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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2년 03월 2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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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96쪽 | 378g | 150*210*20mm |
ISBN13 | 9788956606064 |
ISBN10 | 89566060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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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혔다. 잘나가던 컨설팅 회사의 전략가로 손꼽히던 그는 사랑이라 믿었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만다. 직장도 사회적 명예도 가진 돈마저 모두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는 은주가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그녀를 대신해서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환상에서 쫓겨나게 된다.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에 대한 순애보는 달라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은 참 멋있게 보이기만 했는데 현실 속의 도랑을 보노라면 씁쓸하기만 했다. 되려 그의 미련함을 질책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은주를 사랑했던 것인지 은주와 사랑했던 그 시절을 사랑했던 것인지,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도 그 알량한 사랑 타령만 할 수 있는지. 이것이 남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어찌되었건 은주를 통해서 도랑은 현실은 잠시 궤도를 이탈한 것이라 스스로 다독이며 다시금 되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한다.
흘러 버린 시간은 추억만 거둬 간 것이 아니었다. 말랑말랑했던 서글픔과 뜨거웠던 마음 같은 것들, 하루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리움들. 비 온 뒤의 맑게 핸 하늘 같은 것들, 딱딱하게 굳은 아픔 같은 것들, 달리지 않고는 식히지 못할 열정 같은 것들, 눈곱 낀 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같은 것들도 거둬갔다. –P61
개를 산책시키는 동안 발생한 사고로 인해 그는 또 그 자리를 잃어버린다. 모든 것이 돈으로 일사천리 해결되는 장면에서 인간으로서의 박탈감이 느껴졌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만 매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책정되어 있는 가격표에 의해서만 대우 받게 되는 현실에 불평하면서도 그 제도권 안에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묘한 현상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의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불판을 닦고 대행업체에서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그러던 그에게 다시금 한 줄기 빛을 가져다 준 것이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이다. 개를 산책시키는데 최소 대학을 졸업한 원하는 주인들을 아니꼽게 보던 그였지만 궁여지책 속에 동물병원장의 끈질긴 요청으로 이 일을 맡게 된다. 강남의 왠만한 집 값을 호가하는 라마를 맡으면서 그는 자신이 처해져 있는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 보며 비관하기도 하지만 그 대가를 받는 순간 그는 쾌재를 부르며 다시 한번 인생 역전을 꿈꾸게 된다. 이대로라면 그는 재개는 물론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보장 받은 셈이었다. 이런 계산이 끝나자 자신이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을 거리를 두게 된다. 이전에는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삼손과 미향은 이제는 더 이상 나와 어울리지 않는, 그저 내가 잠시 알던 사람으로만 치부하는 장면에선 은주와 같은 모습이 보였다. 은주를 그리워하며 품었던 미향도,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한 그에게 휴식처와 같던 삼손도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어느새 힘이 잔뜩 들어간 그를 보면서 풍족한 물질 속에 물들어 가며 변해가는 인간의 본성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노숙자로 전락하여 하루 몸 뉘일 곳을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그가 이제는 명품 슈트를 걸치고 우아하게 라마와 산책하며 뭍 여성들의 시선을 즐기는 그는 원래 그러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누구나 힘을 가지면 이렇게 변하게 마련일까.
우린 우주의 존재거든. 우리가 죽어 재로 변하지만 우리의 질량은 우주 어딘가에서 다른 뭔가로 다시 나타난다고 생각해. 화장을 해도 마찬가지야. 습기나 다른 원소들로 우리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질량이 그대로 다른 곳에서, 아님 다른 우주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과정 중에 영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가 평소 살면서 가졌던 우리의 생각이나 정신, 각오, 희망, 꿈, 슬픔, 절망 그런 걸 질량으로 잴 수는 없잖아. 하지만 난 그 개념들도 난 질량이 있다고 봐. 그 개념들이 영혼으로 환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느 날 그는 미향과 몽몽 원장의 오묘한 관계 속에 일그러진 욕망의 현장에서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모래알보다 가볍다 느낀 가족의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 그리고 그 이후 들려오는 라마의 실종으로 그의 한줄기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한 권의 소설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냥 웃어 넘기기엔 현실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그런지 보고 나서 되려 쌉쌀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 쓰디 쓴 인생이라 해도 그 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참 많다. 달아나고 싶지만 그 굴레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 어느새 공감하게 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길래 글로벌 지향적인(!) 문학상인가 오해했었는데(이런 단순한!), 알고보니 세계일보 주최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언뜻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떠오르기도 하는 제목. 내용은 큰 관련없었던 듯 하지만.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의 사연은 이러하다. 잘나가는 컨설턴트로 일하다 산업스파이 진주라는 여자에게 빠져 기업의 기밀정보를 빼내주고 모든 것을 스스로 뒤집어 쓴 채 회사에서 쫓겨나고, 재산도 거덜났다. 무려 산업스파이의 오명을 뒤집어 쓴 덕에 정규직 취업이 힘들어 일을 찾다찾다 동네 잘사는 집 개들을 산책시켜주고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
주인공 임도랑의 사연은 기구하고, 처지는 이를 데 없이 처연하고. 그렇지만 초반부 임도랑의 처지와 사연을 서술해나가는 부분들은 무척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동시에 실직자, 청년실업자들의 숨막히는 처지와 입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답답함과 절실함이 깊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은 우스운, 상당히 충격적인(?!)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개 산책 알바도 짤리고, 고기집 불판닦는 알바로 들어가 열심히 닦아대지만 이것도 결국에는 짤리고. 역할대행서비스 사무소에서 삼손과 함께 일하고, 고기집에서 만난 미향과도 관계를 맺으며 지내다 종내에는 사자견으로도 불리는 짱아오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맡게 된다.
케이블TV 동물관련 프로그램에서 이 짱아오 종을 본 적이 있는데, 털과 갈기가 무성하고, 덩치는 엄청나게 크고, 힘도 좋고 사나운, 언뜻 사자의 모습 비스무리한 대형견이었다. 재미있게 연출하려고 그랬던지 그 프로그램에서는 주인말 안듣고 먹을것만 탐하고, 집안에 똥을 싸질러대는 조금은 멍청한 모습들만 보여주었는데, 소설속 짱아오 '라마'는 상당히 영리하고 기품이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고 마음도 잘 내주지 않던 '라마'가 처음부터 임도랑의 말 만큼은 기가막히게 잘 듣고 따랐기에 임도랑은 엄청난 부자인듯한, 조금은 비밀스런 은행나무집으로부터 고액의 알바비를 받으며 매일 라마를 산책시키게 된다. 시종일관 멀리서 은밀한 시선을 보내는 듯한 은행나무집 주인 아가씨. 바닥으로 치닫던 임도랑의 인생이 어쩐지 라마로 인해 다시 상승기류를 타게 되는데...
고기집 불판닦이 할때의 절박함과 성실함이 라마로 인해 돈을 다시 손에 쥐게 되자 눈녹듯 사라져버리고 점점 변해가는 임도랑의 모습에서 좋은 결말은 안나겠구나 싶었다. 척하니 마음을 내주고 의젖하기만 하던 라마의 모습에서도 무언가 반전이 도래할 것이 예견되었다. 다만 그 반전과 결말이 생각보다는 덜 자극적이어서 조금 의외였다. 좀더 잔인하고 좀더 혼돈스런 결말을 상상했었는데. 기대에 못미쳤다기 보다는 생각과는 다른 마무리였던 것.
여러가지 임도랑의 사유나 생각, 세상바라보기가 공감되는 부분들도 많았고, 배울 것도 많았고, 곱씹을 거리도 많아 좋았다. 소설 자체의 가독성이나 흐름도 꽤나 괜찮았다.
그렇지만 삼손과 역할대행사무소에 얽힌 에피소드들은 어쩐지 일본작가 '미치오 슈스케'스런 설정과 전개가 생각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실한 사람들끼리의 만남과 끌림, 고독한 존재의 모습을 훑는 씁쓰레함을 말하려 하는 것은 알겠으나. 현실과 비현실, 공감과 비공감의 경계에 선 역할대행사무소 출입문. 조금은 억지스런 삼손과 그 주변 설정.
무언가 거대한 반전의 키를 쥐고 있을 것만 같았던 황진주는 그냥 그걸로 끝이었던가. 뜬금없는 미향과 동물병원 원장의 얽힘은 또 무엇이었나. 베일에 휩싸인 은행나무집 주인여자의 정체와 사연은 생각보다 시시했고, 라마의 최후도 그냥 그랬다. 무엇보다도 처연하고 절박한 인생의 돌파구를 제대로 보여주었는가 하는 문제.
허술한 문장이나 표현없이 꾹꾹 눌러담아 쓴 글이 참 괜찮았고, 시작도 좋았는데, 출구로 가는 방향이 조금 잘못 설정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수상으로 드디어 작가의 이름에 비치게 된 빛. 그 빛 아래 차기작은 분명 좀 더 완성도 높고 공감대 높은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져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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