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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07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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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 EPUB(DRM) | 16.22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18.5만자, 약 5.5만 단어, A4 약 116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91162206669 |
2024년 06월 12일 ~ 2024년 07월 02일
2024년 06월 12일 ~ 2024년 06월 16일
2024년 06월 11일 ~ 2024년 06월 24일
2024년 05월 30일 ~ 2024년 06월 25일
2024년 06월 05일 ~ 2024년 07월 04일
2024년 03월 21일 ~ 2024년 12월 31일
2023년 08월 04일 ~ 2024년 12월 31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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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된, 그리고 소통의 코드가 된 음식과 식사 이야기
러시아 음식, 특히 19세기의 프랑스 문화가 러시아 귀족층의 식탁에 자리잡았던 때의 대립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글로 된 <안나 카레니나>는 잠시 내려두고 영화 <안나 카레니나>(2012, 조 라이트)를 본다. ‘러시아문학의 맛있는 코드’를 읽기 전엔 보이지 않았던 이미지와 대사들이 눈과 귀를 자극한다. 각본이 되어있긴 하지만 톨스토이의 의식은 제대로 남겨둔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원작설명이 영화의 장면 장면에 그대로 담겨있다. 특히 저자도 언급한 레빈과 스티바의 만남과 식사장면이 그렇다. 레스토랑에 가서 러시아식 양배추 수프를 주문한 레빈에게 늙은 웨이터는(영어로 만들어진, 그러니까 러시아어를 영어로 연기한 이 영화에서) 주문하신 ‘아 라 뤼스’(러시아식) 양배추 죽을 가져왔다고 프랑스어를 섞어 이야기한다. 당시의 팽배한 프랑스문화와 이를 조롱하는 스티바의 원어(러시아어, 이 영화에서는 영어), 음식이 남아있어도 바뀌는 커다란 음식접시와 와인들 사이에서 레빈의 양배추 수프가 오히려 이색적이다. 이 장면에서도 그리고 흔히 통속적인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장면에서처럼 여자와 사랑을 빵(음식)에 비유하는 대화로 우리는 톨스토이의 원작에서의 음식이 분명 기호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짐작을 할 수 있다.
농장에서 청혼을 위해 돌아온 친구 레빈을 만난 스티바의 말대로 당시 러시아의 대조적인 이미지를 한 장면에 담고 있다. 도장 찍는 일이 전부인 공장의 오너인 스티바는 레빈에게 서류작업이야말로 러시아의 영혼이며 농장이 위장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에서 스티바와 레빈은 페테르부르크 시대의 귀족들의 가치관과 러시아 정교의 겸허함을 바탕으로 한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대조시킨다. 또한 이 모스크바에서는 포크레브스코예의 레빈은 페테르부르크에서 온 브론스키와 돌리를 사이에 둔 경쟁자가 된다. 육체가 지역적 공간이 된 페테르부르크 시대의 충돌이다. 또, 이러한 레빈도 공산주의자인 형과의 충돌이 있고 그들의 허름한 식탁엔 술과 술잔뿐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톨스토이의 의중이라기보다는 조 라이트 감독의 연출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레빈과 함께 밭일을 하는 노동자가 말한다. 위장이 아닌 영혼을 위해 살라고... 하지만 레빈은 이성을 믿는다고 말한다. 어쩌면 레빈은 혼란의 러시아가 가장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완전히 다른 이데올로기를 깨달았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레빈은 이성과 먹는 것을 동일시했지만 노동자의 말대로 그가 가장 잘한 선택인 ‘사랑’은 이성이 시키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저자는 러시아 문학 언어에서 작가의 삶과 작가의 음식, 그리고 문학안의 음식과 먹기를 소재로 평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문학들은 푸슈킨에서 솔제니친까지, 18세기 표트르1세의 페테르부르크 천도시대에서 20세기 소비에트 시대까지를 아우르는 러시아 역사를 내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부득이 러시아의 역사적 배경과 작가의 개인적 삶, 사회경제적 배경까지 다루어야 했으며 이는 우리가 러시아의 문학 언어뿐 아니라 당시 러시아의 문화, 특히 예술을 보는 또 다른 시야의 가능성을 준다. 다시 말해 저자가 말하는 러시아의 사회적 배경이 당시 문학 작가와 문학 언어, 특히 음식 혹은 먹기의 기호학적 의미에만 국한되어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을테고 러시아의 다양한 계층의 인식과 더불어 러시아의 다양한 문화(패션, 미술, 음악, 건축 등)의 하이브리드를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저자의 가이드에 따라 러시아의 다른 문화에도 접근해볼 첫 스텝 정도는 밟은 셈이다. 저자의 ‘언어가 된 음식’들과 소통할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러시아 문학의 스텝을 밟고 러시아 문화와도 대화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저자에 의하면 러시아의 정교, 유럽문화개방, 세대 혹은 가치관의 대립들은 같은 음식(문화적 산물)의 가치와 의미도 시시때때로 변화시킨다. 저자가 굳이 음식, 먹는 것, 먹는 행위에 대한 관심으로 문학을 평한 것은 식사를 ‘소통에 대한 욕구’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저자는 곤차로프의 <오블로모프>에게서 음식과 식사의 소통적 기능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을 시작한다.) 저자가 말한대로 <오믈로모프>에서 보여진 ‘맛’이 아닌 (프루스트에게서는 있는 '맛'에 대한 언급이 없는) 음식 카탈로깅 기법으로만 봐도 또 다른 소통에 대한 기호로 음식이 등장했다는 데 이의가 없어진다. 이 책의 홍보문구들이 그러했듯 작가에게 음식 그 자체, 혹은 특정음식들이 작가의 의식을 대변하거나 혹은 어떤 사회적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이 책의 중심내용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음식이라는 것, 혹은 특정음식보다 ‘먹는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고찰의 비중 또한 높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앤더슨(캘리포니아 대학 인류학 교수)의 연구를 인용해 오블로모프가 맛이 아닌 음식 그 자체에 가진 욕망을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를 넘어선 성장에 대한 거부로 해석한다. 이는 과연 그 시대 러시아만의 이야기로만 볼 수만은 없다. 현대사회의 무기력한 내가 그렇고, 그 시대가 ‘잉여인간’으로 치부한 우리가 존재하고 우리 또한 성장에 대한 거부와 먹는 것 자체가 목적인 쳇바퀴같은 삶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러시아 문학의 하이브리드 과정을 말하는 데만 그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열정과 습관, 삶과 죽음, 영혼의 양식과 육체의 양식, 탈범속성과 범속성, 타자의 것에 대한 열망 혹은 증오. 당시의 러시아 문학들은 이 모든 선택의 혼란에서 오락가락한다. 오블로모프의 역동적인 친구 슈톨츠가 ‘죽은 삶’이라 치부했던 오블로모프의 삶을 나는 비난할 수 만은 없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그의 안이하다 못해 게으른 삶은 어쩌면 나의 일부와 닮아있다. 우리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정체에 대한 두려움의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며 살아간다.
곤차로프의 문학 언어 안에서 오블로모프와 슈톨츠는 아주 대조적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양쪽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둘 사이의 어딘가 쯤에서 왔다 갔다 하며 갈등과 선택을 반복하고 또 번복하며 살아간다. 실제인물인 작가 고골 혹은 그의 작품 <광인일기>, <코>, <죽은 혼>의 인물들처럼 육체와 영혼의 양식, 범속성과 그 범속성에 대한 죄책감 사이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고골의 분열을 가볍게 혹자는 거의 그에 가깝게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고골의 단편 < 옛 기질의 지주>를 이야기한 부분은 고골의 성향만큼이나 극단의 죽음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이렇듯 극단적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의 습관성과 죽음이 연관되게 그려진 데 대해 약간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육체를 유지시키는 삶에 대응되어야 할 음식과 먹는 행위는 고골의 글을 통해 죽음의 냄새를 가지고 있었다. 저자가 초반에 언급한 음식과 먹기의 모순이 떠올랐다. 음식이 본성과 문화 사이에서 가장 모순적인 특성을 가질 수 있음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죽음에 더 가까운 노인들의 식사와 습관성, 잉태는 하지만 탄생은 없는 기괴한 땅, 병중에서도 무위의 먹는 행위만 반복되는 고골의 작품 안에서 저자가 말하는 범속성의 끝이 있었다. 그 범속성에 대한 끔찍한 죄책감 덕에 고골의 수작들이 탄생했지만 고골의 극단적인 범속성에 대한 공포가 느껴져 소름이 돋는다. 음식과 음식을 먹는다는 것에 소통이 없다면 죽음에 다를 바 아니라는 것은 톨스토이의 <우리들>에 이르면 더욱 확실해진다. 미래의 인공 음식으로 만민이 평등한 공산주의의 이상이 실현되지만 식사에서 사랑과 대화와 따뜻함은 부재하게 된다. 음식의 의미만 남고 식사는 사라진 어쩌면 너무 끔찍할지 모를 세상이다.
러시아 문학의 전문가여서라기보다 소통의 수단이라는 점에서 음식과 언어의 공통분모를 인정하고 있는 저자의 관점이 이 책의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저자의 여러 문학평론의 궁극적인 결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저자의 책이 음식을 다루고 있지만 사진이 없는 이유는 언어가 된 음식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적어도 요리책이 아닌 이 책에서는 음식의 비주얼은 글로 묘사가 되었을 때만 의미가 있다. 각 글에서마저 같은 음식도 다른 의미를 가지므로 하나의 모양새를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저자의 의도를 왜곡하는 것이다. 그 모양새는 각각 독자의 이미지로 재탄생된다.
저자가 언급하고 있는 러시아의 당시 문학들은 신, 구세대간, 혹은 보수와 진보의 대립, 국수와 개방의 대립, 민족주의와 유럽주의의 대립, 이 모든 문화가 공존하면서 충돌하는 것이 음식과 식사예절들이 식탁 위에서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장면들을 가진다. 19세기의 러시아에서 성스러운 식사에서의 소통의 시간과 공간이 와해가 보여주는 계급의 붕괴가 단적으로 그렇고, 또 당시보다 더 다양한 가치관과 세대와 문화들이 충돌하는 네오코즈모폴리턴시대(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의 연속선상에서 바로 현재 '소통'은 가장 큰 화두이지 않은가. 저자가 음식에 대한 담론의 발생에 대해 말한 것처럼 세계적으로 붐을 일으키는 요리TV 프로그램들의 범람 또한 소통에 대한 욕구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소통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혼자만의 식탁, 육체를 가동하기 위한 식탁, 즉 기호학의 마이너스와 같이 소통이 부재한 식탁, 죽음과도 같은 식탁들이 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삶을 위한, 감사하는 식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찰으로도 느껴진다. 언어 속의 음식을 통해 러시아 문화해석의 새로운 시각을 더하고팠던 저자의 의도는 이 책이 더욱 확장되어 수많은 책으로도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차후 저작에 대한 기대를 해본다.
덧붙이자면 나는 러시아의 역사에 대해서도 문외한이고 문학에 대한 연구를 많이 접해본 적이 없어 저자가 들려주는 러시아의 역사와 표트르대제 시기의 페테르부르크 천도, 그리고 그 공간이 가지는 기호학적 의미를 읽고 있는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다. 때로는 유럽문화를 동경하고 모방했던 일본의 역사도 떠올랐고 음식의 양이 중요한 모스크바 시대를 읽으면서는 권력이 계급적 강요와 물질의 질량적 의미에 기반하는 데 현재 자유주의의 모습과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번역으로밖에 접할 수 없었던 러시아 문학작가들이 선호하던 음식만큼의 의식 뿐 아니라 문체에서도 그 성향이 반영되었었다는 새로운 사실 또한 흥미롭다. 아마 푸슈킨처럼 일체적인 취향과 행동을 보여준 문학에서 저자는 이 책을 쓸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다른 문학을 통한 언어, 미술 등에서의 음식과 식사가 이제는 다르게 보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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