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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9년 10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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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8쪽 | 530g | 140*207*21mm |
ISBN13 | 9788961963633 |
ISBN10 | 8961963635 |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18일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21일
2024년 10월 02일 ~ 2024년 10월 15일
[클래스24] 『완전 (망)한 여행』 허휘수, 서솔 작가 북토크
2024년 10월 02일 ~ 2024년 10월 24일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0월 06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08월 02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20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림을 갖고 산다. 그 그림들은 어제의 회고이거나, 오늘의 일기이거나, 내일의 희망이거나, 먼 미래의 꿈이다. 산다는 건 수많은 그림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남기는 일이다. 런던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이제 내게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그날의 그림들이 무척 그립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그리운 마음이 새로운 오늘을 떠받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꼭 런던이 아니어도 된다. 벌써 그리워졌거나 언젠가는 그리워질 나날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림처럼 그려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채 새로운 하루를 살고 있을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비슷한 그림들을 품고 산다면, 그 마음들이 이어져 서로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서문에서-
저자 조민진은 기자 생활 14년 만에 런던에서 1년을 보낼 수 있는 안식년을 얻는다. ‘좋은 걸 최대한 모아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각오로 수없이 걷고 걸었던 런던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부러움이었다. 1년의 안식년이라니. 출퇴근 시간에 동동거리지 않고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연결되었던 관계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관계 속에서의 ‘나’가 아닌 본연의 ‘나’와 진지하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꿈꾸는 미래일 수도 있다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읽어나갔다.
길치에 마흔이 되도록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저자가 낯선 런던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마치 나의 성취감이기도 한 것처럼 뿌듯한 미소를 짓게 했다. 런던에서의 첫 목표는 ‘길 잘 찾기’였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구글 지도 읽는 법을 배워 갈 곳을 정하고 매일 외출을 한다. 그 간절한 노력은 보름 만에 길 찾기 능력자가 되어 자신감으로 보상받는다. 낯선 곳이 점점 익숙한 곳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 대견하지 않았을까.
새벽부터 밤까지 치열하게 살아야했던 직장인의 삶을 내려놓고 시간의 자유를 얻은 기분은 어떨까. 나 같으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다. 물론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도 없진 않겠지. 런던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고 기다리는 것이 일상인 그들의 시간에 익숙해져 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쓰면서 바쁘게 살았던 그녀가 갑자기 더 이상 일이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런던에서 일어난 어떤 일을 보고도 관여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고 허전해 한다.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이 기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은 소속감을 느끼는 존재라고 했던가. 이런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현지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뉴스 생산자였다가 소비 주체로 살면서 뉴스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적, 물리적 자유를 얻었지만 외로움은 감수해야 할 자신의 몫이었다.
그림이 있는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했다. 모네의 그림만이 아니라 여러 화가들의 그림이 들어있다.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글은 술술 읽힌다. 낯익은 그림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림을 선택하고 글을 쓴 것인지, 글을 먼저 쓴 다음 적당한 그림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조화로움에 감탄했다. 오랫동안 정제된 글을 써 온 기자라는 직업의 내공일까. 역사와 정치, 문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마치 취재한 듯 생생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림이 쉽게 읽혔다.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No Woman, No Cry」
영국 화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작품이다. 인종차별 범죄의 희생자였던 18세 흑인 청년 스테판 로렌스의 죽음 앞에 바친 그림이란다. 자메이카 출신 음악가 밥 말리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그림의 주인공은 희생자 청년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건의 배경을 알고 나면 그림의 의미가 환해지고 비로소 공감하게 된다. 그림 한 점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알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걸으면 많은 게 좋아졌다. 가끔씩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낯선 곳을 찾아내는 성취감도 생겼으며, 글쓰기에 좋은 소재나 새로운 계획들이 번뜩 떠오르기도 했다. 지도를 보고 걷는 건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가능했다. 하늘과 구름과 강처럼 언제나 주변에 있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쳐다보게 됐고, 목적지를 찾으려는 의지를 담담하게 실천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게 됐다. 내가 가는 길을 스스로 찾는 건 내가 나를 믿는 일이었다. 나는 길치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 지도를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을 뿐.(P93)
로런 킬리 「모두 함께 걷기」
I walk so much that my calf muscles have become strong and well defined.
…… I an the boss of me.
(나는 너무 많이 걸어서 종아리 근육이 점점 강해지고 뚜렷해졌다.
…… 나는 나의 보스다.)(P95)
보는 걸로 만족했던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패션쇼를 본다. 영어공부를 하고 처음으로 책 집필을 결심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피트니트센터에 등록한다.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40만원 하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한 가지씩 경험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언어 실력을 키운다. 놀라운 건 직장에 다닐 때의 루틴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런던에 가서도 유지했다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알차게 1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닐까 . 기자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굳혀진 부지런한 습관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처음 간 런던에서 처음 쓴 책으로 생생하게 런던을 보여준다. 정확하고 반듯한 글을 써야 하는 기자인 저자에게 이런 감성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그리움 가득 품은 유려한 글을 읽노라면 런던으로 막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림에 관심이 생긴 내게 시선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미술사학자 제임스 엘킨스의『그림과 눈물』을 언급하면서 “작품과 강렬한 만남을 나눌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미술관에는 혼자 가라” “모든 것을 보려고 노력하지 마라” 등 마지막 조언은 “충실하라”는 것이었는데 “일단 그림 한 점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보러 오겠다고 자신과 약속하라”고 했단다. 그림을 보고 사진 한 장 찍고 휙 지나가는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 한 점을 보는데 28초면 끝난다고 했다. ‘다시 보러 오겠다는 약속’, 정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자주 생각하고 들여다보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 테니까.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 거리, 비 오는 날」
읽는 내내 부러운 마음 일색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휴식을 누릴 만했다. 런던에서 1년은 그녀에게 더 큰 꿈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제대로 힘써 본 적이 있었을까 돌아보게 했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인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미루던 나를 본다. 역시 좋은 기회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만 하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좋아하는 일을 모으면 된다. 아직 내게 정해진 1년은 없으니까 우선은 내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켜켜이 쌓인 그림들을 언젠가 쫙 펼쳐 볼 수 있게...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기까지가 지난 해 11월 3일에 쓴 리뷰이다.
<덧붙인 이야기>- 꿈을 되새겨보았던 시간!
다시 읽어도 그때 느꼈던 기대감과 설렘이 되살아났다. 책 제목에 모네를 앞세웠지만 모네 이야기는 별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조민진 기자의 런던 생활의 루틴을 따라 나는 온통 나쓰메 소세키와 도쿄를 떠올리며 읽어나갔으니까. 일본어공부를 하면서 나태해질 때마다 나만의 꿈을 꾸며 지속할 수 있었다. 그 꿈이 무엇인가 하면, 중단했던 공부를 다시 시작했으니 절대로 멈추지 말 것. 또 하나는 원어민과 의사소통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언젠가 현지에 가서 주민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이다. 현지인의 동네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모임에 들어가서 일본어 실력을 키우고 그들의 문화를 접하며 함께 수다를 떠는 내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런 기회가 올까 싶으면서도 막연한 미래를 상상하면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런데, 안식년을 얻어 런던에 갔던 저자가 이 책으로 내가 꿈에 그리던 그런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 것이다! 1년이나 되는 긴 시간의 이야기를! 그러니 그녀의 여정을 따라다니면서 두근두근 설레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평소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성실함의 루틴을 런던에서도 지켰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놀라웠다. 음... 나도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기쁜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며 ㅎㅎ) 부러운 마음 가득이면서도 감탄한 건 사실이다. 14년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다가 얻은 1년의 시간을 그렇게 귀하고 경건하게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알차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으리라.
좋아하는 것을 모아 행복하고자 했던 그녀의 런던 이야기는 나에게 더욱 더 일본어공부에 분발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내게 1년의 안식년 같은 기회가 올지 어떨지 나도 모른다. 꼭 1년이 아니어도 좋지 않을까. 요즘은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여행 겸 그들의 문화를 익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똘똘 뭉친, 내게는 씩씩해보였던 그녀도 외로웠나보다. 소속감에서 소외된 그 외로움을 뉴스를 들으면서 풀 수 있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나는 그곳을 향한 그리움을 갖고 현지 뉴스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많은 사건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깨끗하고 친절하다고 알려진 나라이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나 다 똑같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지금 도쿄에는 집을 떠난 지 올 봄이면 1년이 되는 우리 큰 아이가 살고 있다. 그래서 나의 눈과 귀는 언제나 그쪽을 향하고 있다. 내일 날씨가 어떤지 부터 시작하여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때요? 이만하면 제가 꿈꾸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는 올 것 같지 않은가요???
ps: 올해의 책 이벤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지요. 기존 리뷰로 올렸어도 조금 수정해서 올리면 된다기에 반가운 마음도 있었지만, 왠지 재탕을 하는 기분이 들어서(ㅎㅎ) 그냥 올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었지요.
하지만 계속 제 마음 속에서는, 이 책으로 큰 동기부여를 받았고 가끔 들춰보고 있는데 ‘올해의 책’에서 제외한다는 것이 서운한 마음이 들더군요. 또 이 책으로 궁금증을 더해 준 모네에 대해서도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모네>를 구입해서 읽게 되었고 모네의 전시회가 도쿄에서 열리면 꼭 찾아가 보리라 마음먹었거든요. 책이 또 다른 책을 부르는 이 느낌을 사랑합니다.^^
부분 수정하기보다는 덧붙인 이야기로 갈음하였습니다.
‘올해의 책’ 이벤트를 계기로 되새겨 볼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그림을 갖고 산다. 그 그림들은 어제의 회고이거나, 오늘의 일기이거나, 내일의 희망이거나, 먼 미래의 꿈이다. 산다는 건 수많은 그림들을 차곡차곡 마음에 남기는 일이다. 런던에서 보낸 하루하루는 이제 내게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벌써 그날의 그림들이 무척 그립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그리운 마음이 새로운 오늘을 떠받치는 활력소가 되고 있다.
꼭 런던이 아니어도 된다. 벌써 그리워졌거나 언젠가는 그리워질 나날들을 자신도 모르게 그림처럼 그려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한 채 새로운 하루를 살고 있을 누군가가 이 책을 읽어주면 좋겠다. 비슷한 그림들을 품고 산다면, 그 마음들이 이어져 서로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서문에서-
저자 조민진은 기자 생활 14년 만에 런던에서 1년을 보낼 수 있는 안식년을 얻는다. ‘좋은 걸 최대한 모아서 최대한 행복하게 살아가겠다’는 각오로 수없이 걷고 걸었던 런던의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다. 책을 다 읽고 난 소감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부러움이었다. 1년의 안식년이라니. 출퇴근 시간에 동동거리지 않고 오늘 저녁은 뭘 먹어야하나 고민할 필요도 없다. 연결되었던 관계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와 온전히 자신만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 있다. 관계 속에서의 ‘나’가 아닌 본연의 ‘나’와 진지하게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내가 꿈꾸는 미래일 수도 있다는 설렘과 기대를 안고 읽어나갔다.
길치에 마흔이 되도록 요리를 해 본 적이 없다는 저자가 낯선 런던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은 마치 나의 성취감이기도 한 것처럼 뿌듯한 미소를 짓게 했다. 런던에서의 첫 목표는 ‘길 잘 찾기’였다. 걱정하는 남편에게 구글 지도 읽는 법을 배워 갈 곳을 정하고 매일 외출을 한다. 그 간절한 노력은 보름 만에 길 찾기 능력자가 되어 자신감으로 보상받는다. 낯선 곳이 점점 익숙한 곳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스스로 대견하지 않았을까.
새벽부터 밤까지 치열하게 살아야했던 직장인의 삶을 내려놓고 시간의 자유를 얻은 기분은 어떨까. 나 같으면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다. 물론 가끔씩 찾아오는 외로움도 없진 않겠지. 런던 사람들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고 기다리는 것이 일상인 그들의 시간에 익숙해져 간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기사를 쓰면서 바쁘게 살았던 그녀가 갑자기 더 이상 일이 없는 사람이 된 것이다. 런던에서 일어난 어떤 일을 보고도 관여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소외감을 느끼고 허전해 한다.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이 기자라고 소개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사람은 소속감을 느끼는 존재라고 했던가. 이런 고립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현지 뉴스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뉴스 생산자였다가 소비 주체로 살면서 뉴스가 외로움을 덜어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적, 물리적 자유를 얻었지만 외로움은 감수해야 할 자신의 몫이었다.
그림이 있는 미술관을 좋아한다고 했다. 모네의 그림만이 아니라 여러 화가들의 그림이 들어있다. 역시 좋아하는 것에 대해 쓰는 글은 술술 읽힌다. 낯익은 그림들이 많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림을 선택하고 글을 쓴 것인지, 글을 먼저 쓴 다음 적당한 그림을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그 조화로움에 감탄했다. 오랫동안 정제된 글을 써 온 기자라는 직업의 내공일까. 역사와 정치, 문화가 적절히 어우러진, 마치 취재한 듯 생생한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고 그림이 쉽게 읽혔다.
「여인이여, 울지 말아요 No Woman, No Cry」
영국 화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작품이다. 인종차별 범죄의 희생자였던 18세 흑인 청년 스테판 로렌스의 죽음 앞에 바친 그림이란다. 자메이카 출신 음악가 밥 말리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그림의 주인공은 희생자 청년의 어머니의 모습이다. 사건의 배경을 알고 나면 그림의 의미가 환해지고 비로소 공감하게 된다. 그림 한 점을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아픔을 알고 공감하는 것이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걸으면 많은 게 좋아졌다. 가끔씩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릴 수 있었고, 낯선 곳을 찾아내는 성취감도 생겼으며, 글쓰기에 좋은 소재나 새로운 계획들이 번뜩 떠오르기도 했다. 지도를 보고 걷는 건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가능했다. 하늘과 구름과 강처럼 언제나 주변에 있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쳐다보게 됐고, 목적지를 찾으려는 의지를 담담하게 실천하게 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믿게 됐다. 내가 가는 길을 스스로 찾는 건 내가 나를 믿는 일이었다. 나는 길치가 아니었다. 단지 스스로 지도를 읽겠다고 마음먹지 않았을 뿐.(P93)
로런 킬리 「모두 함께 걷기」
I walk so much that my calf muscles have become strong and well defined.
…… I an the boss of me.
(나는 너무 많이 걸어서 종아리 근육이 점점 강해지고 뚜렷해졌다.
…… 나는 나의 보스다.)(P95)
보는 걸로 만족했던 그림을 배우기 위해 미술학원에 등록하고 패션쇼를 본다. 영어공부를 하고 처음으로 책 집필을 결심하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피트니트센터에 등록한다.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40만원 하는 오페라를 관람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한 가지씩 경험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언어 실력을 키운다. 놀라운 건 직장에 다닐 때의 루틴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는 습관을 런던에 가서도 유지했다는 것만 보아도 얼마나 알차게 1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다. 한정된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방법은 이런 것이 아닐까 . 기자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굳혀진 부지런한 습관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처음 간 런던에서 처음 쓴 책으로 생생하게 런던을 보여준다. 정확하고 반듯한 글을 써야 하는 기자인 저자에게 이런 감성이 어디에 숨어 있었을까. 그리움 가득 품은 유려한 글을 읽노라면 런던으로 막 달려가고 싶어진다.
그림에 관심이 생긴 내게 시선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미술사학자 제임스 엘킨스의『그림과 눈물』을 언급하면서 “작품과 강렬한 만남을 나눌 수 있는 비결”을 소개한다. “미술관에는 혼자 가라” “모든 것을 보려고 노력하지 마라” 등 마지막 조언은 “충실하라”는 것이었는데 “일단 그림 한 점과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보러 오겠다고 자신과 약속하라”고 했단다. 그림을 보고 사진 한 장 찍고 휙 지나가는 내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림 한 점을 보는데 28초면 끝난다고 했다. ‘다시 보러 오겠다는 약속’, 정말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자주 생각하고 들여다보면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릴 테니까.
귀스타브 카유보트 「파리 거리, 비 오는 날」
읽는 내내 부러운 마음 일색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런 휴식을 누릴 만했다. 런던에서 1년은 그녀에게 더 큰 꿈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제대로 힘써 본 적이 있었을까 돌아보게 했다. 간절함이 부족해서 인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지, 미루던 나를 본다. 역시 좋은 기회는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만 하고 의기소침할 필요는 없다. 지금부터 나도 정신 바짝 차리고 좋아하는 일을 모으면 된다. 아직 내게 정해진 1년은 없으니까 우선은 내 자리에서 그림을 그려보려고 한다. 켜켜이 쌓인 그림들을 언젠가 쫙 펼쳐 볼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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