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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다소 호기심을 유발하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이 책의 한국어 표제는 많은 독자들이 작품을 찾아보게 하고 입소문이 퍼진 원동력이 된 것 같다. 해석 여하에 따라 결국 예감은 틀렸다고도 할 수 있고 맞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이들의 찬사를 받고 만장일치로 영국 최고 권위의 맨부커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던 이 책이 또한 나에게는 수상작 징크스(?)같은 울렁증으로 다가오고 말았다. 한마디로 재밌었지만 쉽지 않았다는 얘기.
첫번째 일독. 무작정 읽어나갔다. 보통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초반부는 작가의 캐릭터 설정과 시대배경 설명으로 그리 집중하지 않고 훑듯이 읽는데 여기선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 역사 시간에 교수와 학생들이 주고 받는 문답이나, 하다 못해 다들 천치라고 여기는 마셜 군의 엉뚱한 대답에서도 복선이 있다. 똑똑한 전학생 에이드리언이 가담한 사총사는 입만 열면 철학 운운하며 치기 어린 지적 허세가 하늘을 찌른다. 심지어 롭슨의 자살 소식 앞에서도. 소설 속 화자인 토니는 자신보다 모든 면에서 한 수위인 에이드리언을 동경하고 경외한다.
어느 날 그는 여친 베로니카의 집에 초대받게 되어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뭔가 찜찜한 굴욕적인 감정을 맛보지만 그 핵심의 실체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녀를 그의 패거리에게 소개시킨다. 그러나 베로니카와의 관계가 흐지부지하게 되고 헤어졌다고 말해도 좋을 그런 시점에서 에이드리언으로부터 베로니카와 교제 중이라는 편지를 받는다. 토니는 인상적인 엽서에 쿨하게 잘 지내보라고 답장했고 그걸로 두 사람은 그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졌다.
세월은 흐르고, 환갑을 넘긴 토니 웹스터에게 어느 날 날아든 편지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베로니카의 어머니 사라 포드. 베로니카도 아니고 그녀의 엄마가 무슨 일로? 이유 모를 약간의 돈과 그의 앞으로 남겨졌다는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은 40년만에 베로니카와의 재회로 이어지게 된다. 그런데 참 나도 주인공처럼 무지한 독자인지 '아직도 감을 못 잡았느냐'는 알 수 없는 베로니카의 일침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나 그녀로부터 건네받은 오래전 토니의 답장 내용을 본 순간 사람의 기억이란 것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편지 속에는 그의 기억과 달리 형언할 수 없는 둘에 대한 악담과 저주가 퍼부어져 있었고 이는 지난 날 묘연했던 에이드리언의 죽음, 토니의 말론 그리스적이라고 했었나? 논리적 사고의 결정판이라고 했었나?(나도 기억이 가물가물...) 암튼 그렇게 젊은 날 요절한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가 어쩌면 자기가 무심코 내뱉은 말로 인해 자살이라는 절벽 아래 떨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미친다. 되돌릴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진실에 한 발짝씩 다가가는 토니는 그러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된 순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망함에 회한과 죄책감으로 깊은 무력감에 빠지고 만다.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기억만을 편집해 고스란히 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가령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푼 행동은 길게 또렷이 기억하는 반면, 도움을 받은 것은 그닥 소중한 기억으로 저장하지 않는다든가, 같은 상황에 노출되어 있던 사건의 목격자들의 진술이 서로 상이한 점등...
책을 읽다 보면 철학적 유머나 작가의 풍부한 지식도 엿볼 수 있고 무엇보다 소설의 장르구분이 무색할 정도로 반전과 교훈이 맛깔나게 버무려져 짧은 시간에도 유익한 독서를 했다는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예견대로 나 또한 이 책을 최근에 읽은 책 중엔 유일하게 2번 읽었다. 그래도 아직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줄리언 반스의 매력을 가늠하기엔 충분한 작품이었다고 본다.
쉬운 독서가 아니었다. 꽤 까다로운 독서였다. 소설이라지만 사건 전개 중심이라기보다는 화자의 독백을 따라 내 얕은 배경지식까지 떠올리면서, 천천히 짚어가면서 읽어야 했으니까. 내 취향으로 보기에는? 글쎄, 좀 거리감이 있었던 것 같다.
매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의 순간은 어떤 식으로든 미래의 어느 지점을 연결시키곤 한다. 지금 내 앞에 벌어지는 모든 것들이 지난 시간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정한다면 미래 또한 당연히 그와 같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살아 있는 어느 한순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해야 하는 걸까, 늘 경건하고 엄숙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자신을 추스려야 하는 걸까. 좀 피곤해지는 기분이다.
화자인 '토니'는 진중한 쪽이라고 하기보다는 다소 가벼운 사람처럼 보인다. 애착도 크지 않고 포기도 잘하고 스스로에게 변명도 잘하는 등, 굳이 고단하게 사는 쪽을 택하지는 않는다. 그럴 수도 있겠다. 누구나 진지하고 무겁게 살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그랬던 그가 젊어 욱해서 보낸 편지를 나이 들어 다시 보면서 회한에 젖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건 또 뭔가 싶어지는 것이다. 나는 젊었던 토니의 과격함을 이해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그걸 나이 들어서 후회할 것은 아니라고(토니가 후회했다는 뜻은 아님). 일찍 자살한 에이드리언에게 미안한 마음을 느끼는 것과도 또 별개로.
이렇게 늘어놓고 나니, 내 인식에 일관성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일관성이 없는 삶, 이게 보통의 삶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완전하지 않으므로, 완전하고자 하나 그럴 수는 없으므로, 완전을 꿈꾸며 했던 모든 일들이 때로는 서로 부딪히고 따로 깨어지고 하면서 부족한 대로 시간에 맞춰 흘러 왔으므로. 너무 애달파하지 말고, 너무 부끄러워하지도 말고, 너무 자만하지도 말 것이며, 너무 자책도 하지 말 것.
나이가 지금보다 더 들어서 나도 토니만큼 되면 좀더 회한에 빠질까. 그때 그 젊은 날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면서. 인생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해답이 없다는 바로 그 답에 초점을 맞춘다면, 솔직한 태도 또한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자신에게 솔직하기도 쉬운 시대가 아니니.
읽는 내내 혼란스럽더니, 읽고 난 뒤에도 여전하다. 이게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라는데, 나는 이게 그다지 좋지가 않구나. 예감? 나는 이 느낌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니까 말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저 / 다산책방
시간과 기억, 그리고 책임의 관계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도 괜히 어렵게 생각하는 약간 피곤한 유형의 사람이다. 그건 아마도 대부분의 어떤 상황과 결과물은 독립된 상황이 아닌 여러 작은 이유들의 누적된 결과라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일에서도 현재의 순간이나 결과치보다도 진척되어 온 경과나 진행 방향을 중요시하는 편인 것 같고.
천성이 이렇게 생겨먹어서일까?
지금 당장의 일이나 결과에 대해 이야기 할 때면, 유독 과거에 있었던 여러 상황들에 대해서 많이 언급하게 된다. 아마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도 옛 이야기들을 많이 하니까 작은 것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쫌생이 쯤으로 느낄 수도 있겠다 싶다. 뭐, 정말로 그런 속마음에서 하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억이 좋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렇다고 해서 기억력이 특별히 좋은 편도 사실 아니다. 칠칠 맞게도 문을 잠궜는지 기억을 못해서 외출하다가 도로 집으로 올라가서 확인하는 경우도 종종 있을 정도니까. 다만 특이하게 남는 대사나, 이미지, 순간의 느낌 같은 것은 약간의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의 느낌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그렇게 각인된 장면은 그나마 오랜 시간 기억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가족 모임에서 서너살 때 기억의 에피소드나 유년 시절의 이야기들을 하면 가족들도 깜짝깜짝 놀라곤 하니까. 문제라면, 그런 오랜 기억들이 대부분 별로 쓸모 없는 것들이 많다는 것 정도?
그런데 과연 그렇게 기억된 장면들은 과연 정확한가? 만약 누군가 이런 질문을 내게 건낸다면... 잘 모르겠다. 아마도 정확하다는 확언은 쉽사리 건내지 못할 듯 하다. 우선은 1) 우리 삶은 지나치게 규모가 크고 복잡해서, 사건 하나가 일어나는데 있어서 너무나도 많은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관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모든 일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있지 않는 이상 발생하는 일의 이면은 볼 수가 없을 것이므로, 기억하는 일이나 장면 역시 그러한 본질을 반영하지 못할 수밖에 없게 된다. 두번 째는 2) [EBS 다큐프라임 : 기억력의 비밀] 등의 여러 과학적 연구로도 밝혀졌듯, 기억은 하나의 사진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롭게 추가되는 정보로 인해 끊임없이 재구성되고 때로는 왜곡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에 따른 기억의 변형을 무시할 수 없다.
이쯤에서 중요한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기억'으로 대변되는 과거의 일들은 현재의 나의 의식을 구성하며 자연스럽게 현재의 판단과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리고 그 것은 또 다시 미래에 발생할 어떤 불확실한 사건의 새로운 원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의도와 관계없이 왜곡된 기억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과연 우리는 얼마만큼의 책임을 가져야할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는 이러한 시간과 기억, 그리고 책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저자인 줄리언 반스를 처음 접한 것은, 작년 이동진씨의 ‘빨간책방’이라는 도서리뷰 팟캐스트를 통해서 였다.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다’는 첫 소개를 시작으로 약 두 시간의 시간, 그것도 2회 분량으로 길게 다루어지는 것에 흥미를 가졌다. 특히, 작가인 줄리언 반스가 항상 책을 쓰기 전 ‘넘쳐나는 정보와 상상력들 중에서 과연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를 찾기 위해 고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더욱 흥미가 생겼었다. 빅데이터 시대, 파편화되는 인간 등 조금만 둘러보면 쉽게 보이는 현실의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인 논의라니. 그것도 소설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말한다니. 참 매력적으로 보였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데, 줄리언 반스가 가장 비슷한 국내작가로 김경욱씨와 김연수씨가 꼽힌다는 말에 반드시 이 책은 읽어야겠구나 결심했었더랬다.
그렇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다. 외국소설의 번역본은 조금 읽기가 어색한 감이 있어서 그닥 좋아하지않다보니 스토리를 놓치지 않는 것에 집중해서 글을 읽었던 것 같다. 느낌이라면, 평범하고 찌질한 토니 웹스터의 모습들을 보면서 왜 이렇게 인생을 피곤하게 살까를 생각했던 것 정도? 그러다가 뒷부분의 충격적 반전을 본 뒤 다시 내용들을 곱씹어 보게 되었고, 이 제목이 가진 위력을 비로소 실감했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짧은 책이지만 두 권이 쓰여진 것과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라 왜 자부했는지 알 수 있겠더라.
사실 팟캐스트에서는 이 책 제목이 상업적 의도에서 만들어진 그닥 적절하지 않은 제목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내용 상의 반전과 더불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책임'의 영역에 대한 물음까지 포함하는 아주 훌륭한 제목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으로 접하는 이가 있다면 제목의 의미에 집중해서 찬찬히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사실 줄거리 내용만으로 보면 답답할 정도로 항상 토니의 예상이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토니 주변의 가장 중심인물이라 할 수 있는 베로니카나 다른 인물들에 의해서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는 대사가 ‘아직도 감을 못 잡고 있구나’ 라는 것부터, 주인공인 토니 웹스터의 예상이 얼마나 틀려왔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렇게 예상들이 항상 틀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소설의 제목에서는 마치 결과를 당연히 예상했다는 듯이 이야기하고 있을까?
소설 속에서 토니는 마치 나처럼 상황 자체를 무척이나 복잡하게 보는 스타일의 찌질이다. 현실과 기억에 대한 수많은 왜곡 가능성과 불확실성에 대한 힌트들을 스스로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상황은 계속해서 토니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며, 마침내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의 발생에 대해서도 결국은 마치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체념하고 합리화 해버리는 단계에 이른다. 제목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여기에 있다. 체념, 합리화는 '내면적 수용'의 다른 말이니까.
작가는 아마도 우리의 인생은 불확실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사실 시간과 기억의 불확실성에 대해서는 독자에게도 주어지는 힌트들도 수없이 많다. 이를테면 처음 1부에서 보여지는 토니와 에이드리언의 고교시절 모습, 그리고 그 속에서의 역사에 대한 담론을 들 수 있겠다. 역사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각 증거물은 사건의 모든 부분을 보여주기에는 불충분하며, 해석자에 의해 의미가 달라질 수 있고, 남아있는 자의 자의적 합리화도 가능하며, 심지어 역사를 겪은 당사자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본인 조차 그것의 의도를 제외한 파급되는 영향까지는 고려하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글 전체를 관통하는 기억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한 분명한 복선이다.
글이 후반부에 접어들고 충격적 결말에 가까워 질수록, 회고 형식의 이 소설은 보다 직접적으로 작가의 생각들을 말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앞 부분에서 분명하다고 말했었던 것들을 이제와서 사실은 불확실하다며 번복하는 경우도 있다. 이 쯤되다 보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마치 소설 속 화자가 노망이라도 걸렸나 한번 쯤 의심해볼만도 하다. 어쨌든 그런 흐름을 통해 작가는 자연스럽게 사건의 발생과 해석의 불확실성, 기억의 불확실성을 확실히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사소한 언급들이 누적되어 뇌리에 남아있다가 후반부의 충격적 결말을 접하게 되면, 독자들의 머릿 속은 혼란으로 폭발할 것이다. 화자가 겪었던 그 혼란, 그러니까 전반부에 언급되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실은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혼란에 독자들은 허우적 된다. 어디까지가 정확한 상황이고 왜곡된 상황인지 곱씹을 수밖에 없다. 결국 기억은 정확하지 않으며 단지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하나의 믿음일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여기에서 머문다면, 이 책의 제목은 지금의 제목이 아닌 ‘예감은 결코 맞지 않는다’가 더 적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러한 불확실성에서 파생되는 결과의 책임범위에 대한 문제까지 독자에게 묻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은 축적의 문제고, 책임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 너머에 혼란이 있다. 거대한 혼란이”. ‘요컨대 b, a1, a2, s, v라는 정수가 포함된 축적은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의 문장들을 통해 우리는 과연 불확실한 상황들로 인해 인지하지 못한, 하지만 우리의 영향력이 얽혀있는 문제와 결과에 대해서 얼마만큼 책임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할 것을 요구 받는다.
개인적으로 아직까지도 이 책임의 영역에 대한 결론은 명쾌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책의 제목이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처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라고 하더라도 발생하는 사건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뒤늦게 나마 인지하게 된다면, 궁극적으로는 그 인과관계에 대해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결국 불확실한 인생이라 하더라도 결국 우리는 살아가야만 하고, 그러므로 그 삶이 나의 것임을 포기하지 않는 한 발생하는 결과에 대해서도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해야만 할테니까.
소설 속에서 토니는 기억조차 불확실한 자신의 행동에서 시작된 결과인 상징물 b에 대해서,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 채 당혹감과 미안함 속에서 단지 두 배의 팁을 내는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나름의 책임을 덜어내는 행동이 될까라는 스스로의 물음과 함께. 물론 그 행동은 선택이 아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밖에 없었다고 보여지지만.
어떻게 보면 이 책은 수수께끼 투성이다. 불확실함에 대해 해석을 이끌어내는 수수께끼. 기억과 시간에 대한 수수께끼.그것에서 파생된 결과의 책임범위에 대한 도덕적 수수께끼.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성특유의 아리송한 대화체까지도 수수께끼로 다가올 수 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 공포를 느낀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러한 불확실성 가득한 삶은 하나의 공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우리가 나이를 먹으면서, 그리고 삶을 살아가면 갈수록 사는 것이 녹녹치않고 웬지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삶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두렵더라도, 알지 못하더라도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모르기 때문에 흥미롭다고 생각하며 살 수밖에 없을 듯하다. 그리고 그렇기에 지금 순간순간에 더 진심을 다해 살아야하지 않을까.
아, 그리고 영어 책도 괜찮으신 분들은 원본 그대로를 읽어보시길 권한다. 분량도 그리 많지 않아 읽기 편하고, 단어 선택도 운율을 고려한 경우가 많아서 한국판보다 더 빠르게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이 세상에 초침만큼 이치를 벗어나지 않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굳이 시간의 유연성을 깨닫고 싶다면, 약간의 여흥이나 고통만으로 충분하다. 시간에 박차를 가하는 감정이 있고, 한편으로 그것을 더디게 하는 감정이 있다. 그리고 가끔,시간은 사라져버린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 그는 행위를 근거로 정신 상태를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에 개인의 삶에서는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즉, 현재의 정신 상태를 근거로 과거의 행위를 판단할 수 있다. (중략) 그렇다면 문제는 수많은 것들이 걸린 그런 문제로 인한 손실에 어떻게 대처할까이다. 상처를 인정할 것인가, 아니면 억누를 것인가. (중략) 그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는 것을 주된 목표로 삼는 사람도 있다. 이들이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부류이자, 가장 조심해야 할 부류다.
★★ 젊었을 때는 노년에 겪을지 모를 고통과 황폐를 미리 예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러나 이는 결국 앞을 내다보는 행위일 뿐이다. 앞을 내다보고, 그러고 나서 그 미래로부터 과거를 돌아보는 자신을 상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시간이 가져다주는 새로운 감정을 익히는 것. 예를 들면, 우리의 삶을 지켜봐 온 사람이 줄어들면서 우리의 인간됨과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는가를 증명해줄 것도 줄어들고, 결국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줄어듦을 꺠닫게 되는 것. (중략)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이다.
★★ 바로 우리 코 앞에서 벌어지는 역사가 가장 분명해야 함에도 그와 동시에 가장 가변적이라는 것. 우리는 시간 속에 살고, 그것은 우리를 제한하고 규정하며,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역사를 측량하게 돼 있다. 그러나 시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속도와 진정에 깃든 수수께끼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역사를 어찌 파악한단 말인가. 심지어 우리 자신의 소소하고 사적이고 기록되지 않은 것이 태반인 그 단편들을.
★★ 누구나 간단히 짐작하면서 살아가지 않는가. 예를 들면 기억이란 사건과 시간을 합친 것과 동등하다고. 그러나 그것은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다. 또한 시간이 정착제 역할을 하는 게 아니라 용해제에 가깝다는 사살을 우리는 명백히 알아야만 한다.
★★ 사람들이 ‘그 여자는 예쁘게 생겼다’고 할 땐 보통 ‘그 여자는 소싯적에 예뻤다’는 뜻일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가 마거릿에 대해 말할 땐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마거릿은 자신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는 걸 안다. 실제로도 그녀는 변했다. 그러나 나는 그 변화의 폭을 다른 사람만큼 느끼지 못한다. 마거릿은 사라져버린 것만 보고, 나는 변함없이 그대로인 것만 본다고. (중략) 우리가 지금도 가장 중점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눈이다. 안 그런가? 우리가 처음 만나,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가고, 공동담보를 잡히고, 쇼핑을 하고, 요리를 하고, 휴일을 함께 보내고, 서로를 사랑하며 함께 아이를 낳았을 때의 그 사람이 여전히 지니고 있는 그 눈 말이다.
★★ 어쩌면 이것이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에는 자신의 미래를 꾸며내고,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들의 과거를 꾸며내는 것.
★★ 배우면 배울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학문의 의미가 아닌 인생을 실질적으로 이해한다는 맥락에서 ‘배우는’ 것이다.
★★ 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 없이 고착되고 만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그걸 통해 여러 인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 폼 잡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 우리의 비극까지도.
★★ 노화로 인해 하나둘씩 기억을 잃기 시작할 때, 반응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중략) 그러나 그것 말고도 배우는 게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뇌는 고정 배역을 맡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만사는 감소의 문제요, 뺄셈과 나눗셈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뇌가, 기억이 우리의 뒤통수를 칠지도 모른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속 편하게 점진적인 쇠락에 기댈 수 있다고 믿는다면 꿈 깨시지. 인생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니까. 그래서 뇌는 이따금씩 파편적인 기억을 던질테고, 심지어는 기억의 묵은 폐쇄회로를 터주기까지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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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도하지 않았던 과거의 행동이 감당할 수 없는 결과로 다가왔을 때,
그것에 무기력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어쩌면 공포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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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뒤집혔다. 잘나가던 컨설팅 회사의 전략가로 손꼽히던 그는 사랑이라 믿었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만다. 직장도 사회적 명예도 가진 돈마저 모두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는 은주가 자신을 하나의 도구로 사용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도 그녀를 대신해서 자신이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환상에서 쫓겨나게 된다. 바닥으로 곤두박질한 상황 속에서도 그녀에 대한 순애보는 달라지지 않는다. 드라마에서 한 여자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남자 주인공은 참 멋있게 보이기만 했는데 현실 속의 도랑을 보노라면 씁쓸하기만 했다. 되려 그의 미련함을 질책하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은주를 사랑했던 것인지 은주와 사랑했던 그 시절을 사랑했던 것인지,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도 그 알량한 사랑 타령만 할 수 있는지. 이것이 남자들이 말하는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어찌되었건 은주를 통해서 도랑은 현실은 잠시 궤도를 이탈한 것이라 스스로 다독이며 다시금 되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한다.
흘러 버린 시간은 추억만 거둬 간 것이 아니었다. 말랑말랑했던 서글픔과 뜨거웠던 마음 같은 것들, 하루도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그리움들. 비 온 뒤의 맑게 핸 하늘 같은 것들, 딱딱하게 굳은 아픔 같은 것들, 달리지 않고는 식히지 못할 열정 같은 것들, 눈곱 낀 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 같은 것들도 거둬갔다. –P61
개를 산책시키는 동안 발생한 사고로 인해 그는 또 그 자리를 잃어버린다. 모든 것이 돈으로 일사천리 해결되는 장면에서 인간으로서의 박탈감이 느껴졌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만 매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마치 책정되어 있는 가격표에 의해서만 대우 받게 되는 현실에 불평하면서도 그 제도권 안에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묘한 현상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을 때 왠지 모를 불편함이 느껴졌다. 지금 당장의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그는 불판을 닦고 대행업체에서 근근이 생활을 꾸려가게 된다.
그러던 그에게 다시금 한 줄기 빛을 가져다 준 것이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이다. 개를 산책시키는데 최소 대학을 졸업한 원하는 주인들을 아니꼽게 보던 그였지만 궁여지책 속에 동물병원장의 끈질긴 요청으로 이 일을 맡게 된다. 강남의 왠만한 집 값을 호가하는 라마를 맡으면서 그는 자신이 처해져 있는 모습을 다시금 되돌아 보며 비관하기도 하지만 그 대가를 받는 순간 그는 쾌재를 부르며 다시 한번 인생 역전을 꿈꾸게 된다. 이대로라면 그는 재개는 물론 이전보다 훨씬 나은 삶을 보장 받은 셈이었다. 이런 계산이 끝나자 자신이 바닥으로 떨어진 순간 그와 함께 했던 이들을 거리를 두게 된다. 이전에는 나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던 삼손과 미향은 이제는 더 이상 나와 어울리지 않는, 그저 내가 잠시 알던 사람으로만 치부하는 장면에선 은주와 같은 모습이 보였다. 은주를 그리워하며 품었던 미향도,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위한 그에게 휴식처와 같던 삼손도 이제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어느새 힘이 잔뜩 들어간 그를 보면서 풍족한 물질 속에 물들어 가며 변해가는 인간의 본성이 참으로 간사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노숙자로 전락하여 하루 몸 뉘일 곳을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그가 이제는 명품 슈트를 걸치고 우아하게 라마와 산책하며 뭍 여성들의 시선을 즐기는 그는 원래 그러한 사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다. 누구나 힘을 가지면 이렇게 변하게 마련일까.
우린 우주의 존재거든. 우리가 죽어 재로 변하지만 우리의 질량은 우주 어딘가에서 다른 뭔가로 다시 나타난다고 생각해. 화장을 해도 마찬가지야. 습기나 다른 원소들로 우리가 생전에 가지고 있던 질량이 그대로 다른 곳에서, 아님 다른 우주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하거든.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과정 중에 영혼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우리가 평소 살면서 가졌던 우리의 생각이나 정신, 각오, 희망, 꿈, 슬픔, 절망 그런 걸 질량으로 잴 수는 없잖아. 하지만 난 그 개념들도 난 질량이 있다고 봐. 그 개념들이 영혼으로 환치가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느 날 그는 미향과 몽몽 원장의 오묘한 관계 속에 일그러진 욕망의 현장에서 그는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모래알보다 가볍다 느낀 가족의 존재가 사라지고 나서 그리고 그 이후 들려오는 라마의 실종으로 그의 한줄기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한 권의 소설 속에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냥 웃어 넘기기엔 현실이 고스란히 들어있어 그런지 보고 나서 되려 쌉쌀함이 느껴지는 책이다. 그래, 쓰디 쓴 인생이라 해도 그 안에는 나와 같은 사람이 참 많다. 달아나고 싶지만 그 굴레 안에서 살고 있는 우리의 이야기라 어느새 공감하게 된다.
세계문학상 수상작이라길래 글로벌 지향적인(!) 문학상인가 오해했었는데(이런 단순한!), 알고보니 세계일보 주최 문학상 수상작이었다...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언뜻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이 떠오르기도 하는 제목. 내용은 큰 관련없었던 듯 하지만.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의 사연은 이러하다. 잘나가는 컨설턴트로 일하다 산업스파이 진주라는 여자에게 빠져 기업의 기밀정보를 빼내주고 모든 것을 스스로 뒤집어 쓴 채 회사에서 쫓겨나고, 재산도 거덜났다. 무려 산업스파이의 오명을 뒤집어 쓴 덕에 정규직 취업이 힘들어 일을 찾다찾다 동네 잘사는 집 개들을 산책시켜주고 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것.
주인공 임도랑의 사연은 기구하고, 처지는 이를 데 없이 처연하고. 그렇지만 초반부 임도랑의 처지와 사연을 서술해나가는 부분들은 무척 재미있게 표현되어 있다. 동시에 실직자, 청년실업자들의 숨막히는 처지와 입장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어 답답함과 절실함이 깊이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은 우스운, 상당히 충격적인(?!)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개 산책 알바도 짤리고, 고기집 불판닦는 알바로 들어가 열심히 닦아대지만 이것도 결국에는 짤리고. 역할대행서비스 사무소에서 삼손과 함께 일하고, 고기집에서 만난 미향과도 관계를 맺으며 지내다 종내에는 사자견으로도 불리는 짱아오 '라마'를 산책시키는 일을 맡게 된다.
케이블TV 동물관련 프로그램에서 이 짱아오 종을 본 적이 있는데, 털과 갈기가 무성하고, 덩치는 엄청나게 크고, 힘도 좋고 사나운, 언뜻 사자의 모습 비스무리한 대형견이었다. 재미있게 연출하려고 그랬던지 그 프로그램에서는 주인말 안듣고 먹을것만 탐하고, 집안에 똥을 싸질러대는 조금은 멍청한 모습들만 보여주었는데, 소설속 짱아오 '라마'는 상당히 영리하고 기품이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다른 사람의 말은 잘 듣지 않고 마음도 잘 내주지 않던 '라마'가 처음부터 임도랑의 말 만큼은 기가막히게 잘 듣고 따랐기에 임도랑은 엄청난 부자인듯한, 조금은 비밀스런 은행나무집으로부터 고액의 알바비를 받으며 매일 라마를 산책시키게 된다. 시종일관 멀리서 은밀한 시선을 보내는 듯한 은행나무집 주인 아가씨. 바닥으로 치닫던 임도랑의 인생이 어쩐지 라마로 인해 다시 상승기류를 타게 되는데...
고기집 불판닦이 할때의 절박함과 성실함이 라마로 인해 돈을 다시 손에 쥐게 되자 눈녹듯 사라져버리고 점점 변해가는 임도랑의 모습에서 좋은 결말은 안나겠구나 싶었다. 척하니 마음을 내주고 의젖하기만 하던 라마의 모습에서도 무언가 반전이 도래할 것이 예견되었다. 다만 그 반전과 결말이 생각보다는 덜 자극적이어서 조금 의외였다. 좀더 잔인하고 좀더 혼돈스런 결말을 상상했었는데. 기대에 못미쳤다기 보다는 생각과는 다른 마무리였던 것.
여러가지 임도랑의 사유나 생각, 세상바라보기가 공감되는 부분들도 많았고, 배울 것도 많았고, 곱씹을 거리도 많아 좋았다. 소설 자체의 가독성이나 흐름도 꽤나 괜찮았다.
그렇지만 삼손과 역할대행사무소에 얽힌 에피소드들은 어쩐지 일본작가 '미치오 슈스케'스런 설정과 전개가 생각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실한 사람들끼리의 만남과 끌림, 고독한 존재의 모습을 훑는 씁쓰레함을 말하려 하는 것은 알겠으나. 현실과 비현실, 공감과 비공감의 경계에 선 역할대행사무소 출입문. 조금은 억지스런 삼손과 그 주변 설정.
무언가 거대한 반전의 키를 쥐고 있을 것만 같았던 황진주는 그냥 그걸로 끝이었던가. 뜬금없는 미향과 동물병원 원장의 얽힘은 또 무엇이었나. 베일에 휩싸인 은행나무집 주인여자의 정체와 사연은 생각보다 시시했고, 라마의 최후도 그냥 그랬다. 무엇보다도 처연하고 절박한 인생의 돌파구를 제대로 보여주었는가 하는 문제.
허술한 문장이나 표현없이 꾹꾹 눌러담아 쓴 글이 참 괜찮았고, 시작도 좋았는데, 출구로 가는 방향이 조금 잘못 설정되지 않았나 싶다.
이번 수상으로 드디어 작가의 이름에 비치게 된 빛. 그 빛 아래 차기작은 분명 좀 더 완성도 높고 공감대 높은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져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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