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r/><br/>1부 소치는 사람들<br/>소<br/>마사이마라에서 세렝게티를 흐르는 동물의 강<br/>소똥집과 양철집<br/>소똥 땔감과 장난감<br/>창<br/>우리들의 변방 그리고 에이즈<br/>기차<br/>일몰<br/>킬리만자로<br/><br/>2부 초록의 꿈<br/>눈디올레의 자전거<br/>마른 강<br/>바나나와 옥수수<br/>서서 소변보는 여인들<br/>두상의 에로스<br/>목조각 속의 남자와 여자<br/>여인들<br/>마사이 여자고등학교<br/>소마당<br/>길<br/>악보 없는 노래, 안무 없는 춤<br/><br/>에필로그

- 아프리카
인구 약 8억 8,000만 명(2000), 면적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대륙이다. 아프리카라는 이름이 불려진 것은 16,17세기 네덜란드의 항해자들이 그 땅이 독립된 대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이다. 1974년 리프트 밸리의 거대 단층에서 발견된 300만 살 먹은 여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루시'는 아프리카가 인류의 발상지, 생명의 기원임을 공식화한다. 대륙 북동부 지역은 오래전부터 아랍 문화와의 교류가 있었기에 오래된 기록들이 남아 있지만, 서부 내륙 및 동부 지역의 역사는 문화에 대해서는 11세기 무렵 이후의 기록이 최초이다. 항해술의 발달에 의한 '지리상의 발견 시대'부터 슬픈 대륙 아프리카의 비극은 시작된다. 15세기부터 유럽인들이 대륙에 들어오면서 아프리카는 무자비한 착취의 땅으로 전락한다. 유럽인들은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노예선에 실었고, 코끼리의 상아를 뽑아냈으며, 동물의 가죽과 금, 다이아몬드를 취해갔다. 더한 안타까움은 착취의 실행을 아프리카인들 스스로에게 강요했다는 점이다. 노예매매와 코끼리 사냥을 통해 '화폐의 위력'을 알게 된 아프리카인들은 더 많은 노예와 상아와 금을 서구인들에게 넘기기 위해 종족과 종족, 마을과 마을끼리의 사투를 서슴지 않게 된다. 19세기 초부터 시작된 유럽인들의 식민지 쟁탈전은 아프리카를 서구인들 마음대로 갈기갈기 찢어 놓는다. 자연 조건, 종족의 거주지를 무시하고 정해 놓은 국경이 대륙 전체의 46.7퍼센트에 달하며, 그것은 현재 아프리카의 분쟁과 갈등, 기근과 아픔의 원천이 되었다. 1차 세계대전 바로 전만해도 독립 국가는 에디오피아와 라이베리아 둘뿐이었지만, 현재는 53개국이다. 아프리가 국가들의 GNP는 80~3,500 달러 수준이며, 평균 수명은 43세, 평균 문맹율은 49.7퍼센트이다.

- 마사이족
아프리카 동부, 케냐와 탄자니아에 걸친 초원 지대에 거주한다. 현재 인구는 약 30~40만 명. 400여 년 전쯤 나일강을 따라 내려온 북아프리카 종족의 후손이라는 설도 있고, 로마 제국 병사 혹은 로마 제국 흑인 용병의 후예일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고유의 문자가 없기 때문에 종족 역사에 대한 정확한 근거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고, 지구상에 남아 있는 가장 용감한 종족으로 알려져 있다. 노예 수탈 시대에도 중개상들은 마사이족을 제외시켰다고 하는데, 워낙에 자존심이 강해서 노예로 팔려가는 즉시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저항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지 않는 유목 부족인 그들은 소똥으로 집을 짓고 주로 소의 피, 젖, 고기 등을 식용하는데 소는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생활의 근거이다. 남자를 중심으로 하는 일부다처제 사회이며, 연령에 따른 집단의 위계질서가 엄격하다. 남자는 12세 전후로 할례를 받은 후 마을 밖으로 나가 몇 년간의 훈련을 거쳐 사자와 맞서 싸우는 최고의 전사 모란이 된다. 마사이 여인들은 아프리카에서도 손꼽히는 멋쟁이다. 화려한 장신구를 손수 만들고, 염색 기술을 배워 형형색색의 천을 몸에 두른다. 다른 종족들과 마사이를 구별하는 것은 아주 쉽다. 마사이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빨간 천으로 몸을 두루고 있는 모습이다. 붉은색은 마사이의 용맹성을 상징하며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전통 마을 구경이나 사진 촬영에 대한 적지 않은 비용을 요구하기도 한다. '전통을 파는' 그러한 비즈니스 마인드에 황망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마사이들은 일부이며, 마사이들 모두에게 전통대로 살아가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달라고 하는 것은 여행객의 욕심일 것이다.

잊혀졌던 시인의 10년만의 귀환<br/><br/>문학담당 기자 시절 김훈은 「길없는 세상의 노래」라는 시평을 통해 황학주의 시세계를 “상처받은 삶의 바닥으로부터 자기 치유의 싹을 조심스럽게 내비치는 뜨거운 목메임”이라 평했다. ‘시운동’ 동인 활동 등을 통해 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걸쳐 “가난하고 쓸쓸하게 밥벌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베는 냉정한 현실 세계와 그에 따른 시린 삶의 상처를 노래하던 시인 황학주가 지난 10년 간 멀고 먼 세상, 다른 삶의 자리에 머물다 다시 이 땅에 돌아왔다. 그의 역마살의 자장은 넓고 깊어, 그가 몸을 이끈 곳은 아프리카 케냐, 캐나다의 인디언 거주지역, 남반구 뉴질랜드 등 세상 곳곳이다. 서너 권의 시집과 정갈한 산문을 상재했던 시인, 출판 편집인이었던 한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세상을 떠돌면서 그는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며 몸에 나이를 입혀 수줍은 중년의 시절을 맞았을까? 이 책 <아카시아>는 그가 머물렀던 아프리카 마사이 마을에서의 3년간의 생활을 특유의 아름다운 문체와 깊고 낮은 시선으로 풀어낸 에세이이다. <br/><br/>아프리카 초원 지대를 누비는 마사이들과 함께 소리 없이 머물다.<br/><br/>그가 머문 곳은 “보이지 않는 강이 실제하고 그 강 속에 죽은 조상과 하늘이 너무나 가깝던 아프리카의 마사이 땅”이었고, 그가 함께 지낸 사람들은 창 하나로 사자와 맞서 싸워 이기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용맹한 종족 아프리카 마사이였다. 그들은 저 식민지 시절에도 노예로 팔려가는 시대의 운명을 자결로 거부하며, 자신들의 자존심을 지켜낸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은 일이나 사상 때문에 영혼이나 마음이 꼬이지 않는, 의복이나 신발 때문에 비뚤어지거나 굽지 않는, 아프리카 저 드넓은 대지와 같이 넉넉한 영혼과 아름다운 몸을 가진 자연의 인간들이다. 지금의 인류를 잉태한 삶의 자궁, 원초적 생명들의 마지막 대지 아프리카에서 시인 황학주는 그들 마사이들 곁에 그저 소리 없이 스미어 머물렀다. <br/><br/>그곳에서‘나는 자유! 나는 자유!’였다<br/><br/>그들과 함께 한 놀랍고 아프고 쓸쓸했던 체험들을 감정의 과장이나 섣부른 연민을 걸러낸 쓴 이 에시이는, 슬픈 대륙 아프리카의 메마른 대지 속에 숨어 있는 연둣빛 기운과 그 땅의 주인, 마사이들의 생생한 삶의 숨결을 아름다운 글로 전한다. 아프리카 마사이는 시인 황학주가 줄곧 노래하던 가난하고 쓸쓸한, 빼앗기고 능욕 당한 또 하나의 삶의 자리였다. 마사이들은 자신들이 살던 땅을 영문도 모른 채, 서구인들에게 빼앗기고,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라까지 나뉜다. 삶의 자리를 잃어버린, 그래서 육신과 영혼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인 것이다. 그가 그곳에 머문 것은 마사이들의 결핍을 메꾸고, 생활을 구원할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과 함께 머물다 상처를 아는 종족끼리의 마음을 주고받는다.<br/><br/>변형되고, 치장된 오리엔탈리즘의 재생산을 거부하다<br/><br/>이 글들이 여타의 아프리카에 대한 산문이나 여행기와 구별되는 점은 그가 단순한 행객이 아니라, 그곳에 머물러 마사이 사람들과 함께 일상을 생활한 체험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그가 아프리카의 땅과 사람들을 기록한 이 글에서 거듭 조심하고 경계하는 것은 외래자의 시선으로 그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어설피 감싸 안으며, 무책임하게 연민하는 자신의 마음이다. 지나치게 이상화된 자연인으로서의 ‘아프리카인’들을 묘사한다던가, 그들의 아픈 ‘수난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고 신비한 대륙 아프리카에 대한 즉각적이고 일차적인 반응을 얻어낼 수 있겠지만, 그것은 서구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기제로 사용했던 오리엔탈리즘을 우리가 인디언들이나 아프리카인들을 대하는 데 잘못 ‘재생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신비로운 사람들, 새로운 삶의 자리로 인디언이나 아프리카를 이미지화하고 그것의 ‘소비’를 조장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이 산문에 나타난 그의 태도이자 깊고 낮게 깔려 있는 시인의 마음밭의 근본이다. 그가 글과 사진으로 전하는 아프리카 땅과 사람들의 모습은 적당히 세련된 대안적 삶의 공간이나 외부의 압도적인 힘에 갈갈이 찢긴 상처 받은 피해자의 겉모습만이 아니다. 신비화시키고 동경하는 ‘이상’이나 동정 받아야할 구원의 대상이 아닌 자신의 땅에서 유배되었지만 자긍과 자존을 지키고 살고 있는, 지금의 현실에 발붙이고 생을 꾸려나가는 일상인으로서의 어느 ‘인간들’과 그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인 것이다. <br/><br/>동원하지 않고, 치장하지 않은 사진과 글<br/><br/>시인의 문체는 은은하며, 가라앉아 있다. 그 목소리는 마사이인들이 처한 궁핍한 현실과 폭력적인 외부 상황을 이야기할 때나 생활인으로서의 그들의 소소하고 검박한 일상을 이야기할 때나 높낮이의 차이가 별로 없다. 하지만 그 낮은 목소리에는 마사이를 서술하는 자신의 감정에 과장이 섞이지 않을까 하는 성찰의 힘이 담겨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 책에 실린 이상윤씨의 사진들이 포착한 마사이 사람들과 땅에는 ‘사진찍기’를 위한 동원이나 치장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시인의 말대로 “자신을 앞세우거나 그들을 앞세우려 하지 않은” 순정한 마음이 그 사진들에도 담겨 있는 것이다. 행사를 위한 순간의 표정이나 의도된 연출, 낯선 사람들을 향한 당혹스러움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상의 삶이 스며 있는 그 사진들에는 오랜 시간을 곁에 머물며 기다린 ‘인내’와 생활의 풍광을 포착해내는 ‘힘’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