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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영화음악 (Bridget Jones’s Baby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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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영화음악 (Bridget Jones’s Baby OST)

Craig Armstrong 작곡/Ellie Goulding, Years & Years, Knox Brown, Ed Sheeran 노래 외 13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Universal / Polydor | 2016년 09월 21일 리뷰 총점8.0 정보 더 보기/감추기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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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짓 존스의 베이비 영화음악 (Bridget Jones’s Baby OST)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6년 09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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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디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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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소개 (18명)

작곡 : Craig Armstrong (크레이그 암스트롱)
영화음악 작곡가, 무대음악 작곡가 영화음악 작곡가, 무대음악 작곡가
노래 : Years & Years (이어즈 앤 이어즈)
멤버 : 올리 알렉산더 (보컬, 키보드), Mikey Goldsworthy (베이스), Emre Turkmen (신스, 비트) 멤버 : 올리 알렉산더 (보컬, 키보드), Mikey Goldsworthy (베이스), Emre Turkmen (신스, 비트)
노래 : Knox Brown (녹스 브라운)
태어난 곳은 아일랜드이지만 기반은 영국이다.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Suffolk)에서 성장했다. 열한 살 무렵 삼촌으로부터 낡은 기타를 선물받아 스스로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직접 만드는 새로운 노래에 눈을 떴다. 스스로 찾은 자질도 중요하지만,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청중의 호응이 따르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부모도 곁에 있었다. 그리고 고교시절부터 바쁜 일과가 시작됐다.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크고작은... 태어난 곳은 아일랜드이지만 기반은 영국이다. 잉글랜드 남동부 서퍽(Suffolk)에서 성장했다. 열한 살 무렵 삼촌으로부터 낡은 기타를 선물받아 스스로 익히면서 자연스럽게 직접 만드는 새로운 노래에 눈을 떴다. 스스로 찾은 자질도 중요하지만, 함께 공연을 관람하면서 청중의 호응이 따르는 음악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주는 부모도 곁에 있었다. 그리고 고교시절부터 바쁜 일과가 시작됐다. 낮에는 학교 가고, 밤에는 크고작은 클럽을 찾았다. 밤새워 공연하는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지만, 차차 사람들과 교감하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어쿠스틱 공연을 기대했던 사람이든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든 박수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자신했을 무렵, 입소문을 타고 관계자들이 찾아온다.

그는 지칠 줄 몰랐다. 2005년부터 2011년에 이르기까지 공개한 EP만 여덟 장이다. 2009년에만 총 312회 공연을 치뤘는데, 어디선가 봤던 제임스 모리슨의 연간 공연이 200회였다면서 그걸 뛰어 넘고 싶어서 그렇게 했다고 했다. 행운이 따르기도 했다. 2010년 어느 시낭독 행사가 있었고 거기서 공연제의를 받아 미국 LA로 갔는데, 운좋게 제이미 폭스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야에 그가 들어왔고 덕분에 제이미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여유롭게 미국을 여행할 수 있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정력적인 공연, 달랑 어쿠스틱 기타 하나로 다루는 풍요로운 장르, 젊음, 그리고 그 젊음으로 만들어낸 풍요로운 이야기들, 이 모든 것들은 두터운 팬덤을 형성하고 본격적인 주류 활동을 준비하는 기반이 되었다. 2011년 기회는 찾아오고 결국 데뷔 앨범이 나왔다. 나오자 마자 일주일 만에 10만장을 팔아치우며 UK 차트 1위에 등극했고, 각종 매체에서는 "10년 만에 데뷔 앨범으로 차트 1위를 정복한 남자 신예" "심장을 뚫고 차트를 정복한 달콤한 목소리" 등 호평이 따랐다.

그동안 그는 가진 게 별로 없었다. 늘 혼자였다. 휴식을 모르고 목청껏 노래하는 젊음이 있었고, 어쿠스틱 기타 하나가 있었으며, 사운드를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루프 페달(loop pedal)이 있었을 뿐이다. 공연 영상을 뒤적여보면 재미있는 풍경이 나온다. 'Black Horse and the Cherry Tree'를 부르던 데뷔 시절의 케이티 턴스털이 그랬던 것처럼, 그도 몇 마디 연주를 띄우고 그걸 녹음해 계속해서 돌린다. 그렇게 만들어진 베이스를 바탕으로, 그 위에 소리를 덧입혀 노래하고 연주한다. 홀로 내는 소리가 헐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사운드를 쌓는 방식이다. 한편 혼자 무작정 만들고 공연했고, 혼자 CD를 팔았다. 알아서 해결할 만한 실력이 있었고 그만큼 적극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10월 영국 공연이 죄다 매진될 만큼 무수한 호응이 있다. 준수한 음악, 유망한 신예에 대한 세계의 관심 또한 기다리고 있다.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뉴웨이브 그룹 유리드믹스(Eurythmics) 시절부터 가창력과 음악적인 능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여성 싱어 송라이터다. 그녀의 작곡 실력과 회색 톤의 깊고 중성적인 음색, 그리고 소울풀한 창법은 12년 동안 3장의 앨범만을 발표하는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위치를 굳건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4년 1...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뉴웨이브 그룹 유리드믹스(Eurythmics) 시절부터 가창력과 음악적인 능력을 동시에 인정받은 여성 싱어 송라이터다. 그녀의 작곡 실력과 회색 톤의 깊고 중성적인 음색, 그리고 소울풀한 창법은 12년 동안 3장의 앨범만을 발표하는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흔들리지 않는 여성 싱어 송라이터 위치를 굳건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54년 12월 25일, 스코틀랜드의 애버딘에서 태어난 애니 레녹스는 어린 시절부터 배운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음악 잠재력을 키웠다. 1970년대 후반 그녀가 웨이트리스로 일하고 있던 레스토랑에서 데이브 스튜어트를 만나서 결성한 유리드믹스는 1980년부터 11년 동안 역동적인 활동을 보여주면서 1991년에 화려한 대미(大尾)를 장식했다. 그러나 그녀의 첫 싱글은 유리드믹스에 몸담고 있던 1988년에 소울 싱어 알 그린(Al Green)과 듀엣으로 부른 ‘Put a little love in your heart(9위)’이다. 그 해에 개봉된 영화 에 삽입된 이 노래로 가능성을 타진한 애니 레녹스는 그룹 해산 1년 후인 1992년에 공식적으로 솔로 데뷔 앨범 를 발표해 ‘Why(34위)’와 ‘Walking on broken glass(14위)’가 그녀의 인지도를 높였다. 1995년에 공개한 솔로 2집 는 100% 다른 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 한 대범한 앨범이었다. 싱글히트곡으로는 더 러버 스피크스(The Lover Speaks)의 오리지널을 다시 불러 그녀에게 그래미 최우수 여성 가수상을 안겨준 ‘No more “I love you’s”(23위)’ 뿐이었지만 국내에서는 프로콜 해럼(Procol Harum)의 원곡을 커버한 ‘A whiter shade of pale’도 높은 인기를 누렸고, 펑크 밴드 클래시(Clash)의 노래를 재해석한 ‘Train in vain’ 등 익히 알려진 곡들은 매니아 층으로부터 환영받았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전후 한 시기에 1980년대의 뉴웨이브 음악을 재조명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애니 레녹스와 데이브 스튜어트는 일시적으로 모여 자선 공연을 갖기도 했다. 2003년에는 8년만에 세 번째 솔로 앨범을 공개해 조금도 퇴색하지 않은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다.
지난해 대중 음악계에서 최대의 화제를 몰고 다닌 아티스트는 다름 아닌 ‘악동’ 에미넴(Eminem)이었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의 래핑이 담겨있는 음반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 < 13일 밤의 금요일 >의 제이슨을 연상케 하는 괴기한 가면을 쓰고 전기톱을 휘두르는 라이브 투어와 어머니와 아내 등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법정 공방전 등은 단연 뜨거운 이슈였다. 또 한가지 그가 화려한 스포... 지난해 대중 음악계에서 최대의 화제를 몰고 다닌 아티스트는 다름 아닌 ‘악동’ 에미넴(Eminem)이었다.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오는 그의 래핑이 담겨있는 음반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 < 13일 밤의 금요일 >의 제이슨을 연상케 하는 괴기한 가면을 쓰고 전기톱을 휘두르는 라이브 투어와 어머니와 아내 등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진 법정 공방전 등은 단연 뜨거운 이슈였다. 또 한가지 그가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백인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흑인이었더라면 이토록 커다란 조명을 받을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흑인 음악을 백인이 판다’는 이론이 여지없이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하우스 오브 페인도 ‘Jump around'' 단 한 곡으로 1992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백인 랩 그룹이다. 말의 울음소리를 연상시키는 효과음과 ‘Jump, Jump''를 외치는 신나는 후렴구가 인상적인 노래는 그들을 단숨에 랩 스타로 만들었다. 당시 흑인 래퍼들이 대부분 총과 마약으로 얼룩진 갱스터 랩에 몰두해 있었기에, 하우스 오브 페인의 신나는 랩은 쉽게 차트를 점령할 수 있었다. 인종 차별 문제가 심화되고 있을 무렵이어서 백인들이 압도적으로 그들을 지지했음은 물론이다. 1980년대 후반 아이스 티(Ice-T)가 이끌던 리듬 신디케이트 카르텔(Rhythm Cyndicated Cartel)의 멤버로 활동하던 아일랜드 태생의 에버라스트(Everlast)가 1990년에 결성한 하우스 오브 페인은 대니 보이(Danny Boy)와 디제이 리설(DJ Lethal)을 맞아들이면서 완벽한 짜임새를 갖췄다. < 토미 보이(Tommy Boy) >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트리오는 아일랜드 문화의 자긍심을 듬뿍 담아낸 데뷔작 < House Of Pain >을 1992년에 발표했다. 사이프러스 힐(Cypress Hill)의 디제이 머그스(DJ Muggs)가 프로듀서를 맡은 음반은 ‘Jump around''(차트 3위)의 스매시 히트로 곧 플래티넘을 획득했다. 오래갈 것 같았던 그들의 점프는 그러나 추락으로 돌변했다. 후속 작품들이 1집만큼의 참신성과 독창성이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4년 2집 < Same As It Ever Was >, 1996년 3집 < Truth Crushed To Earth Shall Rise Again >가 그것이다. 이는 결국 해체라는 수순으로 이어졌다. 비록 하우스 오브 페인은 원 히트 원더 그룹으로 랩 역사에 남아있지만, 각자의 길로 떠난 멤버들은 현재 훌륭한 솔로 캐리어를 쌓아가고 있다. 에버라스트는 1999년 ‘What''s it''s like'', ‘Ends''를 모던 록 차트에서 히트시키며 성공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해 산타나(Santana)의 마스터피스 < Supernatural >에 참여하여 수록곡 ‘Put your light on''을 작곡하고 게스트 보컬을 맡기도 했다. 디제 리설 역시 랩 메탈 그룹 림프 비즈킷(Limp Bizkit)의 일원으로 절묘한 스크래치와 디제잉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노래 : Isley Brothers (아이슬리 브라더스)
흑인 소울,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힘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음악여정을 걸어왔다는 점이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보컬 팀워크와 하모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로맨틱한 R&B 발라드와 가스펠, 소울, 펑크(Funk)에 이르는 흑인 장르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데 가장 중심에 섰던 형제그룹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결성된 ... 흑인 소울, 리듬 앤 블루스 그룹 아이슬리 브라더스(The Isley Brothers)의 힘은 끈질긴 생명력이다. 4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은 음악여정을 걸어왔다는 점이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보컬 팀워크와 하모니를 전면에 내세운 이들은 로맨틱한 R&B 발라드와 가스펠, 소울, 펑크(Funk)에 이르는 흑인 장르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데 가장 중심에 섰던 형제그룹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결성된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원래 팀의 정신적 지주이자 리드 싱어인 로날드 아이슬리(Ronald Isley)를 중심으로 루돌프(Rudolph), 오켈리(O’Kelly), 베론(Vernon)의 가스펠 쿼텟(quartet)으로 구성된 보컬 밴드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1955년 자전거 사고로 베론이 사망하자 아이슬리 형제는 트리오 라인업으로 팝 계의 첫 출발을 내디뎠다. 데뷔 초기 고향을 등지고 뉴욕으로 이주해 두-왑(doo-wop) 레코드를 녹음하며 활동에 포문을 연 그룹은 1959년 가스펠 송 ‘Shout’가 팝 차트에서 톱 40의 놀랄만한 성과를 올리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렸다. 1962년 R&B싱글 차트 2위를 기록한 ‘Twist and shout’(비틀즈가 커버한 곡), 1966년 스매시 히트 싱글 ‘This old heart of mine (Is weak for you)’(팝 차트 12위, 이듬해 영국차트 3위) 등이 성공가도의 대표적인 열쇠였다. 이후 그룹은 수많은 음반을 레코딩하면서 소울과 R&B뿐만 아니라 펑크와 록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갔다. 19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는 바로 그룹의 혁명을 이끈 시기였다. 그 출발선상에 자리한 1969년 작품 < It’s Our Thing >(R&B앨범 차트 2위)부터 그룹은 줄 곳 히트 퍼레이드를 이어나갔다. 결국 1970년에 발표한 < Get Into Something >에서 R&B차트 톱 30에 랭크된 곡을 무려 여섯 곡이나 배출해내는 저력을 과시했고, 1971년 < Givin’ It Back >을 발표해 밥 딜런(Bob Dylan),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 스페판 스틸스(Stephen Stills), 빌 위더스(Bill Withers), 닐영(Neil Young)의 곡들을 리메이크하며 주류 음악시장의 성공 궤도에 안착하기 시작했다. 아이슬리 형제가 인기그룹으로 급부상한 1973년작 < 3 + 3 >(팝 앨범 차트 8위)은 제 2세대 아이슬리 브라더스를 형성한 시기였다. 지미 헨드릭스로부터 영향 받은 기타리스트 어니 아이슬리(Ernie Isley)와 베이스, 퍼커션 주자 마빈 아이슬리(Marvin Isley), 사촌 형제인 크리스 자스퍼(Chris Jasper)가 이 앨범부터 그룹에 새롭게 가입. 이때부터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6인 체제로 전성기가 끝날 무렵까지 10년 동안 멤버교체 없이 ‘가문의 영광’을 지속해나갔다. 결국 이들은 발표하는 앨범마다 골드와 플래티넘을 달성하며 장기간 대중들과 함께 호흡했다. 그룹의 진가가 발휘된 1975년 걸작 < The Heat Is On >는 아이슬리에게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라는 영광을 수여한 금자탑이었다. 더불어 1978년작 < Showdown >(팝 앨범 차트 4위)에 수록되어 R&B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한 ‘Take me to the next phase (Part 1)’의 빅 히트로 1970년대에 접어들어 그룹은 가장 화려한 시기를 맞이한다. 1976년 < Harvest for the World >(9위), 1977년 < Go for Your Guns >(6위), 1978년 < Showdown >(4위) 등의 발표하는 음반마다 그룹은 매번 R&B앨범 차트 정상을 점령했고, 여러 싱글 히트곡들로 R&B차트를 힘차게 꿰찼다. 흑인음악계의 많은 후배들이 아이슬리 브라더스를 존경하게된 결정적 배경이 바로 이 당시 축적되었다. 10여 년 간 지속적인 성공가도를 달린 그룹은 1983년 < Between the Sheets > 이후 점차 하락세에 접어들며 침체기를 맞이한다. 어스 윈 앤 파이어(Earth, Wind & Fire), 쿨 앤 더 갱(Kool & The Gang) 같은 펑키(Funky) 사운드가 조금씩 무기력해질 시점에서 로맨틱 발라드 곡조로 일대 사운드의 변화를 꽤했다. 하지만 결과는 예전만큼 순탄하지 않았다. 결국 1986년 심장마비로 오켈리가 세상을 떠난 뒤 아이슬리 브라더스는 흑인 여성아티스트 안젤라 윈부시(Angela Winbush)를 작업 동료로 맞이해 그룹 재건에 나섰다.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팀을 떠났던 마빈, 어니와 재결합한 그룹은 그간 30년이 넘는 꾸준한 음악활동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199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4년 뒤 1996년 < Mission to Please >(R&B앨범 차트 2위)는 R&B 크루너 키스 스웨트(Keith Sweat), 알 켈리(R. Kelly) 같은 후배 뮤지션들이 참여해 젊은 감각으로 앨범의 빛을 더해주었다. 현재 그룹은 로날드와 어니의 듀오 체제를 구축해 기나긴 음악여정을 꾸준히 이어오며 2001년 < Eternal >(3위)을 발표해 다시금 팝 팬들에게 회자되기도 했다. 그룹은 2003년 발매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에 등극한 < Body Kiss >로 거의 30년 만에 차트 1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동시대 여러 아티스트들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운명을 달리하거나 팀의 해체를 맛보았지만 이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 흑인 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물게 노장의 투혼을 아직도 십분 발휘하고 있다. 지나간 세월이 대가를 인정하는 법이다.
R&B, 팝 보컬 R&B, 팝 보컬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 ‘모타운(Motown) 가의 황태자’ 마빈 게이의 보컬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진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달콤한 크루닝(crooning) 창법과 샘 쿡의 호소력 짙은 가스펠의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 그는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보컬로 창조해내며 청중들을 흥분시켰다. 기운이 서려있는 듯한 그의 보컬은 ’보컬 연주의 대가’라는 영광스런 칭호에 어울린다. 그의 사후 등장한 수많은 소울 팝 가수들은 모두 그의 보컬에 영향받았음을 인정하며 그의 음악성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영향력은 단지 탁월한 창법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록음악 역사에 있어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아티스트의 창작의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을 몸소 실천한 음악인이라는 점에서 그를 더욱 기억하게 한다. 70년대가 되기 전 만해도 밤낮으로 사랑과 낭만만을 얘기하며 소일하던 모타운식 소울 음악은 당시 대다수 흑인들이 공감해오던 ‘어두운 현실’엔 둔감했다. ‘팔리는 음악’을 원했던 회사측과의 마찰은 불가피 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을 위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이런 산고 끝에 록 역사를 대표하는 명반 < What’s going on >(1971)은 탄생했다 소울 음악은 60년대 그가 소속되어있던 모타운 레코드사를 통해 보다 대중적인 음악 문법으로 자리 잡은데 이어, 그는 같은 회사 소속의 스티비 원더와 함께 미국 대도시 후미진 곳에서 벌어지는 ‘게토 리얼리티를’ 자신의 노래에 담아냄으로써 소울이 ‘사회성’이란 화두를 본격적으로 끌어내는데 기여를 했다. 스티비 원더와 함께 그는 소위 후배 흑인 뮤지션들의 ‘대부’이다. 80년대 이스트 코스트 힙합의 분수령을 일군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의 프론트 맨 척 디(Chuck D)는 1988년도 명반 < It takes a nation of millions to hold us back >을 발표하며 롤링스톤지와 가졌던 인터뷰에서 ‘나는 이번 앨범에서 힙합의 < What’s going on > 버전을 내놓고 싶었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마빈 게이의 유산을 이어받았다고 인정했다. 마빈 펜츠 게이 주니어라는 본명으로 1939년 4월 2일 워싱턴 디씨에서 태어난 그는 목사를 아버지로 둔 기독교 가정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 하지만 다소 억압적인 가정환경은 그로 하여금 음악에 몰입하게 해 아버지 때문에 억눌린 영혼을 달래줄 위안이 된다.(어렸을 때부터 그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군에 입대, 제대 후 고향으로 돌아와 그는 락 앤 롤 스타 보 디들리(Bo Didely)를 만나 그의 문하생이 된다. 1958년 두왑 그룹인 레인보우에 가입, 이듬해엔 시카고로 진출해 ‘문 그로우’ 라는 두왑밴드에서 활동하며 체스(Chess) 레코드에서 그의 ct첫 싱글 ‘Mama roocie’를 녹음한다. 미국 전역 투어에 나선 문 그로우는 디트로이트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고, 당시 그의 연주를 지켜보던 모타운의 설립자 베리 고디 주니어(Berry Gordy Jr.)는 3옥타브가 넘는 그의 탁월한 테너 창법에 매료되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61년 모타운과 전속 계약을 체결하며 베리 고디와 운명적인(?) 관계를 시작한다. 처음엔 세션 드러머로서 모타운의 일원이 된 그는 모타운 간판스타이자 작곡가인 스모키 로빈슨과 함께 활동한다. 1961년 그는 사장인 베리 고디의 누이인 안나와 결혼한다(무려 18살의 연상). 사장과 사돈관계가 된 덕에 회사측에 전폭적인 지원을 얻게 된 그는 이듬해 첫 싱글 ‘Stubborn kind of fellow’(1962)를 발표하고 흥겨운 댄스 팝 ’Hitch hike’(1962)로 빌보드 Top 40에 진입하는 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다. 냇 킹 콜과 프랭크 시나트라의 크루닝 창법에 영향 받았던 그는 당시 격조 있는 발라드 음악을 원했지만, 회사 측은 그에게 흥겹게 흔들기 좋은 빠른 댄스 음악만을 요구했다. 큰 키에 수려한 용모를 지닌 덕에 유난히 여성 팬들이 많이 따랐던 그였지만, 무대에 올라 몸을 흔들며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는 것은 늘 못 마땅했다. 후에 그가 회고하길 ‘나는 무대에 나가 청중들 앞에서 내 엉덩이를 흔들어야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했을 정도이니, 얼마 후 있을 회사 측과 창작권을 두고 생긴 갈등은 이미 데뷔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1960년대 내내 그는 모타운 사를 통해 꾸준히 히트곡을 발표했다. ‘Pride & joy’(1963)로 처음 Top 10에 진출한 그는 잇달아 발표한 싱글 ’How sweet it is’(1964), ‘Aint that peculiar’(1965)을 Top 10에 진입시킨다. 솔로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갈 무렵 그는 모타운 소속의 실력 있는 디바들과 듀엣 곡을 많이 취입했는데, 메리 웰즈(Mary Wells)과 함께 한 ’What’s the matter with you baby’(1964)을 시작으로, 킴 웨스튼(Kim Weston)과 함께 한 ’It takes two’(1966), 70년대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와 함께 한 ‘My mistake is to love you’(1974)등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그와 가장 인상적인 호흡을 보여준 디바는 바로 타미 테렐(Tammi Terell)이었다. 그녀와 함께 했던 ‘Ain’t no mountain high enough’(1966), ’Your precious love’(1967),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1968), ’You’re all I need to get by’(1968) 모두 Top 10에 진입시키는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궁합이 잘 맞는 콤비’는 안타깝게도 타미 테렐의 요절로 인해 지속되지는 못했다. 그에게 첫 팝 차트 넘버원의 영광을 안겨준 ‘I heard it through grapevine’(1968)로 그의 인기전선은 절정에 다다랐다. 이듬해 ’Too busy thinking about my baby’(1969), ’That’s the way love is’(1969)를 Top 10에 진입시키며 인기는 더해갔지만, 이내 활동 중단을 선언하고 만다. 데뷔 때부터 창작권을 두고 벌어진 회사 측과의 끈질긴 줄다리기는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을 그에게 투쟁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달콤한 사랑타령으로 점철된 지금까지의 음악과는 다른, 자신이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표출해보길 갈망했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얻기 위한 힘겨운 투쟁 끝에 결국 모타운 사의 백기를 받아내며 ‘음반 제작에 관한 모든 전권을 그에게 위임할 것’이라는 전리품을 얻어낸다. 흑인의 입장에서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의 비참한 현실을 늘 생각해왔던 그는 주저 없이 이런 자신의 고민을 음악 속에 녹여내는 작업을 했다. 흑인 빈곤문제, 실업, 월남전등, 70년대 초 그의 눈에 보인 흑인의 현실은 ‘참담함’이었다. 핑크빛 미래를 노래했던 발랄한 60년대의 흑인 음악은 슬라이& 페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커티스 메이필드(Curtis Mayfield)등 기라성같은 흑인 뮤지션들에 의해 한층 진지하고 어두워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내놓은 것이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1971)이었다. 흑인 음악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내놓은 컨셉 앨범 < What’s going on >은 회사 측에 우려에도 불구, 앨범 수록 곡 중 무려 4곡(What’s going on, God is love, Mercy, mercy, me Inner city blues)이 Top 10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고, 앨범은 지금까지 8백만장이라는, 당시로선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렸다. 스트링을 동원한 세련된 연주 편곡, 참회록을 쓰듯 스토리 텔링(Storytelling) 방식으로 진행되는 진솔한 자기 고백은 당시 소울음악에선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앨범 < What’s going on >은 그의 음악 경력에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의 음악성에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Inner city blues’(1971)에서 목격했던 퍼커션의 가열 찬 울림은 70년대 흑인 음악의 대표 트렌드인 ‘펑키 사운드’로의 변화를 예고했고, 앨범으로는 발표 안 된 저주받은 싱글 ‘You ’re the man pt. 1, 2’(1972)에선 가성, 두성, 진성 등 한층 다채로워진 그의 보컬 연기가 압권이다. 재즈에 대한 평소의 관심은 영화 음악 작곡으로도 이어져 노래보다 연주 쪽에 관심이 반영된 영화음악 앨범 < Trouble man >(1972)으로 이어진다. < What’s going on >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 그는 이전의 고뇌하는 흑인 지성임을 포기하고 이번엔 사랑의 세레나데를 부르는 사랑의 전령사로 변신한다. 그의 두 번째 넘버원을 안겨다 준 앨범< Let’s get it on >(1973)은 ‘성 행위’를 찬미하는 노래들로 가득 찬 앨범으로 주변을 다시 한번 어리둥절하게 했다. 빌보드 No.1 곡인 ‘Let’s get it on’은 그를 단번에 섹시 스타로 변모시켰고, 그가 앨범에서 얘기했던 ’자연스러운 성의 표현 ‘은 80년대 들어 프린스나 조지 마이클같은 팝 스타들의 음악 세계로 계승된다. 하지만 그는 당시 첫 아내였던 안나와의 관계가 흔들리고 있었다. 재니스라는 여인과 이미 두 집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낳았던 그의 성적 편력은 결국 아내와의 별거로 이어졌고, 한동안 그 충격에 슬럼프에 빠져 마약으로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재기의 몸부림을 친 그는 베리 고디의 주선으로 만난 레온 웨어(Leon Ware)의 곡으로 채워진 앨범 < I want you >(1976)을 발표하지만, 수록곡 ‘I want you’, ’After the dance’가 약간 주목을 받았을 뿐이었다. 히트곡에 목말라하던 그는 1977년 런던 팔라디움 구장에서의 콘서트 더블 실황 앨범< Live at the Palladium >을 발표하며, 13분이 넘는 디스코 곡 ‘Got to give up’을 수록하고, 4분대의 싱글로도 커팅, 그의 세 번째 넘버 원 싱글로 등극된다. 전형적인 댄스뮤직이었던 ’Got to give up’은 팝 차트, 앨 앤 비 차트 1위를 석권하며 그에게 가수로서 회생의 길을 열어준다. 하지만 ‘Got to give up’의 기쁨도 잠시, 결국 그는 안나와 이혼을 하게 되고 ,이혼에 대한 위자료를 다음에 발표하는 앨범 인세로 한다는 합의를 보게 된다. 앨범 < Here, my dear >(1978)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고 수록 곡 ’When did you stop loving me, When did I stop loving you’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만남과 해어짐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그의 뼈저린 고해성사는 아름다운 가사말과 편곡의 세련됨에도 불구, 이렇다할 히트 싱글 없이 앨범은 파묻히며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안 알려진 앨범이 되고 말았다.(엎친데 덮친격으로 안나는 앨범 내용이 사생활 침해라며 소송을 걸기에 이른다.) 첫 번째 아내와의 이혼에 이어 다시 몇 년간은 그에게 혼란의 시기였다. 두 번째 아내였던 제니스와 급기야 파경에 이르렀고, < Love Man >(1979-발매 취소)과 < In our life time >(1981)의 흥행실패는 그를 더욱 마약으로 치닫게 했다. 급기야 그는 1981년 20년간 그에게 산전수전(?) 다 겪게 했던 모타운 사를 떠나, 하와이로 이주, 새로운 출발을 모색한다. 정확히 1년 후인 1982년, CBS 레코드와 전속 계약하며 그에겐 마지막 걸작으로 남게 된 < Midnight Love >(1982)를 발표한다. ‘Let’s get it on’에 버금갈만한 농염한 보컬이 인상적인 싱글 ‘Sexual healing’이 팝 차트 3위까지 오르며 그는 화려하게 재기한다. 공백기 동안대중들과의 소원함을 해소하기 위해 TV 출연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그는 베리 고디와 함께 토크쇼에 출연해 둘의 악연(?)을 만회해보려고도 했고, NBA 농구 경기때 미국 국가를 소울 창법으로 불러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지미 헨드릭스가 우드스탁에서 연주했을 때 이후로 최대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런 그의 재기 의지는 이내 사그러들고 있었다. 이미 코케인에 찌들 때로 찌든 그의 몸은 말을 듣질 않았고 평소에 사이가 안 좋았던 목사인 아버지와의 관계는 조금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비극은 그의 아버지와의 사소한 말다툼에서 시작되고, 1984년 4월, 그의 45회 생일을 하루 앞둔 날, 심한 다툼 끝에 화를 가누지 못한 아버지가 쏜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그의 어이없는 죽음은 충격적이었다. 많은 흑인 뮤지션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이듬해인 1985년 모타운사와 CBS가 공동으로 그의 미 발표곡을 모은 < Dream of a life time >과 < Romantically Yours >를 내놓는다. 그에 대한 재평가도 활발히 이뤄져 < 롤링스톤 >을 비롯한 록 전문지들은 앞 다투어 그의 앨범 < What’s going on >을 팝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추대하기 시작했고, 198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그의 이름이 등재된다.
노래 : Sister Sledge (시스터 슬레지)
멤버 : 킴 슬레지(Kim Sledge), 데비 슬레지(Debbie Sledge), 조니 슬레지(Joni Sledge), 캐시 슬레지(Kathy Sledge) 멤버 : 킴 슬레지(Kim Sledge), 데비 슬레지(Debbie Sledge), 조니 슬레지(Joni Sledge), 캐시 슬레지(Kathy Sledge)
노래 : Mcfadden & Whitehead (맥파든 앤 화이트헤드 )
멤버 : Gene McFadden, John Whitehead 멤버 : Gene McFadden, John Whitehead
연주 : Gallant (갈란트 (R&B 보컬),Christopher Gall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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