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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야가 전 사장 아들인가? 아이고야 내가 니 니 엄마가 안고 왔을 때 처음 보고 지금 두 번째 보는데 세상에 이렇게 시간이 흘렀나? 남자 아가 억수로 이쁘게 생겼네. 니 몇 살이고?”
“네? 저 열 살이에요.”
“아이고, 열 살이 이리 크나? 내가 니 키만할 때 공장 시다 시작했는데, 세월이 좋아져서 요샌 이렇게 좋다. 세상에나......이리 온나 할머니가 맛난 거 줄께.”
가방 디자이너인 엄마를 따라 종암동이란 곳에 있는 한 공장에 갔었다. 두꺼운 안경을 끼고 계신 한 할머니는 나를 보고 이쁘다 이쁘다 하시며 요구르트도 주시고 버터링 같은 과자도 주셨다. 그러면서 학교 가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뭐든 열심히 해서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라 하셨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할머니 눈에 약간 눈물이 고여있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엄마한테 그 할머니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그 할머니가 공장 실장님이라고 하셨다. 나는 할머니가 나에게 했던 말 중 이해가 안가는 것을 몇 가지 물었다. 그 할머니가 내 키만할 때 공장 시다를 했다는데 시다가 뭐냐고. 엄마는 공장에서 일하는 보조를 일본어로 ‘시다’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있는 재봉 공장들은 옛날에 일제 강점기 때 쓰던 말들을 지금도 많이 써서 요새도 처음 일을 배우는 사람을 ‘시다’라고 한다고 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럼 그 할머니는 나 만한 열살 때 공장 일을 했다는 건가? 엄마에게 물어보니 엄마는 슬프게 웃었다. 그리고 실장님이 어렸던 시절에는 초등학교도 못 다니고 가족들 형제들 도와주려고 공장에 어린 나이에 취직하는 일이 흔했다고 하셨다. 듣고 보니 예전에 청계천 박물관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났다.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을 가자고 했다. 예전에 내가 읽었으면 하는 책을 빌리려고 갔다가 대여중이에서 못 빌렸던 책이 있는데 오늘 읽어보면 좋을 거 같다고 하셨다. 마침 그 날은 그 책이 도서관에 있었다. 제목은 [내 이름은 3번 시다]였다. 엄마에게 물어보았던 ‘시다’라는 표현이 제목에 나와서 책 내용이 궁금했다. 원유순이라는 작가가 쓴 어린이 동화였는데 장 수가 꽤 많았다. 그런데 난 두 시간도 안 되서 다 읽었다. 재미있어서라기 보다는 마음이 많이 아파서 자꾸 멈추지 않고 읽게 되었다.
책의 주인공은 이강순이라는 13살 소녀였다.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 6학년 누나쯤 된다. 강순이는 시골이 고향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집에 입을 덜어주고자 청계천의 봉제 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 때부터 강순이는 자기 이름인 강순이 대신 ‘3번 시다’로 불린다. 예전에 홀로코스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니까 아우슈비츠에서 이름대신 문신으로 찍은 번호로 불렸다던데 그런 비인간적인 모습이 우리나라 봉제 공장에도 있었던 거였다. 강순이는 가족을 위해 일하는 아주 훌륭한 소녀인데 공장에서 일만 하다가 처음 놀러간 야유회에서 또래의 학생들에게 ‘공순이’라고 놀림을 받기도 한다.
정말 짜증이 났다. 자기들은 편하게 엄마가 해주는 밥 먹고 아빠가 벌어다 주는 돈으로 편하게 생활하면서 강순이처럼 노력하며 살아가는 아이에게 ‘공순이’라고 놀리기나 하다니. 그 부분을 읽다가 엄마에게 이게 사실이냐고 물어보니, 소설이니 지어낸 이야기이긴 하지만 실제로 많았을 일이라고 하셨다. 재단사가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막아주기는 했지만 정말 철 없는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난 화가 많이 났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화가 많이 난다. 나만 그런 게 아닐 거다. 앞의 사건만 있었던 게 아니다. 나쁜 재단사는 다루기 힘든 색의 천은 강순이에게 주고 다루기 쉬운 건 자기에게 잘 보이려고 꼼수부리는 애 한테 준다. 강순이를 비롯한 시다들은 화장실로 마음대로 못 가고 창문도 없는 곳에서 옷 먼지를 마시며 일을한다. 그 장면들에서도 화가 많이 났다. 엄마가 가끔 공장에 제작을 맡기기 전에 엄마 재봉틀로 샘플을 만들 때가 있다. 조금 만들어도 엄마 사무실 재봉틀 책상에는 실이며 먼지가 가득한데, 환기도 안되고 공기청정기도 없는 그런 공장에서 옷먼지를 먹으며 일한 강순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책에는 전태일 열사에 대한 부분이 아주 짧게 나오기도 한다. 전태일 열사라고 딱 나오지는 않지만 강순이가 청계천 공장으로 가는 길에 어떤 사람이 노동법을 지키라며 분신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난 ‘아 전태일 열사 이야기다.’라고 생각했다. 엄마와 전태일 열사 기념관에 간적이 있다. 그 때 전태일 열사가 어린 공장 시다들을 불쌍해 하면서 간식을 사줬다는 설명과 사진이 나오는데 난 그 사진 속 여자들이 이렇게 어린 초등학생 나이의 아이들인지 몰랐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시에서 본 걸 생각하니 마음이 욱신욱신했다.
책의 마지막에서는 이제 성인이 되서 미싱사가 된 강순이가 나온다. 강순이는 더 이상 어린 시다가 아니고 단단해진 어른이 되었음이 느껴진다. 다 읽고 책을 덮자 공장에서 뵌 실장 할머니의 눈물이 이해가 갔다. 학교를 다니고 일도 하지 않는 어린이인 내가 얼마나 부러우셨을까? 그 할머니는 강순이 같은 어린 시절을 겪고 지금도 그렇게 일을 하시는 걸까? 엄마에게 실장 할머니에 대해 물어보았다. 엄마는 위인전에 나오는 사람만 위인이 아니라고 했다. 실장 할머니도 엄마에게 위인이라고 했다.
몇 일 뒤에 엄마가 공장에 샘플을 보러 간다고 했다. 난 이번에도 따라나섰다. 실장 할머니는 엄마에게 샘플을 보여주고 엄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일 이야기를 마치자 실장 할머니는 이번에도 사탕이며 과자를 쥐어주셨다. 난 할머니께 “엄마가 할머니 정말 훌륭한 위인이래요.”라고 말씀드렸다. 할머니는 내가 무슨 위인이냐며 웃으셨다. 그걸 들은 엄마가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몇 십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오빠 동생 공부도 시키고, 자식들 다 먹여살리고 시집 장가 보내신 게 어디 쉬운 일이에요? 실장님 정말 훌륭하세요. 제가 많이 배워요. 70넘는 나이에 이렇게 현역에서 일하시는 분이 어디 있어요? 전 실장님이 기술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장인’이지. ”
엄마의 말을 들으면서 나도 맞아요 맞아요 하며 맞장구를 쳤다. 할머니는 엄마에게 그 말이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고생을 보상받는 기분이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고칠 거 없이 완벽하게 샘플 만들어 주시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몇 번 시다로 불리셨을까? 난 엄마에게 할머니 성함을 여쭤보았다. 이순복 할머니라 하셨다. 난 엄마에게 공장 사장님께 “이순복 실장님”이라고 이름표를 만들어 드리라고 말씀드리라고했다.
‘이순복 실장님, 건강하세요. 진짜 훌륭한 위인이세요.’
이 책을 읽은 이유는 1970년 내 또래들은 어땠을까 궁금해서였다. 이 책의 내용은 1970대 배경을 바탕으로 한 3번 시다에서 주인공의 이름 이강수 노동자 이강순으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책을 읽어보니 1970년대 내 또래들은 대부분 학교도 잘 못다니고 노동자로 살았다고 한다. 나는 그 내용을 읽고 그 시대 아이들이 안타깝 다고 생각했고 그 아이들 중에는 공부가 너무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편하게 학교 다니고 학원 다니며 공부 하기 싫었을때도 있던 나를 다시 돌아보게하고 반성하게 해준 책인것 같다.
그리고 책의 주인공 강순이는 그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해서 노동자로 생활할 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내가 본받아야 할 점 인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은 강순이가 노동자여도 친구와 함께 일하고 학교도 가고 싶다는 말을 전하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는 강순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공부하는 장면이 나와서 나도 모르게 내가 뿌듯해진 것 같다. 그리고 매일 3번으로 불리던 강순이가 자기 이름을 친구나 직장동료,선생님께 말하며 마음속으로 뿌듯해 하는 것을 보니 나도 번호로 불리는 노동자가 아닌 나로 태어날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나서 감사하다고 생각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이 제대로 된 숙소도 없이 비닐하우스에서 자다가 한파에 숨졌다는 기사를 보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누군가 희생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사람들이 <내 이름은 3번시다>의 사람들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이강순’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공장에 취직하였다. 하지만 공장의 환경은 코에 먼지가 들어가 검은 콧물이 나올 만큼 열악했고, 공장장에게 성폭행을 당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을 만큼 노동자들의 위치는 비참했다. 그러던 중, 전태일이란 재단사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배우게 되고, 열심히 노동자의 권리를 외친다.
이 책은 1970년대 당시의 노동 현장의 실태를 비판적으로 바라본 책이기도 하다. 아파도 일을 쉴 수 없었고, 한겨울에도 난방 하나 없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일했지만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해봤자 빨갱이로 몰릴 뿐이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정부는 “노동자들은 위대한 산업 역군이다.” 라는 말로 듣기 좋게 포장하지만, 그 속에는 노동자의 권리를 외치는 사람들을 몽땅 간첩으로 몰아가는 추악한 실태가 감춰져 있었다.
이 책에서 강순이 학생 버스표를 샀지만 버스 기사가 받아주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어린 노동자들이 어른도 아이도 아닌 공돌이, 공순이로 인식된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잘 사는 사람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도 돈이 남겠지만, 강순이 같은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벽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 씁쓸하고, 다른 학생들과 같은 13살인데 학생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이 이해가 안 되기도 했다.
이 책을 읽고 ‘모든 노동자에게 인권이 보장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아프리카에서 축구공과 초콜릿을 밤새도록 만들어도 임금이 몇 천원도 안 되는 노동자들, 일반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하지만 더 적은 임금을 받는 외국인 노동자들 같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인권의 사각지대 속에서 혹사당한다.
이 책에서 “높은 사람들이 니들 사정 안다고 뭐가 달라져? 퍽이나 그러겠다.”라는 말처럼, 이러한 사실이 알려져도 우리는 ‘내 일이 아니니까’라는 생각으로 항상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이런 인권 침해 사례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 강순의 손을 잡아주자. 또, 전태일처럼 희망의 촛불이 되어주자. 혼자는 작은 촛불이지만 함께라면 노동자들의 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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