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se Feliciano
호세 펠리치아노
외국작가
1945 ~
1980년대를 장식한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와 그 다음의 글로리아 에스테 그리고 세기말이었던 1999년에 쏟아져 나온 미끈했던 리키 마틴, 배우활동도 겸한 제니퍼 로페즈 그리고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아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등은 영미 음악과는 색조가 다른 라틴 팝으로 유명한 가수들이다. 이제는 흑인보다 미국에서 인종비가 높은 히스패닉 계들의 음악이라 할 중남미의 라틴 팝은 1950년대에 국내에도 번안되어 애청된 곡 ‘베사메무초’ ‘키엔 세라’가 말해주듯 특유의 낭만적인 리듬과 애조 띤 멜로디를 생명으로 구미사회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인기를 누려왔다. 라틴 팝 하면 상기한 이름들이 먼저 떠오르겠지만, 원조는 그들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 1960년대 후반 미국시장을 강타한 시각장애자 가수 호세 펠리치아노(Jose Feliciano)라고 할 수 있다. 해마다 12월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길거리 스피커와 라디오 전파를 뒤덮는 곡 ‘펠리즈 나비다드(Feliz Navidad-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뜻)’를 부른 주인공이 바로 호세 펠리치아노다. 이 곡 말고도 그는 국내에서 ‘한때 사랑이 있었지(Once there was a love)’와 ‘집시(The gypsy)’, ‘레인(Rain)’, ‘케 사라(Che sara)’, ‘내추어 보이(Nature boy)와 같은 골든 팝송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상기한 노래 대부분은 국내에서는 라디오 전파를 잠식하며 절대적인 호응을 누렸지만 본고장 팝 팬들이 기억하는 곡들은 아니다. ‘레인’의 경우도 빌보드 차트에서 76위에 그쳤다. 심지어 외국에서는 전혀 싱글로 발표되지 않은 앨범의 수록곡 가운데 우리 정서에 맞는 것들을 당대의 음악다방과 라디오 디스크자키들이 골라내 인구에 회자시킨 것이다. 말하자면 ‘한국적 팝송’이다. 디제이들이 이 곡들을 숨겨진 보물 찾듯이 발굴한데는 ‘그 애조 띤 멜로디와 낭랑한 어쿠스틱 기타 음을 분명히 우리의 팝팬들이 좋아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했을 것이다. 그럼 미국에서는 어떤 곡들이 사랑 받았을까. 그는 음악계에 데뷔한 1968년 그때부터 딴 가수들이 부른 것을 특유의 감성으로 놀랍게 바꿔낸 ‘리메이크’ 노래들로 명성을 떨쳤다. 우선 1967년 여름에 발표되어 수 주간 전미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대중화된 록그룹 도어스(Doors)의 명곡 ‘내 불을 밝혀라(Light my fire)’를 들 수 있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1년도 지나지 않은 이듬해 초에 이 곡을 다시 불러 내놓았다. 재해석해낸 곡의 질감은 원곡과는 영 딴판이었다. 능란한 어쿠스틱 기타연주를 바탕으로 로맨틱하면서도 클라이맥스에서 솟아오르며 사정없이 뿌려대는 보컬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넘어 기겁했을 정도였다. 도어스의 곡과 다르기로 따지면 거의 환골탈태 아니면 둔갑 수준. 사이키델릭 곡이 단숨에 라틴 팝이 되어 나온 것이다. 호세 펠리치아노의 ‘Light my fire’는 리메이크임에도 불구하고 전미차트 3위를 오르며 밀리언셀러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음악 팬들이 원작의 단순 재해석이 아닌 호세 펠리치아노 그만의 독창적 개조로 받아들인, 다시 말하면 그의 독자적 표현세계를 인정해준 덕분이었다. 지금도 호세 펠리치아노의 ‘내 불을 밝혀라’는 팝 역사상 가장 득의에 찬 리메이크 곡으로 꼽힌다. 국내 팝 팬들은 마찬가지 이유로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g)’이나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Susie Q’ 그리고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인 ‘케 세라’ 등을 오리지널 이상으로 호세 펠리치아노의 독창적인 버전으로 즐겨들었다. 이번 예술의 전당 공연에서도 관객들은 오리지널 가수의 목소리로 이미 많은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진 유명 팝송들을 -비틀스의 ‘Yesterday’, 사이먼 앤 가펑클의 ‘El condor pasa’, 바비 헵의 ‘Sunny’, 더스티 스프링필드 ‘The windmills of your mind’- 완전히 그의 것으로 새롭게 주조해내는 호세 펠리치아노의 노래에 감탄할 것이다. 호세 펠리치아노가 이처럼 상대적으로 리메이크 노래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아티스트와 뮤지션으로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은 리메이크가 새로운 창조임을 웅변해냈기 때문이다. 역사에 기록된 리메이크 사례로는 그가 떠오른 해였던 1968년 10월7일 야구 월드시리즈 5번째 게임에서 초대가수로 부른 미국 국가(Star-spangled banner)가 꼽힌다. 어쿠스틱 기타로 워낙 ‘괴상하게’ 부른 바람에 국가를 신성시하는 미국의 국수주의자들과 보수진영으로부터 거친 항의를 받은 것이다. 하지만 이 경기장 라이브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인기차트에도 올라 전미 차트 50위에 오르는 히트를 쳤다. 호세 펠리치아노는 그해 그래미상의 최우수신인상을 수상했다. 1945년 푸에르토리코 생인 그의 주특기는 호소력 있는 얇은 고음의 보컬 외에 낭랑한 어쿠스틱 기타의 울림이다. 선천성 녹내장으로 앞을 볼 수 없는 불리를 타고난 재능과 하루 14시간씩 연습하는 노력을 통해 빼어난 기타연주자로 거듭났다. 이름 앞에 거물 기타리스트(virtuoso guitarist)라는 수식이 모든 공식자료에 붙을 정도. 기타전문지들에 의해 수도 없이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40년 넘게 어쿠스틱 기타분야의 전설로 숭앙받으며 지금도 라틴 음악에 관한 한 ‘일렉트릭 기타는 산타나, 어쿠스틱 기타는 호세 펠리치아노’라는 일반의 인식을 확립했다. 그의 발표 곡 가운데는 ‘Fireworks’ ‘Pegao’ 등 기타 연주곡들이 많다. 라틴 기타연주자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그의 대중적 인기가 떨어진 1980-1990년대에서도 전문가들의 존경이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는 1983년 ‘Me enamore’, 1986년 ‘Lelolai’, 1989년 ‘Cielito’, 1990년의 ‘Por que te tengo que olvidar?’로 그래미 최우수 라틴 팝 퍼포먼스 상을 무려 네 차례나 수상했다. 2000년대에도 그는 계속적인 월드투어를 통해 팬들에게 라틴 음악의 로맨티시즘을 전달하는 동시에 과거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신보를 발표하고 있다. 그가 연주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음악에 대한 헌신’과 ‘음악을 향한 열정과 즐거움’이 고스란히 드러나 감동이 배가된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는 말처럼 그는 재능과 노력 그리고 낙천적인 사고로서 예술가의 전형을 확립했다. 우리가 너무도 좋아했던 곡 ‘집시’를 통해 그의 음악 하는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난 노래를 연주하고 음반을 만들어 돈을 받는 그런 집시죠/ 난 순회하는 무리의 일부예요/ 난 온 땅을 돌아다니죠/ 내 동료를 위해 곡을 만들어주고/ 슬프고 때로는 행복한 음으로 모든 곡을 쓰고 연주해요/ 어떤 곡은 사람들을 웃기고/ 어떤 곡은 사람들을 울리죠/ 왜 그렇게 되는지는 몰라요/ 하지만 난 끝없이 음악 여행을 계속해요/ 내 기타가 낡고 쉬 고되더라도...’ 이번 내한공연에서 팬들은 그가 남긴 무수한 추억의 골든 팝, 공연장에 울림을 가져다줄 상쾌한 보컬 그리고 라틴 기타 연주의 환상을 만끽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진정한 뮤지션이 전하는 헌신과 즐거움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라틴 팝가수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호세 펠리치아노의 재능과 존재감을 넘어설 인물은 없다. 우리는 세기말에 유행을 타고 우후죽순 쏟아진 라틴 팝가수들이 아닌, 그보다 훨씬 전에 등장한 호세 펠리치아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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