 되는 순간(혹은 스스로 만들어 내는 순간), 그녀가 천천히 묘사했던 모든 표현들이 유기적으로 얽히며 감정의 진폭을(크든 작든) 만들어 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단지 유령일 뿐>은 뭔가 낯설고 비밀스러운 구석이 많지만, 또 그 비밀스러운 구석에서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냈을 때 훨씬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는 소설이다. 그러니 이 책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순간의 느낌이, 일상의 모든 사소한 일들 속에서 자신만의 특별한 감상을 찾아냈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도 큰 과장은 아닐 테다.
* '루스(여자 친구들)', '차갑고도 푸른', '아쿠아 알타', '단지 유령일 뿐'의 네 편과 유디트 헤르만의 데뷔 소설집 <여름 별장, 그 후>에 수록된 단편 '허리케인'을 묶어 영화화 한 <단지 유령일 뿐>이 올해 국내 개봉 대기 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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