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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0년 03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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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24쪽 | 236g | 122*190*15mm |
ISBN13 | 9788946421196 |
ISBN10 | 89464211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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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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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7년차, 원예가 취미인 남편 덕분에 우리 집에는 이제껏 쭉(지금이 다섯 번째 집) 베란다 정원이 있었다. 처음에는 별 관심 없이 구경만 하다가 점점 주워듣는 게 많아지면서 나도 약간은 풍월을 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식물이나 원예, 정원에 관한 책들에도 관심을 쏟게 되었는데, 최근 눈에 들어온 게 이 책이었다.
야마자키 나오코라 작가는 소설 <타인의 섹스를 비웃지 마라>를 통해 알게 되었다. 솔직한 문체가 마음에 들어 영화로도 봤고, 일본에서 유학하던 당시에는 아기가 태어나 휴학을 하면서 <엄마가 아니라 부모가 된다>라는 육아 에세이를 읽은 적도 있다. 그러면서 막연히 이 작가에 대해 상상했다. 나와 같은 세대, 비슷한 삶의 변화를 겪는 사람. 완벽해 보이던 한 개인이 나처럼 타인과 함께 생활을 공유하며 가족이라는 굴레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 하지만 그 모습이 답습이나 순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서 공감가 위로가 되기 충분했다.
이 책은 그녀가 엄마가 되기 이전에 쓴 베란다 정원 일기이다. <햇볕이 아깝잖아요>를 읽으며 나는 자주 미소를 지은 것 같다. 식물을 기르는 과정에 대한 호기심과 그걸 실천하면서 깨닫는 개인의 사고도 좋았지만, 베란다 정원을 바라보며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작가의 생각을 엿보는 게 유익했다.
'경치를 빌린다'는 뜻의 '차경(借景)'이라는 단어는 조경 전문가들이 쓰는 용어지만, 많은 사람이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지금 사는 집을 계약한 이유도 집 구경을 하던 날 경치가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12쪽
이를테면 '차경'이란 단어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나는 우리 가족의 지난 일본 생활을 떠올렸다. 베란다 정원 밖으로 동네 호수와 하늘이 보여서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만 있어도 힐링이 되는 나날이었다. 일본어를 배우고 익히던 당시, 나는 저 '차경'이란 단어를 특히나 좋아했다. 일본 사람들은 경치를 빌린다는 표현에 익숙하다. 동네 카페에 가도 한가운데에 중정(마당 한가운데에 있는 정원)을 마련해 손님들을 위해 그 공간을 정성껏 가꾼다. 항상 식물을 말라 죽이기만 하던 내가 초록의 힘을 좋아하게 된 것도 어쩌면 자주 풍경을 빌리는 입장이 되면서가 아니었나 싶다.
작가가 사회 일원, 나아가서 세계에 속한 한 사람으로 고민하게 되는 다양한 문제들이 식물을 매개로 이어질 때 나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가 곱씹었다. '나는 쓰레기야', '전부 다 쓰레기야'라는 말을 자주 한다는 작가, 에도 시대 기형 나팔꽃이 사랑받았던 문화를 알고 나서 외모 지향주의, 글 쓰는 여자 작가가 맞서야 하는 편견 등에 대해 풀어낸 이야기도 꽤 진솔했다.
나팔꽃이나 여주를 기르며 베란다 정원에 녹색 커튼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있다. 발단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그 사건 이후 일본 일상에서는 '절전' 태도가 중요한 이슈가 된다. 자신의 삶 자체가 부끄러워졌던 저자는 조금이나마 이런 운동에 보탬이 되고자 '절전 생활'을 결심하고, 녹색 커튼을 실천한다.
혼자 힘으로는 서지도 못해서 지지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주제에 당당하다. 막대기와 그물이 없으면 땅을 길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 사실을 전혀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것 같다. 뻔뻔하게 남의 힘에 의존해서 위로, 위로 뻗어나간다. 어쩐지 나는 그 뻔뻔함이 좋다. --- 168쪽
나팔꽃이나 여주를 바라보며 그들의 나약함을 이렇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은 연약함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작가가 세상의 작은 것들을 바라보며 '그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는 말을 하게 되기까지 홀로 싸워야 했던 문제들이 분명 존재한다. 나는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져가는 작가의 모습이 대견했고,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부끄럽지만 나도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마음이 문학으로 향할 때, 나도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며 가만히 그녀의 글을 쫓아갔다. 예전에 야마자키 나오코라의 글을 읽을 때 솔직함은 좋으면서도 다소 정제되지 않은 표현이 불편했던 적도 있다. 이제는 그녀의 글을 다시 정의하고 싶다. 시간과 경험이 쌓이면서 삶이 변화하고 생각이 바뀌는 것처럼 그녀의 글은 이제 다른 시기로 접어들었다. 계절로 표현하자면 가을 같은 글이 되어가고 있다.
문학도 그렇다. 짝사랑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세상에 대해서도 그러하듯 내 방식대로 사랑하면 된다.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사랑법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쓴다. --- 206쪽
매일 보는 경치가 나의 '타이밍'과는 상관없이 바뀌어간다. 내가 세상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이 아니라는 안도감. 그 안도감이 나를 구원한다. 내가 열심히 일하건 하지 않건 세상과는 아무 상관도 없다는 가벼움. 아무리 훌륭하고 대단한 일을 해내도 지구는 그저 계속 회전할 뿐이다. 배 속의 아이를 잃어도,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다시 아이가 태어나도, 하던 일이 실패해도 꽃은 핀다.
나는 지구의 회전을 느끼고 싶다. 나 자신의 덧없음을 느끼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정원을 만들고 강가를 산책한다. --- 218쪽
가드닝이 잠깐의 집착일 거라고 생각했던 작가, 하지만 그 정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에필로그에 남긴 글을 통해 짐작할 수 있듯이 작가는 가드닝과 육아, 글쓰기를 겸하고 있다. 꾸준히 자신이 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적으며 리듬에 몸을 맡기고 있다.
책을 덮으며 나는 개인이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 삶의 루틴에 대해 생각했다. 정말로 어떤 습관은 연습을 거듭해 자기 것으로 체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물 주는 삶'은 도통 그렇지가 않다. 내 의지대로 바꾸려 해도 결국 내가 자연에 속해버리고 마는 취미, 나는 이 '원예'라는 활동에 조금 더 나의 리듬을 맡기고 싶어졌다. 앞으로는 더 주체적으로 식물을 바라보고 그 섭리를 톺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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