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주는 선물,
보채지 않아도
순리대로 산다. 절기를 따르며 계절과 함께 산다. 오지 않은 열매를 보채지 않고 내 할일 하며 기다린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사랑한다. 자연 속에서는 이런 원칙이 미사여구가 아니다. 먹을 것을 얻고 꽃을 피우기 위해선 따를 수밖에 없는 생활의 습관이다. 급한 마음에 씨앗 심고 물 잔뜩 준다고 당장 내일 꽃피는 게 아니지 않은가. 기다려야 한다. 햇살과 온도와 비와 시간을.
저자는 처음, 숲속에 집을 짓고 텃밭을 마련하며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꿈꾸었다. 푸성귀를 심고 봄에는 나물을 채집하고 오죽하면 땔감까지 산에서 간벌한 나무를 끌고 올 정도였다. 덜어낼수록 풍요로워지는 삶을 믿었다. 자연에 기대어 살려면 기다림을 배워야 했다.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다 때가 있다”고. 도시인에겐 한낱 수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말이 땅을 일구는 그에겐 진실이다. 때가 되면 씨앗 심고 풀 뽑아야 한다. 어느 하나 때를 놓치면 안 되기에 거무튀튀한 촌부의 얼굴이 됐지만 하나 억울하지 않다. 땅은 시간이 지나면 때맞춰 선물을 돌려준다.
산에서의 삶이란 지극히 단순명료하다. 물질문명 사회가 만들어낸 그 얽히고설킨 경쟁 속의 복잡미묘한 인간 관계도에서 벗어난 단순한 삶. 오롯이 자신의 북소리에 귀기울이며 나의 길을 내 뜻대로 걸어간다. 이때 삶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 즉 절기에 맞추어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놓치지 않고 하면 된다. (…) 그러나 이 단순한 시간의 순리는 이런저런 이유로 때를 지키기가 쉽지만은 않다. 자칫 마음만 앞서 서두르면 배추는 속이 차지 않고 고구마는 잎만 무성할 뿐 아무리 땅을 파도 흔적을 찾기 힘들지도…… 이 정직한 육체노동의 신성한 결과물을 제대로 즐기려면 무엇보다 절기의 명료한 질서에 순응해야 한다. 해가 뜨면 일어나고 지면 쉬고, 바깥일이 많은 봄여름부터 초가을까지 부지런히 움직이고 겨울이 오면 잠시 쉬어 가는 것이다. 바쁘고 힘든 절기 끝에 여유롭고 편안한 절기가 오는 법인가! (29∽30쪽)
이렇게 오매불망 기다리지 않아도 새싹은 하릴없이 올라오건만 왜 그리 안달을 내는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도 봄은 온다! (56쪽)
씨는 겨울이 오기 전에 발아해 추워지기 전에 싹이 땅 밖으로 머리를 내민다. 환경이 잘 맞는 곳에서는 제법 뿌리를 내리고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혹은 그 이상 자란 채 겨울을 맞는다. 그 위에 눈이 내려 이불처럼 덮이고 낙엽이 떨어져 포근하게 겨울 찬바람을 막아주면 그대로 봄을 맞고 자라서 다시 꽃을 피우는 윤회의 고리에 들어간다. 꽃 하나 피우는 것도 그저 되는 게 없다. 하기야 무엇인들, 이 정도 정성 없이 제대로 되는 게 있겠는가! (102∽103쪽)
흙을 빚다
도자기를 굽다
그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작업에 알맞게 흙이 반죽되는 토련기 대신 직접 흙을 밟아서 꼬막을 밀어서 쓰고, 디지털 설정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전기 가마나 기름 가마 대신 도끼로 장작을 패고 그 장작 하나하나를 집어넣어 작업자의 눈과 경험으로 가마 온도를 결정하는 장작 가마를 땐다.
매년 10월 가을 가마 소성(도자기를 가마에 넣고 불을 때는 일)은 어쩌면 1년 도자기 농사를 마무리하는 의식에 가깝다. 가마 안에 요철이 생기도록 도자기를 하나하나 놓은 다음 패놓은 소나무 장작을 가마 칸에 던져넣으며 서른 시간 동안 뜬눈으로 도자기 곁을 지킨다. 가마를 열어 완성된 도자기를 보면 흡족할 때도 있고 마음에 차지 않을 때도 있지만 모든 게 예측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자연의 이치 아닐까? 대신 작가인 내 마음엔 안 들어도 다른 누군가에겐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점!
토마토 수프를 먹는 밤
자발적 은둔자의 위트 넘치는 숲속 생활
홀로 있지만 적막하지 않다. 숲속 생활엔 어려움도 있지만 대개 생기와 위트가 넘친다. 너푸리, 나비, 짝눈이…… 함께하는 개, 고양이가 나눠주는 온기로 포근하다. 눈 내린 겨울 산비탈에서 썰매도 무엇도 없이 엉덩이로 폭신한 눈을 미끄럼 타고 내려오는 재미는 숲속 생활자만 아는 즐거움 아닐까?
서로 의지하고 도울 수밖에 없는 이웃의 이야기도 정겹다. 나보다 더 풀 매기를 독려하는 지연이 할머니는 내가 잠시 허리라도 펼라치면 “아니, 그래가지고 언제 다 할겨, 사장님! 해 떨어지기 전에 빨리빨리 혀야지” 꾸지람이 호되다. 알고 보면 홀로 자식들 건사하며 쉼없이 일해야 했던 사연 있는 속 깊은 분이다. 손끝 매운 앞집 장금이 김명자 선생도 막역한 이웃사촌. 종종 손 야문 그분의 협찬을 받아 식탁을 차려낸다. 김치에서 떡볶이까지 정말 끝내준다. 고추김치와 초여름 참외장아찌는 그분 레시피다.
때로는 고립이 주는 기쁨을 마음껏 누린다. 눈이 무진 내린 어느 새해에는 폭설을 핑계 삼아 고향 방문도 취소하고 집에서 홀로 따끈한 떡국을 먹었다. 숲에 산다고 인간 보편의 근심이 어찌 없을까. 그러나 눈 치우고 정원 일 하고 하루종일 물레와 씨름하며 육체노동을 하고 나면 맛있게 밥 먹고 이내 잠든다. 처음, 도로가 포장돼 있지 않아 길도 분간하기 힘든 이곳에 집을 지어 홀로 살겠다고 나섰을 때 어머니는 걱정하셨다. 어느 날 해질녘 걸려온 전화. “좋으냐? 행복하니?” 엄마의 나직한 음성이었다. “내가 복이 참 많은가봐요, 이런 곳에서 살고 있으니 말이유.” 엄마는 전화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래, 그럼 됐다. 니가 행복하면 됐다.”
이렇게 망중한의 절기가 가져다주는 호젓함은 점점 더 줄어들리라. 하지만 여전히 살을 에는 눈보라 치는 겨울날, 두꺼운 장갑 끼고 털모자 눌러쓴 채 다니는 길에 쌓인 눈을 쓸어내고 난로에 쓸 장작을 패고 나르는 번거로움을 즐긴다. 스위치만 누르면 뜨끈뜨끈해지는 보일러의 편리함을 모르지 않지만 더러, 내려놓아야 불행하지 않다. 다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언 몸을 녹이는 난로 위엔 노란 밤고구마가 아주 맛있게 말라가고 있다! (37쪽)
지난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가 한낮이 되도록 그칠 줄을 모른다. 봄비치곤 비바람이 매섭다. 지난주부터 피어오른 작약이며 아이리스를 걱정하느라 작업에 몰두하기가 힘들다. 이제 피기 시작한 여린 꽃대들이 이 난관을 어찌 버틸지…… 마음 같아서는 우산 들고 나가 붙들고 서 있고 싶다. 작약의 연분홍 꽃망울이 이번 시련을 견디고 더 멋지게 피어오를 수도 있을까? 어쩜, 비 그친 후, 색은 더 선명해지고 꽃망울은 더 커질 수도. 나도 시련 앞에 더 강하고 명료해질 수 있을까? 통제하기 힘든 현실의 벽을, 좀더 자유롭고 명쾌하게 마주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다. (90쪽)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무겁고 먹먹할 때면 밖으로 나가 하염없이 잡다한 일거리를 찾는다. 그러나 오늘처럼 날이 궂으면 기다리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다. 올봄은 루꼴라뿐 아니라 바질도 씨를 뿌려 파스타에 생바질을 추가해볼 작정이다. 갤러리 앞, 히아신스가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분도 해주어야겠네. 정신없이 움직이다보면 어느새 해가 넘어가고 지친 몸으로 작업실로 들어가 손 하나 까닥하기 싫어져 다 잊은 채 잠을 청할 수 있을 터. (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