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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12년 12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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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48쪽 | 420g | 140*210*20mm |
ISBN13 | 9788937833960 |
ISBN10 | 8937833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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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세상엔 사상가도 많고, 그들의 글들도 많다. 지젝... 벌써 그 이름을 들어본 지가 십수년이 넘은 것 같지만, 여태 제대로 책한권 읽어보질 못했었다. 가끔씩 그가 썼다고 하는 기사? 에세이?를 접해본 적은 있지만, 한 사상가의 글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누군가의 설명 없이 단편적인 글 한두편으로 그 주장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 이 책 한권으로 지젝을 알았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되겠지만, 어쨌건 그래도 며칠간이라도 집중적으로 이 사람의 생각을 따라가다 보니 어렴풋한 감을 잡은 것 같은 느낌이 남는다.
한때 조금 들춰보았던 유럽의 신좌파 또는 후기구조주의 계열의 맑시즘 해석들에 대한 책들이 있었기에, 저자가 주장하는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사회분석이 아주 생소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지젝의 글은 확실히 현실의 정치적 이벤트나 문화현상과 조금 더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고 보인다. 뭐, 과거에 접했던 글은 나에겐 역사적으로 다가오는 것이고, 이 글들은 내 기억에 남은 뉴스들과 관련이 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중동지방의 민주화 바람, 그리고 각국의 선거판세 등등에 대해서는 정말 동시대적인 분석이 적절하다고 할 수 밖에 없겠다. 특히 우리사회의 여러 격동적인 사회변화에 대한 적절히 현실적이면서도 기본적인 이론의 입장에 충실한 글쓰기 결과를 잘 접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국내의 이와 관련된 글이 있다 없다고 말하기엔 내 독서범위나 너무 좁은게 사실이지만)
가장 기본적으로 지젝은 현대 자본주의의 세가지 특징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이윤 추구에서 지대(주로 사유화된 '공유 지식'과 천연자원에 기초한 두 가지 형태) 추구로 전환되는 장기적 추세다. 둘때, 더 오랜 기간 '착취'당하는 일이 오히려 특권으로 인식되면서 실헙의 구조적 역할이 한층 더 강화되는 현상이다. 그리고 마지막 특징은 장 클로드 밀네가 '봉급 부르주아'라고 부른 새로운 계급의 부상이다."
뭐, 거의 어려움 없이 이해가 되는 내용이다. 위의 현상들이 우리 사회에서도 매우 지배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핵심은 이러한 현상들을 자본주의의 특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특징'이란 말이 원문에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본성'은 아닐 지라도 '일반적인 성격'정도는 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그렇다면, 고전 맑시즘 정치경제학 교과서 내용에만 입각한 사회분석은 옳지 않다는 전제를 깔아버리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다시 말하면, 이런 현상들이 기본모순에서 파생된 표면적 현상이냐, 아니면 기본 성질이냐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입장이 꽤나 심각한 주제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당연히 중층결정이네 최종심급이네 하는 수십년 전부터 있었던 논의들이 이어지기도 한다.
이처럼 오랜만에 이론적인 고민을 넘겨받고 책을 따라가는 과정에 3장 정치적 대표의 꿈 작업의 부분에서 우리 사회의 최근 정치사회적 현상에 대한 해석과 맥을 통하게 할 수 있을만하다고 사고를 발견했다.
"전체(계급)을 대표하려면, 그 구조는 마치 '수건돌리기 게임'과 같아져야 한다. ... 즉, 나폴레옹 3세가 어느 계급도 직접 대표하지 않으면서 모든 계급 위에 군림하려면, 권력의 직접적인 기반은 모든 찌꺼기나 잔여물에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외에도 특별한 한 계급, 정확히는 적극적 대표를 요구할 만큼 통일되지 못한 계급의 대표 역할도 수행해야 한다. ... " 나폴레옹 3세가 대중들에게 어떠한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 전략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분석이다. 그리고 그것을 현대의 몇몇 포퓰리즘 논쟁과 살짝 연결시킨다. ... 적어도 내게는 나폴레옹 3세가 박정희 2세(박근혜)로 어렵지 않게 치환되어 읽혔다. 박근혜의 승리는 질서당(새누리당)을 대표하는 정치적 입장에 소농(저소득층)을 위한다는 각종 슬로건과 지속적인 캠페인을 통해 보나파르트의 집권과 너무도 유사하게 비교가 되더라. 지젝의 말처럼, 단지 경제적인 해석만으로 정치를 파악하려하면 한계가 명백한 법이다. 나폴레옹 3세처럼 박근혜가 가졌던 강점은 선임자들이 그 사회에 아주 강력하게 남겨놓았던 이미지... '국가(기구)'를 대표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요건 내 생각이 덧붙여진 것이지만...
그러면 여러가지 사회모순에 대한 해결방안, 아니 돌파지점으로 지젝이 제시하는 전략은 뭘까? 한권 달랑 읽고 그런 걸 파악하는 건 말이 안되겠지만, '더 와이어'라는 미드에 대한 나름 포괄적인 분석의 글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개혁주의에서 급진적 변화로 전진하기 위해, 우리는 시스템을 계속 존속시킬 뿐인 저항 행위를 중단하는 영점을 통과해야만 한다. 이 이상한 종류의 해방에서, 우리는 남들의 우려에 대해 걱정할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순환적인 자기 파괴적 운동의 소극적 관찰자 역할로 물러나야 한다."
역시 예전에 많이 논의되던 '탈주'이야기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런 것만은 아닌듯하더라. 그의 주장은 체계 내에서의 저항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고, 그 체계를 넘어서는 '탈주'를 동반한 근본적인 질서의 파괴를 꿈꾸는 것 같다. 적들이 벌여놓은 판에서의 싸움은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아주 기본에 충실한 전략이다. 어쩜 그의 주장은 그 어떤 혁명이나 전복에 대한 주장보다 심한 것 같다. 너무도 과격하게 해석이 될 수도 있을 '소시오패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도니까 말이다. 결론적으로 지젝의 주장은 선지자의 그것도 유사한 것도 같다. 기본적으로 신을 신뢰하고 신이 보내주는 메시지를 믿고, 그에 맞추어 순교를 각오하면서도 기본 입장을 견지해라. 나를 탄압하는 것이 절대왕조이건 절대자본이든, 그들의 논리 틀에서 헤매지 마라. 너의 교리는 신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물론, 신학자나 신앙인이 아니기에 신학적 교리와는 다른 체계이긴 하다. 오히려 올바른 사회와 그것의 미래 실현에 대한 자기 신념이어야 할 것이다.
"미래에서 오는 징후는 칸트의 의미에서 '구성적'이지 않고 '규제적'이다. 징후의 상태는 주관적으로 중개된다. 다시 말해 징후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역사 연구로는 식별할 수 없고 오로지 참여적인 입장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
얼핏 마오주의의 주의주의적인 냄새도 풍기지만, 그에 대한 and/or 조건으로 정신분석학에 기반한 그의 인간관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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