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란 무엇이고 신용이란 무엇인가? 화폐는 국가만 발행할 수 있는 걸까?
금융위기에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정당한가?
위험은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가,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가?
화폐의 핵심은 물물교환의 대체가 아니라 ‘양도 가능한 신용’이다!
화폐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사회적 기술이다!
돈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도 극적으로 달라진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돈’의 역경 어린 역사!
『돈』은 우리가 익히 안다고 믿었던 돈의 역사를 기술하며 이를 바탕으로 사회와 경제, 그리고 점점 이해 불가한 것이 되어가는 금융과 경제정책, 세계경제가 모색해야 할 길을 제시한다. 화폐는 기발하고 탁월한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화폐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안정’과 ‘자유’를 모두 주겠다고 약속하며 사회의 경제적 위험을 체계적으로 분배했고 그럼으로써 사회적 이동이 가능해진 동시에 사회는 무정부주의적 위험에 빠지지 않는 안정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화폐에 관한 오래된 오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학은 나날이 추상화되어 실제 경제에서 멀어졌다. 펠릭스 마틴에 따르면 화폐는 물물교환을 대체하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사회적 기술이고, 화폐의 핵심은 신용이다. 그는 그동안 거시경제학이 간과한 화폐·은행·금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경제를 제대로 바라보려면 화폐부터 다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고대 역사와 사상, 중세와 근대의 화폐 정책 및 군주의 역할, 은행의 탄생, 로크의 사상이 화폐를 보는 관점에 끼친 영향은 물론 케인스, 월터 배젓, 래리 서머스 등 여러 경제학자의 시각을 두루 기술하며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돈을 바라보게끔 안내한다.
화폐의 원초적 실체는 신용
돈은 물물교환을 쉽게 하려고 생겨난 발명품이 아니다
태평양에 있는 지구 최고의 오지, 야프섬에는 ‘페이(fei)’라는 아주 특이한 돌 화폐가 있다. 외부로부터 고립된 이곳 경제 시스템에서 통용되는 이 돌 화폐는 지름이 30센티미터에서 360센티미터에 이르는,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화폐. 실제로 원주민들은 이 무거운 돌 화폐를 주고받으면서 거래를 성사시키지 않았다. 페이의 위치가 이동되는 일은 드물었으며 사람들은 거기에 만족했다. 심지어 바다에 가라앉아 있어 소유주조차 그 실체를 본 적 없는 페이도 존재했다. 그렇다면 태곳적 경제에 가까운 야프섬 경제에서 진짜 화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야프섬의 화폐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근원적 신용거래 및 정산 시스템이었고, 페이는 이 시스템을 추적·기록하는 보존 수단으로, 이들 신용거래를 나타내는 증거물에 불과했다. 페이의 존재는 “태초에 우리 조상들은 물물교환을 했는데 매번 그러자니 서로 교환하는 물건의 가치도 딱 맞지 않고 상하는 물건도 있어서 물물교환을 더 쉽게 하려고 화폐가 탄생한 것”이라고 흔히 이야기되는 화폐의 기원에 대한 가설을 보기 좋게 배반한다.
여기에서 출발해 지은이는 고대 문명과 그리스·로마의 역사, 중세 신흥 상인계급의 발흥과 은행의 탄생, 화폐정책·화폐 주조를 두고 벌어진 국왕과 의회의 줄다리기 등을 차례차례 짚으며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화폐가 어떤 역경을 거쳐왔는지 낱낱이 알려준다. 역사를 되짚으며 또렷이 떠오르는 화폐의 핵심은 복잡하지 않다. 화폐의 핵심은 양도 가능한 신용이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를 바꿔놓았다. 덕분에 사람들은 안심하고 거래를 하게 됐고 사회적 이동이 가능해졌다. 화폐는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화폐는 ‘금융적 의무’(쉽게 말해 부채)를 만들어냄으로써 얼핏 자유와 상반되어 보이는 안정성과 확실성도 보장했다. 이 두 가지를 다 약속한 화폐는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크, 존 로, 배젓, 케인스…
경제학의 과오와 가능성
평범한 사람은 거의 일생 동안 돈을 벌고, 돈을 쓰고, 돈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돈 걱정 없이 살기를 바라며, 운이 좋다면 어느 날 일확천금을 해 호화롭게 떵떵거려보고도 싶은 꿈도 은밀히 품어본다. 하지만 어째서 경기가 좋지 않은 걸까? 외환위기, 리먼브러더스 사태 같은 건 왜 닥치는 거며, 이름도 복잡한 각종 경제지표가 진짜 뜻하는 건 뭘까? 그나저나 우리에겐 똑똑한 경제학자들이 있지 않은가? 그 사람들은 뭘 하고 있나?
화폐라는 발명품을 운용하는 일에 관해서는 저마다 생각이 달랐다. 화폐를 둘러싸고 군주, 정책 입안자, 철학자, 경제학자 들이 내놓은 화폐 사상의 역사는 화폐의 역사만큼 유서 깊다. 펠릭스 마틴이 주장하는 바는 간명하게 요약할 수 있다. ‘화폐를 잊은 경제학’이 문제다.
저자가 특히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사상가는 로크다. 고전파 경제학은 금과 은이 실제 화폐라는 로크의 이른바 ‘화폐 자연주의’를 계승했고, 그 외에도 로크에게 지적으로 빚진 것이 많았다. 로크가 화폐를 바라본 관점의 가장 근본적 특징, 즉 경제적 가치는 역사적으로 우연히 발생한 개념이 아니라 자연적 속성이라는 생각도 그중 하나였다. 여기에서 출발해 경제분석을 시작하니 화폐를 무시하게 됐다. 이어서 저자는 화폐본위가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한 존 로, 화폐·은행·금융을 경제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배젓, ‘세의 법칙(Say’s law)’에 비판적 입장을 취했던 케인스 등 화폐 사상에 관한 역사를 쉽고 명쾌하게 소개한다.
단지 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이자 정의에 대한 이야기
화폐는 청정무구한 영역에 있다고 생각하는 시각이야말로 가장 정치적이다
마이클 샌델, 로버트 스키델스키… 객관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돈의 윤리학
모두 똑같은 만큼의 돈을 갖고 태어나진 않았지만 모두 그렇게 돈을 갖고 싶어한다면, 어떤 사람은 갈망하고 어떤 사람은 먹고살 만큼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그 열망의 강도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최소한 얼마 이상은 필요한 게 돈이라면, 돈 이야기는 정치적인 이야기이자 윤리와 뗄 수 없는 논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닐까.
펠릭스 마틴은 마이클 샌델, 로버트 스키델스키 등 여전히 ‘핫한’ 사상가들이 돈과 경제를 바라본 관점을 소개한다. 특히 일반인은 용어조차 알아듣기 힘든 각종 파생금융상품이 난무하는 현실 에서, 자산가·금융가·투자자들의 손실은 사회화되고, 그들이 거두는 이익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귀속되는 현재 시스템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오지 않은 돈의 길
화폐는 사회적 기술이다. 미래의 화폐와 이를 운용할 지혜를 근원적으로 다시 고민하자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우리가 벌고 쓰고 소비하고 원하는 돈을 다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펠릭스 마틴은 “화폐를 물리적 사물로 이해하면 우리가 위험을 측정하고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화폐본위는 변하지 않는 것, 즉 고정불변의 상수가 되어야 하지만, 화폐를 가치라는 사회적 개념으로 이해하면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며 “화폐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내려면 경제적 가치 기준이 고정되어서는 안 되고, 솔론이 보여주었듯이 민주적 정치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