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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07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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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1,260쪽 | 1,763g | 127*187*6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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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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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를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한 것 같다. 중국에 유학 가 있는 조카에게 이 책을 보낼 테니 한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책을 읽다가『중국의 붉은 별』을 주문하고, 책 속에 나온 단어의 의미들을 검색하느라 읽기를 멈추고, 내 서재에 중국 역사에 관련된 책이 뭐가 있는지 기웃거리고. 그만큼 중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었고 오해하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질려하기도 했다. 중국의 다양한 모습 가운데서도 넓은 땅덩이 안의 수많은 인구, 돈이면 환장하는 모습, 꽌시(연줄) 전쟁, 신뢰와 정조 관념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반복해서 듣고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버리는 것이다.
세 권의 책을 느긋하게 읽기도 했지만 그만큼 여운도 많이 남았고 아직까지 책 속의 이야기들이 불쑥 나를 찾아오곤 한다. 책을 펼치기만 해도 내가 만났던 이야기들이 다시 이어질 것 같은 착각이 일기도 한다. 다시 한 번 조정래 작가님의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팬으로써 감사한 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는 복잡 미묘한 생각들이 한데 얽혀 이도저도 아닌 상황을 만들어 버렸다. 일단 세 권으로 만나는 이야기라 부담이 없었고 중국을 배경으로 한 점,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관찰자의 눈으로 재조명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역사에 취약하고 세계는커녕, 내 주변의 돌아가는 현상도 제대로 관망하지 못하는 나에게 자체만으로도 시야를 트여주었다.
마치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고 믿어도 될 만큼 생생했다. 일부의 중국만 보고 그대로 믿고 섣불리 판단해버린 사실이 부끄러울 정도로 중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중국의 이야기가 다 전부인 것처럼 느껴져 현실을 직시하지 못할 때도 있었지만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지고 나빠지는 게 아닌 좀 더 제대로 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기에 더 조심스러워지고 남들이 말하는 중국의 이미지에 쉽게 동조할 수도, 내가 가진 생각을 쉽게 깨뜨리기도 애매한 입장이 되어 버렸다. 분명 지금까지 내가 알던 중국의 모습과 달리 더 깊이 들어가고 많은 것을 알게 되었는데 무어라 선뜻 입을 뗄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간추리고 그들의 사연을 정리하는 것도, 타자의 입장에서 본 중국에 대해 시시콜콜 나열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는 것이 세계인데 하물며 숨은 잠재력을 지닌 중국이 현재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지 어떻게 직시하겠는가. 그렇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을 진부하게 언급하고 싶지 않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긍정적인 지레짐작은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끼친 영향은 무엇인지 선뜻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 중, 일 이야기를 하다보면 역사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복잡미묘한 관계 속에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비즈니즈 맨들 사이에서 하필 중국역사로 전공을 바꾼 베이징 대학생의 이야기로 그 중요도를 말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태백산맥』이나『아리랑』에서 그랬던 것처럼 든든하게 마음을 줄 인물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긴 소설을 읽어나갈 때 나를 이끌어 줄 인물이 있다는 것은 망망대해에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에 울고 웃고 책을 덮음과 동시에 그들의 안위를 걱정해 줄 수 있는 뭉클한 만남. 그나마 전대광이란 인물에게 미미하게나마 그런 감정을 느꼈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중국을 비롯한 세계의 경제와 치열한 비즈니스, 중국의 광활함에 그런 만남을 기대하기가 조금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약간의 자본과 제대로 된 꽌시를 만날 수 있다면 중국에서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 어이없는 착각이 들 수도 있다. 돈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소설 속에 질리게 등장해서인지 나도 중국에 가면 어떻게든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다는 허영심이 들어앉아 버린 것이다. 그러나 돈을 쫓는 그들에게 부가 주어질지언정 그 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허무하게 다가왔다. 온통 부를 쫓는 사람들 틈에 있다 보니 부를 갖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그들이 축적한 부가 순수한 노동력을 대가로 한 부가 아니기에 더욱 그러했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제는 물론 현 경제흐름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겐 없다. 소설 속의 인물들이 진지하게 대화할 때도 멀뚱하게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럼에도 그 모든 과정이 나의 무지를 조금이나 깨뜨려 주었던 것 같다. 수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함과 동시에 세계의 경제를 움직이기 위해 꿈틀거리는 중국이란 나라를 이 작품으로 이해했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다. 하지만 내가 얼마나 역사와 경제라는 분야에 무지했는지를 깨달았고 좀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분명 이 소설의 끝장까지 읽었음에도 뭔가 끝나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소설의 마지막이 조금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여러 인물로 본 중국과 그 외의 나라들의 모습이 다가 아니듯이 그들 앞에 놓인 있는 미래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미래는 나와 상관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내가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지만 무관심할 수도 없다. 그들이 힘겹게 살아낸 세월이 나에게, 그리고 내 아이에게 주어질 시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답답해진다. 내가 관심 없던 세계, 내가 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시야는 트였지만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치열한 정글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고 내가 겪었던 정글을 내 아이에게 물려주기도 싫다. 그래서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공부를 강요하지 않을 거야. 나쁜 일만 아니면 너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라.’라는 대책 없는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일단은 그것을 찾아 나서는 것이 정글로 향하는 첫걸음, 아니면 정글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지리적으로 보면 참 어째 이럴까 싶을 정도로 절묘한 위치에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세계에서 제일 힘세고 잘 산다는 이 네 나라 사이에 끼어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바로 옆동네에 있는 강대국들을 우리만큼 우습게 보는 나라가 있을까 하는 점이다. 평소엔 별 티를 내지 않다가도 역사적인 문제나 영토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인들은 졸지에 X바리이거나 X놈이 된다. 중국이라고 별 다를 바 없다. 일본인에 대한 감정이 분노와 불신에 가깝다면, 중국인에 대한 감정은 무시나 조롱에 가깝기 때문이다. '짱깨'이거나 '뙤놈'이 고작인데 조금 더 지체를 높여줘봤자 왕서방일 따름이다.
정서적인 면을 떠나서 산업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우리는 산업화시기를 거치며 기술력이나 여러모로 일본을 앞에 두고 따라잡으려고만 노력했지 중국은 짝퉁의 천국이며 우리를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다며 한참을 무시하곤 했다. 하지만 2014년 현재, 미국과 더불어 G2라는 이름을 얻으며 세계 최강대국이 되었고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지금까지의 시각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정래 할아버지도 문득 그런 위험을 감지하셨던 걸까.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유장하고 토속적인 흐름으로 그려내던 것을 잠시 멈추고 중국으로 날아가서 그 속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시작, <정글만리>1권이다.
우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민주화와 근대화를 동시에 이루어낸 것을 굉장한 자랑으로 삼곤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만약,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나머지 하나에만 올인했더라면 어떤 결과로 나타났을까. 별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바로 우리의 왼쪽 동네, 중국을 보면 짐작이 될 것이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나 부의 규모는 사실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일반인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이 크지만, 주인이 신경쓰지 않아도 이제 자본이 자본을 알아서 낳기 때문에 주인도 자신의 재력 규모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어마어마한 힘은 당연하게도 그들의 인구 수에서 비롯된다. 사실 그렇다. 쪽수가 많으면 뭘 해도 유리하게 마련이다. 우리가 외적을 물리친 역사를 가르치며 상대방의 쪽수를 적게는 십만, 많게는 백만까지 뻥튀기하는 것도, 영화 <비트>에서 임창정이 17대 1을 강조하는 것도 결국 실제 싸움판에서는 쪽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걸 돌려서 말했을 따름이다. 세계의 돈이 모여들고,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이다보니 눈 앞에서 보면 혼란스럽고 지저분하고 시끄러울 따름일 이 나라의 다양한 면을 관찰하기 위해 소설에서는 종합상사 영업부장인 전대광과 중국역사학을 전공하는 그의 외조카 송재형, 본의아니게 중국에 진출하게 된 성형외과의 서하원, 일본 히타치 철강회사 영업부장 이토 히데오, 그리고 그들의 주변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들의 눈을 통해 중국이라는 나라의 저변에 흐르는 그들의 관습과 의식들이 구체적인 사건들을 통해 묘사된다.
중국인들은 8을 참 좋아한다. 8의 중국 발음이 '돈을 벌다'는 말과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도 8월 8일 8시 8분에 개최되었고, 결혼식 축의금도 888위안을 내는 사람을 최고로 친다. 중국인들은 유태인들만큼이나 돈을 좋아하기 때문에 - 유태인이 억울할 것 같다. 유태인은 독립국가가 없다보니 기독교에서 금기시하는 고리대금업을 불가피하게 맡은 측면이 크지만 중국인들에게는 누가 돈을 그렇게 좋아하라고 억지로 시킨 적은 없으니까 - 그 마음이 8이라는 숫자에까지 미친 것이다. 어쩌면 정통 공산주의자들로부터(물론 그 공산주의자들의 나라는 이제 거의다 망하고 없지만) 수정주의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제체제를 자본주의로 변경한 것은 필요에 의해서라기보다 그들의 민족성에 기인한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다.
또 중국인들은 '꽌시'와 '몐쯔'를 아주 중요시한다. 꽌시는 관계라는 뜻으로 우리나라의 학연, 지연, 인맥 등을 통칭하는 끈끈하면서도 부정적, 긍정적인 요소가 묘하게 섞인 일종의 사회적 인간관계를 말한다. 몐쯔는 우리말로 하면 체면 정도가 될텐데, 우리 나라에서도 체면을 대단히 중요시하지만 중국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이러한 관습이 공산주의 일당 독재 체제 하의 경직된 관료사회와 어우러져 외국 기업(자국민들은 물론이고)들은 관에 있는 간부들과 꽌시를 맺고 그들의 몐쯔를 살려주지 않으면 절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순진하게 법규와 규정에 의한 일처리만을 고집하다가는 실적은 커녕 거꾸로 밀려나기 일쑤다. 그래놓고도 중국인들은 만만디다. 급하면 니가 하든지. 너 아니고도 사람은 많으니까.
'너 아니고도 사람은 많으니까.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아. 나 빼고 삼억은 없어져야 해.'라고 생각하는 풍조를 중국말로는 딱 세글자, 네음절로 이야기한다. '런타이뚸(人太多)' 온갖 범죄가 난무하고 교통 질서가 엉망진창인 이유를 인구가 너무 많아서라고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2011년 혼자서 내몽골 자치주로 여행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머리에서 피를 콸콸 흘리며 차도 한 복판에 쓰러져 있는 청년을 본 적이 있다. 단체 버스라서 나 혼자 중간에 내릴 수도 없고 안타까운 눈으로 볼 뿐이었지만, 그 청년을 지나치던 몇 분 남짓한 시간 동안 묘한 기분을 느꼈었다. 우리나라같으면 누군가는 가까이가서 상태를 살피고 어떤 사람은 119에 대신 신고도 하고 그러겠지만 그 길거리는 아주 평온했다. 청년의 피를 바퀴에 묻힌채 소가 끄는 달구지는 옆을 그냥 스쳐가고 자동차들은 속도조차 줄이지 않고 차선만 바꿀 뿐이었다. 보도와 거리가 얼마 멀지도 않았는데도 사람들은 멀리서 담배를 피우며 제각기 갈 길을 갈 뿐 그 청년은 그렇게 혼자 죽어가고 있었다. 아마도 그 사람들은 모두 '런타이뚸'라고 속으로 되뇌었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많아 단숨에 세계 최강국으로 부상했지만 사람이 별로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신기한 나라. 속으로 들어갈수록 공직자의 부정부패, 만만디 근성, 어마어마한 빈부격차, 인명경시 등 혼란스럽고 난잡한 일이 많지만 그래도 매년 성장의 방향으로 10%씩 커다란 발걸음을 떼어놓고 있는 거인같은 나라 중국. 본격적인 이야기는 2권에서부터 펼쳐질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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