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도 예술이 되는 제주,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여행을 하다보면 곳곳에서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규모가 있는 국립ㆍ시립박물관부터 특색있는 테마 미술관, 공공미술 프로젝트까지 요즘은 지역마다 볼거리가 참 많아졌다. 예술을 품은 제주도 빼놓을 수 없다.
탐라에서 제주까지, 섬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는 국립제주박물관이 있고,
몰락한 구도심 탑동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아라리오뮤지엄이 있고,
이타미 준의 고요한 유토피아 핀크스뮤지엄이 있으며,
천 개의 바람으로 남은 사진가 김영갑의 갤러리두모악이 있다.
서귀포를 품은 이중섭미술관과 기당미술관, 왈종미술관도 여행자의 발길을 붙든다.
제주에서 꼭 들러봐야 할 뮤지엄 30곳을 추려 《제주 뮤지엄 여행》에 담았다.
박물관에서 엿본 탐라, 미술관에서 만난 제주
당신이 미처 몰랐던 제주 이야기
최근 10여 년간 제주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 중 하나는 인구와 경제규모에 비해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개성 있는 전시공간을 찾아 창의적이고 실험성 높은 젊은 작가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고 있다. 문화ㆍ예술의 불모지였던 제주가 ‘예술을 품은 보물섬’으로 주목받으며 많은 미술인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것이다. 시각적 포만감을 추구하는 여행에서 나아가 이제는 발품을 팔며 꼭 찾아가야 할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떠나는 여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책은 해마다 새로운 뮤지엄이 지어지는 제주에서 내용과 형식에 충실한, 제주다운 멋을 느낄 수 있는 뮤지엄 길라잡이로 기획되었다. 책을 덮고 나면 이미 자연환경 자체만으로도 힐링의 공간이었던 제주가 더욱 세련되고 풍요로운 섬으로 다가올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뮤지엄은 크게 세 가지 기준으로 선정했다. 우선, 제주의 역사와 풍속사를 알 수 있는 민속문화사 박물관, 그리고 제주의 풍광과 어우러져 개성을 보여주는 미술관들에 주목했다. 제주의 문화발전을 위한 하드웨어적 역할을 수행하는 공립뮤지엄, 제주인의 삶과 문화를 들여다보는 소프트웨어적 탐색을 제공하는 소규모의 테마박물관들이 해당된다.
두 번째로는 제주의 숨결을 받은 미술가들의 작품과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뮤지엄들이다. 한때 유배의 섬이었던 제주에서 〈세한도〉를 완성한 추사 김정희, 한국전쟁 때 서귀포에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이중섭, 그리고 제주인보다 더 제주의 자연을 사랑했던 김영갑 등 작가들의 삶과 작품, 그들을 위해 지은 뮤지엄들을 다뤘다.
마지막으로, 제주 예술인들과 마을주민들이 이룬 문화예술마을을 조명했다. 전국에서 모여들기 시작한 문화예술인들이 마을주민과 공공미술을 협업하면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부모는 물론, 궂은 날씨가 잦은 제주에서 하루쯤 진지하게 박물관 투어를 해보는 것도 유익할 것이다.
1장 〈기억의 저장소〉에서는 몰락한 구도심 탑동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아라리오뮤지엄 4곳(탑동시네마, 탑동바이크샵, 동문모텔 I, II), 제주의 역사를 말하며 빼놓을 수 없는 4.3사건을 조형예술로 승화한 제주4.3평화공원과 순이삼촌비, 1100도로(신비의 도로) 곁 숨은 명소 제주도립미술관, 태평양전쟁이 남긴 제주의 상흔을 간직하고 있는 제주전쟁역사평화박물관과 가마오름에 대해 살펴본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현대예술을 접할 수 있는 미술관도 있지만, 제주는 아픈 역사를 빼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에 다소 무거운 글과 가슴저리는 내용이 녹아 있을 수밖에 없다. 핫한 여행지로 뜨고 있는 해변가 주변에 4.3기념관이 있고, 섬속의 섬 우도에 우도해녀항일비가 세워져 있는 이유다. 제주, 아는 만큼 보이게 될 것이다.
2장 〈제주 민속문화의 원형을 찾아서〉에서는 저자가 개인적으로 제주에서 인간의 손길이 가미된 것 중에서 가장 걸작으로 꼽는다고 하는 ‘돌문화공원’을 시작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국립제주박물관, 제주의 바다 땅 사람을 한눈에 담은 제주대학교박물관, 제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박물관 제주해녀박물관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3장 〈풍경이 된 뮤지엄〉에서는 화산이 낳은 예술작품, 제주의 거문오름과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이타미 준의 수풍석 미술관과 안도 다다오의 지니어스 로사이와 본태박물관, 제주 오설록 뮤지엄에 대해 다루고 있다. 제주의 자연과 한몸을 이루고 있는 건축물들은 어느 계절에 가도 멋진 모습을 보여줄 준비를 하고 있다.
4장 〈섬이 품은 예술가들〉에서는 조선시대 ‘유배문화’ 덕분에 외떨어진 변방의 섬 제주에 학문과 예술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소개하면서 그 시초격인 인물로 추사 김정희를 꼽는다. 조선의 수많은 지식인들을 감금하고 유폐시켰던 통한의 섬 제주가 현재 ‘제주이민’ ‘자발적 유배’라는 용어를 낳으며 육지인들이 욕망하는 곳으로 변했으니 과거와 현재 그 의미가 뒤집혀버린 제주 문명사의 아이러니를 엿보는 것 같다. 이어, 섬이 반기지 않았던 이방인이었지만 제주에 미쳐 중산간의 매력에 빠져 천 개의 바람으로 남아 갤러리두모악을 남기고 떠난 작가 김영갑, 서귀포를 품은 고방 이중섭에 대해 얘기하며 기당미술관, 왈종미술관을 덧붙여 소개한다.
5장 〈미술을 품은 마을〉에서는 쇠락해가던 마을 및 학교가 예술의 힘으로 다시 부흥하고 사람들이 모여들게 된 공공미술의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제주현대미술관과 저지예술인마을, 더럭분교와 동복분교 얘기를 통해 옛 것과 새 것이 한데 어우러져 풍요로운 삶으로 이어진 미술마을을 돌아본다.
뮤지엄을 얘기하며 그 지역의 역사와 시대적 배경이 빠질 수 없다. 이 책 《제주 뮤지엄 여행》은 제주의 역사, 문화, 예술 등이 외가가 제주인 저자의 유년시절 경험담 및 가족사와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설켜 내용이 가볍지만은 않다. 일제강점기 시절 제주민의 고통과 4.3을 테마로 한 뮤지엄들도 다루다 보니 애초에 가벼운 여행서를 염두에 두고 읽는 분들께 무겁고 비장하게 다가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제주를 사랑하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통해 관광과 힐링의 섬 이면에 감춰진 제주가 안고 있는 생채기 또한 함께 보듬으며 진짜 제주를 알아가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한국의 시골에서 자연 소재인 흙과 돌, 나무 등으로 구성된 민가를 통해 원초적 미의식을 발견한 그는 자신의 건축언어에 자연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이타미 준은 〈먹의 집〉 〈조각가의 아틀리에〉 〈각인의 탑〉 〈석채의 교회〉 〈엠 빌딩〉 〈온양민속박물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 일본과 한국을 넘나들며 대표작을 남기며 2003년 프랑스 예술문화훈장도 받았다.
재일동포로서 평생 ‘경계인’의 삶을 살아야 했지만, 일본과 한국 사이에 낀 ‘문지방 영역’에서 새롭고 독특한 건축언어를 발견했을 것이다. 그가 제주에 남긴 유작들은 경계인이었던 그의 정체성을 잘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의 풍광과 가장 잘 부합하는 걸작의 집약체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중 핀크스 프로젝트는 독자적인 건축철학이 묻어나는 미술작품이자, 제주의 빛과 바람 그리고 돌로 구성된 이타미 준의 조용하고 겸손한 제국이다. 제주의 자연과 한몸을 이룬 이 건축물들은 그에게 무라노 고도 건축상, 김수근 건축상, 대한민국 건축대상 등을 안겨주었다. - part 3, 195p 〈핀크스뮤지엄〉 중에서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국립현대미술관 등 곳곳에서 대향을 기리는 행사가 잇따랐다. 이제는 그에게 다소 과도하게 드리워진 ‘가족사랑’ ‘비운의 천재화가’란 무게를 걷어내고 작가 이중섭에 대한 평가가 차분하고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도쿄대학 경제대 서경식 교수는 이중섭을 ‘난민 화가’로 표현하며 은지화가 최악의 시대상황에서 꽃피운 최적의 예술행위였음을 주목한다. “예술은 진실의 힘이 비바람을 이긴 기록이다”고 했던 작가가 남긴 어록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 part 4, 289p 〈이중섭미술관〉 중에서
재투성이 소녀가 요술할머니의 마법에 의해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인생역전에 성공하는 신데렐라 테마는 인간 뿐 아니라 건물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 제주 공립초등학교인 더럭분교와 동복분교의 사례는 벽에 묻은 페인트가 어떻게 예술로 변했는지 보여준다.
더럭분교는 TV광고를 통해 삽시간에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동복분교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가고 SNS에 올리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학교를 찾아내는 떠들썩한 대중들의 활동이 예술로 도약한 셈이다. 이제 제주 명소가 되어 여행소개 책자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두 학교 이야기는 공공미술의 힘을 보여준다. - part 5, 309p 〈더럭분교와 동복분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