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그레이
Martin Gray
외국작가
문학가
1922 ~
1922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태어난 그레이의 삶은 1939년 9월 독일의 폴란드 침공과 함께 10대 마르틴은 혼란스러워진 세상 속에서 숱한 고초를 겪어야했다. 대담하게도 바르샤바의 게토(유대인 거주구역)의 담을 넘어다니며 식품을 밀수하는 밀수꾼으로 생활하던 그는 결국 바르샤바 인근의 트레블린카 수용소에 수용됐다.
'절멸 수용소'였던 트레블린카를 벗어나는 방법은 죽음뿐이었고 사람들은 탈출을 위해 자살을 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레이는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복수를 하고 세상에다 대고 트레블린카가 죽음을 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되뇌며 삶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다.
그곳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잃고 시체들을 무덤구덩이로 나르는 시체처리반으로 일하는 등 끔찍한 생활을 견디뎌냈다. 그의 일가친척 110명은 홀로코스트로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그는 살아남기 발버둥치며 유대인 멸절 수용소로 알려진 그곳에서도 ‘살아남으라’는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이를 악물고 탈출에 성공한다.
이후 바르샤바로 돌아와 게토 봉기에 참여하여 독일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복수를 위해 러시아-폴란드 지하 저항단체에 합류해서 파르티잔으로 싸운다. 하지만 곧 이에 회의를 느끼고 미국으로 망명, 맨손으로 골동품 도매 무역회사를 세워 성공을 이룬다.
저자는 미국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지만 마을에 일어난 산불로 또다시 전 가족이 몰살당하는 고통을 겪으며, 그의 세계는 다시 한 번 산산조각이 난다. 그러나 그는 자살함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고, 인권·환경·문화 관련 운동과 저술 작업에 전념한다.
마르틴 그레이는 인도주의적 활동을 한 공로로 수많은 상을 받았다. 2000년에는 ‘유러피언 메리트(유러피언 메리트 재단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한 사람에게 주는 상)’ 금메달을 수상했으며, 파리의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영향력 있고 고무적인 저술 활동과 디나 그레이 재단의 사업성과를 인정한다.”는 표시로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또한 세계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국제연합 다그 함마르셸드(2대 유엔사무총장을 역임, 사후 노벨평화상 수상)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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