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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2년 01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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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456쪽 | 1,953g | 140*225*7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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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사이어티가 있었다. 소사이어티는 사람들의 삶을 관리했다. 사람들의 탄생, 사랑과 결혼, 죽음. 모든 것이 소사이어티의 관리와 계획 하에서 이루어졌다. 예술은 각 분야에서 100점만 선별되어 남겨졌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창조력은 사라지고 기존 데이터의 분류만이 지속되었다. 어두운 면은 철저히 감춰졌다. 소사이어티에서 외면받는 비정상, 일탈자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외면받고 잊혀졌다. 그렇게 소사이어티 속에서 사람들은 행복했고, 그들이 안전하다고 느꼈다.
『리치드』는 <매치드> 시리즈의 마지막권이다. 『매치드』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크로스드』를 거쳐 드디어 결말에 와닿았다. 이번 권에서는 견고했던 소사이어티가 무너진다. 매치드에서 묘사된 소사이어티, 크로스드에서 묘사된 바깥영역과 변화의 가능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세계의 전복. 순차적으로 진행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 지어진다.
매치드는 카시아, 크로스드는 카시아와 카이의 관점이었다면 리치드에서는 한 명이 더 추가된다. 잰더. 삼각관계에 있는 세 주인공이 드디어 서로의 심정을 모두 내보인다. 세 사람의 관점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야기가 좀 더 풍부해진다. 그동안 잰더가 어떻게 카시아를 생각해왔는지, 그들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있는지 드러난다. 서로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에 오히려 삼각관계의 질척한 느낌이 없다. 이들의 사랑은 정말 소사이어티의 매칭처럼 깔끔하며, 젠더와 카이는 공평 조건 속에서 게임을 하고 있다. 몇 번을 교차하는 만남 속에서도 그들은 쉬이 감정적이 되지 않는다. 뿔뿔이 흩어져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멋대로 행동할 수 없는 위치 탓이기도 하지만 역시 이상적인 애정, 사랑 때문이다. 물론 카이와 젠더의 성격이 워낙 신사적인 탓도 있겠지만.
인도자를 위시한 봉기세력은 오래전부터 소사이어티를 무너트릴 계획을 진행 중이었다. 많은 이들이 소사이어티 내부에 잠입해있었고, 소사이어티는 스스로의 죄업으로 무너져내린다. 소사이어티가 만들어낸 바이러스가 소사이어티를 무너트린 것이다. 봉기는 서서히 진행되었고, 주인공들은 봉기 한 가운데에 있지만 역시나 결정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다. 봉기세력이 그들이 방치했고 기회로 삼은 수습하는 과정에서 카시아, 카이, 잰더를 끌어들이기는 한다. 그러나 그조차도 그들에게 대단한 사명이나 야심이 아닌 '남들을 구하고, 연인을 구하고, 내게 주어진 일을 다하려는' 소박한 동기로 진행된다. 주인공들은 개인으로서 그들에게 주어진 역할만을 수행한다. 그들은 인도자가 아니니까. 그렇게 해서 붕괴된 소사이어티의 모습은 이야기의 핵심에 녹아있으면서도 배경으로 남는다. 그 점이 인상적이다.
많은 이들이 죽어갔지만, 그 전에 박진감 넘치는 싸움은 없었다. 자유와 해방을 외치치며 깃발을 흔드는 사람들도 없었다. 당연한 수순을 밟듯이, 자연스럽게 죽어가듯이 소사이어티는 사라졌다. 커다란 이념을 위한 해방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소박하게 봉기를 맞아들인다. 거창한 싸움이 없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 자체가 소사이어티에 대한 반역이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분류자인 카시아는 소사이어티 시스템의 논리에 익숙한 존재이다. 분류자는 데이터만 분류하는 일종의 사회적 부품이다. 그랬던 카시아가 카이라는 사랑을 통해 창조하는 법을 배워간다. 카시아는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 카이라는 선택을 했고, 이로서 분류자이기보다 예술가가 되기를 선택한다. 이번 권에서 카시아가 만들어낸 '갤러리'는 이 시리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예술과 창조라는 주제를 잘 드러낸다. 소사이어티가 무너지고 점염병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동안에도 예술이 생겨나고 부활한다. 사람들이 모인 공간에서 시와 그림 노래와 춤이 나타난다. 억압되어 있었다한한들 예술은 죽지 않고,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자유를 찾는다.
리치드가 끝날 때에도 여전히 사회는 불안정하고, 많은 것들이 새로 정립되어야 한다. 아예 그 세계를 떠나 알려진 세상 밖의 다른 희망을 찾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는 알 수 없다. 세 사람이 보지 못한 이 세계의 다른 모습도 보고 싶다. 그러나 카시아를 둘러싼 관계는 여기서 정리되었다. 그러니 매치드 시리즈는 여기서 끝났다. 아쉽지만, 즐거웠다. 이들의 이후 모습이 궁금하지만 이야기는 끝. 예술이 꽃 피고 선택의 기회가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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