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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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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 EPUB(DRM) | 37.02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88971996058 |
2024년 04월 01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4월 22일 ~ 2024년 05월 05일
2024년 04월 19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4월 19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4월 12일 ~ 2024년 05월 01일
[과학의 달 EVENT]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4년 04월 01일 ~ 2024년 04월 30일
2024년 03월 21일 ~ 2024년 08월 31일
2023년 08월 04일 ~ 2024년 12월 31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19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언젠가 ‘참으로 비통한 일이었다.’ 비슷한 문장을 썼다가 ‘비통’이 너무 비장하게 느껴져서 고민한 적이 있다. ‘애통’으로 바꾸자니 둘의 차이를 잘 몰라 급한 대로 검색을 했더니 비통은 ‘슬퍼하며 울부짖다’라는 뜻이고, 애통은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다’라는 뜻이었다. ‘울부짖다’ 때문에 비통이 더한 비극을 표현한 거라 짐작했지만, 단어의 풀이로만 보자면 너무 큰 슬픔 앞에서는 오히려 울부짖을 수 없기 때문에 애통이 더 큰 슬픔일 수도 있다. 그냥 일기 같은 글이라 대충 입에 맞는 말을 쓰고 잊고 있다 이 책 ‘언 다르고 어 다르다’에서 이 부분을 읽고 답답한 속이 뚫렸다.
잘 만든 이모티콘 하나가 백 마디 말보다 나은 시대, 유튜브와 같은 영상매체의 인기가 활자매체의 인기를 넘어서면서 글은 영상의 들러리가 된 것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글을 읽고 쓰려는 사람이 많다. 깊고 묵직하며, 섬세한 생각일수록 그 생각만큼 깊고 묵직하며 정밀한 단어와 표현들이 필요하다.
‘정밀한 언어’와 ‘정밀한 사유’는 거의 동의어이다. 정밀한 사유와 언어는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 ‘잘(!)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언어능력과 사유능력은 인간 삶의 질을 좌우한다. 자신이 구사하고 있는 낱말이 정확히 무슨 뜻을 지니고 있는지, 지금 자신의 입에서 나가고 있는 표현이 어떤 느낌을 동반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하면 말 그대로 ‘의미 없이, 느낌 없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언어를 자각하는 일, 자신의 말과 글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는 일은 곧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말은 단지 말이 아니다. 말을 정밀하게 살펴야 하는 까닭은, 말 속에 우리들 자신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p. 366
저자는 이 책에서 69개의 의미소에 딸린 낱말과 표현 3000여 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단순히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낱말과 낱말 사이의 관계들을 정리하고, 네트워크를 보여주고, 연관어와 유의어들을 묶어주어, 책을 읽고 글을 쓰려는 사람이 정확하고 정밀한 표현을 쓸 수 있도록 도와주고 ‘말모음’에서 너무 잘 정리해주어 정확한 의미의 글을 쓰면서, 동시에 나처럼 표현할 언어가 빈약한 사람도 같은 표현을 두 번 쓰지 않게 도와준다. 시대와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고, 쓰였던 말의 뜻을 짚어줌으로써 그 말이 담고 있는 시대적 배경과 숨은 의미까지 함께 알려준다. 이야기책도 아닌데, 이 많은 것을 담고 있으면 지루하지 않을까? 단언하건데 손에 잡으면 놓기 힘들 정도로 재미있다. 책을 읽다가 때때로 웃었고, 자주 뭉클했다.
백성을 뜻하는 민(民)이 오래전 도망을 가지 못 하게 노비의 눈(目)을 찔러 상하게 한 모양이었고, 도(道)가 백성들에게 국법의 지엄함을 알리기 위해 법을 위반한 죄인의 잘린 머리를 손에 들고 거리에 서 있는 모양이라는 것을 읽고, 글자들을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애처가가 그렇게 다정한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과 선언문처럼 ‘언’이 붙은 글을 쓸 때는 간결하고, 단단하게 써야한다는 것을 배웠다. 집을 뜻하는 말만 해도 가(家), 옥(屋), 택(宅), 당(堂), 원(院), 각(閣), 저(邸), 호(戶),사(舍) 등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많은 말이 있다는 것.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보았던 ‘헌법재판소’가 대한민국 공공기관의 작명사에 길이 남을 파격적인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 때 우리 사회에 ‘할 수 있다’ ‘잘 살아보세’ 같은 단순하고 강렬한 구호가 넘쳐날 때가 있었다. 이제는 우리말과 글이 다시 정밀하고 아름다워지는가 했는데 요즘 다시 짧고, 뭉뚱그려지는 언어들을 보며 조금은 안타까웠다. 우리의 정밀하고 아름다운 말의 맛을 보여주는 이 책이 그래서 더 반갑고, 고맙다. 글을 읽고, 쓰는 모든 사람들은 두고두고 곁에서 볼 책이다. 이 한 권에 그치지 않고, 계속 시리즈로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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