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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시대와 우리를 품었던 찬란한 건축의 유산
힐튼 호텔을 만들고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 힘으로 지은 최초의 대형 호텔. 1983년 12월 문을 열고 2022년 12월 31일 폐장까지 40년 동안 남산 자락의 랜드마크였던 밀레니엄 힐튼 서울 호텔. 이 호텔이 만들어진 시대적, 정치적 배경과 건축적, 문화적 가치를 당시 현장의 사람들과 설계자인 김종성 건축가에게 듣는다. 5성급 호텔 로비에 자연광이 드는 아트리움이 있었던 이유, 연말이면 그곳에서 자선 기차가 달리게 된 사연 등 이야기 사이에 스며든 열정과 사랑이 울림을 전한다.

목차

책을 내며

1장 힐튼 호텔의 장면들

우리 힘으로 지은 최초의 호텔
브론즈, 대리석, 트래버틴, 오크 패널
알루미늄 커튼 월
아트리움
레스토랑과 카페
크리스마스 트리와 자선 기차
연혁

2장 김종성 건축가에게 듣다

100년 후에도 우아한 클래식을 만들고 싶었다
모두가 도와준, 모두가 함께 만든 호텔
효율에만 목을 매면 문화적으로 점점 가난한 도시가 된다

3장 현장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야기

그때 그 시절, 땀내 나는 우리의 화양연화_지승준 소장, 박종선 대표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 _대우 설계부 민병욱
100보 걸을 걸 30보 걷게 한 호텔_개관준비팀 김창석
힐튼에서 32년_박효남 셰프
베리 베리 젠틀맨의 베리 정교한 도면_이현영 아키비스트
보기 드문 명작이자 우리 건축의 유산_ 황두진 건축가

4장 힐튼 호텔 설계를 돌아보며

편집 후기

상세 이미지

상세 이미지 1

책 속으로

이미 늦었고, 끝내 막을 수 없게 되었지만 김종성 건축가는 코 밑으로 흘러내린 안경 너머로 우리를 담담하게 바라보며 “이번 논의와 노력이 현대건축물도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구나,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만 심어줄 수 있다고 해도 다행”이라고 했다. 그가 옛이야기처럼 들려주는 ‘힐튼 이야기’는 그 담담함 덕분에 더 선명하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 p.29

한국의 건축은 오랫동안, 조금씩 발전했지요. 정치, 경제의 격변기에 힐튼은 남산 자락의 랜드마크 노릇을 했어요. 나름의 이정표였습니다. 내가 1970년대 중반 한국에 들어왔는데, 긍지를 느끼는 부분은 힐튼의 시작과 끝이에요. 처음 하는 이야기인데, 플라자 호텔이나 롯데 호텔은 일본에서 설계했어요. 내가 미국에서 공부했지만, 힐튼은 한국 사람이 지은 첫 번째 대형 호텔이었어요.
--- p.32

돌아보면 내 삶의 길목에 엄청난 인연들이 있었어요. 취업할 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고. 미스 반데어로에 사무실에서 오른팔을 맡고 있던 조 후지카와 라는 분이 있었는데, 나를 아끼고 지도해 줬던 알프리드 콜드웰 교수님이 그분께 연락을 해줬어요. “여기 종성 킴이라는, 아주 가난한 나라 한국에서 온 학생이 있는데 그가 만든 건축모형이 아주 훌륭하다, 한번 보러 왔으면 좋겠다” 하고. 그 인연으로 미스 반데어로에 사무실에 면접까지 보게 됐어요. 3학년 말에 인터뷰를 했는데 지금은 자리가 없으니 나중에 다시 오라고 하더라고. 나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 싶어 대학원에 들어갔다가 그 후에 연락이 와서 취직하게 된 거예요.
--- p.72

이후 설계안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왔는데 당시 정부의 공식 건축 담론은 어떻게든 한국 전통을 반영하는 거였어요. 나는 당연히 반대했지. “힐튼이 독립기념관이면 한국 전통을 생각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곳은 호텔이고 숙박 시설인데 무슨 전통이냐” 하고 얘기했지. “그건 아니다”라고 의식적으로 저항을 한 거야. 큰 반대가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수월하게 통과됐어요. 그때 국토건설부 도시국장을 지낸 사람이 유 국장(이름까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이라고
미국에서 공부한 분이에요. 나랑 같은 연배인데 내 의견을 타당하다는 쪽으로 받아들여 주더라고.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인허가 과정까지 거치고 나니 이 프로젝트를 정말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 p.78

미니멀리즘 같은 개념만 가지고서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어요. 풍부하고 정확한 사고와 숫자가 들어가야지. 반복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면서 폭을 10cm 더 늘려 3.5m를 확보하면 어떤지, 거기에서 한 단계 더 넘어가 폭을 3.8m로 만들면 또 어떤지 끝없이 분석하지. 호텔업계에도 공간에 대한 통계치가 다 있어요. 오랫동안 가장 이상적이라고 정한 폭이 3.9미터, 약 13피트예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 숫자가 절대적이었는데 1980년대 중반쯤 되면서 방폭을 30cm 늘려요. 3.9미터(약 14피트)에서 4.2미터가 되는 거지.
--- p.86

내가 가르치던 일리노이 공과대학에 미스 반데어로에 소사이어티라고 있는데 거기서 5년째 이사로 봉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스승님이 디자인한 건물이 일리노이 공과대학에 22개가 있거든. 그걸 유지·관리하는 임무를 맡고 있지요. 설계나 디자인과 관련해 캠퍼스를 안내하는 활동도 하고, 논의해야 하는 부분은 화상 회의도 하고. 논문을 쓰는 후배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할 때도 있는데 그런 질문에는 꼭 대답을 해줘요.
--- p.120

힐튼 호텔이 올라가는 당시의 상황은 마디마디 영화 같은 구석이 있었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장면이 그려졌고,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 수 있다면 넷플릭스를 통해 바로 방영해도 될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기억하는 그때는 한마디로 자부심의 시절이었다. 내가 이런 호텔 건설에 참여하고 있다는, 가슴이 빵빵한 채로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쌓이는.
--- p.140

서울역에서 대우센터를 바라보면 오른쪽에 남대문경찰서, 왼쪽에 삼주빌딩이라는 오피스 빌딩이 있었어요. 그 뒤에 남대문세무서가 있고. 양동 전체를 빙 둘러 도로가 나 있었는데 그 일대를 정비해 도시 사업까지 진행하는 것이 애초의 목표였습니다.
--- p.154

1983년 힐튼 호텔이 오픈 세리머니를 했는데 당시 외국 브랜드의 호텔은 호텔리어 사관학교나 마찬가지였어요. 웨스틴 조선이 그랬고 하얏트도 유명했지요. 서비스며 운영 노하우가 한국하고는 완전히 달라 그런 매뉴얼을 받아 흉내 내듯 하나하나 배워나갔지. 힐튼은 대한민국 최초로 호텔 운영에 전산 시스템을 도입한 호텔이었어요. 당시 하얏트만 해도 객실 표시장에 딱지가 다 꽂혀 있었어요. 초록색은 더블 베드 룸, 핑크색은 싱글 룸. 객실이 600개에 이르는데 딱지 유무를 보고 그 방이 비어 있는지 손님이 있는지 알 수 있는 거예요. 계산도 다 손으로 계산기 두드려서 하고. 그런데 힐튼은 이 모든 걸 컴퓨터로 하는 거예요.
--- p.174

그 자체로 기록과 여백 간 비례와 균형이 맞아떨어지는, 호텔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구현하기 위해 치밀하고 정확하게 준비한 밑그림들. 폴리에스터 필름지에 잉크 펜으로 그린 그림이 낯설면서도 매혹적이었다. 오른쪽 하단에는 도면 번호가 적혀 있는데 이 숫자가 2253까지 이어지니, 힐튼 호텔을 설계하며 그린 도면이 2253장에 이른다는 얘기다. 도면은 큰 그림(거시)과 작은 그림(미시)으로 나뉜다. 큰 그림은 힐튼 호텔이 단순히 숙소 하나를 새로 짓는 것이 아니라 서울역과 남산을 연결하는 도시 정비 프로젝트로 추진되었음을 보여준다.
--- p.216

그의 사무실에서 근무했거나 그의 스타일적 후예를 자처하는 이들을 미시안miesian이라고 불러요. 김종성 선생도 그중 한 명이지요. 비례와 구조를 워낙 중시한 사람이라 당시 미스 반데어로에가 가르친 학생들의 과제를 보면 마치 한 사람이 한 것처럼 비슷해요. 학교의 교육 방식도 영향을 끼쳤을 텐데 김종성 선생이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건축적 부분은 물론이고 선생 특유의 미학적 터치가 있기 때문이에요. 힐튼을 예로 들면 구조적 비례가 완벽하면서도 그 안에 미묘한 율동감과 풍성한 리듬감이 있어요. 로비가 대표적이지요. 대리석 계단이 아래층을 향해 미끄러지듯 이어지고, 브론즈로 만든 난간 손잡이의 라인도 무척 아름답지요. 언뜻 굉장히 화려한데 동시에 따뜻하고 우아해요. 계단의 높이와 폭도 넉넉하고 편안해 부드럽게 와닿아요. 천창으로는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오고요. 채광은 김종성 선생이 가장 중시한 요소 중 하나였어요.
--- p.220

출판사 리뷰

2022년 폐장한 힐튼 호텔에 관한 가장 생생한 기록
그 때 그 시절, 호텔리어, 현장 소장, 셰프 등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다

건설 당시 현장 소장, 시카고에서 설계 준비를 도운 담당자, 호텔 개관 당시의 매니저, 32년간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근무한 셰프, 동시대의 건축가, 국립현대미술관의 아키비스트(기록 보관 담당자) 등이 전하는 힐튼호텔에 관한 입체적인 이야기. 공동 저자인 22년차 에디터가 만난 7명의 관계자들과 힐튼 호텔의 건축가 김종성이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전하며 지식과 지혜를 펼쳐낸다.

힐튼의 40년 역사를 담은 사진 아카이브, 건축가의 스케치, 설계 도면, 서신 수록

1983년 개장 당시 사진 자료를 비롯해 2022년 폐장 때의 무드를 담은 사진 자료, 설계 도면, 건축 스케치, 서신까지 다양한 이미지를 수록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건축가 김종성 :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 전시 담당자에 따르면 김 건축가가 기증한 자료는 양도 많고 보존 상태가 좋았다고 한다. 덕분에 미술관의 아카이브를 뒤져 의미 있는 이미지 자료들을 책에 풍성하게 담을 수 있었다.

김종성 건축가에게 직접 듣는 힐튼 호텔 이야기, 그리고 노장의 삶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김포공항도 없던 시절 여의도를 활주로 삼아 미국으로 건너 가 미스 반데어로에라는 거장을 사사한 한국인 김종성. 그는 호텔에 왜 자연광이 들어오는 거대한 아트리움을 만들었을까. 힐튼 호텔하면 떠오르는 녹색 대리석과 연말이면 크리스마스 자선 열차가 등장한 이유가 있을까. 그가 남긴 100여 점의 설계 중 힐튼 호텔을 손꼽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장의 건축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일의 태도, 삶과 인생관이 우리에게 머문다.

저자 소개

1935년 서울 태생. 경기고를 나와 1954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재학중 미국유학을 결심하고 1956년 미국 일리노이공과대학교(IIT)에 입학해 1961년 건축학사를, 1964년 건축학 석사를 취득했다. 학부 졸업 후 미스반데어로에 사무실에 입사해 다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1966년 IIT 건축대학 교수로 임용되어 1972년 부학장, 1978년 학장 서리를 역임했다. 힐튼호텔 설계를 계기로 1978년 귀국해 서울건축종합사무소를 만들고 이끌었다. 대표작으로 서울힐튼호텔 외에 육군사관학교 도서관, 서울올림픽 역도경기장,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아트선재센터, 서울역사박물관, SK서린빌딩 등이 있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건축가 김종성: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전을 개최했다. 문화훈장(2014년), 동탑산업훈장(2023년)을 수훈했다. 2019~23년 ‘건축가 김종성의 로마네스크 건축 포토에세이(Architect Jong-Soung Kimm's ROMANESQUE ARCHITECTURE Photo Essay)’ 5권을 출간했다.
나의 라이프스타일에 꼭 맞는, 넉넉하고 아름다운 집 한 채를 갖는 것이 일생의 꿈. 10년간 잡지 〈럭셔리〉에서 에디터로 일하며 국내외 유명 건축가를 인터뷰했고, 그런 경험을 토대로 건축가가 지은 집에도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다. 내게 꼭 맞는 집을 만나고 싶다는 염원으로 아파트, 빌라, 한옥 등 다양한 주거 형태를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의 좌충우돌 소동과 애환은 책 〈집을 쫓는 모험〉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서울 서촌과 양평에 작은 삼층집과 오두막을 지으면서 집과 건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런 경험치를 동력 삼아 갤러리로얄과 함께하는 토크 프로그램 〈건축가의 집〉을 4년째 기획, 진행하고 있다. 토크 무대에는 신진부터 거장까지 많은 집 짓는 마음과 철학에 관해 들려주었다. 집을 채우는 사물과 작품에도 관심이 많아 지난 3년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발행한 잡지 〈공예+디자인〉을 만들었으며 갤러리 클립을 운영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editor_k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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