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10대가 시작되었다.
말로만 듣던 10대의 학부모가 되면서 살짝 긴장하고 있을 때쯤.
환기를 위해 창문을 다 열어놓은 상황에서 아이가 방에 들어가며 문을 밀었는데 문이 쾅하고 닫혔다.
순간 아이도 나도 서로 놀랐다. 아이는 바로 문을 열고 "바람 때문이에요"라고.. 괜한 변명을 했고, "누가 뭐래~?"하고는 서로 웃었다.
하지만 이제 곧 아이가 자기방의 문을 닫을 때가 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춘기때 그러했듯이 아이도 혼자만의 공간과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가 오겠지.
그 시기가 왔을 때 어떻게 하면 잘 대처해나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만난 책이 바로
<아이가 방문을 닫기 시작했습니다>이다.
저자 오선화 선생님이 직접 상담하며 겪은 이야기들을 토대로 엮은 책이다. 책 내용 중에도 나오는데 저자의 특징은 책의 모든 글이 구어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는데, 마치 바로 앞에서 상담을 받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TV에서 상담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쉽게 가볍게 넘어갈 이야기들이 아닌 부분도 이 덕분에 어렵지 않게 읽힐 수 있었다.
표지 아래쪽에 보면 "왜 우리 아이만 이렇게 유별날까?"라고 쓰여있다.
엄마가 되면서 우리 아이를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아야지를 수십번 다짐하면서도.. 함께 모이는 장소에서 늘 빠지지 않는 주제는 아이들이고, 이야기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왜..."라는 의문이 들게된다.
누구네 딸은.. 누구네 아들은 이러이러하다는데..
아이 앞에서 대놓고 말을 꺼내지는 못하지만, 내심 마음 속으로는 "왜 너는 이렇게 유별날까?"하곤 한다.
그 물음에 대한 대답을 저자는 책의 뒷면에 풀어주었다.
"너는 별나서 빛나는 거야"
어쩌면 "너는 유난히 빛나는 별이기 때문이야"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다.
책 전체의 메세지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아이는 하나의 새로운 인격체라는 것이다. 내가 아니고, 내 것도 아닌, 하나의 생명이며 하나의 존재 자체인 것이다. 그걸 인정하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걸 인정할 때 다른 이해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상하지 않아요? 부모 자식 사이는 어떤 조건을 이행해야만 성립되는 계약이 아닌데, 우리는 조건을 제시하고 그 조건에 맞아야 사랑할 것처럼 이야기하잖아요. 내 자식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아이가 생명이라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 생명은 존재만으로도,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환영받아야 하고 기쁜 존재다. 아이를 보며 못마땅함은 잊고, 마땅히 기억해야 할 생명에 대한 감사를 떠올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p.19)
산부인과에서 처음 아이의 심장소리를 들었을 때의 감동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내 안에 또다른 심장이 뛰고 있구나, 생명이 있구나를 느끼며 얼마나 경이롭고 감사했던지.. 그 기억을 다시 꺼내두어야겠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우리 아이니까.
"재능을 부모가 키워줄 수 있다는 건 오해입니다. 재능이라는 게 태어날 때부터 받은 것을 의미하는데 그건 키운다고 키울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p.33)
아이가 어렸을 때 육아서적에는 많은 부분이 아이에게 자극을 주어서 다방면으로 아이를 성장시켜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책도 읽어주고, 영어도 들여주고, 문화센터도 다니고, 발레도 시키고. 그러다가 아이가 흥미를 느끼지 않는 부분은 끊어버렸다. 내 계획으로는 발레를 더 시켜서 유연성을 길러주고 싶었고, 피아노를 더 시켜서 성인이 되었을 떄 악기하나는 다룰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지만. 아이의 의사를 반영해서 모두 끊었다. 물론 그 중간에 약간의 설득 과정이 있었지만. 아이가 초3인 지금 아이가 배우는 건 태권도 하나다.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며, 가끔 동네 어린이 도서관에서 특강을 하면 참가하면서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아이를 인격체로 대해주세요. 우리가 이 정도 애애쓰니 네가 이 정도는 해야 한다. 혹은 이 정도로 애써서 투자하니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고 하는 보상심리는 사랑이 아니에요. 그런 심리가 자동으로 떠오를 때가 있는 거 알아요. 우리도 신이 아니고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에게 온 생명이라 품는 거지, 사업을 시작한 거 아니잖아요. 우리 가족의 구성원인 거지, 로봇이 아니잖아요." (p. 39)
불과 몇 일전에 아이와 하교하며 나눈 대화에 뜨끔했다.
저자가 하지 말라는 말을 그대로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너한테 이것도 해주고, 저것도 해주고, 너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서 해주는데, 너는...." 전혀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이었다. 아이를 향해서 투자와 결과를 기대하는 어리석음을 버려야겠다. 그저 생명이니 감사하다는 말을 자주 생각해야겠다.
"첫째, 상대방이 했던 말을 반복하며 공감표현."
"둘째, 그랬구나, 그럴 수 있어, 나 같아도 그랬겠다 등의 표현으로 공감 표현, 혹 정말 가르치고 싶은 말이나 알려주고 싶은 마말이 튀어나오려고 하더라도 공감을 먼저 해주고 나서 표현해주세요." (p. 53)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생각했었다. 너무 뻔하게 "그랬구나~"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자칫 놀리는 것 처럼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던 아이에게 "그랬구나, 그래서 마음이 아팠겠구나"라고 했더니 "네~ 그랬어요."라며 북받쳤던 감정이 수그러드는 모습을 봤다. 아직은 어색하고 낯간지러운 표현이지만 아이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으니 익숙해지도록 해야겠다.
"아이라는 꽃을 피우기 전에 여러분도 그 옆에 피어나는 꽃이었으면 좋겠어요. ~ 누군가의 부모이기에 앞서 자신의 이름으로 먼저 행복해지세요, 자녀들이 그렇게 진짜 행복을 보고 자랄 수 있게, 자연스럽게 그 행복에 전염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꼭 먼저 행복하시길 바라요. 부모가 행복면 아이도 행복하답니다." (p. 68)
한동안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열혈 시청자였다. 평범하지 않은 아이들을 찾아가 솔루션을 통해 아이를 변화시키는 컨셉이었는데, 어느정도 보고 있노라면 문제는 아이가 아니고 부모구나를 자연스럽게 알게된다. 물론 솔루션도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라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지금 얼마나 행복할까를 생각해보면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아이 앞에서 욱하기도 하고, 다운되어 축 쳐지는 모습도 많이 보이고, 내가 지쳐 있으니 아이에게 활기차게,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몇일전 아이가 "엄마는 왜 한숨을 쉬어요?"햐고 물었다. 개인적인 어려움이 있어서 해결하는 과정인데, 아이 앞에서는 티를 내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있었나보다. 숨을 깊이 쉬는 거야라고 둘러댔지만, 둘러대고 있다는 것까지 눈치챘을 아이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는 게 내 인생뿐 아니라 아이의 인생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아이의 시간과 속도를 신뢰뢰하고 기다리는 것. ~ 빨리하기를 바라고 때론 늦을까 봐 윽박지르고, 우리 지난 시절과 견주어보면서 조급해하고 그러잖아요. 왜 그럴까요? 아이는 한 사람이지, 지난 시절의 내가 아닌데 말이에요. 그걸 알면서도 잘 안될 때마다 일부러 떠올려야 하는 것 같아요. 아이는 아이만의 속도가 있다는 사실을요. 아이는 나의 경험치와 상관없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요. 우리 함께 노력해봐요. 우리의 시간과 속도에 아이가 따라오기를 바라지 말고, 아이의 시간과 속도를 믿고 기다려주자고요. 그러면 우리들의 오늘도, 아이들의 오늘도 조금은 더 행복할 것 같아요." (p. 107)
아이가 돌 지났을 무렵부터 직장에 복귀하면서 아침은 말 그대로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깨우고, 씻기고, 입히고, 먹여서 데려다주고 출근해야하니.. 나 혼자 움직이는 것 보다 3배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아침부터 잔소리 폭탄이 쏟아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아침부터 잔소리를 하고 꾸중을 하면 하루종일 아이의 기분도, 내 기분도 나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꾸물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아침에 화내고, 저녁에 달래주고.. 아이의 속도를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한 건 알겠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올 떄마다 워킹맘의 아침을 보여주고 싶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세월아 네월아~ 옷 하나도 입는데도 나무늘보가 친구하자고 할 것 같으니.. 등교시간, 출근시간에 맞춰야하는 입장에서 마냥 기다리는 건, 현실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엄마의 감정은 아이에게 전달돼요. 엄마와 아이는 정서의 탯줄로 연결되어 있거든요. 정서의 탯줄! 그것이 답이었어요. 출산과 동시에 탯줄을 자르지만, 여전히 정서의 탯줄은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그리고 엄마의 감정은 그 탯줄을 통해 아이에게 전달되죠. '정서의 탯줄'이라는 답을 찾은 저는 딸의 우울을 치료하려고 하지 않았어요. 먼저 나의 우울을 치료하려고 애썼죠. 다시 글을 쓸 수 있는 나를 기대하고 기도하며, 자존감을 회복하려고 노력했어요. 내 마음의 집에 위로와 용기를 불어넣었죠. 결국 나는 다시 웃을 수 있었고, 덩달아 딸도 웃었어요." (p. 200)
저자의 이 고백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상황에서 이 책은 나에게 아이를 위한 육아, 교육의 책이 아니라 나를 돌아보라는 자기성찰의 책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문제를 고민하는 나에게 나의 문제를 바라 보라고 이야기하며, 나의 행복과 나의 회복을 응원하고 있다. 내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할 수 있는, "정서의 탯줄"이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펼치는 독자라면 아이에 관한 관심과 사랑은 충분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그 사랑과 관심을 본인에게 조금씩 돌려보기를 바란다. 아이를 향한 걱정과 집착에서 벗어나, 나를 사랑하고 내가 행복할 때, 아이도 한 인격체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