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자발적 고독’이라는 말에 빠져 있다. 스스로 고독을 선택한다는 뜻이다.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시간을 오히려 즐긴다는 말이다. 예전에는 혼자서 밥 먹고, 차 마시고, 혼자서 영화 보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혼자 있으면 괜히 친구 없는 사람 같고 서글펐다. 요즘은 오히려 혼자 있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고 한다. 새벽 기상을 고집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혼자서 커피를 내려 마시고, 혼자서 음악을 듣고, 혼자서 책을 읽고, 혼자서 글을 쓰는 시간이 참 좋다. 이 책은 그런 오롯이 혼자인 시간을 통해 완성되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다.' - 〈가슴에 품은 여행〉 에필로그 중에서
“타인의 여행기를 읽으며, 언젠가 떠날 나의 여정을 꿈꿔본다”
내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괴로울 때, 나는 훌쩍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가면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늘어난다. 여행은 가고 싶은 곳에 가서,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먹고 싶은 것을 먹는 일이니까. 자율성을 극대화함으로써 상처받은 자존감을 치유하고 도전정신을 키워주는 여행. 그 좋은 여행을 코로나 때문에 못 간다. 코로나로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힘든데, 여행도 갈 수 없어 더 힘들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는 자신만의 답을 찾았다. 아파트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아이와 라면을 나눠 먹으며 소풍을 즐기고, 베란다에 캠핑 의자를 내어놓고 거실에 카페를 차린다. 새로운 여행을 떠나기 힘들 때는 지난 여행의 추억을 되새겨보는 것도 일상을 버티는 힘이 된다. 타인의 여행기를 읽으며, 언젠가 떠날 나의 여정을 꿈꿔본다. 책 속에서 고난과 시련을 극복하는 지혜를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민식 MBC방송국 PD의 추천의 글 중에서)
머리말
“여행을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어간다”
2020년 2월 17일 대구에 첫 코로나19 확진자 소식이 전해진 후 몇 달이 흘렀다. 금방 괜찮아지겠지 하던 마음이‘하루 이틀도 아니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라는 신세 한탄으로 이어졌다.
“엄마, 나 아침도 챙겨주고 온라인 과제 하는 것도 봐주고 10시쯤 출근하면 안 돼?”
“그건 좀 곤란한데….”
“그럼 엄마 아예 휴직하면 안 돼?”
어느 날, 아들이 던진 말에 마음이 짠했다.‘그래, 아이도 집에만 있으니 답답하겠지. 원격수업에 지칠 대로 지쳤겠지.’ 다음 날, 아이와 산책이라도 가려고 큰맘 먹고 정시에 퇴근을 했다. 막상 밖에 나가려니 마스크를 쓰고, 오래 걸으면 머리만 더 아프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스크를 벗고 있을 곳은 없을까?’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문득 옥상이 떠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꼭대기 층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게 불만이었는데 이럴 땐 이점이 있구나 싶었다. 옥상에 돗자리를 까는 순간부터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아빠가 집에서 직접 끓여서 가져온 라면을 보고는 “꺄악!” 소리까지 질렀다. 라면도 먹고 엄마와 손 잡고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니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오랜만에 마스크를 벗고 바깥바람을 쐬며, 노을 지는 하늘을 실컷 구경하니 나도 살 것 같았다.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나 싶을 정도로 좋았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추억 하나를 만들었다.
사상 초유의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전 세계가 그대로 멈췄다.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에다가, 국내여행 조차 힘든 상황에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 일도 망설여지게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이 어려워진 요즘 어쩌면 좋을까?
지금 할 수 있는 것에서 최대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일상에 작은 변화를 주는 것만으로 여행이 주는 효과를 낼 수 있다. 먼 이국의 사진을 보며 더 일찍 그곳에 가지 못한 걸 후회만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해보기로 하자.
“우리 예전에 감포에 갔을 때 썼던 그 캠핑 의자 못 봤어?”
“아, 그 의자 어디 있을 텐데.”
“그 의자 베란다에 꺼내 놓으면 어때?”
며칠 전, 캠핑 의자를 베란다에 가져다 놓고 보니 뭔가 허전해 탁자도 꺼내왔다. 몇 년째 방 안에 방치되어 있던 탁자가 제자리를 찾았다. 캠핑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으면 창문 너머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새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따뜻한 햇살이 나를 반겨준다. 지난 감포 앞바다에서 만났던 바로 그 바람, 햇살이다. 그리고 갓 내린 커피 한 잔이면 별다방도 부럽지 않은‘베란다 카페’가 된다. 어디 먼 곳으로 떠나지 않더라도 베란다 카페에서 삶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답답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나 나만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분명 잃은 것도 많지만 다시 찾은 것도 있었다. 바로 일상의 소중함이다. 책과 더 친해지고, 동네 산책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우리 동네에 저런 곳이 있었나?’할 정도로 동네 곳곳에 숨은 명소를 발견하는 재미를 만끽하고 있다. 매주 코스를 조금씩 바꿔가며 공원과 호숫가를 걷는 맛에 푹 빠졌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본다면 모든 순간이 여행이다.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우리 곁엔 숨겨진 보석 같은 곳이 가득하다. 초록빛 숲이 있고, 여유 있게 산책 할 공간이 얼마든지 있다.
그래도 마음이 잡히지 않을 때는 책장에서 오래된 수첩과 사진첩을 꺼내 보았다. 신세한탄은 잠시 내려놓고 이제는 정신 차리고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어 보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손으로 날려 쓴 메모, 일기, 오래된 사진들을 보며 어느덧 예전의 그 시간, 그 장소를 여행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곳곳에서 여행을 통해 더 단단해진 나를 만났다.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서 지친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신기하게도 오래된 수첩과 사진첩을 들춰보니 여행 당시 느꼈던 감정들이 그대로 살아났다.‘내가 너무 완벽한 사람으로 살려고 한 것은 아닌가. 그저 열심히만 살아온 것은 아닌가.’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도전, 두려움, 사랑, 후회, 믿음, 희로애락 등 여행을 통해 잃어버린 감정들, 소녀의 감수성을 되찾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성숙한 인간이 되어간다. 모든 것이 나 자신으로 귀결된다.
이 책은 코로나19를 겪으며 쓴 책이다. 거리두기로 집 밖을 나가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이런 시기에 답답해 하지만 말고 저자의 여행기를 읽으며 독자들이 생활의 활력을 찾기를 바란다. 당장 비행기표를 끊고 여행을 떠나라는 것이 아니다.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장소는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여러분 자신과 대화할 기회를 가지면 좋겠다. 글을 쓰는 동안 그때 그 시절, 그곳을 다시 여행하며 저자가 힘을 얻고 힐링 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잊고 지냈던 여행의 추억을 꺼내어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그 속에서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는 그런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이야기로 인해 일상에 지쳐 있는 분들이 삶을 지속할 힘을 얻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2020년 10월
저자 최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