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7일 새벽 1시 강남역 부근 건물 화장실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살해당했다. 두 사람은 평소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가해자의 살해 이유는 단지 여자여서였다. 가해자는 남녀공용화장실에서 여성이 들어오길 기다렸다. 화장실 CCTV 확인 결과 사건 당시 남성 6명이 들어갔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가해자는 여성이 들어오자마자 살인을 저질렀다.

이번 사건에 대해 언론에서는 '묻지 마 살인 사건'으로 규정하고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대결이 뜨거워졌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이번 사건이 가해자가 정신분열증 있어서 아무나 죽인 사건이라 볼 수 있을까? 이번 사건이 묻지 마 살인 사건이면 가해자 남성은 화장실에 들어왔던 남성 6명 중 한 명을 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죽은 건 여자였다. 이번 사건은 명백히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다.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우리 사회 여성 혐오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번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가해자는 사회적 관계가 원만하지 않았던 사람으로 보인다. 평소 인간관계에서 거절을 당했는데 여성에게마저 거절을 당하자 여자를 살해한 것이다. 왜 남성의 분노는 자기보다 약자인 여성으로 향하는 것인가.

<여성혐오가 어쨌다구> 공동 저자 정희진은 "성혐오, 약자 혐오, 피해자 혐오에 대해 한국사회는 유독 관대하다. 자신과 체제에 대한 분노를 약자에게 투사하는 방식,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 모든 계급 갈등을 봉합하는 막강한 남성연대…."라며 혐오는 더 낮은 약자로 향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여성혐오와 사회적 갈등 모두를 봉합하는 남성연대가 우리 사회 병폐라고 지적하고 있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에도 남성들의 강고한 연대가 눈에 띄었다. 여성 희생자를 추모하는 분위기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남자들은 일부 정신병자가 일으킨 사건을 일반화하지 말라 말한다. 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가 강한 힘을 가지고 평범한 남성들을 가해자로 몰아붙이는 남성혐오를 중단하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인터넷 일간베스트(일베)에서는 강남역 10번출구 추모 공간에 “남자라서 죽은 천안함 용사를 잊지 맙시다.” 라는 문구를 남기며 남성 혐오를 중단하고 여성보고 군대나 가라는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리베카 솔닛의 <맨스플레인>이라는 책을 보면 이런 문구가 나온다.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 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결국, 남성들의 비판적 시선은 여성혐오를 하는 사회적 심각성을 봉합한 체 자신은 그렇지 않다며 사건의 초점을 돌려놓고 있다. 2016년 2월 부산경찰청에서 실시한 ‘연인 간 폭력 집중 기간’ 운영 결과 102건의 신고를 접수해 이중 2명 구속을 포함해 67명 검거했다. 전국적으로는 1279건이 접수돼 868명을 검거하고 이중 61명을 구속했다. 접수된 신고를 유형별로 분석하면, 가해자 중 20, 30대가 전체 74.6%를 차지하며 압도적으로 많았다. 피해유형은 ▷폭행·상해(70%) ▷체포·감금·협박(13.4%) ▷성폭력(9%) 등의 순이었으며, 피해자 중에는 여성이 대부분(85%)을 차지했고 남성은 3%에 그쳤다. 이런 현실에서 남성들이 "난 아니데" 라고 하면 해결될 문제인가.

미러링!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여성혐오가 사회에 뜨거운 이슈로 떠오를 때 남성들이 보이는 태도는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면 안 된다고 한다. 여성들이 남성에게 터트리는 분노에 대해 남성들은 방법이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남성 전체를 뭉뚱그려 혐오하는 방법은 혐오를 더욱 확장한다고 강조한다. <여성 혐오를 어쨌다구> 공동저자 임옥희는 사회 권력구조를 배제한 체 문제를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랜 세월 동안 혐오의 대상이 되어온 여성이 혐오에 혐오로 대응하는 것은 권력관계에서의 남성의 여성 혐오나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식으로 곧장 등치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대칭적인 권력관계에 있는 부당 해고 노동자의 분노와 사용자의 분노를 분노라는 이유만으로 다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혐오의 젠더정치화를 통해 여성에게 가해진 폭력을 해소하려고 한다면, 페미니즘은 혐오에 맞설 힘을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여성들이 처해있는 위협적인 사회구조 내에서 미러링(혐오를 혐오하는 방식)이 어떤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야기를 들지 못했다. 오히려 미러링을 통해 몰카 야동을 배포하는 소라넷을 폐쇄했고, 여성 폭력을 미화하는 사진을 게시한 맥심코리아 해 당호를 전량 회수 조치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여성들이 미러링을 통해 만든 결과는 현실을 바꾸어 내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남성들의 대응은 폭력과 살인이다.

“나도 잠재적 가해자이다. 그것이 싫으면 바꾸자!“

"살아남았다."

강남 여성혐오 살인 사건 이후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구호이다. 만약 17일 새벽 1시 내가 강남역 근처 건물 공동화장실에 갔다면 피해자의 참사가 나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남성으로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이해를 하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남성이 도심 건물 화장실에서 남자가 싫어서 살인을 당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남성이 밤거리에 폭력을 당할까 봐 두려움에 떨며 걸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남성이 누군가가 침입하여 성폭력이 두려워 여성의 신발을 갖다놓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살아남았다는 말은 너무나 슬픈 한국 사회의 초상을 보여준다. 여성이 안전하게 밤거리를 활보하지 못하고, 성폭력에 위협에 언제나 놓여있고, 여성혐오 발언을 꾹 참아야 하는 사회에 사는 나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나도 남성이고 여성혐오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대신 우리 모두 안전하고 여성혐오가 없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 뭐라도 하자고 말하고 싶다.

"나도 잠재적 가해자이다. 그것이 싫으면 바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