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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편저 | 민음사 | 2001년 08월 01일 리뷰 총점9.0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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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01년 08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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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북클러버] 동물농장
평점10점 | YES마니아 : 골드 r*****9 | 2024-05-24 | 신고

예전엔 고전이 어렵게만 느껴지고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제야 조금씩 매력을 느끼고 하나씩 천천히 읽고 있어요. 5월 북클럽을 통해 읽은 책은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에요.

 

<동물농장>은 조지 오웰이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에요. 1938년 스페인 내전에 참가하면서 사회주의의 부패에 대한 분노로 <카탈로니아 찬가>를 썼고, 이 분노가 <동물농장>과 <1984>를 쓰는 사실상의 동기를 제공했어요. <동물농장>은 1943년 11월~1944년 2월에 썼는데, 일 년 반이 지나서야 간신히 출판되었어요. 그 이유는 책이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 스탈린 시대에 이르기까지 소련에서의 정치 상황을 대상으로 하는데, 스탈린 독재 체제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 때문이에요. 2차 세계 대전 기간, 소련은 서방 연합국들에게는 사실상 동맹이었기에 정치적 이유에서 그랬던 거죠.

 

존스가 운영하는 '메너 농장'에서 일하는 동물들은 인간이 다 잠든 밤, 늙은 수퇘지 메이저가 간밤에 꾼 꿈 이야기를 들으러 모두 모여요. 메이저는 동물들이 노예 같은 비참한 삶을 산다면서 이것은 모두 인간 때문이라고 하죠. 인간이 사라진 다음의 지상에 대한 꿈을 꾸었다면서 '영국의 짐승들'이란 노래를 들려주고 반란을 일으켜야 한다고 해요. 메이저의 연설을 듣고 농장의 머리께나 쓴다는 동물들은 삶에 대해 전적으로 새로운 생각을 갖게 되고, 혁명을 일으켜요. '동물농장'이라는 이름으로 바꾸고, 동물주의 원리에 따라서 '일곱 계명'을 정하고,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는 구호를 외치게 해요. 동물들은 이제 동물이 주인이 되는 평등한 이상 사회를 건설하리라는 기대를 해요.

 

하지만 읽고 쓰는 것이 완벽하다는 이유로 돼지들이 특권을 누리게 돼요. 돼지들은 직접 일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휘하면서 우유, 사과 같은 것을 따로 빼돌려서 자기들만 먹어요. 몇몇 동물이 의문을 제기하면 언변가 스퀄러가 등장해 '설마 존스가 되돌아오길 바라는 건 아니죠?'라고 말해 동물들은 그냥 수긍해요. 젊은 수퇘지 나폴레옹은 라이벌이었던 스노볼을 내쫓고 권력을 잡아요. 나폴레옹은 스퀄러, 작곡하고 시 쓰는 데 재주 있는 미니무스, 새끼 때 자기가 교육을 책임진다며 데려가 키웠던 사나운 개 아홉 마리를 이용해 권력을 더 공고히 하죠.

 

시간이 지나면서 돼지, 개들을 제외한 동물들의 삶은 비참해져가요. 하루 종일 일해야 해서 고단하고 힘들고, 자주 춥고 배고팠어요. 이의를 제기했던 몇몇 동물들은 배반했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해요. 글자를 잘 몰랐기에 일곱 계명의 내용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는 것도 제대로 몰랐죠. 점점 나폴레옹의 독재 사회로 전락한 동물농장. 돼지들은 인간의 악습을 되풀이해요. 분명 인간과 관련된 것들을 모두 금지했지만, 어느 날 돼지들은 직립 보행을 해요. 동물들은 경악해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라고 양들이 선동하죠. 일곱 계명도 사라지고 단 하나의 계명이 새로 생겼어요.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들보다 더 평등하다.'라고요.

 

돼지들은 인간들을 불러 함께 카드놀이를 하고 술도 마셔요. 그리고 '동물농장'을 다시 '메너 농장'으로 바꿔요. 다른 동물들은 창밖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상한 점을 느껴요. 돼지들의 얼굴이 뭔가 이상해지고 있었어요.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분간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거죠.

 

조지 오웰은 혁명이 성공한 후에 변질되는 과정을 면밀히 그린 우화를 통해 특정한 시대를 넘어 '일반 독재'에 대해 풍자하고 있어요.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하는 혁명은 주인만 바꿀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한다는 것, 대중이 살아 깨어 있으면서 지도자들을 감시, 비판하고 질타할 수 있을 때만 혁명은 성공한다는 것 등을 메시지로 전하고 있어요. 독재와 파시즘은 지배 집단 혼자만의 산물이 아니라, 동물들의 무지와 무기력함이 권력의 타락을 방조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면서요.

 

책을 읽으면서 무섭기도 했고 많은 의문도 떠올랐어요. 인간의 본성은 도대체 무엇일까? 권력을 손에 쥐면 처음의 신념과 목적은 모두 잊어버리게 될까? 부당하다는 것을 알지만 아니라고 말할 용기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방관하는 자들을 비판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정치에 무관심한 것은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일까? 모두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정말 존재할까? 등이에요. <동물농장>에서 돼지들이 글을 읽고 쓸 줄 알기에 권력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예전에 지배계급들이 왜 자기들만 문자를 알려고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고요. 자기들 입맛에 맞게 뜯어고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배움이라는 것이 중요한 거네요. 내가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그나마 눈치를 보고 제대로 할 테니까요. 시대적 배경이 비슷해서 일제 식민지 시대가 떠올랐는데,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이었는지 새삼 알겠더라고요. 용기 있는 분들의 희생으로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져야겠어요. 깨어있는 사람이 많아야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감사합니다.

12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12 댓글 22 접어보기
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평점8점 | s******a | 2024-03-05 | 신고
?

해는 오랫만에 유독 많은 눈이 내리는 겨울을 보내고 있다. 제법 눈이 많이 내린다해도 사실 도시에서는 쌓인 눈을 구경하기가 쉽지않다. 모든 일상이 빠르게, 빠르게만 돌아가는 도시라는 곳은 풍성하게 내리는 눈이 땅에 내려앉을 틈조차 허락하지 않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수북히 쌓인 눈이 사람들의 일상과 시간을 멈추게 하는 곳은 이제, 사진이나 그림 또는영상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된건가 싶다.  눈조차 잠시라도 이 땅에 쌓일 틈 없이 돌아 가는 도시사람들의 생활이란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싶어서 문득, 서글퍼진다. 

그럼에도 이렇게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은 잠시라도 우리를 어디 다른 세상으로 떠나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다. 

첫 세 문장으로 순식간에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끌었던 그 유명한 소설 "설국"이 올해는 유난히도생각나는 해였다. 너무 빠르고 힘들게 진행되는 나의 삶에서 잠시라도 시간이 멈춘듯, 고요한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싶었다. 물리적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힘들지만, 책의 힘이란 게 이런 데 있다. 책장을 넘기면서 나는 다른 세계로 넘어간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섰다. P7
?

일본 근대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문장으로 꼽힌다는 이 첫 세문장!

폭설로 고립되다 시피한 일본의 한 시골 마을.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두 여인과 도쿄에서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는 주인공 시마무라. 이 세사람의 얽히고 설킨 인연이 이 책의 줄거리이다

? 시마무라는 도쿄에 살면서 이따금 니카타현에 사는 고마코를 보러 온다. 이번 방문길의 기차 안에서 시마무라는 우연히 요코라는 여인에게 눈길을 주게 된다. 그렇게 시작된 소설은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만남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얼마큼 진행되었는지를 독자에게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요코와 주인공과의 관계에 특별한 인연이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특별한 플롯도, 스토리도 없다. 이 소설의 가치는 플롯이나 스토리, 또는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교훈 이런 것 보다는 소설 전체에 흐르는 허무한 분위기를 표현한 탁월한 문장들, 어리석은 인간의 덧없는 수고와 대비되는 아름운 풍경을 읽는 데에 있는 것 같다.

그저 눈이 소리없이 세상에 내려앉듯 이 소설은 조용하고 잔잔하게 설국을 묘사하고, 그곳의 삶을 보여준다. 그런데 사실, 이곳의 삶은 결코 조용하고 잔잔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이곳의 여성들은 여름에 입을 지지미를 지어내느라 그 겨울을 온통 베틀 앞에서 보내야 하고, 하루의 일상을 위해 손님을 대접하고 춤과 노래를 제공해야 한다. 그녀들은 한번 받은 친절함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지고자 지나칠 정도로 열심이다. 

반면, 화려한 도시 도쿄에 사는 시마무라는 무위도식, 하는 일 없이 일상을 지낸다. 가족이 있음에도 가족에 대한 책임도, 고마코에 대한 책임도 없다. 그럼에도 시마무라는 고마코나 요코에 비해 여유있고, 평화롭다. 

이렇게 우리 인생은 아이러니 하다. 답이 없다. 열심히 책임감을 갖고 산다 해서 그 끝이 항상 해피엔드도 아니고, 별 노력 없이 시마무라처럼 유유자적, 무위도식하면서 살아도 인생에 큰 탈이 나는 것도 아니다.

우린 그 답을 알 수 없다. 설사 우리의 삶이 끝내 녹아내리는 눈처럼 사라져 버린다 해도, 별다른 능력도, 재산도 없는 평범한 우리는 그저 열심히 살아야 내는 수 밖에 다른 답을 알지 못한다.

??고마코의 애정은 그를 향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아름다운 헛수고인 양 생각하는 그 자신이 지닌 허무가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럴 수록, 고마코의 살아 가려는 생명력이 벌거벗은 맨살로 직접 와닿았다. 그는 고마코가 가여웠고 동시에 자신도 애처로워졌다. 이러한 모습을 무심히 꿰뚫어 보는, 빛을 닮은 눈이 요쿄에게 있을 것 같아, 시마무라는 이 여자에게도 마음이 끌렸다. p110
?허무함에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인생. 그것이 음양의 이치든, 어리석은 인간의 한계이든, 그런 평범한 사람들의 수고로 그래도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힘들게 나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때로,  가끔 고요히 쌓인 눈을 바라보기도하고, 우리 주위에 있는 작은 것들을 잊지 말고, 위로를 받으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그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에... ?

눈 내리는 계절을 재촉하는 화로에 기대어 있자니, 시마무라는 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 준 교토산 옛 쇠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꽃이며 새가 은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솔바람 소리는 두가지가 겹쳐, 가깝고 먼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 처지고 있는 것 같았다. p134

??아무리 눈이 많이 내리고, 추운 날씨가 기승을 부렸던 겨울이라 해도 다가오는 봄에게는 그 자리를 내어주고, 쌓였던 눈은 녹아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리고 다시 다가온 겨울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해도, 이미 지나간 겨울과는 다른 계절이고, 우리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이 지금보다 좀 더 나아지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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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오만과 편견이 사랑받는 이유에 대하여
평점9점 | YES마니아 : 골드 h******7 | 2024-02-19 | 신고

  '신데렐라' 서사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기있는 서사 구조이다. 누구나 제각기의 이유로 험난하고 불합리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이어트를 할 때 먹방을 찾게 되는 것처럼, '신데렐라' 서사의 작품을 소비하는 것도 일종의 대리만족에 가깝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바뀌지 않는 삶에 지쳐가다보면 백마 탄 왕자님이 이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아무 이유 없이 내게 사랑에 빠진 잘생긴 재벌이 날 괴롭히는 이 사회에 통쾌한 펀치를 날려주길 꿈꾸게 된다. (사족을 붙이자면, 요즘에는 아무 이유없이 사랑 받는 주인공은 인기가 없다고 하며, '사랑을 받을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야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럴 때면 새삼 능력주의에 찌든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오만과 편견』 또한 전형적인 '신데렐라 서사'의 구조를 일부 담습한다. 명문가 자제 '다아시'는 '오만'을 대표하는 주인공이고, 변호사의 딸(오늘날 '변호사'가 상징하는 사회적 지위와는 달리 보잘것없는 가문으로 묘사된다.) '리자'는 편견을 대표하는 주인공이다. '다아시'는 귀족으로서 자신의 사람들에게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만 오만한 태도로 오해를 사고, '리자'는 당차고 지혜롭지만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들을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소설은 두 사람이 자신의 단점을 성찰하면서 진실한 사랑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그린다.

 '신데렐라 서사'가 인기가 많은 만큼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한국 드라마에서 봤던 모 장면들이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다아시가 자신의 오만함을 부끄러워하면서 리자의 친인척들을 깍듯이 대하는 모습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가 금잔디의 가족들과 함께 김장을 하고 길거리 음식을 '먹방'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레이디 캐서딘 드 부르'가 '리자'와 담판을 지으러 오는 장면을 보다보면, <시크릿 가든>에서 박준금(김주원의 엄마)이 길라임에게 돈봉투를 내미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된다.

  그러나 이 소설이 여느 K-드라마와 다른 점을 꼽자면, '사이다' 장면이 없다는 것이다. 대중들의 인기를 끄는 소설, 웹툰, 드라마는 선역과 악역이 극명하게 갈리며, '권선징악' 서사를 빼놓을 수 없다. 주인공이 악역에게 복수하고, 악역이 자신의 잘못의 정도에 비례해서 징벌을 받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최소한 수많은 대중들 앞에서 주인공의 '일침'으로 망신을 당하는 장면은 들어가야한다.

  반면 『오만과 편견』 에는 완벽하게 좋은 사람도, 완벽하게 나쁜 사람도 없다. 특히 주연과 조연의 관계에서 이 점이 두드러진다. 작중에서 가장 선하고 신중한 성격의, 당대의 이상적인 여성 상으로 그려지는 '제인'은 '리자'의 친구 '샬럿'으로부터 '여자가 그런 기술로 자기 감정을 숨기면 사랑하는 남자를 붙잡을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평가를 받는다. (33p.) (실제로 그로 인해 그가 사랑하는 남자 '빙리'와 성사되지 못할 뻔한다.)  또한 '리자'를 가장 아끼는 '베넷' 씨는 딸들의 뜻을 존중하는 따뜻한 아버지인 듯 하나 관점에 따라 자녀 교육을 방관하는 무책임한 가장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p.292)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생계를 위해 돈 많은 집안의 자제와 결혼을 선택해야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실리를 택할 것인지, 자신의 마음이 가리키는 대로 따라갈 것인지 고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주인공들의 사랑에 장애물이 되는 작중 인물들을 시종일관 비판하는 어조로 서술하지만 그들에게 '극단적인 징벌'(죽음)을 내리지는 않으며, 가장 현실적으로 일어날 수있는 상황 속에 처한 그들의 미래를 묘사한다.

  『오만과 편견』은 전형적인 서사를 따르는 로맨스 소설이기에 독자들에게 큰 재미를 선사한다. 동시에 당대의 기준으로 입체적이고 생동감있는 인물들을 제시하며 주인공들 앞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이것이 여전히 『오만과 편견』이 로맨스 소설의 고전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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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 - 그 길에 만난 "데미안"
평점9점 | YES마니아 : 골드 k*****2 | 2023-05-08 | 신고

휴머니즘을 지향했던 작가 헤르만 헤세, 그의 작품은 성장하는 청춘들의 고뇌, 자연에 대한 동경,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양면성의 조화 등을 통해 인간 해방과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인 작품인 "데미안"은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접해봤을 고전이다.

문득 학창 시절 만났던 그 "데미안"을 다시 만나고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대목도 있었지만,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처음 본 듯한 내용들도 있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학창시절에 읽고 작가의 의도나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만큼 이 책은 스토리에 비해 그 내용들이 깊고 심오한 철학과 종교의 세계를담고 있었다. 아직도 데미안은 결코 가볍지 않은 깊은 책이였다.

고전의 매력은 어떤 시기에 어떤 상황에 읽느냐에 따라 매 순간 다르게 다가오고 또 새로운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데미안은 역시 '고전'이였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 보려고 했다. 그러기가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라는 짧은 철학적 성찰로 이 책은 시작된다. 이 책에서 헤세는 "한 사람 한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며 누구나 나름으로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소중한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나를 찾아가는 길' 인식의 첫 단계는 기존 규범으로부터의 떠남이다.

주인공인 에밀 싱클레어는 자기 자신에게 이르는 길에 있으며 낡은 규범들(아버지 집, 종교, 도덕)의 속박에 괴로워하면서도 그것들을 점검한다. 이 돌파구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더 나이많고 더 경험많은 데미안을 만난다.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을 떠벌림으로써 혹독하게 시달리던 싱클레어를 데미안이 도와준다. 독심술과 혜안의 신비로운 힘으로 악마같이 괴롭히는 크로머를 쫒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카인과 아벨 이야기 같이 선명하게 굳어진 기존의 사고의 틀을 깨며 자신의 눈으로 새롭게 다르게 볼 줄 알도록 깨우쳐준다. 학창시절의 지주와 같던 데미안에게 싱클레어는 쪽지 하나를 받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드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

어쩌면 이 문장 하나를 얻으려 데미안을 읽는 것은 아니였는지, 어쩌면 백년도 전에 이렇게 멋진 문장을 생각해낼수 있을지, 삶에 대한 헤르만 헤세의 고뇌가 오랜 세월을 지나 고스란히 느껴졌다.

 

'아브락사스"는  유대교에서 선의 신을 의미하는 야훼와 악마의 신인 사탄을 합친 개념이라고 한다.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신과 악마가 공존한 고대의 신으로 무의식을 찾아 참 자아를 구현하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싱클레어는 이 아브락사스를 찾으러 간다.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 그리고 먼 연인이였던 베아트리체, 그리고 마침내 데미안과 그의 어머니 에바 부인 속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점차 에바 부인 가운데서 현실과 상징이 결합된다.

그리고 전쟁이 터진다. 싱클레어는 그 전쟁에서 총상을 당해 야전병원에 누워있는데 그 곳에서 다시 한번 데미안과 마주친다. 데미안의 입맞춤은 에바 부인의 입맞춤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도자들, 개혁자들의 동맹에 속하는 모든 사람의 임맞춤이다.

 

스토리 자체는 자칫 형체가 없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 자체도 무엇인가로 규정지을 수 없는 그런 각자의 틀에서 그 틀을 깨기도 하면서 그렇게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싱클레어의 성장을 통해 나는 나 자신의 성장하는 과정도 함께 생각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의 중간중간에 마음을 울리는 글들을 오래오래 가슴에 간직하고 삶의 순간 순간 데미안을 느끼게 될 것 같다.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운명을 찾아내며 운명을 자신속에서 완전히 그리고 굴절 없이 다 살아내는 길을 제시해준 선배이자 자신이기도 하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세계와 자신만의 길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고 이루고자 한다면 반드시 깨고 극복해야할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삶의 매 순간에 우리에게도 '데미안'같은 누군가가, 아니면 데미안 같은 '내'가 항상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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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데미안
평점9점 | p*****1 | 2021-12-08 | 신고

데미안

 

헤르만 헤세 / 민음사

 

 누구나 학창 시절에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불킥’(저녁에 잠들기 전에 오그라드는 행동으로 인해 이불을 발로 차는 행동)을 한 번쯤은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중학교 때,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허세 가득한 행동이나 싸이월드에 감성 가득한 사진과 글을 올리고 매우 자아 도취하며 나만의 감성을 표현한 적이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당시의 기록을 보니 얼굴이 매우 빨갛게 달아오른 적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나의 감정이 어떠한 필터에 걸러지지 않고, 내 솔직한 감정을 온전히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적으로 중, 고등학교 시절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많은 사람이 표현한다. 학창 시기에는 감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고 기존의 가지고 있던 생각이 더 굳어지거나 아니면 갑자기 확 변하는 순간이다. 질풍노도의 시기의 청소년들을 부모를 비롯해 많은 어른은 매우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상한 길로 벗어나지 않도록 술, 담배 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게 어항 속에 있는 금붕어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조정하려 한다.

 

 사실, 부모나 주변 어른이 청소년기의 아이들을 안 좋은 환경으로 보호하려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오히려 성장에 방해가 되고 인생의 족쇄를 다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자신만의 가치관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부모의 입김이 자꾸 세뇌 적으로 주입이 된다면 청소년기의 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자신을 자꾸 끼어맞추려고 할 것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고 나서 느끼는 거지만, 주인공인 싱클레어의 부모 등장은 희미하게 그려지고 있다. 작가는 부모의 등장 대신 이야기의 포문을 여는 크로머 친구로 시작해 데미안, 베아트리체, 피스토리우스, 에바 부인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싱클레어의 생각이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지만, 지속해서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자신이 생각하고 떠오르는 모습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모습이야말로 폭풍처럼 내면이 흔들리는 청소년에게 필요한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데미안>을 읽으면서 싱클레어는 인복(人福)이 많은 친구라고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인생의 스승이나 조언자를 한 명이라도 만나기가 어려운데, 싱클레어는 책에 나온 등장인물들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찾아가며 차근차근 성장하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주제에 2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이유는 이 시기가 인간의 혼란 성장기 중에서 가장 큰 잠재력과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자신의 내면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고 표현하는 모습에서 다양한 분야에 접근 가능성이 자유롭게 설정되어 있으니, 자신의 자아를 찾는 기간에 최적이라 생각이 든다.

 

 이 시기에 자신의 자아를 찾는 연습을 시작한다면 부와 명예와 관련하여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인생에 대한 깊은 고찰과 행복함은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성인이 되면서는 내면의 흔들림이 아닌 외면의 흔들림으로 인해 자아를 세상에 맞춰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로 인해 어느 순간 자신의 내면을 온전히 대할 순간이 오면 현재의 익숙해진 환경이 주는 안락함과 다른 사람들과 동일시하며 자신의 내면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등한시할 것이다.

 

 나도 30살이 넘은 나이가 되고서 사회에 적응하느라 잠시 나의 내면과 대화를 소홀히 했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느 순간 나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는 순간, 나에게는 청소년기의 혼란보 다 더 큰 버뮤다 삼각지의 빠진 듯한 숨쉬기 어려운 고통을 느끼게 되었다. 내가 진정하고 싶었던 일은 누군가 긴 삶의 여정 중에 휴게소같이 잠깐 휴식을 제공하고, 가는 길을 조금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정표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다시 내가 원하는 길로 돌아가기에는 이미 출발선에서 어느 정도 출발하여 돌아가기에는 늦었다는 것이 고민이었다.

 

 내가 이러한 고민을 중, 고등학교 시절에 누군가 나의 내면과 깊게 대화할 수 있도록 따끔한 한마디라도 해줬으면 좋겠지만, 변명에 불가하고 나 스스로 탐구하는 노력을 해야 했다. 나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20년 전에 나에게 데미안을 꼭 읽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현재, 33살인 내가 데미안을 읽으면서 인생의 출발점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출발점에서 나는 주인공처럼 나의 내면세계에서 독한 감기약을 먹은 것처럼 몽롱하면서 사경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하지만, 데미안의 이야기가 나를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깨워주는 한 마디가 있었다. 이마에 표적을 단 카인의 이야기에서 카인은 표적하나를 가지고 있었어. 그걸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설명할 수 있었어, 그리고 사람들은 언제나 자기들한테 편하고 자기들이 옳다고 여기는 것을 원하지. 사람들은 카인의 자손들이 무서웠어. 그들은 표적을 가지고 있었거든, 그러니까 사람들은 그 표적을, 그것의 원래 모습인 우월함에 대한 표창으로 설명하지 않고 반대로 설명한 거야.”라고 데미안이 얘기한 부분에서 나는 영혼의 울림이 일어났다.

 

 나는 중2병의 감성을 가진 청소년들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 싶다. 세상에 그들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가지고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나침반 역할을 하는 <데미안> 같은 책을 그들 손에 살포시 쥐여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온전히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는 그들을 존중하고 응원해주고 싶다. 또한, 새로 출발하는 나에게도 응원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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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들
평점10점 | a*****7 | 2020-01-11 | 신고

tvn<요즘책방>의 [데미안]편을 보다가 처음 읽던 때의 기억이 뭉클 돋아났다. 그 시절, 모든 것이 불확실해 보여 나 자신이나 세계, 미래를 차분하게 헤아려볼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 그냥 허무에 휩싸여 하루하루를 소비하며 더러 극단적 생각을 떨치느라 진저리를 치기도 했다. 이런 나를 잡아주고 마음을 달래준 벗이 그나마 있었기에 어떻든 긴 터널을 통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사회성 부족하고 소심했던 내게 책은 길잡이였다. 내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나를 알아봐주는 몇 권의 책 가운데서도 헤세의 [데미안]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자아를 발견하는 여정, 신비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고상한 정신세계를 담고 있는 그 책을 잡자말자 단번에 빨려들었다. 그래서 나에게도 막스나 피스토리우스 같은 길눈이가 찾아오지 않을까, 아니 찾을 수 없을까 기대를 품기도 했다. 결국은 오지 않았지만. 물론 그런 존재가 다가왔지만 알아보지 못했던 나의 안목을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른이 되어도 한참 된 지금 다시 읽어봐도 [데미안]의 흡인력은 여전했다. 아직도 설렌다. 뭔가를 부추긴다. 왜 주저앉아 있냐고, 일어나라고 권고한다. 세속에 찌든 삶 그냥 그렇게 이어갈 거냐고 묻고 있다. 안일함에 젖어 달콤한 현실만 탐닉할 거냐고 질책한다. 다시 어린 싱클레어가 되어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게 어떻겠냐고 속삭이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나에게 흥미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에 이르기 위하여 내가 내디뎠던 걸음들뿐이다. 그 모든 아리따운 휴식의 지점들, 행복의 섬들과 낙원들의 마력을 나도 모르지 않지만,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먼 곳의 광채 속에 싸인 채로 두고자 한다. (중략) 오직, 어떤 새로운 것이 나에게로 닥쳤는지, 무엇이 나를 앞으로 몰아갔는지, 나를 찢어내었는지, 그런 것에 대한 것뿐이다. (64~65쪽)

 

영상 매체의 다양한 채널을 탐욕과 게걸스러움이 뒤덮고 있다. 어쩜 무례하고 불쾌해보이는 일까지 부끄러움이 아닌 재치와 미덕으로 여겨지며, 칭송받고 있는 지경이다. 이런 시대에 싱클레어의 고민과 지향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냉정히 돌아본다. 잊고 있던 우리, 다시 인간을 생각하게 한다. 아니 나 자신부터 점검하게 만든다. 어떻게 살 것인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고비고비마다 싱클레어를 잡아준 손길이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행운아다. 구원자가 없었다면, 탕자처럼 방황하다가 돌아갈 곳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알고 있다면 그처럼 멀리까지 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돌아갈 데가 있고 인도해 줄 사람이 있었으니 방황도 가능했을 것이다. 낭떠러지에 간신히 메달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이들이 여럿 있었다. 싱클레어의 의문에 나름의 답을 제시하며 안전하고 성숙한 지혜의 세계로 이끈다.

 

막스 데미안, 신비로운 표식을 지닌 이 친구는 어느 날 다른 세계에서 뚝 떨어진 듯 싱클레어에게 다가와 크로머와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준다. 그러면서 새로운 지평을 열어보이는데 그게 완전 판도라의 상자였다. 싱클레어는 매료되면서도 불안하여 그를 경원하게 된다.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을 수반하는 시도를 서슴지 않는 데미안을 의도적으로 피한다. 하지만 무의식에선 늘 그를 향하고 있었다. 알폰스 벡의 꾐에 빠져 유혹과 충동의 세계를 탐닉하던 싱클레어는 이상적인 여인을 만나 베아트리체로 이름을 붙이고 초상을 그리는데 그게......방황하던 싱클레어가 보낸 암호같은 그림에 데미안은 답장을 보낸다. 그 유명한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였다. 암호를 푸는 과정에서 예술혼에 불타는 이단적 종교해석자 피스토리우스를 만나게 된다. 그와도 결별한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을 만나고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부인을 알게 된다. 진정한 구원의 여인상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에바부인을 통해 사랑과 세상의 지혜를 하나씩 깨우치게 된다.

 

전쟁과 이별을 겪고 방황을 극복한 싱클레어, 그는 이제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하더라도 더 이상 데미안을 부르지 않는다. 다른 이들의 인도에 의지하지 않는다. 자신의 내면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 답을 찾게 되었다. 그렇게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지금 다시 나를 생각한다. 내 속에 데미안 같은 초자아가 있을까, 내가 그걸 길러 왔을까 되짚어본다. 뇌구조를 그려본다면 아마 한 점 정도일 것 같다. 그러면서 잘도 살아가는구나 싶다. 그때의 고민을, 성장하면서 절절히 깨달았던 일들을 어느새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듯하다. 어쩜 프란츠 크로머가 되어 교묘하게 다른 이를 조종하기도 하고 알폰스 벡이 되어 충동에 휘둘기도 할 것이다. 부지불식 간에 말이다. 피스토리우스처럼 사변적이고 자기합리화에 능숙한 자가 되기도 한 것 같다. 현학적인 지식 과시에 몰두하다 문득 지금 뭘 하고 있나 자문하며 섬뜩해지기도 한다.

 

[데미안]은 그렇게 나의 나됨을 점검하고, 내 안의 데미안을 발견하고 회복하는 알람이었다. 그 시절의 막막함과 간절함을 되새겨 잊지 않게 해주었다. 고상한 세계가 있음을, 그걸 떠벌리지 않고 고요히 간직하며 지켜나가기 위해 애써야 함을 일깨워주었다. 어른이 된 내게 여전히 유효한 길잡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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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헤르만 헤세, 『데미안』
평점10점 | o*****s | 2019-10-17 | 신고

헤르만 헤세,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전영애 옮김, 민음사, 2019)은 성장소설이다. 성장소설은 미성숙한 존재가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을 표현한다. 주인공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과 만나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껍질을 조금씩 깨나간다. 한편에는 고통과 좌절이 꿈틀대고, 다른 한편에는 기쁨과 희망이 살아 움직이는 게 성장의 과정이다. 스스로 자기를 들여다보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바깥에서 들려오는 조력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 ‘자아라는 틀을 과감히 부수는 사람만이 바깥을 향해 과감하게 한 발을 더 내딛을 수 있다. 자아는 늘 우리를 질서라는 울타리 속에 가두려고 한다. 부모라는 울타리, 학교라는 울타리에 갇혀 껍질을 깨는 아픔을 잊고 사는 사람들을 보라.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간 사람만이 지금까지 자기가 살던 곳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 싱클레어를 비롯하여 매력적인 인물들이 많이 나온다. 그들은 당대의 주류 신학(철학)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상을 탐구하고 있다. 데미안이 죄인의 상징으로 알려진 카인을 다른 세계로 가는 징표로 사유하는 데서 나타나듯,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통적인 사유방식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다른 세계를 늘 가슴에 품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만든 밝은 세계에 익숙했던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면서 새로운 사상,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된다. 그것은 부모가 만든 세상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인 맥락을 띠고 있다. 사회는 전통을 중시한다. 전통이 살아 있어야 질서를 공고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싱클레어는 전통과 질서를 상징하는 집과 혁신과 갈등을 상징하는 바깥세계를 오가며 그만의 사유체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바깥을 향한 사유는 다른 이들(‘타자라고 한다)과 대화를 하는 과정 속에서 깊어진다. 소설 제목이 싱클레어가 아니라 데미안인 이유이다.

 

1. 프란츠 크로머

 

이야기는 싱클레어가 10살이 된 무렵부터 시작된다. 이때를 그는 두 세계로 기억한다. 하나는 아버지가 만든 세계이다. 가족으로 구성된 그 세계의 이름은 사랑과 엄격함, 모범과 학교였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세운 규칙을 따르기만 하면 되는 밝은 세계. 밝은 세계가 있으면 어두운 세계도 있는 법이다. “아름답고도 무시무시한, 거칠고도 잔인한 그 모든 일들이 사방에, 바로 옆 골목, 바로 옆집에서 있었고 경찰 끄나풀들과 부랑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이는 아버지의 집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은 늘 금지된 세계를 향해 있다. ‘금지라는 말만큼 매혹적인 게 어디에 있을까? 아버지가 금지하는 것이 바깥세상에는 널려 있다. 프란츠 크로머라는 인물로 대변되는 바깥세계와 접촉하는 것을 아버지는 당연히 금지한다. 크로머와 어울리려면 아이는 아버지 눈을 피해야 한다. 비밀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열세 살인 크로머는 아이들이 무엇을 무서워하는지 잘 알고 있다. 싱클레어처럼 맑고 밝은 세상에 익숙한 아이들은 마음속에 항상 금기를 어겼다는 죄책감을 품고 있다. 프란츠를 따르는 아이들과 어울린 자리에서 싱클레어는 황당무계한 도둑 이야기로 관심을 끌려고 한다. 거짓을 진실처럼 말한 것이다. 크로머가 정말이냐고 집요하게 묻는다. 아이는 크로머가 왜 이러는지 모른다. 크로머는 이미 계산이 서 있다. 크로머는 사과를 도둑맞은 과수원 주인을 잘 알고 있다고 거짓말한다. 그리고는 아이에게 입을 다무는 대가로 2마르크를 요구한다. 아이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돈이다. 어머니에게 손을 벌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크로머와 어울린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 아이는 아버지의 말을 어기고 크로머와 어울린 것을 후회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다.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크로머는 돈을 가져오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아이를 협박한다. 경찰이 알면 당연히 아버지도 알 것이다. 크로머와 일어난 일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구원을 청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아이는 차마 아버지의 뜻을 저버린 사실을 밝힐 수가 없다. 이제 아이는 밝은 세계에 있는 집이 편치 않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어머니 몰래 저금통도 깼다. 마음에 죄악이 들어선 아이는 집에서도, 밖에서도 마음의 안정을 얻지 못한다. 크로머는 이런 아이의 마음을 적절히 이용하여 돈을 얻는 도구로 삼는다. 크로머에게는 밑지지 않는 장사다. 아이 마음에 스며든 죄악과 불안감을 자극할수록 아이는 제 뜻을 따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크로머는 생각한다. 밝은 세계의 규칙이 미치지 않는 곳에 크로머가 있다.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점을 확연히 깨닫지 못하는 아이는 그저 몸을 움츠린 채 속수무책으로 공포에 빠져드는 것이다.

 

2. 막스 데미안

 

크로머라는 악마로부터 아이를 구한 사람이 바로 데미안이다. 어느 유복한 미망인의 아들인 데미안은 싱클레어보다 한 학년 위 학생이었지만, 나이는 서너 살 더 많았다. 크로머와 비슷한 나이인 셈이다. 그는 아이에게 카인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알다시피, 카인은 동생인 아벨을 죽이고 신에게 죄인의 표식을 받은 인물이다.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는 인간을 낳은 장본인이 바로 카인이라는 얘기다. 신의 뜻을 저버린 인물이니 전통신학은 당연히 카인을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데미안은 카인의 표식에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무언가를 찾는다. 사람들은 자기들과 다른인물을 두려워한다. 그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어떤 힘이 느껴진다. 사람들이 힘을 모아 특별한 를 내모는 계획을 짠다. 그에게 카인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신의 뜻을 거스른 인물로 그를 규정한다.

 

위대한 인간을 상징했던 카인의 표식은 이렇게 신의 뜻을 거스르고 악마와 결탁한 상징으로 돌변한다. 카인은 이리 보면 니체가 말하는 초인과 닮았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작가는 니체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고 있다. 니체는 약자들의 도덕이 이 세상에서 초인을 몰아냈다고 주장했다. 약자들의 도덕은 초인을 사회 안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예수를 생각하면 된다. 무한한 사랑을 외친 예수를 사람들은 십자가에 매달았다. 자기들이 세운 뜻과 다른 말을 민중들에게 퍼뜨렸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크로머와는 다른 맥락에서 아이를 아버지의 집과는 다른 세계로 이끌고 있다. 아버지 집에서 아이는 아벨처럼 착한 아이로 살았다. 그것에 크로머가 폭력으로 흠집을 냈다면, 데미안은 사상으로 그 집의 기둥을 허물려고 했다. 크로머를 따른다고 아벨이 카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데미안을 따르면 상황이 달라진다. ‘착한아벨의 마음속으로 거친카인이 밀려들어오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그때 마음속에서 기억 하나가 번쩍 떠올라, 한순간 거의 숨을 쉴 수 없었다. 비참한 이 상황이 시작되었던 저 고약한 저녁, 그때 나는 한순간 아버지와 아버지의 밝은 세계 그리고 지혜를 문득 꿰뚫어본 듯 경멸했다! 그렇다, 그때 나는 카인이었고, 그의 표적을 달았던 나는 이 표적은 치욕이 아니라고, 이건 표창이라고 함부로 상상했다. 악의와 불행을 겪었기 때문에 내가 우리 아버지보다 더 높은 곳에, 선하고 경건한 사람들보다 더 높은 곳에 서 있다고. (43~44)

    

카인이 지닌 새로운 의미를 알았다고 해서 아이에게 크로머를 넘어설 힘이 생긴 것은 아니다. 카인은 카인이고, 크로머는 크로머다. 카인이 이야기 속에 있는 인물이라면, 크로머는 현실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인물이다. 크로머는 꿈속에서까지 나타나 아이를 괴롭힌다. 크로머가 쥐어준 칼로 아버지를 죽이는 꿈을 꿀 정도다. 크로머에 대한 지독한 공포에서 헤어나지 못한 아이에게 크로머는 돈 말고 새로운 요구를 한다. 다음에 만날 때는 큰누나를 데리고 나오라는 것. 아이의 고민은 더욱 더 깊어진다. 크로머가 큰누나를 얘기한 바로 그날 아이는 데미안을 우연히 만난다. 데미안이 무슨 일인지 물어도 아이는 대답하지 않는다. 헤어질 무렵 데미안은 아이에게 크로머를 떨쳐버리라며, 달리 안 된다면 그 녀석을 때려죽여도 좋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는 카인을 떠올린다.

 

그날 이후로 크로머는 아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길가에서 아이를 보면 슬슬 피하기까지 한다. 데미안이 손을 쓴 것이다. 데미안이 크로머에게 어떤 일을 벌였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크로머의 마수에서 풀려난 아이는 데미안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간다. 앞서 말했듯, 데미안은 아버지와 또 다른 생각을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아이는 집으로 돌아감으로써, 정확히 말하면 밝은 세계를 다시 받아들임으로써 크로머와도, 데미안과도 멀어진다. 데미안은 결코 이 세계에 속하지 않았다. 이 세계에 맞질 않았다. 그도, 크로머와는 다르지만, 바로 또 하나의 유혹자였다.”(61)라는 진술에 그 이유가 나와 있다. 이런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이는 그만큼 더 아버지 집에 매달린다. 마음은 데미안을 향하고 있지만, 몸은 아버지 집에 매여 있는 이 상황이 오래 갈 리 없다. 아이는 이미 무의식으로나마 다른 세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몇 해가 지나서야 싱클레어는 다시 데미안과 만날 수 있었다. 유년은 언제든 끝나게 되어 있다. 유년이 끝나면 아버지가 만든 집을 떠나야 한다. 좋든, 싫든 다른 세계가 유년이 끝난 청춘을 다시금 유혹하는 것이다. 다시 만난 자리에서 데미안은 골고다 언덕에서 벌어진 구세주의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십자가 처형이 이루어질 때, 예수 곁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도둑 두 명이 더 있었다. 도둑 하나는 예수의 말을 듣고 개종을 하며 삶을 뉘우쳤고, 다른 하나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다. 데미안은 제 뜻을 굽히지 않은 도둑을 당당한 개성을 지닌 인물로 평가하며, 성서 이야기에서는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자주 손해를 본다고 이야기한다. 그들 또한 카인의 후예라는 말을 덧붙인다.

 

사람들은 성서에 나타난 밝은 세상만 들여다본다. 어두운 세상은 밝음 저편으로 늘 사라져버린다. 데미안의 말대로라면 바로 사람들이 신을 모든 생명의 아버지라고 기리면서도, 생명이 거기에 근거하는 성 생활은 간단히 묵살하고 어쩌면 악마의 일이며 죄악이라고 선언(83)하는 식이다. 싱클레어는 몇 해 전에 이미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마음 깊이 고민했다. 그 두 세계가 완전히 단절된 게 아니라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생각도 했다. 싱클레어는 크로머를 겪은 후 어두운 세계를 피해 밝은 세계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비로소 크로머로 인해서 생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수업 시간에 싱클레어는 우연히 삶과 죽음을 건너뛰고 고독한 명상에 빠진 데미안을 발견한다. 자신 속으로 완전히 들어가 버린 그를 느끼며 싱클레어는 자신과 데미안 사이에 드리워진 아득한 거리를 깨닫는다. 데미안을 떠나, 집을 떠나 자기와 마주해야 할 시간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3. 베아트리체

 

싱클레어는 아버지 집을 떠나 다른 도시에 있는 상급학교로 진학한다. 다른 세계를 이미 본 그가 전통신학에 근거한 학교교육을 마음 깊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학교에서는 아버지 집에서 들은 지식만 반복한다. 또래들은 어린아이처럼 그 지식을 습득하기만 할 뿐이다. 학교에서 전하는 지식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싱클레어는 하숙집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학생인 알폰스 벡을 따라 술독에 빠져든다. 술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환상을 부추긴다. 싱클레어는 술을 마신 김에 가슴에 맺힌 말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영혼 이야기는 이교(異敎) 이야기로, 사랑 이야기로 이어진다. 싱클레어는 여자를 사랑한 경험이 없다. 열여덟 살인 알폰소 벡은 나이에 비해 많은 여자와 사랑을 나누었다. 수준 낮은 대화를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사랑 이야기에 한껏 매료된다. 밝은 세계에서는 금지된 사랑 이야기였다.

 

술과 사랑에 눈을 뜬 청춘이 학교 공부를 제대로 할 리 없다. 유년의 황금빛 정원을 저 멀리로 내쳐두고 싱클레어는 구역질나고 비열한 인간 폐물이자 잡놈, 야비한 충동의 기습을 받은 살벌한 야수에 빠져든다. 낙원을 버린 고통이 밀려드는 한편으로 금기와 즐기는 쾌감 또한 밀려온다. 나는 다시 어두운 세계, 악마 소속이었고, 그 세계에서 나는 명사(名士)였다.”(100) 그렇다고 그가 또래들 속으로 섞여든 것은 아니다. 그는 전대미문의 냉소주의로 다른 세계를 모르는 친구들을 대했다. 당연히 마음을 터놓은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하숙집 주인의 편지를 받은 아버지가 두 번이나 찾아왔지만, 싱클레어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지 않았다. 다른 세계를 엿본 청춘에게 전통신학에 기댄 아버지 말이 어떻게 먹혀들겠는가? 이대로 간다면 그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할 것이었다.

 

싱클레어는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하나로 들여다볼 힘이 없다. 밝은 세계에 있으면 어두운 세계와 거리를 두고, 어두운 세계에 빠져들면 밝은 세계와 거리를 둔다. 술독이라는 어두운 세계에 빠지는 그를 살릴 길은 밝은 세계라는 말이 된다. 밝은 세계를 상징하는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 유년 시절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아버지가 만든 집과는 다른 밝은 세계를 찾아내지 못하면 싱클레어는 말 그대로 낙오자가 될 판이다. 봄날 공원에서 그는 자신을 구렁텅이에서 끌어내 줄 여성을 발견한다. 베아트리체다. 베아트리체는 그가 그녀에게 붙인 이름이다. 사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와 한 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녀는 그에게 성소(聖所)를 열어주었다. 성소는 이념이 살아 있는 공간이다. 싱클레어는 그러니까 그녀를 성적 대상으로 좋아한 게 아니라 신성을 지닌 존재로서 경배한 셈이다.

    

이 베아트리체 예배는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어제만 해도 조숙한 냉소주의자였는데, 나는 지금 성인(聖人)이 되겠다는 목표를 지닌 사원의 하인이었다. 나는 내가 익숙했던 평범한 삶을 떨쳤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바꾸려고 했다. 모든 것에 정결함, 고귀함, 품위를 부여하려 했다. 먹고 마시면서도, 말을 하고 옷을 차려입으면서도 나는 그 생각을 했다. 냉수욕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심하게 자신을 다스려야 했다. 진지하고 품위 있게 처신했으며, 몸을 꼿꼿이 했고 나의 걸음걸이를 좀 더 느리고 품위 있게 했다. 구경꾼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내면에서 그것은 모두 예배였다. (108~109)

    

베아트리체는 신성이라는 이념을 담고 있다.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라는 이념에 담긴 신성을 사랑한다. 베아트리체는 연인이면서 성모(聖母)라고나 할까. 베아트리체에 내포된 다양한 의미를 그는 그림으로 그린다. 그가 그린 베아트리체는 절반은 여자, 나이가 없고, 의지가 굳세면서도 몽상적이며, 굳어 있으면서도 남모르게 생명력 있어 보였다.”(110) 싱클레어는 며칠 후 이 그림에서 데미안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림에는 데미안만 들어있는 게 아니었다. 어느 초여름 저녁, 붉은 태양 빛이 스며든 그림 속에서 싱클레어는 베아트리체도, 데미안도 아닌 자신의 얼굴을 떠올린다. 그가 그린 그림에는 베아트리체와 데미안과 자신의 모습이 뒤섞여 있었다. 여자도 아니고 남자도 아닌 존재, 나이를 전혀 알 수 없는 존재, 그러면서도 현실을 사는 존재. 밝은 세계와 어두운 세계가 하나로 담겨 있는 존재.

 

사실 그림을 그리기 전,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난 적이 있다. 베아트리체도 만나지 못한 채 술집을 드나들던 시절이었다. 그때 데미안은 절망에 빠져 방황하던 싱클레어에게 우리들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들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116)을 알려준다. 싱클레어는 그때 데미안이 들려준 말이 뜻하는 바를 베아트리체 그림을 그리고 나서야 알게 된다. 어떤 경우에도 영혼은 절망하지 않는다. 자기가 중심인 듯 행동하는 자아만이 절망을 할 뿐이다. 싱클레어는 그날 밤 새 문양이 새겨져 있는 문장(紋章) 꿈을 꾸게 된다. 데미안도 좋아한 문양이다. 그리고 그는 꿈속에서 본 그 새를 종이에 그린다. 날카롭고 대담한 매의 머리를 가진 맹금의 몸 절반은 어두운 지구 땅덩이 속에 박혀 있다. 맹금은 거기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 싱클레어가 바로 지금 그렇다.

 

4. 피스토리우스

 

싱클레어는 학교에서 의문의 편지를 받는다. 편지 내용은 이렇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123) 새 이야기는 데미안과만 나누었다. 그렇다면 데미안에게 온 편지인 것인가? ‘압락사스는 그가 처음 듣는 말이다. 이 말 뜻을 알아내기 위해 고심하던 싱클레어는 폴렌 선생이 헤로도투스를 강의하는 수업에서 우연히 이 말을 다시 듣는다. 폴렌은 압락사스를 신적인 것과 악마적인 것을 결합시킨 상징으로 설명한다. 싱클레어가 가장 고민하고 있는 핵심이 이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베아트리체를 숭배하는 마음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그는 성()에 대해서도 이전보다는 관대한 의식을 갖게 된다. 사랑은 천사상이며 사탄이고, 남자와 여자가 하나였고, 인간과 동물, 지고의 선이자 극단적 악이었다.”(128) 사랑 속에 내포된 대립적인 의미를 하나로 연결하려는 사유를 내보이고 있는 셈이다.

 

신과 악마 사이에서,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싱클레어 앞에 홀연 피스토리우스가 나타난다. 신학교 학생인 그는 신과 악마가 우리네 마음속에 들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세계가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인간은 물고기나 양, 버러지나 거머리와 다르지 않다. 요컨대 그는 자기 안에 있는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인간이 된다는 논리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 또한 신을 압락사스라고 말한다. 신이면서 동시에 사탄인 것인 압락사스이다.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얘기겠다. 자기 안에 있는 세계를 발견하려면 그러므로 환한 세계와 어두운 세계를 동시에 알아야 한다. 그것은 곧 압락사스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데로 이어진다. 이야기를 들으며 싱클레어는 끈질기게 이어지는 꿈을 떠올린다. 절반은 남자이고 절반은 어머니인 여자를 안는 꿈.

 

피스토리우스와 싱클레어를 다룬 항목을 작가는 야곱의 싸움으로 명명하고 있다.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 가운데 둘째이다. 그는 형인 에사오를 속이고 아버지에게 장자로서 능력을 인정받는다. 에사오의 분노를 피해 메소포타미아 하란으로 도망친 야곱은 그곳에서 이종사촌인 레아, 라헬과 결혼한다. 그는 원래 라헬을 아내로 맞기 위해 7년 동안 일했지만, 7년이 지나자 외삼촌 라반은 야곱을 라헬이 아닌 레아와 결혼시켰다. 다시 7년 동안 더 일함으로써 그는 결국 라헬을 아내로 맞는다. 6년을 더 라반 밑에서 일을 한 야곱은 재산을 모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다. 도중에 그는 천사를 만나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었다. 야곱은 13명의 자식을 두었는데, 그 중 10명이 이스라엘 12지파의 시조가 되었다. 명실상부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되는 것이다.

 

야곱은 20년 만에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와 형인 에사오와 화해했다. 그 긴 세월 그는 열심히 일을 해서 두 아내를 얻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가 될 아이들을 얻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 쉽게 굴복했다면 이룰 수 없는 일이었다. 싱클레어가 따르는 피스토리우스는 지금 새로운 사제가 되려는 꿈과 그리 할 수 없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전통신학은 악마를 인정하지 않는다. 앞서 살펴봤듯이, 피스토리우스는 신이면서 악마인 압락시스에 매료되어 있다. 데미안을 필두로, 싱클레어와 피스토리우스는 기성 신학과는 다른 새로운 신학을 세우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공히 이마에 찍힌 카인의 표적을 인식하고 있다. 그것을 현실로 실현하려면 그만한 고통과 마주쳐야 한다. 이제 더 이상 싱클레어가 의지할 곳은 없다.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면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뿐이다. 어떻게든 새는 알을 깨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갑자기 예리한 불꽃같은 인식이 나를 불태웠다. 누구에게나 하나의 <직분>이 있지만, 그것은 그 누구도 자의로 택하고 고쳐 쓰고 그리고 마음대로 주재해도 되는 직분은 아니라는 것. 새로운 신들을 원한다는 것은 틀렸다. 세계에다 그 무엇인가를 주겠다는 것은 완전히 틀린 생각이었다! 각성된 인간에게는 한 가지 의무 이외에는 아무런, 아무런, 아무런 의무가 없었다.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 속에서 확고해지는 것,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 나가는 것, 어디로 가든 마찬가지였다. 그 생각이 내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이 체험에서 얻은 열매였다. (171)

    

피스토리우스가 멈춘 자리에서 싱클레어는 한 발짝 더 내딛는다. 싱클레어는 <직분>을 주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깨달은 인간은 이 직분을 등에 지고 묵묵히 길을 걸으면 된다. 신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 야곱처럼. 싱클레어는 순수함을 향한 지독한 욕망에 빠져 자살을 하려는 반 친구를 신성에 들린 상태에서 구한 적이 있다.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는 친구가 자살을 하려는 장소에 찾아간 것이다. 각성을 하면 나머지는 모두 신이 알아서 한다. 각성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찾아 확고하게 자신의 길을 앞으로 더듬어나가면 될 뿐이다. 새로운 사제를 꿈꾸는 피스토리우스는 정작 이 길을 가지 못했다. 그만 다만 골동품 냄새가 나는 낭만주의자였다. 싱클레어는 마음속을 그득히 채운 영상, 곧 남자면서 여자이고, 소녀이면서 어린아이이고, 동물이면서 동물이 아닌 존재를 찾아 길을 떠난다. 신과 더불어 떠나는 길이다.

 

5. 에바 부인

 

신과 더불어 떠난 길에서 싱클레어는 그를 그토록 매료시킨 존재가 바로 에바 부인이라는 것을 확인한다. 에바 부인은 데미안의 어머니이다. 키 크고 거의 남자 같은 여성의 모습, 아들과 비슷한 어머니다운 표정, 엄격한 표정, 깊은 열정의 표정을 지니고 있었으며, 아름다우면서 유혹적이고, 아름다우면서 접근할 수 없었다. 수호자이자 어머니, 운명이자 연인이었다. 그녀였다!”(176~177)는 진술에 나타나는바, 싱클레어는 꿈에서나 보던 연인을 현실에서 확인한다. 어머니이자 연인인 에바 부인은 성모 이미지를 그대로 빼어 닮았다. 싱클레어는 에바 부인에게서 성모를 보고, 데미안을 보고, 베아트리체를 보고, 피스토리우스를 본다. 한마디로 그녀는 이 세상 모든 인물들을 품고 있다. 신이면서 동시에 악마일 수 있는 그녀와 만남으로써 그는 자기 마음을 휘감고 있는 압락시스를 해독할 힘을 얻는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영원히 지속되는 꿈은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어느 꿈에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자기 주인은 운명이라고 답변한다. 그에게 운명은 신이 부여한 직분을 묵묵히 따르는 것이다. 야곱이 간 길을 그는 따르려고 한다. 에바 부인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천문학자와 카발라 연구가, 톨스토이 추종자, 새로운 소수 종파의 추종자, 요가 장려자, 채식주의자 등등 세상 사람들 눈에는 이상한 사람들이 모임에 들어왔다. 그들은 공통된 이상을 지향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기독교로 통일되기 이전의 고대인들이 믿은 신들을 묵묵히 살필 뿐이었다. 카인의 표적이 이마에 찍힌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과 마주하려고 했던 셈이다. 당시 유럽은 발달된 과학의 힘으로 한순간에 수많은 생명을 죽일 수 있는 막강한 무기를 만들어냈다. 사람이 도구화되는 만큼 정신은 황폐화되었다.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를 잃는 법이다. 인간은 물질을 얻는 대신 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하겠습니다.”(200)

 

에바 부인은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사실 이 사랑을 신성이라고 바꾸어 말해도 좋다. 사랑은 간청해서도 안 되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 그녀는 사랑을 내면적 확신에 이르는 힘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 되면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 그러기는커녕 누군가를 스스로 끌어당긴다. 끌려가는 사랑은 집착에 빠질 수 있다. 집착은 사랑하는 이를 제 곁에 묶어두려고 한다. 상대의 자유를 박탈함으로써 자기 자유까지 박탈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에바 부인은 자신을 향한 싱클레어의 사랑이 이런 상태라고 말한다. 스스로 사랑에서 자유로워져야 사랑을 쟁취할 수 있다는 에바 부인의 말을 싱클레어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데미안이 여섯 해 전의 그때처럼 자기 내면 깊이 들어가는 일이 벌어진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이 그러는 이유를 알고 싶지만, 에바 부인은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는 말로 그를 막아선다. 그는 여전히 부인 앞에서는 어린애에 불과한 것이다.

 

데미안 집을 뛰쳐나온 싱클레어는 비를 뿌리던 어두운 구름장을 헤치고 눈부시게 비쳐 나오는 햇살을 보다가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노란 빛을 띠는 구름 한 조각이 잿빛 벽에 막혀 주춤거리다 거대한 새로 변했다. 그리고는 푸른 혼돈을 찢어 떨치고 큰 날갯짓으로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다시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곧바로 한 줄기 밝은 빛이 지상을 비추었다. 갈색 숲 너머로 파리하고 비현실적인 창백한 눈이 보이기도 했다. 몇 시간 뒤 싱클레어는 데미안 집으로 돌아간다. 명상에서 깨어난 데미안이 직접 문을 열어준다. 싱클레어에게 새 이야기를 들은 데미안은 지난밤에 온 나라가 불타는 꿈을 꾸었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꿈이다. 죽음의 냄새를 풍기는 세계를 대체할 새로운 세계. 데미안은 단호하게 죽음 없이는 그 어떤 새로운 것도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을 낳기 위한 한 세계의 종말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6. 다시, 데미안

 

싱클레어가 에바 부인이 끌려오도록 온 마음을 그 하나에 집중하고 있을 때, 데미안은 전쟁에 참여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전쟁을 새로운 것이 시작되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동원령이 내리면 둘 다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 싱클레어는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체험한다는 것이 이상할 따름이라고 생각하지만, 굳이 그 길을 피하려고 하지 않는다. 데미안도 새로운 길을 여는 전쟁이라고 하지 않는가. 전쟁에 참가한 젊은이들 얼굴에서 싱클레어는 가치 있는 표적 하나를 본다. 이상에 도취된 청년들이 들뜬 마음으로 전쟁을 바라본다. 그는 젊은이들의 그런 도취를 신성하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 전쟁터에서 싱클레어는 새로 태어날 수 있기 위하여 광분하여 죽이고, 말살하고, 죽으려는 영혼의 발산을 목격한다. 거대한 새가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하고 있었다. 알은 세계였고 세계는 짓부수어져야 했다.”(218)

 

부상을 입은 싱클레어는 간이 병원에서 데미안과 다시 만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 바로 곁에 누워 있었다. 데미안이 문득 프란츠 크로머에 대해 묻는다. 그때 이후로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은 이름이다. 그는 지금 유언을 하고 있다. 크로머와 같은 이를 또 만나면 그때는 자신 안으로 귀를 기울이라고 데미안은 말한다. 마음 안에는 싱클레어가 있고, 데미안이 있고, 에바 부인도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면 자아라는 틀을 부수고 들어가야 하니까. 그 말과 함께 데미안은 에바 부인을 대신해 싱클레어에게 키스를 해준다. 그 키스를 받으며 싱클레어는 잠이 든다. 다음날, 그의 옆에는 낯선 사람이 누워 있다. 지난 밤 데미안과 만난 게 꿈만 같다. 그는 이제 내면으로 들어가는 열쇠를 쥐었다. 마음 깊이 내려가면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존재가 보인다. 싱클레어를 닮았고, 데미안을 닮았다.

 

싱클레어는 자기 마음 깊이 스며들어 있는 데미안을 발견했다. 참으로 길고도 긴 여행이었다. 프란츠 크로머를 만나 악마를 인식하고, 데미안을 만나 그 악마로부터 벗어났다. 아버지가 만든 밝은 세계로 잠시 돌아갔다가 운명처럼 다시 데미안과 만났다. 데미안은 자신이 생각하는 운명을 전쟁을 통해 표현했다. 이마에 찍힌 카인의 표지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직접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으로 자신을 내몰았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죽음으로 카인의 표지를 지닌 자가 가야 할 길에 이르렀다. 거대한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투쟁의 과정을 싱클레어는 데미안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리고 이제 그가 데미안을 가슴에 품고 새로운 세계와 마주하고 있다. 에바 부인을 따르면, 그가 마주한 세계는 뜨거운 사랑의 세계가 되어야 한다. 그것은 이후에 현실로 실현되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독자들이 찾아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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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구매 주간우수작 위대한 그 의미
평점8점 | l******3 | 2018-03-09 | 신고
<위대한 개츠비>는 그런 면에서 노골적인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어째서 개츠비가 위대한가' 하는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답이야 말로 저자의 의도, 혹은 소설의 주제와 같다고 여기기 십상인 것이다. 그렇기에 제목의 '위대한(The Great)'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수식어 이상의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독자들은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개츠비를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강한 자존감을 지녔으며 성공에 도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스스로를 엄격하게 통제해온 젊은이로 묘사한다. 그런 그의 삶은 장교로 복무하던 1차 대전 중 상류층 자제였던 데이지를 만나면서 혁명적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군복으로 간신히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던 야망으로 가득한 젊은이가 '다른 세계에 속한' 여인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느꼈을 끝 모를 행복과 불안감은 과연 어떤 것이었을지 잠시 생각만 해보아도 아득할 지경이다.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과 재회하기 위해 무일푼이었던 사내가 5년 만에 부촌에 자리 잡고 매일같이 화려한 파티를 벌이기까지 어떤 일들을 했고 또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궁금증이 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저자는 개츠비를 다른 인물들보다 늦게 등장시키며 오랫동안 그의 정체를 감추고 뒤에서 들리는 소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으로 그를 신비화한다. 그리고 조금씩 개츠비가 범죄조직과 손을 잡고 돈을 번 인물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사랑한 여인을 되찾기 위해 무려 5년 동안이나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애써온 남자 개츠비의 정체가 실은 범죄를 통해 부를 일군 한낮 졸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사실을 알고 난 이후에도 개츠비에 대한 닉의 찬사는 결코 반어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이들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개츠비에 대한 믿음과 애정도 커져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가 개츠비에게 찬사를 한 것이 그에게서 모든 진실을 듣고 난 날 아침의 일인 것을 생각해 보면 이는 더욱 잘 드러난다. 그렇다면 이는 무엇 때문일까?

톰과 데이지, 조던은 모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소위 상류층의 인물이다. 그들은 별다른 목표 없이 늘 흥청망청 쓰고 일상을 권태로워 하며 살아간다. 반면 개츠비는 부와 성공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자신의 삶을 통제하며 항상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전력을 다해온 인물이자 데이지를 사랑하게 된 이후부터는 오직 그녀를 사랑하는데 온 힘을 다한 열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비현실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온 인생을 쏟아 부은 의지야말로 개츠비와 다른 인물들을 갈라놓는 분명하면서도 현격한 차별점인 것이다.

저자가 닉 캐러웨이의 눈을 빌려 개츠비를 '평생 동안 네다섯 번 밖에 볼 수 없는 미소를 보여준 사람', '지진계와 같이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 '다른 이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사람' 등으로 표현한 것만 보아도 그가 개츠비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투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본다면 개츠비의 이름 앞에 적힌 '위대한'이라는 말은 그의 순수하고 힘찬 영혼에 대한 저자 피츠제럴드의 찬사임에 분명하다.

소설은 일면 작가 그 자신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18세 때 2살 연하의 여인 지니브러 킹에게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고 나중에 결혼하게 되는 젤다에게도 월급쟁이로 미래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파혼을 통보받았으니 개츠비의 삶에서 피츠제럴드를 보는 것이 확대해석만은 아닐 것이다. 성공에 대한 열망과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꿈과 현실과의 괴리 속에서 끝없이 좌절했던 저자의 삶이 닉의 시선을 통해 개츠비에 대한 긍정으로 나타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에서 개츠비의 사랑이 과연 성숙한 것이었는지, 그 방법이 옳은 것이었는지 등의 문제는 그 시비판단을 유보해 두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랑을 얻기 위해 온갖 범죄도 서슴지 않으며 지나간 시간마저 되돌려 미래로 삼고자 했던 개츠비의 모습에서 사랑 앞에 진실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면 그건 지나친 역설일까?
인용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1998386#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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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평점8점 | g*******7 | 2014-12-22 | 신고

 겨울이라고 하면 요즈음처럼 눈이 내리는 풍경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문득 돌아보면 눈오는 풍경이 어렸을 적 이외에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해마다 겨울이면 눈이 내렸을 터인데 어찌된 연유인지 나의 기억 속에서 눈오는 풍경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여유가 없어서 계절의 변화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이러한 나에게 있어서 겨울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바로 생각나는 책이 있었으니 바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다. 그동안 책장에 꽂아 놓은 채, 읽어본 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은 어느새 겨울하면 떠오르는 책이 되었다. 그리고, 2014년 겨울에 비로소 읽게 되었다. 일본 영화 <러브레터>에서 주인공이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오겡끼데스까~~~"라고 외치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물론 <설국>과 <러브레터>는 전혀 연관될 만한 것은 없지만, <설국>의 배경이 되는 니가타 현의 겨울 풍경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같은 일본의 눈으로 뒤덮인 풍경을 볼 수 있었던 <러브레터>의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면서 읽게 된 것이리라.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p. 7 -

작품의 첫 문장인 이 문구는 주인공인 시마무라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나를 니가타 현의 겨울 풍경으로 초대를 하는 느낌이다. 마치 문장의 긴 터널이 이 책을 읽는 나로 하여금 책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한의 여정을 상징하듯이 말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행적을 떠올린다면 시마무라는 곧 야스나리 자신을 의미하는 인물임을 알게 된다. 사실 <설국>은 야스나리의 중편 소설이지만, 원래 한 작품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여러 편의 글을 모아서 하나의 작품인 <설국>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시간과 장소의 일관성이 다소 뒤엉켜져 있는 느낌을 준다. 시작은 겨울 속의 니가타 현을 방문하는 것이지만, 시마무라의 회상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면서 다소 복잡한 시간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리고, 철저히 모든 것들을 시마무라 자신의 관조적인 시선으로 묘사를 하게 된다. 실제 야스나리는 에치고의 유자와 온천에 머물면서 이 작품을 집필하였다고 하니 어쩌면 시마무라의 시선은 곧 야스나리의 시선임을 느끼게 된다.

 

 실제 야스나리는 타지역에 대한 여행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그의 작품 중 하나인 <이즈의 무희>를 보더라도 실제 그가 고등학생 시절에 이즈 지방을 여행하면서 자연으로부터의 느낌을 배경으로 삼아 무희를 소재로 하여 자연과 함께 인간의 관능적인 부분을 묘사하였음을 떠올린다면 <설국>역시 그가 여행을 창작의 원천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유자와 온천에서 한달 간 체류하면서 생각한 것은 무엇일까? <설국>에서는 북국 니가타 현이라는 장소를 2~3년 정도의 시간적인 변화를 통하여 시마무라와 고마코, 요코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삼각관계 보다는 이 책이 자연스럽게 겨울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계절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섬세하게 다룬 야스나리의 표현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은하수는 밤의 대지를 알몸으로 감싸안으려는 양, 바로 지척에 내려와 있었다. 두렵도록 요염하다. 시마무라는 자신의 작은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춰지는 느낌이었다. 은하수에 가득한 별 하나하나가 또렷이 보일 뿐 아니라, 군데군데 광운의 은가루조차 알알이 눈에 띌 만큼 청명한 하늘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은하수의 깊이가 시선을 빨아들였다." - p. 142~143 -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북국의 풍경이 묘사되면서 동시에 고마코와 요코의 관계가 서술된다. 관능적이면서도 일기를 쓰면서 자신의 삶을 꼼꼼하게 기록하는 고마코에게 매력을 느낀 시마무라이지만, 열차에서 만난 요코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적극적이면서도 쉽사리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고마코와 조용하면서 누군가에게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요코. 분명 시마무라는 이 둘에게 끌리면서도 어느 한쪽으로 쉽사리 기울지 않는다. 그가 도쿄에 있는 아내와 아이들 때문에 주저하는 것일까? 사실 <설국>은 이야기의 흐름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국의 겨울과 함께 자연을 묘사하기 위함인지 아니면 두 여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시마무라의 입장에 중점을 둔 것인지 쉽게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기존의 기승전결에 익숙한 사람이 다가가기란 결코 쉽지 않다. 자연 배경과 인간 관계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를 주는 이유는 시마무라는 인물의 설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시마무라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는 니가타 현을 방문한 여행객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행객은 언제고 다시 떠나야 하는 존재를 상징한다. 그렇기 때문에 시마무라는 해마다 고마코를 보기 위하여 방문을 하지만, 결코 그곳에 정착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고마코도 적극적으로 시마무라에 다가가기 어려운 것이고, 요코의 비극 역시 여행객인 시마무라의 처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을까? 또한 자연의 풍경에 대해서는 세밀하면서도 아름답게 표현을 하고 있는 시마무라이지만, 기차안에서 요코와의 첫 만남을 차창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으로 묘사를 하고 있는 부분이라든지 고마코의 모습 역시 겨울 풍경을 담은 거울을 통하여 바라보고 있는 장면은 남녀 관계에서 소극적인 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풍경은 유심히 쳐다보지만, 정작 여자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시마무라. 그래서인지 <설국>은 하얀 겨울 풍경이 단번에 떠오르면서 등장인물의 관계는 절제되어 표현된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제목에서 다분히 보여주는 겨울의 느낌과 함께 뚜렷한 방향성은 없지만, 등장인물의 내면의 갈등은 아마도 <설국>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은은하면서도 조용한 한 겨울의 밤에 괜히 읽어보고 싶은 책 <설국>. 우연찮게 눈오는 밤에 이 책을 읽으니 괜히 운치있어 보이면서 어느덧 설국의 분위기에 흠뻑 빠지게 된다. 비록 마지막에 시마무라가 더이상 이곳을 방문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을 언급하지만, 오히려 나는 겨울이 되면 이 책을 다시 읽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갖게 된다. 시간이 멈추어버린 북국의 겨울의 모습과 아련한 그들의 절제된 사랑의 표현이 쉽사리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왠지 나에게 있어서 겨울은 <설국>이라는 책으로 각인이 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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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주간우수작 허위와 가식으로부터의 탈출
평점8점 | b******a | 2010-08-06 | 신고

 

나는 감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나는 편이다. 군대에서 선임한테 한창 욕먹을 때, 그들이 자주 딴지를 걸어오는 것이 있었다. “넌 왜 이렇게 똥 씹은 표정이야” 그것은 반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성하지 않을 수 밖에. 애초에 내 잘못으로 혼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후에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한 데에는 조금이나마 내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혼날 때 내 잘못을 생각해보려 했고, 잘못을 발견하면 절로 미안한 감정이 들고 반성하게 되었다. 그런데 신기한 상황이 벌어졌다. “넌 왜 이렇게 불쌍한 표정이야”하면서 타박을 주기 시작한 것.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 상대의 반응과 기분에 맞추어 행동한다. 진정성이 담겨 있지 않다. 그것은 유심히 표정과 행동을 살피면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상대를 제대로 파악하려 들지 않는다. 상대는 순응해주는 척에서 그치지만, 대충 만족하고 넘어간다. 현대인들의 피상적인(:진상을 추구하지 않고 표면만을 취급하는) 커뮤니케이션.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상대의 기분에 맞추어 행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좋게 말하면, 조화롭게 지내는. 나쁘게 말하면, 허위와 가식을 떠는.

 

콜필드

 

콜필드는 허위와 가식을 싫어한다. 그런 이유로 할리우드로 간 형 D.B 역시 싫어한다. 반대로 어린아이를 좋아한다. 꾸밈없는, 즉 느낀 만큼만 표현하고, 솔직하게 행동하는 어린아이를 좋아한다. 특히 여동생 피비를 끔찍이도 아끼고 사랑한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전혀 반갑지도 않은 사람에게 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같은 인사말을 해야 한다는 건 말이다.” 주인공 콜필드의 말이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 하기 싫은 말은 안 한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말 하고 싶은 기분이 들면 말하고, 말 하기 싫은 기분이 들면 말하지 않는다.

 

소년들은 학교에서 또래집단과 어울리며 어른(의 성격)이 된다. 이것은 사회화의 과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화는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더라도 갈등을 일으키지 않으며 살 수 있는 기술을 익히는 것. 상대의 기분에 맞추어 적절히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규율과 도덕을 내면화하는 것.

 

근데 콜필드는 왜 이러나. “훌륭하다니. 난 정말로 그런 말이 듣기 싫었다. 그건 위선적인 말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구역질일 날 것 같았다.” 콜필드는 학교에서 가해오는 사회화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사회화되지 못한 것일까? 여하튼 그가 허위와 가식에 민감한 이유는 어린아이의 감성에서 한 발짝조차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의문. 이리저리 치닫는 감정, 종잡을 수 없는 기분,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는 행동. 실은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인간 행태가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내면화된 도덕 + 타인의 시선에 구속 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 때문에 감정이 억눌려서 답답하고, 뒷담화를 해대고, 피상적인 관계에 회의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것은 현대 사회에서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반갑지 않아도 반가운 척 하는 등의 가식을 떨 수 밖에 없나

 

 

다시 나

 

이 책이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 받는 이유는 많은 청소년들의 공감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허위와 가식에 대한 거부감. 나 역시 어떤 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친한 척 하는 것이 질색이다. 환장할 노릇까진 아닌데, 어색해서 그냥 싫다. 느낀 것 이상 표현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입 발린 말을 하는 것 역시 짜증난다. 근데 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행동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당장 눈초리에 의해 견제가 가해온다. 그 놈의 예의범절을 들이대면서 말이다. , 어찌해야 하나

 

나는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딱 느낀 만큼만 표현하고 싶다. 내 생각을 넘어서는 행동, 내키지 않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면 뒷담화를 하지 않게 되겠지. 왜 뒷담화냐고? 상대를 보면 떠오른 말들을 앞에서 하지 못하니까, 뒤에서 하면서 감정을 해소하는 행위가 바로 뒷담화니까.

 

그런데 또 이렇게 산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콜필드는 퇴학을 네 번이나 당했고,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사회의 강력한 처단을 받았는데. , 어찌해야 하나

 

책에서 한 선생이 홀필드에게 이렇게 충고한다. 학교 교육을 받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힘을 키움으로써, 이러한 문제로 이전에 고민했던 인간들-인간의 행위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고, 좌절한 인간-의 기록을 접하고, 또 내가 고민하고 생각한 만큼의 기록을 남겨 후세에 전해주는 것. 근데 이게 당장의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잖아. 지금 내가 느끼는 어색함과 짜증이 공부를 한다고 해서 해소되는 것은 아닌데? , 어찌해야 하나

 

여자친구인 으네와 몇몇 소중한 친구들. 그들은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고, 관심과 사랑을 준다. 내 맘대로 행동하고 느낀대로 표현해도 다 받아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깊이 있는 매력적인 사람이 되어(조금 중요하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에게 솔직히 내 면면을 다 보여주고, 나 역시 그들에게 깊은 관심을 던지고, 그로써 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려 살아간다면, 어린아이처럼 사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콜필드의 불행은 자신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이 여동생 피비 이외엔 거의 없었던 것이 불행이 아니었을까? 지금 나는 콜필드를 만나면 아주 좋아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결론이 쉽사리 나지 않는다. 좀 더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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