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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음악 2: 책 읽을 때 듣기 좋은 기타 보컬&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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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책 읽어주는 음악 2: 책 읽을 때 듣기 좋은 기타 보컬&연주곡

[ 2CD / 초도한정 특별제작 자석 책갈피 증정 / 보컬곡 전곡 가사 수록 ]
John Mayer, Avril Lavigne, Kelly Clarkson, You+Me, Dido 노래 외 34명 정보 더 보기/감추기 | SonyMusic | 2015년 10월 22일 첫번째 구매리뷰를 남겨주세요. | 판매지수 1,470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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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음악 2: 책 읽을 때 듣기 좋은 기타 보컬&연주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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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매일 2015년 10월 22일
시간, 무게, 크기 600g

관련분류

음반소개

디스크

Disc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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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 Sad Song - 오아시스 Oasis 선택듣기
  • 02 Stop This Train - 존 메이어 John Mayer 선택듣기
  • 03 Tomorrow - 에이브릴 라빈 Avril Lavigne 선택듣기
  • 04 Breakaway (Napster Live) - 켈리 클락슨 Kelly Clarkson 선택듣기
  • 05 Without Those Songs - 스크립트 The Script 선택듣기
  • 06 You And Me - 유플러스미 You+Me 선택듣기
  • 07 Life For Rent - 다이도 Dido 선택듣기
  • 08 When I See You Smile - 빅 룽아 Bic Runga 선택듣기
  • 09 Be The One (Acoustic Ver.) - 팅팅스 The Ting Tings 선택듣기
  • 10 Man In the Mirror (Acoustic Ver.) - 가이 세바스찬 Guy Sebastian 선택듣기
  • 11 Lifeline - 맷 카니 Mat Kearney 선택듣기
  • 12 Superman (It's Not Easy) (Acoustic Ver.) - 파이브 포 파이팅 Five For Fighting 선택듣기
  • 13 Ice Cream - 사라 맥라클란 Sarah McLachlan 선택듣기
  • 14 Fleeting One - 퍼스트 에이드 키트 First Aid Kit 선택듣기
  • 15 Ordinary Sadness - 실예 네가드 Silje Nergaard 선택듣기
  • 16 Embraceable You - 제인 몬하잇 Jane Monheit 선택듣기
  • 17 A Falling Through - 레이 라몬테인 Ray LaMontagne 선택듣기
  • 18 Valley Of The Low Sun - 제이콥 딜런 Jakob Dylan 선택듣기
  • 19 Against The Grain (Acoustic Ver.) - 뉴턴 포크너 Newton Faulkner 선택듣기
  • 20 Off At The Next Exit - 비디 아이 Beady Eye 선택듣기
Disc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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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 Always - 데파페페 Depapepe 선택듣기
  • 02 Hellos And Goodbyes - 토미 엠마뉴엘 Tommy Emmanuel 선택듣기
  • 03 いつか君と / Itsuka Kimito (언젠가 너와) - 오시오 코타로 Kotaro Oshio 선택듣기
  • 04 Beautiful Days - 곤티티 Gontiti 선택듣기
  • 05 I'm Falling - 얼 클루 Earl Klugh 선택듣기
  • 06 My Foolish Heart - 존 맥러플린 John McLaughlin 선택듣기
  • 07 Pavane - 스티브 어키아가 Steve Erquiaga 선택듣기
  • 08 Borsalino - 쳇 앳킨스 Chet Atkins, C.G.P 선택듣기
  • 09 Begin The Beguine - 턱 앤드레스 Tuck Andress 선택듣기
  • 10 Berceuse - 줄리안 브림 Julian Bream 선택듣기
  • 11 Confidential - 피터 화이트 Peter White 선택듣기
  • 12 もし 翼があったなら (만약 날개가 있다면) - 하케타 타케후미 Takefumi Haketa 선택듣기
  • 13 Fields Of Gold - 포플레이 Fourplay 선택듣기
  • 14 Surfer Girl - 빌 프리셀 Bill Frisell 선택듣기
  • 15 Spanish Eyes - 알 디 메올라 Al Di Meola 선택듣기
  • 16 Mother's Day - 래리 코리엘 Larry Coryell 선택듣기
  • 17 Fusion Of The Five Elements - 마이클 헤지스 Michael Hedges 선택듣기
  • 18 Cause We've Ended As Lovers - 제프 벡 Jeff Beck 선택듣기
  • 19 Europa - 산타나 Santana 선택듣기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아티스트 소개 (39명)

버클리 음악 학교에 입학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한 젊은이. 얼마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주신 돈을 몽땅 써버려 위기(?)에 봉착한다. 궁해진 아들에게 돈을 주며 아버지가 던졌던 한마디. “네 음반이 플래티넘을 따내거든, 결코 날 잊어선 안돼.” 그리고 정확히 5년 뒤 그는 소포모어 앨범으로 플래티넘 고지를 정복하며 부모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한다. 바로 ’아름다운 청년’ 존 마이어(John Mayer)다.... 버클리 음악 학교에 입학하며 뮤지션으로서의 꿈을 키워가던 한 젊은이. 얼마지 않아 그는 아버지가 주신 돈을 몽땅 써버려 위기(?)에 봉착한다. 궁해진 아들에게 돈을 주며 아버지가 던졌던 한마디. “네 음반이 플래티넘을 따내거든, 결코 날 잊어선 안돼.” 그리고 정확히 5년 뒤 그는 소포모어 앨범으로 플래티넘 고지를 정복하며 부모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한다. 바로 ’아름다운 청년’ 존 마이어(John Mayer)다. 존 마이어는 미국 커네티컷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열 세 살에 이웃이 건네 준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의 음악에 심취, 블루스 기타리스트로써 인생의 미래를 설계했다. 이후 오직 연습에만 매진한 결과 지방의 조그마한 바에서 출중한 연주 실력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기타를 손에 잡은 지 불과 2년만의 일이었다. 허나 그는 곧 음악 항로를 새로이 수정했다. 기타 플레이어가 아닌 ’좋은 곡을 쓸 줄 아는 뮤지션’이 그 해답이었다. 기타 테크닉보다 멜로디와 리듬의 전체적인 어울림을 높이는데 필요한 송 라이팅 능력을 길러나갔던 것이다. 열 아홉 살이 되자 존 마이어는 버클리 음악 학교에 입학하며 진로를 본격 모색했다. 그러나 얼마지 않아 이내 학교를 그만두었다. 음악을 ’공부’하기보다 그것을 ’연주’하기 원하는 자신의 내적 욕망을 절감한 때문이었다. 친구의 권유로 아틀랜타로 남행한 이 전도유망한 싱어 송라이터는 에디의 애틱(Eddie’s Attic)등의 나이트클럽에서 공연을 펼치며 기회를 엿봤다. 1999년에는 인디 레이블에서 을 발매하며 지역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2000년, 드디어 그에게 도약의 때가 찾아왔다. 당해 거행된 에서의 인상적인 퍼포먼스로 메이저 레이블 스카우터들의 레이다에 포착된 것. 결국 컬럼비아 산하의 와 계약을 체결한 존 마이어는 2001년 데뷔작 (1963년 행크 모블리의 작품 에서 따왔다.)를 내놓으며 주류 무대로 입성했다. ’No such thing’, ’Your body is wonderland’ 등의 싱글들이 히트 퍼레이드를 펼치며 최고 차트 15위까지 음반을 견인했다. 현재 무려 200만장을 세일즈하며 50주 이상 빌보드 차트에 머무는 중이다. 무엇보다 데이비드 그레이(David Gray), 데이브 매튜스(Dave Matthews) 등을 연상케 하는 편안한 보이스와 탁월한 선율 감각, 오랜 수련으로 다져진 기타 실력 등이 성공의 주동인(動因)이었다.
노래 : Avril Lavigne (에이브릴 라빈)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 에이브릴 라빈은 인구 5천 명이 전부인 캐나다의 작은 마을 나파니(Napanee)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곡을 쓰고 기타 연주하기를 좋아했던 그녀는 교회 성가대와 마을의 각종 축제에 참여하며 뮤지션의 꿈을 키워나갔다. 그녀는 그 시절을 “나는 확실히 내 또래들과 조금 달랐어요. 일반적인 생활 패턴은 그 때부터 이미 멀리했었죠.”라며 회고한다. 합창보다는 혼자 노래 부르는 것을 더 좋아했던 에이브릴 라빈은 방에 들어앉아 아버지에게 빌린 기타로 레니 크래비츠(Lenny Kravitz)의 ’Fly Away’등을 카피하며 반항적인 로커를 동경했다. 이 예비 슈퍼 스타는 자신이 출연했던 지방 행사에 휴가 차 들린 [아리스타 레코드(Arista Records)] 경영자 겸 저명한 프로듀서 안토니오 LA 리드(Antonio ‘L.A.’ Reid)의 러브 콜을 받아 L.A.로 음악 인생의 방향타를 틀었다. 이후 작곡가인 클리프 매그니스(Clif Magness)와 심혈을 기울여 곡 작업에 들어가는 등, 데뷔 앨범의 준비에 만반을 기울였다. 첫 싱글 ‘Complicated’가 그 시작이었다. [MTV]의 간판 프로그램 [TRL]에서 인기를 모으며 빌보드 싱글 차트 2위까지 치고 올라간 곡은 톱 40 라디오에서도 1위에 등극하며 걸 록 전성 시대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이어 발표한 공식 1집 [Let Go]는 빌보드 앨범 차트(2위)를 비롯한 각국 차트의 정상권에서 마음껏 뛰놀며 차세대 록 주자의 탄생을 신고했다. 미국 내에서만 600만장이라는 매머드 석세스를 쾌척했으며 후속 싱글 ‘Sk8er Boy’도 톱 텐에 방점을 찍었다. 무엇보다 팬들이 < 롤링 스톤 >에서 실시한 ‘당신의 아메리칸 아이들은 누가 될 것인가’라는 투표에서 그녀를 1순위로 꼽으며 대환영 의사를 표시했다. 오랜 기간의 꿈이 이루어진 극적인 순간이었다. 이후 에이브릴 라빈은 3000천명 이상의 관객이 운집한 한국에서의 공연도 성황리에 끝마치는 등, 현재의 범세계적인 센세이션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곳곳에서 증명해나갔다. 이러한 국제적인 호응은 곧 최고의 음악 잔치인 < 그래미 시상식 >으로 이어졌다. 모두 5개 부문에서 후보에 오른 에이브릴 라빈은 멋진 라이브 공연권도 손에 쥐며 수상에의 기대를 부풀렸다.(그래미에서는 그 동안 공연을 치른 뮤지션들이 트로피를 많이 가져갔다.) 그러나 9.11의 여파로 뉴욕풍 재즈를 시범한 노라 존스(Norah Jones)에게 상이 몰리며 에이브릴 라빈은 빈손으로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미국인의 마음을 달래주기엔 그녀의 음악이 너무 거칠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국인 캐나다에서는 달랐다. 캐나다의 그래미로 불리는 < 주노 어워드 >는 에이브릴 라빈에게 최우수 앨범과 최우수 팝 앨범 등, 모두 4개의 트로피를 안겨주며 고향으로 돌아온 소녀 로커에게 따뜻한 환대식을 치러주었다. 이 때부터 상복이 줄줄이 터져 [머치 뮤직 시상식]에서는 2관왕을, 2002년 [MTV VMA]에서는 신인상을, [MTV Latin America VMA]에서는 최우수 인터내셔널 아티스트상을 싹쓸이했다. [Nickelodeon Kids Choice Award]의 최고 인기곡상과 [Teen Choice Music Award]의 최우수 싱글상도 그녀의 몫이었다. 둘 모두 ‘Sk8ter boy’의 선전 덕분이었다. 3번째 싱글 ‘I’m With You’가 발매되자 한번 붙은 인기의 화염은 더욱 높이 치솟아 올랐다. 팝 싱글 차트에서 4위에 오른 이 매력적인 발라드 트랙은 어덜트 팝 차트에서도 4위를 꿰차며 팬 베이스의 연령층을 높이는데 견인차의 역할을 해주었다. 화끈한 록 넘버 ‘Losing Grip’을 차트 중위권에 올려놓는 것으로 에이브릴 라빈은 공식적인 1집 활동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 미국 팝의 살아있는 인간극장, 켈리 클락슨의 성공기 1982년 텍사스 출생으로 도회적인 삶과 동떨어진 순박한 시골 소녀였던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은 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합창부에 들어가기 전까지 딱히 음악을 하겠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의 집안은 음악적으로 학식이 뛰어난 편이 아니었을 뿐더러 그저 레바 매킨타이어(Reba McEntire), 에어로스미스(Aerosmith), 애니 레녹스(Annie Lennox)를 즐겨 듣는 정도였다. 그러나 선생님의 용안은 훗날 전미를 정복할 한 소녀의 잠재력을 미리 점치고 있던 것이다. 비록 시작은 타의였으나, 점차 켈리 클락슨의 내면에서도 노래를 향한 열정의 꽃망울이 싹트기 시작했다. 끊임없는 발성 연습으로 창법을 연마해가던 중, 지역 내 콘테스트에서 진가를 인정받으며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준비한다. 학교 졸업 후, 부푼 꿈을 안고 할리우드 행을 택했지만 이름 없고 연줄 없는 시골 소녀를 자선할 만큼 인정 많은 곳이 아니었다. 유일하게 켈리의 가능성을 알아본 제리 고핀(Gerry Goffin)마저 병으로 몸져누우면서 희망의 빛줄기는 한순간에 소멸해버렸고, 결국 웨이트리스와 극장 아르바이트, TV 드라마 < 사브리나 >에서 대사 없는 엑스트라로 출연하며 막연히 호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내민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참가 신청서는 막막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서광의 실마리였다. 이미 그와 비슷한 프로그램에서 고배를 마신 적이 있었기에 마음을 비우고 여유롭게 오디션에 응해 본선까지 진출하게 된다. 꾸준히 단련해온 가창력과 전형적인 스탠더드 팝 스타일의 음색, 그리고 회를 거듭할수록 드러나는 성실하고 다부진 캐릭터가 TV를 시청하는 전국의 수백만 미국인들을 감동시켰다. 마침내 저스틴 구아리니(Justin Guarini)와 겨룬 최종 결선 무대에서 치열한 접전을 펼쳐 58%의 지지율로 우승을 거머쥐며 인생역전, 그 꿈처럼 아득하기만 했던 가수의 길로 진입한다.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의 RCA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한 켈리는 조속히 싱글 ’A moment like this’를 발표한다. 컨트리의 영향이 컸던 어린시절의 성장배경을 그린 순도 높은 팝 발라드로 차트 정상을 꿰차며 켈리 클락슨의 이름을 전 세계에 분포시켰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호수처럼 맑은 두 눈을 글썽이던 소녀는 차기 싱글 ’Miss independent’에서 디스토션을 잔뜩 걸은 기타 사운드와 혼연일체가 되어 씩씩하고 용맹스러운 독립 여성으로 변신을 꾀했다. 켈리의 변신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앨범 차트 1위로 핫 샷 데뷔한 처녀작 < Thankful >은 록, 발라드, 소울, 포크, 댄스 뮤직 등을 아울렀고, 2005년에 공개한 < Breakaway >에서는 ’Since you been gone’, ’Behind theses hazel eyes’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탄탄한 록 사운드를 구축하여 걸리시 록의 새로운 선두주자로 자리매김한다. 아이돌 콘테스트 출신자로서 저항할 수 없는 정약인 틴 팝의 운명을 버리고 굳이 록을 택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 공세에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이 세상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한 가지 장르에 안주할 생각은 없어요. 할 수 있는 것은 일단 다 해보고 싶거든요.” 아이돌인 상태로 롱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였다. 미국 폭스 TV가 주최한 < 아메리칸 아이돌 >의 초대 우승자. 이는 앞으로 가수 켈리 클락슨의 꼬리표처럼 평생을 따라다닐 문구임에 틀림없다. 초년생의 한계를 뛰어 넘어 역대 그 어떤 아이돌보다 눈부신 스포트라이트 아래 데뷔전을 치러냈어도, 카멜레온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그 안에서 성숙한 음악인으로 거듭나겠다고 다부지게 말하는 켈리의 휴먼 드라마는 오늘도 방영 중이다.
멤버 : Dallas Green, P!nk 멤버 : Dallas Green, P!nk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 지난 2002년 브릿 어워드(Brit Award)는 단 한 장의 앨범을 낸 신인 여가수 다이도(Dido)에게 최우수 여성 가수(Best British Female)상과 최우수 앨범(Best British Album)상을 넘겼다. 그만큼 다이도가 보여주는 매력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클래식의 격조, 포크의 친근함, 토속음악을 통한 신비감, 게다가 일렉트로니카의 중독성까지 그리고 밝고 귀여운 이미지 등등.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많은 이미지들이 그녀 안에서는 하나가 된다. 다이도는 1971년 크리스마스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다이도 암스트롱(Dido Armstrong)이다. 5살 때 리코더를 훔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을 시작하게 된 이색적인 경력을 갖고 있는 그녀는 클래식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영국의 줄리아드’로 알려진 길드홀(Guildhall) 음악학교에 들어가게 된다. 10대의 대부분을 클래식 음악에 파묻혀 살았던 그녀는 피아노, 바이올린, 리코더 연주에 능했고, 작곡 실력과 노래 실력 또한 늘려 나간다. 그녀는 어린 시절을 클래식에 묻혀 살았다. 18살이 되어서 대중음악을 처음 접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뒤늦게 접한 대중음악의 매력은 클래식에서 맛볼 수 없는 강한 것이었고, 결국 다이도는 클래식을 버리고 대중음악 뮤지션으로 음악적 방향을 바꾼다. 여기에는 친오빠 롤로(Rollo)의 도움이 컸다. 정상급 소울 테크노 그룹 페이스리스(Faithless)의 리더였던 롤로는 일렉트로니카와 클래식의 접목을 원했고, 클래식을 공부한 동생 다이도를 멤버로 맞아들인다. 페이스리스의 멤버로 투어를 펼치며 팝 뮤지션으로의 변신에 성공한 다이도는 ‘My lover’s gone’을 데모 앨범으로 제작하며 솔로전향을 선언했고, 아리스타(Arista) 레코드에서 데뷔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아카펠라나 기타, 피아노를 사용한 심플한 사운드를 생각하고 있었던 데뷔 앨범은 프로듀싱에 참여한 오빠 롤로 및 엔지니어의 요구에 따라 네오팝적인 사운드가 가미되었고, 그 과정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포크 사운드가 결합된 독특한 매력을 지닌 앨범이 탄생하게 된다. 이리하여 탄생한 데뷔작 < No Angel >은 1999년 6월, 자국이 아닌 미국에서 먼저 발매되었다. 발매 직후 큰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대중들에게 알려진다. 시작은 ‘Here with me’였다. 미국 TV 시리즈인 < 로스웰 >(Roswell)에 이 곡이 테마음악으로 사용되었고, 이어 기네스 펠트로우 주연의 영화 < 슬라이딩 도어스 >(Sliding Doors)에 그녀의 곡 ‘Thank you’가 삽입된다. 별 반응 없이 사라져가던 < No Angel >은 다시 한번 대중들에게 어필했고, 그와 때맞추어 인기 래퍼 에미넴(Eminem)이 자신의 곡 ‘Stan’에 다이도의 곡 ‘Thank you’를 샘플링으로 사용한 덕분에 그녀의 음악과 이름은 뒤늦게 널리 퍼지게 됐다. (‘Stan’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이 바로 다이도!). 이 곡은 2001년 빌보드 톱10에 오르는 빅히트를 기록했다. 다이도는 이 무렵 고국 영국에 돌아와 마침내 인기스타로 올라섰고 에미넴도 ‘Stan’으로 첫 영국차트 1위의 영예를 누리며 서로 도움을 교환했다. *Dido Interview http://nine4u.asiamusic.net/dj/program.asp?popstory+15
영국과 미국 못지않게 세계 팝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기에, 뉴질랜드는 일찍이 여러 장르의 해외 음악의 요소들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80년대 스플리트 엔즈 (Split Enz)의 세계적인 진출에 이어 2000년대 들어와 고국과 호주를 넘어 자신의 활동반경을 이제는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 시장으로까지 넓혀가고 있는 여성 뮤지션이 ... 영국과 미국 못지않게 세계 팝 시장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기에, 뉴질랜드는 일찍이 여러 장르의 해외 음악의 요소들이 빠르게 전파되었다. 80년대 스플리트 엔즈 (Split Enz)의 세계적인 진출에 이어 2000년대 들어와 고국과 호주를 넘어 자신의 활동반경을 이제는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 시장으로까지 넓혀가고 있는 여성 뮤지션이 바로 빅 룽아 (Bic Runga)이다. 빅 룽아는 이미 뉴질랜드 본토에서는 국가 대표급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인정을 받았고, 일찍이 그녀의 데뷔 앨범 속 싱글 'Sway'가 국내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영화 '아메리칸 파이 (American Pie)'의 OST에 삽입되기도 하였다.
멤버 :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 2006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이 혼성 2인조 일렉트로-팝 유닛은 3인조 걸그룹 Tko 출신의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와 TKO에게 네 곡을 써준 송라이터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에 의해 결성됐다. 결성 이후 네번째 라이브에서는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고, 다섯번째... 멤버 :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

2006년 맨체스터에서 결성된 이 혼성 2인조 일렉트로-팝 유닛은 3인조 걸그룹 Tko 출신의 케이티 화이트(Katie White)와 TKO에게 네 곡을 써준 송라이터 쥴스 드 마티노(Jules De Martino)에 의해 결성됐다. 결성 이후 네번째 라이브에서는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인산인해를 이뤘고, 다섯번째 공연을 2007년도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 페스티발에서 치루며 급성장을 보인다. 2008년 3월 재발매된 [Great Dj]의 싱글은 Nme '이주의 트랙'으로 랭크됐고, 두번째 싱글 [That's Not My Name]은 Uk 싱글차트 첫 등장 1위를 기록하면서 급속도로 수순을 밟아나갔다. 그리고 얼마 후 5월 13일에 발매된 데뷔작 [We Started Nothing]은 Uk 앨범차트 1위로 데뷔하면서 이 기세를 이어간다. 이들은 이렇게 순식간에 슈퍼스타가 됐다. 'Shut Up And Let Me Go'의 경우 아이팟/아이튠즈 CM으로 사용되면서 전세계 젊은 층들에게 각인되기도 했고, 각종 TV 토크쇼와 드라마 삽입곡으로도 이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데뷔앨범 발매 이전부터 화제를 모으다가 뚜껑이 열리고 나서는 거의 전세계를 한번 들었다가 놓았다. TV CF나 라디오 시그널로는 물론, 국내경우, [슈퍼스타 K]에 출연했던 어느 밴드가 이들의 곡 'Shut Up And Let Me Go'를 부르면서 다시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을 통해 국내에도 다녀가면서 눈도장까지 확실하게 찍었다.
노래 : Guy Sebastian (가이 세바스찬)
노래 : Five For Fighting (파이브 포 파이팅)
최근 미국 팝음악계의 두드러진 현상은 급작스런 여가수 붐일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 샐린 디온, 셰릴 크로, 앨러니스 모리세트와 같은 스타들 말고도 호시탐탐 대권을 노리는 신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에도 여가수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요즘처럼 무리를 지어 전분야에 걸쳐 득세한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소외된 여성들의 대반란이다. 이처럼 남성을 압도하는 모처럼의 ‘여성시대’를 밝힌 또 한사람이 사라 맥라클란이다. ... 최근 미국 팝음악계의 두드러진 현상은 급작스런 여가수 붐일 것이다. 머라이어 캐리, 샐린 디온, 셰릴 크로, 앨러니스 모리세트와 같은 스타들 말고도 호시탐탐 대권을 노리는 신인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과거에도 여가수들은 얼마든지 있었지만 요즘처럼 무리를 지어 전분야에 걸쳐 득세한 것은 없었다. 그야말로 소외된 여성들의 대반란이다. 이처럼 남성을 압도하는 모처럼의 ‘여성시대’를 밝힌 또 한사람이 사라 맥라클란이다. 귀여운 용모에 얼핏 갓 데뷔한 신인같지만 실제로는 경력 10년의 중견. 얼마나 고된 무명시절을 거쳤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챠트 상위권에 명함만 내밀지 않았을 뿐 음악계에서는 이름이 꽤나 알려진 인물이다. 지금은 음악계뿐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이름을 깊이 새기고 있다. 막 발표한 신보 < 떠오름(Surfacing) >은 빌보드 앨범차트 2위에 올랐다. 여기 수록된 곡 ‘미스터리를 만들고(Building a mystery)’도 해당 싱글차트 10위권에 진입했다. 뒤늦게 때를 만난 셈이다. 그의 음악은 전과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럼 지금이 도대체 어떤 ‘때’이길래 앨범 제목처럼 갑자기 수면위로 떠오른 것일까? ‘널 사랑해(I love you)’ ‘네 할 것을 하라(Do what you have to do)’ 등 그의 노래는 마치 가을의 정취를 자극하듯 차분하고 쓸쓸하다. 조용함의 극치라 해도 과장은 아니다. 분노와 격정의 음악인 앨러니스 모리세트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바로 이것이다. 지금 팝 음악은 시끄러운 얼터너티브 록에서 조용히 자기 세계를 탐구하는 ‘개인 포크풍’으로 대세가 바뀌어가는 듯하다. 사람들이 절규에 지친 것일까. 사라 맥라클란 스스로도 이렇게 말한다. “3년전 전작이 나왔을 적에 방송국 대다수가 내 노래를 틀지 않았다. 다른 여가수, 분노의 광채를 발한 토리 에이모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추세말고도 사라의 앨범과 노래가 주목받는 이유가 또 있다. 그가 올여름 ‘릴리스 페어(Lilith Fair)’라고 하는 커다란 행사를 기획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페스티벌에는 요즘 잘 나가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총집결해 매스컴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여가수들만’ 출연했다. 한마디로 ‘여성들의 한판을 벌여보자’는 것이었다. 사라 맥라클란은 남성이 지배하는 록을 향해 ‘분리평등’을 외치는 것이 행사의 취지라고 밝혔다. 제목에도 나타난다. ‘릴리스’는 유태인 전설에 등장하는 인물로 아담의 조강지처였으나 이브에게 자리를 뺏긴 여인이라고 한다. 그의 상징성은 곧 복수심이다. 사라 맥라클란은 ‘릴리스 페어’에 페미니즘을 투영해 행사가 상업적으로 해석되는 것을 막았다. 그를 평가해 줄 대목이 이 부분이다. 행사의 주창자로서 그의 음악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1997년 팝계 결산에서 그는 분명히 ‘올해의 인물’로 꼽힐 것이다. 물론 행사 출연진이 너무 포크라는 한 장르에 국한됐다는 점 등 아쉬움도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음악에는 별 아쉬움이 없다. ‘때’가 바뀌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노래 : First Aid Kit (퍼스트 에이드 킷)
멤버 : 클라라(Klara Soderberg, 오토하프, 키보드, 보컬), 조한나(Johanna Soderberg, 기타, 보컬) 멤버 : 클라라(Klara Soderberg, 오토하프, 키보드, 보컬), 조한나(Johanna Soderberg, 기타, 보컬)
노래 : Jane Monheit (제인 몬하잇 (재즈 보컬))
노래 : Ray LaMontagne (레이 라몬테인)
The Wallflowers 의 보컬/기타 The Wallflowers 의 보컬/기타
멤버 : 도쿠오카 요시나리(?岡 慶也, 기타), 미우라 다구야(三浦 拓也, 기타) 2002년 11월, 고베 출신 도쿠오카 요시나리(?岡慶也)와 미우라 타쿠야(三浦拓也)로 결성된 인스트루멘탈 어쿠스틱 기타 듀오 데파페페! 어쿠스틱 기타 2대로 경쾌한 사운드와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며 마음 속 풍경이나 희로애락, 계절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가사 없이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 멤버 : 도쿠오카 요시나리(?岡 慶也, 기타), 미우라 다구야(三浦 拓也, 기타)

2002년 11월, 고베 출신 도쿠오카 요시나리(?岡慶也)와 미우라 타쿠야(三浦拓也)로 결성된 인스트루멘탈 어쿠스틱 기타 듀오 데파페페! 어쿠스틱 기타 2대로 경쾌한 사운드와 슬픈 멜로디를 연주하며 마음 속 풍경이나 희로애락, 계절의 느낌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가사 없이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는 어쿠스틱 기타의 음색이 귀에 착 감겨 다양한 곳에서 곡이 사용되고 있다. 라이브 콘서트는 어쿠스틱 기타 2대 만으로 연주하거나 밴드를 결성하는 등 장소에 맞춰 다양한 감동을 제공하고 있다. 대조적인 2명의 캐릭터, 절묘한 토크도 매력적이다.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은 Depapepe는 한국, 타이, 인도네시아, 타이완에서 Cd를 발매하고 아시아 각국에서 매년 콘서트를 열고 있다. 2012년 인도네시아의 페스티벌에서는 Depapepe만으로 10,000명 이상 (2일간)의 관객을 동원했다. 「인스트루멘탈 뮤직을 주류로!」를 기치로 의욕적으로 활동 중!

* 데뷔 앨범 'Let's Go!!!' - 보컬 없는 밴드의 데뷔 앨범으로는 처음 일본 오리콘 베스트 10에 진입!
* 2006년 일본 골드 디스크의 '뉴 아티스트 오브 더 이어' 수상!
* 2006년, 2007년 '인스트루멘탈 앨범 오브 더 이어'를 수상!
* 2008년, 2011년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Gmf) 및 단독 내한 공연을 통해 수많은 한국 팬들을 확보!
연주 : Tommy Emmanuel (토미 엠마누엘 (컨트리 블루스 기타))
연주 : Kotaro Oshio (코타로 오시오 (기타))
오사카 출신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오픈 튜닝과 태핑 주법을 구사한 독특한 기타 어레인지, 퍼커시브하고 박력 있는 연주와,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이 공존하는 무대는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2002년 07월 10일 메이저 데뷔. 그 해 10월 미국 메이저 데뷔를 이뤘다. 매년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는 2002년부터 3년 연속 출연, 최근 아시아 각국에서의 공연도 적극... 오사카 출신의 어쿠스틱 기타리스트.
오픈 튜닝과 태핑 주법을 구사한 독특한 기타 어레인지, 퍼커시브하고 박력 있는 연주와, 섬세하고 따뜻한 음색이 공존하는 무대는 세대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2002년 07월 10일 메이저 데뷔. 그 해 10월 미국 메이저 데뷔를 이뤘다. 매년 스위스에서 개최되는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에는 2002년부터 3년 연속 출연, 최근 아시아 각국에서의 공연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전국 투어 등의 라이브 활동을 중심으로 영화 음악, 프로그램 테마곡, CM 송 등의 작곡도 하고 있다. 장르를 초월한 콜라보레이션도 화제로, 자신이 프로듀스한 이벤트 「GUITAR PARADISE」를 개최하는 등 폭넓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얼 클루는 서정성이 뛰어난 기타 연주로 팻 메스니와 함께 국내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높은 재즈 음악인이다. ‘솜사탕 기타 연주’라 할 만큼 부드럽고 예쁜 느낌의 나일론 기타 연주는 얼 클루의 음악만의 묘미일 것이다. 그의 기타 연주는 대부분의 재즈-퓨전 기타리스트들처럼 웨스 몽고메리의 블루지하고 강렬한 느낌의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 그가 조지 벤슨의 문하생이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음악엔... 재즈 퓨전 기타리스트 얼 클루는 서정성이 뛰어난 기타 연주로 팻 메스니와 함께 국내에서도 제법 인지도가 높은 재즈 음악인이다. ‘솜사탕 기타 연주’라 할 만큼 부드럽고 예쁜 느낌의 나일론 기타 연주는 얼 클루의 음악만의 묘미일 것이다. 그의 기타 연주는 대부분의 재즈-퓨전 기타리스트들처럼 웨스 몽고메리의 블루지하고 강렬한 느낌의 연주에 영향을 받았다. 그가 조지 벤슨의 문하생이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 그의 음악엔 흑인 대중음악의 진한 흔적이 발견된다. 그럼에도 얼 클루는 ‘백인적인 필’을 지닌 기타리스트로 평가된다. 컨트리 기타리스트인 쳇 엣킨스와 조지 반 에티스트와 같은 백인적인 연주감성을 결합하고있기 때문이다. 일렉트릭 기타의 부담(?) 대신 선율의 서정성을 살리기 좋은 어쿠스틱 기타연주는 백인 음악 수용자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었고, 다른 재즈 기타리스트들보다 대중적 소구력을 지닐 수 있었다. 1954년 9월 16일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얼 클루는 피아노로 음악을 처음 접하였고, 10세부터 어쿠스틱 기타 연주를 시작, 일찍 두각을 나타냈다. 1970년, 16세가 되던 해에 색스폰 주자 유세프 라티프의 앨범에 참여함으로써 재즈음악계에 입문, 이듬해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제자가 되면서 그의 1971년 앨범 < White Rabbit >의 수록 곡 ‘El mar’에서 인상적인 스패니시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이후 1973년까지 조지 벤슨의 밴드에서 활동하고, 1974년 칙 코리아의 재즈-퓨전 밴드 ‘리턴 투 포에버’에서 일렉트릭 기타 연주로 잠시 몸을 담았다가(얼마 후 알 디 메올라가 일렉 기타를 맡음) 1976년 블루 노트 사를 통해 그의 첫 솔로 작 < Earl Klugh >를 내 놓는다. 같은 해 발매된 앨범 < Living Inside Your Love >가 빌보드 팝 차트에 등장하면서 얼 클루의 기타연주는 대중들의 귀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1970년대 말부터 불은 상업적 재즈 휴전의 열기는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데이빗 샌본, 척 맨지오니와 같은 밀리온 셀링 재즈 스타를 등장시켰으며 얼 클루 역시 그런 부류의 재즈 음악인이었다. 솔로 활동 중에도 여러 장의 듀엣 앨범을 내 놓았는데, 그와 최상의 호흡을 보여준 연주자는 단연 밥 제임스(Bob James)였다. 얼 클루의 감미로운 기타 선율이 느끼기 좋은 ‘Kari’가 수록된 < One On One >(1979)은 밥 제임스와의 성공적인 협연 작으로 평가된다. 이듬해인 1980년 그래미상 ‘베스트 팝 인스트루멘탈’ 상을 수상하는 한편 빌보드 앨범 차트 23위까지 오른 이 앨범은 33주 동안 차트에 머무는 성과를 거둔다. 밥 제임스와의 협연은 82년 < Two Of A Kind >와 1992년 < Cool >에까지 계속된다. 1985년 워너 브라더사로 이적한 얼 클루는 비슷한 시기 리 리트너의 경우처럼 라틴 음악의 요소를 그의 기타 연주에 담아내기에 이른다. 이미 1982년 < Low Ride >를 기점으로 이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1987년에 나온 스승 조지 벤슨과의 협연 < Collaboration >의 수록곡인 ‘Brazilian Stomp’나 앨범 ”Midnight in San Juan“(1991)등에서도 라틴 음악에 대한 관심을 읽을 수 있다. 얼 클루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엔 탁월하고 신선한 선율감각이 흐른다. 여기에 부담 없는 라이트-펑키(light-funky) 스타일의 리듬감각이 가미되면서 비슷한 시기 다른 재즈 기타리스트들보다 그는 흑인과 백인 모두에게 어필한 대중적 기타리스트로 기억되고있다. -끝- 정우식(cws26@yahoo.co.kr) 2001/12 재즈로 팝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는 얼 클루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으며 10세에는 어쿠스틱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erry), 밥 딜런(Bob Dylan) 등 1960년대의 포크 싱어들을 좋아했고, 스페인풍의 기타 연주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가장 영향을 준 인물로 조지 벤슨(George Benson),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 찰리 파커(Charlie Parker), 쳇 엣킨스(Chet Atkins) 등을 꼽는다. 뛰어난 재능으로 선배들을 놀라게 했던 그는 15세에 재즈 플룻(Flute) 연주가인 유제프 라티프(Yusef Lateef)의 < Suite 16 > 앨범에 드디어 이름을 올리고 1971년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 White Rabbit > 앨범에 참여해 높은 인지도를 획득한다. 이 때를 계기로 1973년까지 조지 벤슨과 정규적인 연주를 한 그는 1974년 잠깐 칙 코리아(Chick Korea)가 이끄는 리턴 투 포에버(Return To Forever)의 멤버로 활동한 뒤 1970년대 중반에 독립한다.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같이 연주하던 얼 클루는 나일론 줄을 사용한 어쿠스틱 기타의 장점과 멜로디 중심의 연주에 합의점을 찾고, 그의 인기 있는 음반들에서 익히 보여준 가벼운 펑크(funk beats)를 구사해 멜로딕한 사운드를 강조했다. 이러한 결실이 성과를 거둔 탓인지 1979년에는 밥 제임스(Bob James)와의 합작품인 < One And One >으로 그래미를 수상하고 그의 앨범들은 높은 판매고를 기록하며 수시로 빌보드 차트를 들락거린다. 여기에는 1994년에 발표해 차트에서 34주간 머문 밥 제임스와의 공동 작품 < Cool >도 들어 있다. 이외에도 쳇 엣킨스, 아니타 베이커(Anita Baker), 패티 오스틴(Patti Austin), 알 자루(Al Jarreau) 등의 뮤지션들 음반에 참여하고, 데이브 그루신(Dave Grusin)이 이끄는 GRP 레이블의 음반에서 뛰어난 화합을 보여준 얼 클루는 1991년 베이시스트 랄프 암스트롱(Ralphe Armstrong), 드러머 진 던랩(Gene Dunlap)과 함께 얼 클루 트리오(Earl Klugh Trio)를 조직해 3장의 음반을 발표하면서 비평적으로 많은 찬사를 받아냈다. 정확한 손놀림과 맑은 톤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그는 후반기로 올수록 재즈의 원형에 가까운 연주나 즉흥성보다는, 스튜디오에서 펼쳐내는 조합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여지며 팝이나 뉴에이지쪽의 장르에 더 가까운 악상으로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재즈 기타 연주자 재즈 기타 연주자
연주 : Steve Erquiaga (스티브 어키아가)
기타 연주자 기타 연주자
컨트리 기타, 바이올린, 노래, 작곡 컨트리 기타, 바이올린, 노래, 작곡
클래식 기타 연주자 클래식 기타 연주자
스무스 재즈 기타리스트 스무스 재즈 기타리스트
연주 : Fourplay (포플레이 (재즈 밴드))
컨템포러리 재즈(contemporary Jazz)계의 올스타(All-Star) 세션 맨 4인 방이 결집한 포 플레이(Fourplay)는 부담 없이 다가 갈 수 있는 대중적인 재즈 연주음악을 표방하며 전 세계의 재즈 팬들의 갈채를 한 몸에 받는다. 밴드 결성 이전부터 각기 활발한 솔로, 세션활동을 벌이고 있던 멤버들은 1991년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2년의 터울을 두고 꾸준한 앨범발표와 세계 투어를 통해 각자의 음... 컨템포러리 재즈(contemporary Jazz)계의 올스타(All-Star) 세션 맨 4인 방이 결집한 포 플레이(Fourplay)는 부담 없이 다가 갈 수 있는 대중적인 재즈 연주음악을 표방하며 전 세계의 재즈 팬들의 갈채를 한 몸에 받는다. 밴드 결성 이전부터 각기 활발한 솔로, 세션활동을 벌이고 있던 멤버들은 1991년의 첫 만남을 시작으로 2년의 터울을 두고 꾸준한 앨범발표와 세계 투어를 통해 각자의 음악 활동과 병행하며 1980년대 토토(Toto) 이후 세션맨들로 구성된 밴드의 표상으로 군림한다. 키보드에 밥 제임스를 주축으로 기타에 리 리트너, 베이스에 나단 이스트, 드럼의 하비 메이슨의 라인업으로 구성된 이 ’드림 밴드’은 오랫동안 재즈 퓨전계에서 잔뼈가 굳은 그들의 명성에 더해 내공이 집약된 독창적인 음악성을 선보이며 재즈 팬들은 매료시켰다. 이들이 등장했을 때 세간에선 ’앨범 2-3장 내다가 음악적 견해차로 해산될 것’이라는 다소 우려 섞인 예측도 없지 않았지만 내는 앨범마다 골드를 기록하고 그래미상 컨템포러리 재즈 부문을 수 차례 석권하며 이런 예측은 한낮 기우임을 증명했다. 1997년 개인 사정으로 팀을 탈퇴하게 된 리 리트너를 대신해 영입된 또 한 명의 세션 스타 래리 칼튼이 들어오게 된 것을 제외하고 이들은 지금까지 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팀 내의 이렇다할 굴곡 없이 컨템포러리 재즈 계에 굳건한 지존의 위치를 고수한다. 멤버들의 명성만큼이나 화제를 모은 밴드는 순조로운 출발을 이뤄낸다. 데뷔 앨범 < Fourplay >(1991)를 발표, ’101 Eastbound’, ’Wish you’re here’등이 폭발적인 호응을 얻으며 그 해 빌보드 재즈 앨범 차트에 무려 33주간 1위 자리를 고수하는 대 성공을 거둔다. 앨범엔 엘 드바지, 패티 라벨, 필립 베일리와 같은 보컬리스트들이 밴드의 연주에 한층 팝 적인 색채를 입혔다. 1990년대 휘트니 휴스턴과 머라이어 캐리로 대변되는 팝 음악계의 R&B 리바이벌 열풍을 타고 포플레이는 멤버들의 깔끔하고 기량이 돋보이는 연주와 더불어 R&B 보컬 스타들의 열띤 조연에 힘입어 이들은 재즈의 영역을 뛰어넘는 폭넓은 대중성을 얻을 수 있었다. 2년 후 발표된 2집 < Between the sheets >(1993) 역시 전작에 버금가는 호응을 얻으며 1집에서 들려줬던 4인방의 절묘한 연주화음을 재현시킨다. 샤카 칸, 샨테 무어, 필 페리, 필립 베일 리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 특히 샤카 칸의 보컬이 참여한 ’Between the sheet’가 빌보드 팝 싱글 차트에 등장하며 순조로운 밴드의 여정은 계속된다. 2년을 터울로 앨범을 발표한 포 플레이는 3집 < Elixir >(1995)에선 멤버들의 농익은 연주에 한층 그 무게를 실으며, 밥 제임스의 명곡 ’Westchester lady’(1976)의 주요 멜로디를 따온 ’Play lady play’와 리 리트너의 기타 연주가 압권인 ’Magic carpet ride’가 주목을 얻는다. 필 콜린스, 패티 오스틴, 피보 브라이슨과 같은 팝 가수들이 참여한 밴드의 3집에선 특히 노장 팝 아티스트 필 콜린스(Phil Collins)의 보컬 곡 ’Why can’t it wait till tomorrow’에서 들려준 그의 감미로운 보컬 연주는 앨범의 백미이다. 1997년 밴드의 전반기 활동을 정리하는 의미의 베스트 앨범을 를 끝으로 기타리스트 리 리트너는 솔로 활동과 자신이 설립한 ’i.e’ 레이블 일에 보다 집중하기 위해 밴드를 떠나게 된다. 그를 대신할 기타리스트를 물색하던 중 밴드는 래리 칼튼(Larry Carlton)을 영입하게 되었고, 그는 리 리트너에 못지 않은 블루지하며 세련된 연주 감성을 밴드에 이식한다. 4집 < 4 >(1998)을 발표하며 건재함을 증명한 포플레이는 기존의 스무드한 재즈 연주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지만, 연주는 한층 세련됨을 더했다. 90년대 흑인 음악계의 ’마이더스의 손’ 베이비페이스(Babyface)의 섹시한 보컬이 주목받은 마빈 게이의 역작 ’Sexual healing’을 비롯, 하비 메이슨의 펑키 리듬 제조 술이 흥분을 자아내는 ’Rio rush’, 래리 칼튼의 감칠맛 나는 어쿠스틱 기타연주가 들리는 ’Swamp Jazz’는 앨범의 완성도를 높였다. 크리스마스 앨범 < Snowbound >(1999)에 이어 발표한 5집 < Yes, Please >(2000)는 게스트 보컬의 참여 없이 그들의 연주에 보다 비중들 둔 작품으로 멤버들의 공작 ’Blues force’, ’Go with your heart’를 통해 한층 블루지한 느낌을 연주로 담아낸다. 어느 덧 결성 10주년을 훌쩍 뛰어넘은 2002년, 밴드는 따끈따끈한 신보 6집 < Heartfelt >를 발표하며 세계 투어에 나섰다. 이미 국내 재즈 팬들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포 플레이는 오는 9월 1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역사적인 국내 첫 공연을 앞두고 있다.
연주 : Al Di Meola (알 디 메올라)
퓨전 재즈 기타 연주자 퓨전 재즈 기타 연주자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본격적으로 재즈에 도입시킨 래리 코리엘(Larry Coryell)은 재즈 록의 선구자로 칭송된다. 록 음악에서 사용되는 디스토션과 벤딩, 초킹과 같은 기타 연주 주법을 재즈 연주에 적극 도입한 그는 일렉트릭 기타연주가 재즈 연주에서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 Bitches Brew >를 발표하며 1969년을 ‘재즈 퓨전의 원년’으로 기억되게 하기 2년 전인 196...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본격적으로 재즈에 도입시킨 래리 코리엘(Larry Coryell)은 재즈 록의 선구자로 칭송된다. 록 음악에서 사용되는 디스토션과 벤딩, 초킹과 같은 기타 연주 주법을 재즈 연주에 적극 도입한 그는 일렉트릭 기타연주가 재즈 연주에서 중심으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다. 마일즈 데이비스가 < Bitches Brew >를 발표하며 1969년을 ‘재즈 퓨전의 원년’으로 기억되게 하기 2년 전인 1967년, 동료인 비브라폰 주자 게리 버튼의 앨범< Duster >(1967)를 통해그는 이미 쿼텟 형식의 재즈 형식에 컨트리, 블루스가 어우러진 재즈 퓨전을 선보였다. 거친 디스토션에 날카로운 울부짖음으로 점철된 일렉트릭 기타의 소음이 과연 재즈와 어울릴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그로 인해 해답을 찾게 된다. 마일즈 데이비스를 통해 세상에 알려진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와 자주 비교되는 그는 록, 재즈, 인도 음악, 스페인 플라멩코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복합적으로 융화시킨 존 맥러플린의 기타연주처럼 화려하교 정교하지는 않지만, 스스로 ‘블루스 추종자’라 할 만큼 그의 기타 연주엔 60년대 전 세계를 창궐한 블루스 록의 기운을 재즈에 온전히 이식해놓았다. 존 맥러플린이 다양한 음악 장르를 통한 퓨전 사운드를 창조 했다면 그는 60년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지미 헨드릭스의 블루스 록과 쳇 엣킨스(Chet Atkins) 섬세하고 감칠맛나는 컨트리 사운드의 영향을 흡수했다. 재즈학자들은 그의 기타연주로 재즈 록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가 마일즈 데이비스나 존 맥러플린처럼 굴지의 메이저 레이블인 콜럼비아사가 아닌 존 바에즈(Joan Baez)와 같은 포크 가수가 소속되어있던 군소 레이블인 뱅가드(Vangard)에서 음반을 발표한지라 대중적으로 그가 ‘재즈 퓨전의 장자’라는 영광을 공인받기는 힘들었지만, 지금까지도 재즈 퓨전 연주에 몸담고 있던 기타 연주자들은 그를 ‘재즈 록의 창시자’로 기억하고 있다. 1943년생인 그는 4세때부터 기타를 손에 잡고 탈 팔로우, 바니 케슬, 자니 스미스의 기타연주가 담긴 레코드를 통해 독학으로 기타연주를 익힌다. 워싱턴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지만 이미 음악을 평생 목표로 삼았던 그는 이내 중퇴, 1966년부터 치코 해밀턴(Chico hamilton), 가보 스자보(Gabo Szarbo) 밴드에서 기타 주자로 활동한다. 1967년은 ‘코리엘의 해’였다. 비틀즈가 히피들과 의기투합을 선언한, 지미 헨드릭스가 기타연주의 신기원을 제시하며 음악계에 다사다난했던 1967년은 또한 그의 존재가 재즈계에서 뚜렷이 각인된 해였다. 동년배였던 비브라폰주자 게리 버튼의 리더작< Duster >(1967)는 이 블루스 추종자의 기타연주를 부각시켰고, 그로 인해 재즈에서도 마셜 앰프의 기타 소음이 매력적이게 되었다. 어느덧 이 24세의 젊은 기타리스트는 뉴욕에서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그와 게리 버튼의 협연은 게리 버튼의 후속 작 < Lofty Fake Anagram >(1967), < A Genuine Tong Funeral >(1968)까지 지속된다. 이미 데뷔한 1967년부터 ‘Free Spirit’이라는 프로토 재즈 록(Proto Jazz Rock) 밴드를 이끌던 그는 얼마 후인 1969년, 고등학교 때 음악 친구였던 마이크 만델(오르간), 게리 버튼을 통해 만난 밥 모스(드럼)와 3인조 재즈 록 밴드 포어프레이(Foreplay)를 출범시키며 그의 첫 리더작이자 재즈계에 촉각을 곤두서게 한 문제작 < Coryell >(1969)을 그해 1월에 발표한다.(마일즈 데이비스의 < In a Silent way-1969 >보다 1개월이 빨랐음) 3인조라는 록 밴드의 기본 편성을 도입시킨 그는 강한 펑키리듬과 강렬한 기타 소음이 펼쳐지는 불세출의 명곡 ’The jam with albert’로 본격적인 재즈 록의 출범을 알렸다. 그의 밴드 포어 플레이는 < Lady Coryell >(1969), < Space >(1970), < Barefoot Boys >(1971), < Live at Village Gate >(1971)을 발표했고 이후 호려한 위용을 갖춘 5인조 밴드 ‘11th House’로 새 출발한다. 재즈 록 명반대열에 끼는 < Introducing Larry Coryell & The 11th House >(1972)를 발표하며 그의 연주력은 어느덧 최 정점에 다다랐다. 1975년까지 지속된 그의 밴드 11th House에서 들려준 그의 일렉트릭 기타연주는 비슷한 시기 존 맥러플린의 마하비쉬누 오케스트라나 칙 코리아의 리턴 투 포에버만큼의 대중적인 명성은 얻지 못했지만, 그의 뒤를 잇는 존 스코필드, 존 에이버크롬비, 래리 칼튼, 마이크 스턴, 알 디 메올라등 수많은 후배 기타리스트에게 영향을 준다. 70년대 중반부터 그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자로 전향, 솔로활동보다는 쟁쟁한 재즈 기타리스트들과의 공동작업을 통해 기억에 남을 수준작들을 남긴다. 존 스코필드, 스티브 칸, 에밀리 레믈러, 조 벡, 존 에이버크롬비, 레리 칼튼, 그리고 존 맥러플린과 파코 데 루치아와 함께 연주 앨범을 발표해 호평 받았고, 이러한 공동작업은 80년대 말까지 계속된다. 90년대 들어 지금까지 그의 연주는 차분하고 정통이라는 작법에 근거한 재즈 연주들로 지속되었다. 60- 70년대 청중들을 뒤흔들어놓았던 날이 선 그의 일렉트릭 기타연주는 다시 듣기는 어렵겠지만, 일렉트릭 기타연주가 중심이 된 재즈 퓨전이라는 혁신적인 연주 스타일을 창안한 그의 유산은 수많은 후배 기타리스트들로 이어지고 있다.
연주 : Michael Hedges (마이클 헤지스)
미국 기타 연주자, 싱어송라이터 미국 기타 연주자, 싱어송라이터
락 기타 연주자, 보컬 락 기타 연주자, 보컬
기타 연주자 기타 연주자
"미국 얼터너티브 록에 짓눌린 영국 음악계의 권위를 되찾자!" 1990년대 초반 너바나를 필두로 한 그런지 록의 엄청난 물량공세에 맞서 영국 매스컴들이 내건 대항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들은 구제방안으로 ‘브릿 팝’을 내세웠다. 미국 록에 대한 차별화 나아가 특화(特化) 정책이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그들은 대표주자를 물색했고 바로 블러(Blur)와 오아시스가 국가대표로 낙점 됐다. 블러는 그러나 1995년 앨범... "미국 얼터너티브 록에 짓눌린 영국 음악계의 권위를 되찾자!" 1990년대 초반 너바나를 필두로 한 그런지 록의 엄청난 물량공세에 맞서 영국 매스컴들이 내건 대항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들은 구제방안으로 ‘브릿 팝’을 내세웠다. 미국 록에 대한 차별화 나아가 특화(特化) 정책이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그들은 대표주자를 물색했고 바로 블러(Blur)와 오아시스가 국가대표로 낙점 됐다. 블러는 그러나 1995년 앨범 < Parklife >를 통해 ‘반미(反美)성향’의 음악 이데올로기를 탈피하지 못한 채 자국내 태풍을 야기한데 만족해야했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같은 해 발매된 <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를 통해 블러와 정반대의 ‘친미(親美)성향’ 음악으로 북미대륙 공습에 성공했다. 그 음악은 다름 아닌 ‘비틀스’였다. 비틀즈 신화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던 미국인들은 오아시스를 전폭 지지했다. 이 같은 혁혁한 업적으로 그들은 단숨에 ‘비틀스의 환생’ ‘제3차 브리티시 인베이전의 선두’라는 영국 언론과 팬들의 찬사세례와 함께 ‘영국 음악의 국보’로 솟아올랐다. 오아시스는 1980년대 영국 록의 산파지로 불리는 ‘예향’ 맨체스터 출신이다. 지역만으로도 그들의 기본기가 충실함을 알 수 있다. 그들은 1990년대 초 맨체스터 사운드 첨병 중 하나인 인스파이럴 카페츠(Inspiral Carpets)에서 아르바이트하던 노엘 갤러거(Noel Gallagher)가 막내 동생인 보컬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와 베이스 폴 맥귀건(Paul McGuigan), 드럼 토니 맥캐롤(Tony McCarroll)이 꾸려가던 밴드 레인(Rain)에 스카웃 되면서 낙원의 청사진을 마련했다. 이어서 1993년 글래스고우의 한 클럽에서 연주하던 오아시스에게 펑크와 뉴 웨이브 전문 레이블인 크리에이션(Creation)의 사장 앨런 맥기(Alan McGee)가 러브콜을 보냈다. 그룹의 잠재력을 대번에 안 맥기와 의기투합한 그들은 싱글 ‘Supersonic’과 ‘Shakermaker’를 잇따라 내놓으며 시장의 반응을 탐색했다. 결과는 예상 대로였다(노엘의 위풍당당. "오만하게 들리겠지만 우린 정말 베스트 오브 베스트 밴드다. 어떤 그룹도 우리보다 곡을 잘 쓰진 못한다!"). 곡들이 차트에 진입하며 팝 인구들에게 오아시스란 이름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에 용기를 얻어 그들은 1994년에 데뷔 앨범 < Definitely Maybe >를 들고 나와 영국 앨범 차트 1위를 정복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 작품에서 그들은 ‘전통’ ‘정통’ 로큰롤을 구사하며, 영향을 준 섹스 피스톨즈, 비틀스, 롤링 스톤즈, 후 등 영국 록의 거인들을 더욱더 빛나게 했다. ‘과거로의 음악여행’이 그들로부터 실현된 것이다. 질풍노도의 오아시스는 드러머를 토니 맥캐롤에서 앨런 화이트(Alan White)로 교체하고 ‘브릿 팝의 세계화’를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의 2집이자 스매시 히트음반 <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 >가 그 결과물. 여기에 구사된 수려한 멜로디 감성은 비틀스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Wonderwall’ ‘Don’t look back in anger’ ‘Some might say’ 등 발표하는 싱글마다 모조리 영국차트 정상에 올랐고 ‘Wonderwall’의 경우는 브릿 팝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 차트 톱10이라는 영광을 포획했다. 국내에 브릿 팝 열풍을 몰고 온 것이 바로 이 앨범이다. 특히 그룹내의 ‘음악독재자’ 노엘 갤러거는 < Champagne supernova >에서 영국 록의 대부 폴 웰러(Paul Weller)를 초빙하여 이른바 ‘데드 록’의 출현을 알리기도 했다. 이것은 ‘실낙원’이 되어버린 영국 음악의 명예와 자긍심을 회복해 ‘복낙원’으로 재건하고자 한 그룹의 의지와 준비가 낳은 소산이었다. 순항에 장애물이 없진 않았다. 그룹의 노엘과 리암 형제의 반목이 이 때부터 노골화되었다. 틈만 나면 불거진 형제들의 ‘첩혈쌍웅’과 그에 따른 그룹의 해산설, 탈퇴설이 꼬리를 물고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형제애는 음악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노엘과 리암의 팽팽한 심리전을 극복했고 그들은 1997년 3집 < Be Here Now >로 ‘패밀리 비즈니스’를 복원했다. 수록곡 ‘Stand by me’ ‘All around the world’에서 필생의 과업인 ‘비틀스 따라잡기’는 계속되지만 전체적으로는 ‘비틀스 벗어나기’를 감행한 앨범이었다. 그들의 음악적 성숙도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들의 포인트인 곡의 질과 음반판매량은 전작보다 후퇴했다. 오아시스는 이후 브릿 팝과 성공의 굴레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음악으로 실천하고 있다. 멤버들의 잇단 동요로 지난해 구조조정을 단행한 오아시스는 곧 정규 4집이 될 새 앨범 <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 >을 내고 돌아올 채비를 갖추었다. 첫 싱글 ‘Go let it out’을 비롯해 비틀즈의 향기는 여전하지만 이미지 탈출을 위한 노력이 곳곳에 투영되어있다. 얼마만큼 성공을 재현하느냐는 매스컴의 관심일지 모르나 갤러거 형제들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은 차라리 데뷔시절부터 계속되어온 언론의 집중 공세를 어떻게 피하느냐를 자신들의 ‘숙원사업’으로 여길 것이다.
밴드 : The Script (더 스크립트)
밴드 : Beady Eye (비디 아이)
리암 갤러거(보컬), 겜 아처(기타), 앤디 벨(기타), 크리스 셰록(드럼) 리암 갤러거(보컬), 겜 아처(기타), 앤디 벨(기타), 크리스 셰록(드럼)
밴드 : Santana (산타나 (라틴 락 밴드))
20세기 마지막 팝 음악의 유행은 음반산업이 주조했든 아니든 정열의 라틴음악이 장악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에 발표된 제42회 그래미상 후보자 명단이 웅변한다. ‘Livin’ la vida loca’의 주인공 리키 마틴(Ricky Martin)을 비롯 제니퍼 로페즈(Jenifer Lopez),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루 베가(Lou Bega) 등 지난해 라틴 열풍을 주도했던 신성(新星)들이 그... 20세기 마지막 팝 음악의 유행은 음반산업이 주조했든 아니든 정열의 라틴음악이 장악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에 발표된 제42회 그래미상 후보자 명단이 웅변한다. ‘Livin’ la vida loca’의 주인공 리키 마틴(Ricky Martin)을 비롯 제니퍼 로페즈(Jenifer Lopez), 마크 앤소니(Marc Anthony), 루 베가(Lou Bega) 등 지난해 라틴 열풍을 주도했던 신성(新星)들이 그래미상의 주요 부문에 공천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당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름 아닌 ‘라틴 록의 거장’ 카를로스 산타나가 버티고 있어서다. 올해로 52세인 그는 1999년에 발표한 앨범 < Supernatural >로 그래미 최고의 영예인 ‘올해의 앨범’, ‘올해의 노래’, ‘올해의 레코드’ 부문을 포함, 무려 11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되는 기염을 토했다. < 뉴스위크 >는 최신호에서 1998년 밥 딜런에 이어 이번 그래미 시상식은 산타나의 컴백 무대가 될 것이라며 그의 압승을 예견했다. 뉴 밀레니엄을 전후로 빌보드 차트를 장기간 점령한 빅히트 싱글 < Smooth >와 500만장이라는 가공할 음반판매량이 화려한 재기를 견인했다. 음악팬들은 10대 틴 음악의 싹쓸이 판에서 모처럼 대가의 위용을 체험하고 있다. 멕시코 태생의 기타리스트 산타나는 1966년 히피 문화의 본고장 샌프란시스코에서 ‘산타나 블루스 밴드’란 이름으로 음악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출연, 전설적인 연주곡 ‘Soul sacrifice’를 들려주어 일대 주목을 받았다. 산타나로 그룹명을 바꾼 그는 같은 해 셀프 타이틀 앨범에서 당시의 주도적 경향인 사이키델릭에 라틴 비트, 아프리카 리듬, 그리고 블루스를 이입한 음악을 연주했다. 산타나는 그러나 1970년대가 열리면서 1960년대 말을 어지러이 수놓았던 사이키델릭과 블루스가 퇴조하자 라틴 리듬과 정통 로큰롤을 뒤섞은 이른바 ‘라틴 록’으로 조정을 꾀했다. 1970년에 발표되어 지금도 명반으로 남아있는 2집 < Abraxas >가 바로 처음 라틴 록의 정체를 천하에 고한 작품이었다. 이 음반의 수록곡 ‘Black magic woman/Gypsy queen’과 ‘맘보의 왕’ 티토 푸엔테(Tito Puente)의 곡을 재해석한 ‘Oye como va’는 각각 차트 4위, 13위에 랭크되며 히트했다. 특히 그가 이 음반 수록곡 ‘Samba pa ti’에서 구사한 애절한 기타연주는 국내에서 그의 명성을 한층 드높인 계기를 마련했다. 발라드 선호의 우리 정서와 심금을 울리는 그의 라틴기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 것이다. 이 같은 어울림은 기타에 멜로디를 집어넣은 카를로스의 연주기법 때문에 가능했다. "나의 음악 키워드는 음(音)으로 이야기하듯 말하는 것이다. 기타를 통해 나는 노래하고 있다" 라틴 록 보석 ‘Europa’가 담겨있는 1976년 앨범 < Amigos >도 앨범차트 10위에 올랐고, 그해 일본 평론가협회 제정 최우수 앨범 상을 받았다. 지금도 기타지망생들은 ‘Europa’와 산타나의 이름을 등식화한다. 이듬해 발표한 작품 < Moonflower >에서도 좀비스(Zombies)의 명곡을 라틴 사운드로 새 단장한 ‘She’s not there’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카를로스 산타나의 ‘절충주의’ 음악은 한계를 드러냈다. 그의 맛깔스런 기타 연주는 계속해서 위용을 과시했지만, 순하게 들리는 태생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뒷심은 뚝 떨어졌다. 새로운 세대의 변화무쌍한 감성을 파고드는 필살(必殺)의 포인트를 상실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시대분위기에 편승하여 팝 성향이 강화된 1979년 앨범 < Marathon >을 발표한 데 이어 1980년 재즈 록 앨범 < Swing Of Delight >, 1987년 명상 앨범 < Blues For Salvador > 등 장르를 따지지 않는 합종연횡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비록 장기외유였지만 ‘록의 경계선을 허문’ 고유업적이 빛이 바랜 건 아니었다. 1980년대 이후의 활동도 사실 ‘퓨전’이란 그의 평생 과업의 선상에 있었다. 1998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당당히 들어섰고, 같은 해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도 입적되었다. 마침내 그의 ‘장르 뒤섞기’ 실험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었다. 그러나 산타나는 지난해 < Supernatural >로 역사에 안치되기를 거부하고 현실무대로 화려히 컴백했다.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파워 맨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가 직접 지휘봉을 잡고 만든 이 앨범에는 데이브 매튜스, 로린 힐, 와이클레프 진 그리고 매치박스 20의 롭 토마스 등 신세대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산타나는 평소 자신을 존경해온 이들의 도움으로 상기한 신진 라틴스타들에 못지 않은 활기를 내뿜었다. ‘신구세대의 통합’을 목표로 산타나와 데이비스 사장이 제휴하여 치밀히 계획한 전략의 결과였다. 이 작품이 구현한 절충과 타협의 미학은 젊은 층과 기성세대를 막론했다. 올해 그래미상은 그를 위한 잔치가 될 게 거의 확실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산타나 본인은 성공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는 앨범 < Supernatural >이 자신의 계획 중 일부분이라고만 했다. 원대한 포부를 시사한다. 하지만 그의 마스터플랜은 인기나 성공이 아니라 ‘음악의 완성’이다.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에서 이미 진실함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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