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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8년 10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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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56쪽 | 308g | 135*193*20mm |
ISBN13 | 9791189034078 |
ISBN10 | 1189034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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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16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쓸데없이 바쁜 것들로 가득 찬 나의 다이어리를 서영인 작가의
책으로 눌러줌으로써 뭔가 조율을 하고 싶었다.
가난하다, 쓸데없다.
이 두 단어의 공통점은 기준이 '돈'에 있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가난하고, 돈이 안되는 일은 쓸데없는 일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친정엄마가 사주를 보러 가셨다.
"아이구, 큰 딸래미 동에서 깨서, 서에서 자네."
그만큼 인생이 바쁠거라는 얘기를 듣고 난 친정엄마가
"그럼, 앞으로 내가 딸 덕보고 살 날이 오겠네요."라고 하자,
"바쁘다고 했지. 돈을 많이 번다고 했나? 실속은 없고, 그냥
바쁘게 사네."라는 답변이 날아왔다.
날 때부터 가난하고 바쁜 인생이라니. 참 우울하다.
그래서 궁금했다. 나랑 똑같은 소리를 하는 이 사람은 대체 무슨 낙으로 인생을 사는지. 어떤 즐거움으로 인생을 버티는지.
큰 애와 같이 목욕탕을 갔다. 애를 씻기고 나니 도저히 내 몸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세신을 했다. 이렇게 호사를 부려도 되나 누워서 몸을 맡긴 채로 끝날 때까지 오버스러운 자책을 했던 기억이 난다.
p.37 단언컨대 세신은 내가 아는 한, 이만 원으로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나'에게 해 줄 수 있는 호사.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여전히 전신을 하는 건 망설여지겠지만, 그래도 자책은 그만하겠다 싶다.
p.59 어쩌다 마라톤을 시작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외로워서라고 대답한다. 외로움이라고 하면 괜히 안쓰럽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데 외로움이라는 게 굳이 그런 반응이 필요한 감정은 아니다. 그저 심심함과 한가함을 공통분모로 하고 약간의 감상이 섞인 상태가 외로움이다.
살며 여러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그 감정을 정의하려고 시도한 적은 없었다. 외로움이 이토록 담백한 감정이었다니. 쓸데없이 감상이 과해지지만 않는다면 충분히 즐길 수 있으리라.
p.68 달리면서 만나는 새로운 풍경들이, 매 순간 새삼스러운 내 몸의 고통스런 신호들이 나를 계속 달리게 한다. 내가 그깟 달리기를 계속하는 이유다. 목표같은 것 이루지 못해도 좋지만 저 풍경들과 만나는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아주 느리게, 천천히 달린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시도하는 여러가지 중 하나에 분명히 달리기가 있을 것이다. 동네 공원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한돌기. 이어폰을 꽂고 무심한 표정으로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일정한 속도로 계속 돈다. 돌아버리겠다. 정말 왜 이러나 싶어서 그만뒀다. 아. 너무 목표에 집착했구나. 가는 과정 따윈 고려하지 않았던 선택. 그래서 나는 달리기가 그토록 싫었나 보다.
p.76 대부분이 월세, 좀 나아봤자 겨우 전세로 계약기간마다 집을 옮겨 가며 사는 이들에게 무겁고 부피가 나가는 책은, 게다가 그 책을 수납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책장은 이사할 때마다 어마어마한 부담이다. 부자들은 돈이 생기면 불패의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명품들을 사느라 바쁘고 가난한 사람들은 책을 사도 둘 공간이 없어서 책 사기를 망설인다. 책은 여기에서도 저기에서도 팔리지도 읽히지도 않고, 관심에서 멀어지면서 책을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책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한다. 책을 읽지 않는 국민이라고, 정신문화가 척박한 천민 자본주의 세상이라는 한탄에는 어쩐지 선민의식이 섞여 있는 것 같아 불만이다. 책을 두는 공간마저 아껴야 하는 삶의 기반 자체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닐까.
참 다행스러운 것은, 집이 좁고 이사할 때마다 쓸데없이 책이 왜 이렇게 많냐는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내가 책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허세로 시작했던 책 모으기가 이젠 일상이 되었다. 다 버려도 책은 어찌하지 못하는 내 마음가짐을 훌륭하다 여기며 늘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준다. 세상 모든 즐거움이 나이가 들어도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책은 오롯이 나의 눈이 허락하는 그날까지만 가능하다. 그래서 이제는 더욱 더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서 사람이 나아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안다. 지식의 총량과 인간의 됨됨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척박한 것이 독서량이 부족해서일까? 천민 자본주의가 단순히 독서를 하지 않아서일까? 자칭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높이기 위해 타인을 뭉개는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p.85 또래의 지인들, 친구들끼리 만나면 우리는 우리의 신체에 찾아온 비슷한 장애로 더욱 돈독해지곤 한다. 그리하여 언어의 장애를 넘어서는 거의 초능력에 가까운 인접성의 유추로 결속한다. 이를테면 "저기, 거기 사는 그이가 있잖아, 그랬다는데 글쎄", "진짜야? 그래서 어떻게 됐대" 뭐 이 따위의 어처구니없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유사성 장애 연대가 결성된다고 해야 할까.
나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길어져버린 수명 때문에라도 우리에겐 유사성 장애 연대가 필요하다. "그게, 실은 좀 그렇다."라고 툭 던져도, "그렇지."하고 받아쳐 줄 수 있는 사람. 나이 40이 되니 그런 사람을 친구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됐다.
p.152 오래 동네에 터를 잡고 있던 사진관과 세탁소가 없어졌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낡고 더러운 건물에 흰 타일을 붙이고 작은 나무 탁자를 갖다 놓고 오밀조밀한 액자와 엽서를 걸고 조명을 달아 반짝이던 파스타 가게도 커피 가게도 이자카야도 쥬얼리 숍도 이 년 후 혹은 사 년 후에는 또 다른 곳으로 밀려날 것이다. 아니면 임대료를 맞추기 위해 물건 값을 올리고 휴일도 없이 일해야 하는 환경 때문에 작은 가게의 예쁜 주인들의 표정은 점점 더 피로에 지쳐 갈지도 모른다.
작가의 인생에서 또 다른 '나'를 위한 즐거움이다. '나'의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 그들의 생김새, 분위기, 향기, 맛을 오롯히 느끼고자 애쓰는 마음. 동네에 뭐가 있는지, 뭐가 사라지고 뭐가 새로 생기는지 따위엔 관심이 없는 나로선 참으로 신기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한 번에 하나. 인간이 할 수 있는 생각의 수다. 내가 어디를 가든 나는 동네의 구석구석을 다닐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시간에 좀 더 천천히 마음을 열고 그들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아직 닥치지도 않는 카드 결제일에 벌써부터 인상 쓰지 말고, 그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즐겨보려는 마음을, 내일은 한 번쯤 시도해보려고 한다.
글은 후반부로 흐르면서 망원동을 샅샅히 훑는다. 워낙 미로같다는 그 말이 압도당해 애초에 골목을 머릿 속에 그려보기를 포기한 나는 작가가 불러주는 대로 그 모습을 음미하기로 했다. 카레, 우동, 맥주, 백반, 무엇 하나에도 대충 넘어간 부분이 없다. 어릴적, 내가 좋아하는 떡국에 엄마가 정성껏 고명을 얹이듯이 하나 하나 온 마음으로 그 순간을 보여주었다. 대구에 사는 내가 언젠가 망원동을 갔을 때, 그 모든 것이 하나도 없다 할지라도 조금도 서운함이 없게. 이제껏 수많은 맛집 프로는 '내가 못 가본 곳이 저렇게나 많다니,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저렇게 맛난 거 먹으며 잘 사는데, 나는 이게 뭔가'라는 생각들로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서영인은 달랐다. 그녀가 먹어본 것을 내가 맛보아야 한다는 의무감이나 강박감 대신, 삶이란 어디든 이러하고, 나의 맛을 찾는 모든 과정에서, 맛보는 매순간마다 온전히 '나'에게 마음을 기울인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다 누린 것이라 말했다.
기준을 바꾸면 제목도 달라진다.
오늘도 맛나고 보람차게 누렸지만 (아직도 누릴 것이 너무나 많다).
지금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듯이, 지금이 모인 오늘 또한 가난이라 칭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는 또 다시 쓸모없는 일들로 바쁠테지만, 적어도 이제는 누리면서 하리라.
*이 리뷰는 예스 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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