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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4년 03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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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136쪽 | 253g | 127*188*20mm |
ISBN13 | 9788937489006 |
ISBN10 | 8937489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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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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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참 좋아한다. 그녀의 부드러운 필체나 마냥 행복하거나 불행하지만은 않은, 일상인 듯 아닌 듯, 진행되는 조용하고 얌전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키친]으로 처음 접했을 때부터 그랬고, 네이버에서 [그녀에 대하여]를 연재해 주어 그녀의 소설을 언제나 바로 읽을 수 있었던 때에도 여전히 그랬다. 그녀의 이야기는 쉽게 읽히고,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가볍게 남지는 않는다. 적어도 내게는.
친구의 선물을 사러 간 서점에서 나는 또 내 책만 잔뜩 사오고 말았다. 표지까지 너무 예쁘잖아! 좀 너무하는 거 같아.
[도토리 자매]는 돈코와 구리코 라는 이름의 자매의 이야기다. 그녀들은 개인의 일상 외에도 자신들의 이름을 딴 홈페이지 '도토리 자매' (일본어로 도토리는 돈구리)를 만들어 모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답장을 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모님께 받은 따스한 마음을 세상에 돌려주고자 하는 것이다. 도토리 자매는 모르는 사람들의 고독을 들어주는 일로 자신들의 고독도 치유해간다.
책을 읽다보면 묘하게 공감하게 된다. 나도 가끔은 혼자 견딜 수 없이 외로워지거나 감성에 푹 빠져버리거나, 한 없이 차분해져 가라앉아버리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때면 정말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어지는 말들이 생기고, 정작으로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쌓여간다.
그런 섬세한 감정들은 라디오를 듣는다거나, 책을 읽는다거나, 일기를 써내려 간다거나 하는 내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처리해가고는 있지만, 결국에 감정의 침전물들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기 마련이다. 그래서 내게도 도토리 자매가 있었다면, 꽤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누군가 내 말을, 마음을 잘 들어주고 받아주기만 해도 의외로 쉽게 응어리진 감정도 외로움도 풀리는 법이니까.
얼마 전, 수면부족과 감기로 컨디션이 무척 나빴던 날이 있었다. 아는 사람은 나를 만나기를 바랐고, 나는 귀찮아 약속을 피하고 말았다. 나쁜 컨디션으로 날카롭게 대꾸하는 내게, SNS로나마 그가 내게 털어놓은 이야기는, 대충 들어도 (그 사람에게 있어) 심각한 고민이었고, 카톡으로 몇 시간 이야기를 나눈 나는 그를 만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렇게 보면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대단한 일이다. 그리고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인가보다. 내 생각이나 주장을 강요하지 않고, 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에도 가만히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적절한 반응을 해준다는 게 아무래도 쉽지 않다. 예전부터 그랬고, 나는 아직도 내 감정이 더 중요할 뿐으로, 이렇게나 미숙하다.
그래도 정말 신기한건, 그런식으로 누군가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나를 찾아준다는 사실에서 내 마음도 조금은 풀린다는 거다. 그래, 나는 누군가에게 이정도 힘은 되어줄 수 있고, 누군가 나를 찾아주는 이도 있고. 그것만으로도 뿌듯해지는 거다.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를 모르는 누군가에게 보내고 싶은 날, 정말로 외로운 사람들만 공유하는 비밀의 주소가 있다. 언제든 메일을 보내면 언젠가는 답장이 오는 홈페이지 '도토리 자매'.
우리는 도토리 자매입니다. 이 홈페이지 안에만 존재하는 자매죠. 별거 아닌 얘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일, 없으세요? 언제든 우리에게 메일 주세요. 어떤 내용이든 괜찮습니다. 정해진 틀 안에, 정해진 글자 수만큼이라는 규칙은 있지만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장은 꼭 보내겠습니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우리에게 메일을 보내지 않는다. 사람들이 숨기고 있는 외로움의 고요한 힘 때문에 대대적으로는 퍼져 나가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견딜 수 없거나 무척 외로운 이가 있을 때, 전에 도토리 자매와 메일을 주고받았던 사람이 살며시 우리 이름을 가르쳐 준다.
요시모토 바나나 작가의 책을 꽤 많이 읽었다. 한때 그녀의 책에 매혹되어 그녀의 책을 구해 읽고 또 읽었던 때가 있었다. 그녀의 책은 뭐랄까. 매력이 있다. 어떤 이야기들은 동화 같고, 어떤 이야기들은 만화책 몇권을 읽는 것과 같았다. 글귀의 한 구절들 자체가 동화같았던 적이 있어서 몇번이나 읽어댔던 적도 있었고, 그 글귀들을 적어 노트에 가지고 있었던 적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몇년 후 책 읽기를 멀리 하면서 그녀의 책 또한 읽지 않게 되었고, 다시 책을 읽게 된 요즘 이렇게 나는 그녀의 신간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나를 매혹시키게 만들까?
언제든 우리에게 메일 주세요. 라고 도토리 자매는 말한다. 나는 사실 이렇게 이야기가 시작되기에 도토리 자매에게 인터넷으로 각자 사연을 보내는 것들이 소개되는 책인줄 알았다. 이런 저런 사람들의 각기 다른 인생사연들이 소개되는 것을 이어나가는 책. 하지만 나의 예상은 빗나간다. 이 이야기는 도토리 자매. 오롯이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장은 꼭 보내겠습니다. 어떤 내용이든 상관 없어요. 받은 메일에 보내는 답장은 언니가 쓰고 동생은 아이디어를 내고 잡다한 사무를 처리한다. 언니는 돈코. 동생은 구리코이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돈구리는 도토리를 말한다고 한다. 언니를 낳을때 도토리자매의 아버지가 병원의 도토리나무아래서 도토리를 주우며 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언니가 태어나면서 아이의 이름을 지을때 동생을 태어날것을 대비해 언니의 이름을 지었다. 책의 이야기는 동생인 구리코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이어간다.
도토리 자매의 살아온 이야기가 시작되고, 담담한 어조로 어떨땐 밝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그 기저엔 외로움이 깔려 있다. 다른 사람들의 이런저러한 사연을 적은 메일을 받게 되지만(소개된 메일은 몇개되지 않음) 답장을 보낼땐 자신들의 외로움도 함께 이야기 하며 그들을 위로한다. 구리코는 조금 신기가 있는 아이인지도 모르겠다. 꿈속에서 중학교때 좋아했던 남자아이인 무기의 꿈을 꾸게 되고, 다음날 남편을 잃고 힘들어하는 한 여성의 메일을 받게 된다.
도토리자매는 서로에게 의지를 하면서 살아가고, 다른 사람들에게 메일을 받으면서 그들에게 위로를 해주기도 하지만,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혼자서 모든 것을 짊어지려 하지 말라는 뜻인걸까. 담담하게 이어지는 구리코의 이야기가 가슴 언저리의 외로운 부분을 건드렸다. 어떻게 삶을 이어가든 자매는 함께였고, 사람들의 일들은 끊이지 않는다. 나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을때 도토리자매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무엇보다 자기 영혼의 심지를 갈고닦으면서 따뜻하게 살며시 품어, 다시금 심지로서 지위를 되찾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나에 대해서는 나밖에 알 수 없으니까. 오기를 부리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최선이라고 내 영혼이 소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풀어지는 시기에는 느긋하게 지낸다. 마치 마른 꽃이 물속에서 점차 꽃잎을 펼치는 것처럼, 물을 머금은 공룡모양 스펀치가 몇 배로 잔뜩 부푸는 것처럼, 조용히 시간을 느끼는 것이 최고의 강함이다. (p.55)
한국의 밤길은, 밤이 제대로 된 밤이야. 어둡고, 차가운 공기 속에는 얼음 알갱이가 잔뜩 들어 있는 것 같고, 사람들은 하얀 숨을 내쉬고, 즐거울 때는 즐겁게, 짜증스러울때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하는 것 같아. 좋은 사람은 좋은 얼굴, 나쁜 사람은 영악한 얼굴, 그렇게 아주 분명해. 다들 살아 있다는 느낌의 활기가 있고, 피어오르는 에너지가 마치 눈에 보이는 것 같아. 인파는 또 어떻고, 아무튼 북적북적, 일본 사람들처럼 맥없이 걷지 않아.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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