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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10년 03월 0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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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한테는 별 일 아닌 일이라도 개인적으론 아주 신기한 일이 있는 법이다. 피터 가브리엘에 대해서 최근 글을 몇 개 썼는데, 마침 피터 가브리엘의 새 앨범이 나왔다. 가수의 새 앨범이 나오는 게 뭐그리 신기한 일이냐고 한다면 피터 가브리엘이라면 그렇다.
피터 가브리엘은 86년 So앨범이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후 오히려 앨범 활동이 뜸했다. 성공을 이어갈 후속앨범을 몇 개만 더 만들었어도 큰 돈을 만졌을만한데도 말이다. 86년 So앨범 이후 다음 정규앨범 Us는 92년에 무려 6년만에나 나왔고, 또 그 다음 정규앨범 Up은 자그마치 10년만인 2002년에 나왔다. (2002년에 Up앨범의 국내 라이센스가 나오지 않자-뒤늦게 발매되었다- 나는 아마존 주문보다 하루라도 빨리 받기 위해 일본에 있는 친구한테 전화했다. 빨리 가까운 레코드 점에 달려가라고. 그 친구는 뭣 모르고 일본 특별 한정판을 사서 나에게 보냈고, 결국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2002년 Up앨범은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몇 안되는 귀한 앨범이지 않을까싶다. 고맙다 칭구야.)
피터 가브리엘은 정규앨범을 이렇듯 감질나게 발표했지만 대신 여러가지 형태의 프로젝트 앨범과 월드뮤직에 헌신하는 음악활동은 왕성하게 해왔다. 하지만 그의 정규앨범만을 바라보던 팬들은 길고긴 고난의 시간을 기다리다가 간신히 새 앨범 소식을 접하곤 했다. 이번에 그가 만든 새 앨범은 8년만에 출시된 것이고, 전혀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몇 년동안 자포자기하고 있다가) 최근 가브리엘의 글을 몇 개 쓰면서 마침 새 앨범 소식을 접하게 되니, 뜻밖의 횡재에 개인적으로는 신기한 경험을 한 것 같다. 지난 금요일에 앨범이 나오자 마자 바로 주문했고, 주말 동안 여러 번 들었다.
피터 가브리엘은 제네시스Genesis밴드 활동부터 개인 솔로활동을 하는 지금까지 남들 그 흔히 한다던 리메이크 곡 하나 자기 앨범에 넣은적이 없는 가수였다. 최근 어떤 축하공연에서 존 레논의 이메진을 피아노로 연주하던 모습, 암네스티 공연 DVD에서 밥 말리의 Get Up, Stand Up을 동료가수들과 함께 부르던 모습.. 이게 내가 아는 피터 가브리엘이 남의 노래를 부른 기록의 모든 것이다. 당연히 자기 앨범에 녹음한 것으로는 하나도 없다. (내가 모르는 앨범이나 비정규판이 있을 수 있어서 100%라고 단정하기 뭣하지만..그래도 난 확신한다. 99%없는게 맞다.)
내가 얼마전에 피터 가브리엘의 솔로 앨범리뷰를 쓰면서 놓여진 길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새로운 창작의 길을 떠나는 가수라고 한적이 있다. 이번 앨범에서 그는 어떤 새로운 창작의 형태를 보였는가. 바로 이번 앨범 12곡 전부를 리메이크 곡으로 채웠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이제껏 숱하게 많은 가수들이 이미 해본 것이어서 새로울 것도 없지만, 40년 동안 남의 곡을 한번도 녹음하지 않았던 피터와 그의 팬들에겐 상당히 신선한 사건이다. 그대신 다른 가수들이 다소 상업적인 이유로 이리 저리 곡을 돈주고 사와서 리메이크 앨범을 만든 것과는 달리, 피터는 리메이크 자체를 다른 가수들과 함께 해내는 하나의 프로젝트란 개념으로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서로의 음악적 완성을 위해서 서로의 곡을 하나씩 교환하는 것이 그 프로젝트였다. 이야 말로 피터가 왜 하나를 해도 남들과 다른걸 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오랫동안 여러 가수들과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했다.
사운드의 형식에서도 파격적이다. 항상 앞서가는 사운드를 만들어내던 그가 이번에는 피아노와 관현악악단으로만 담백하게 꾸몄다. 데이빗 보위, 토킹헤즈, 폴 사이먼, 랜디 뉴먼, 닐 영 등 자기 동료들 곡과 라디오헤드를 비롯해 후배들 곡까지 같이했는데, 내가 아는 곡을 들어봐도 영락없는 피터 가브리엘의 곡이지 원곡 냄새가 거의 안난다. 첫 곡 보위의 Heroes들 다 듣고도 이 곡이 보위 곡인지 잘 모를 정도고 오히려 그의 4집에 있는 San Jacinto의 어쿠스틱 버젼처럼 들린다. 동료들 곡이라는 음식재료를 가져와서 자기만의 음식으로 만든 것이다.
사실 앨범을 좀 더 들어보고 리뷰를 쓰고자 했지만 가브리엘의 앨범은 So 앨범을 빼고는 처음에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앨범들은 아니다. 두고 두고 듣다보면 빠져드는 그런 앨범들이다. 마치 복선과 은유가 수없이 깔린 영화라서 보면 볼수록 빠져드는 재미가 있는 것처럼. 한동안은 이 앨범을 두고 아끼면서 들어야겠다. 다음 정규앨범이 언제 또 나올지 모르니까.
주말에 앨범을 들으면서 앨범 속지에 적혀있는 피터 가브리엘의 글을 우리말로 옮겨봤다. 모자란 실력이지만 내가 가브리엘에게 바치는 작은 고마움의 표시다.
곡을 쓴다는 것이야말로 나를 음악으로 이끄는 것이다. 좋은 곡 하나를 만들어가는 과정과 그 작업은 나에겐 흥분되는 일이기도 하면서 또한 마치 마법과도 같은 것이다. 오랜 세월동안 나는 한편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도 녹음해보고 싶어했고 이제껏 해온 작곡자로서 역할뿐만 아니라 곡해석자 역할도 해보고 싶었다.
곡들을 다시 녹음하는 전통적인 방법보다는 새로운 형태의 프로젝트를 시도해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그 프로젝트란 여러 아티스트들이 서로 의사를 주고받은 다음 노래를 맞바꾸는 것을 말한다. 즉, 내 곡 하나를 하면 나도 네 곡 하나를 하겠다는 얘기이고, 그래서 앨범 제목 “내 등을 긁어줘Scratch My Back”는 그러면 나도 네 등을 긁어줄게란 뜻이 된다.
처음엔 친구들이 내 곡을 녹음하는 것도 나와 동시에 하기를 바랬지만, 서로가 가지고 있는 스케쥴이란 문제가 불거지자 친구들의 녹음은 시간이 더 많이 걸릴 것이란 게 분명해졌다. 이것(친구들이 내 곡을 녹음하는 것)은 나중에 나올 것이다.
2008년 9월부터 훌륭한 곡들을 많이 듣기 시작했고, 내 친구 데이비드 베이츠David Bates는 수많은 곡들을 찾아서 조합해내는데 아주 큰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곡을 찾는 여행을 할 때마다 내가 시작했던 자리로 또다시 돌아왔고, 한두 곡의 훌륭한 곡들을 추가로 들고 있곤 했다.
내 딸인 애나Anna와 멜라니Melanie, 그리고 내가 입양한 아이 딕키 채팰Dickie Chappell한테 몇가지 조언도 받았고, 그 후에 밥 어진Bob Erzin은 내가 랜디 뉴먼Randy Newman의 곡중에서 ‘Baltimore’를 ‘I Think It’s Going To Rain Today’로 바꾸는 결정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몇 차례 더 곡목을 추렸고, 이 첫 번째 등긁기Scratch를 위해 마지막까지 고른 곡의 작곡가들 대부분은 같이 동참하기를 원했다. 가끔씩 우리는 어떤 곡을 고르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했지만, 서로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프로젝트의 의도는 서로가 가진 고유의 색다른 방법으로 상대방의 곡들을 한번 해본다는 것이었다.
나는 집에서 만든 악기들과 합창단 등만 써서 하는 작업방식에 대해 몇가지 아이디어을 검토했다. 바로 그때 존 맷카프John Metcalf라는 환상적인 음반작업자를 소개받았고 그는 이미 리얼 월드Real World 스튜디오에서 몇몇 훌륭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그가 만든 독창적이고 감정이 풍부하면서도 신선한 작품들을 정말 좋아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내가 원하는 방향을 그가 정말로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또한 우리가 스티브 리치Steve Reich, 아브로 파트Avro Part, 스트라빈스키Stravinsky 같은 작곡가들을 좋아하는 취향도 많이 닮았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존에게 단순하고 황량한 느낌이지만 꾸준하게 감성적인 작업방식을 유지하도록 부탁했다. 그래야 노래들을 진정으로 듣고 느낄 수 있게 말이다.
안 좋은 경우는 어떤 아티스트가 자기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였다. 나는 항상 아티스트들이 비록 자기 한계를 알고 있더라도 훨씬 더 창의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믿어왔다. 힘들고 단조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어떤 원칙들을 적용해가는 방법을 새로이 찾아내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는 사람이다. 내가 이 번 경우에 적용한 원칙은 바로 드럼과 기타를 없애는 것이었다. 난 될 수 있으면 홀로 노래부르는 것을 해보고 싶어했다.
2008년 12월, 존이 놀라운 데모곡 네 개를 들고 다시 왔다. 작업을 진지하게 시작했기에 녹음된 곡들은 고유의 성격을 가지기 시작했다.
존은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녹음을 했고, 나는 그와 함께 그 방식을 더 발전시켜나가는데 신이 났다. 이미 가지고 있던 네 곡들만으로도, 나는 우리가 진행중이던 작업의 무게감을 느꼈고, 그래서 내 오랜 친구 밥 어진을 다시 불렀다. 그는 스와트SWAT 부대처럼 눈깜짝할 사이에 처들어와서 자기 의견과 조언도 제시해주었고, 관현악 부분을 녹음에 넣는데 훌륭한 도움도 주었고, 또 최근에는 믹싱에 대한 평가도 해주었다.
또한 우리는 믹싱을 하는데 있어서 여러가지로 접근방법을 달리해보는 시도를 했다. 한 번은 채드 블레이크Tchad Blake가 하면, 또 한 번은 딕키 채팰이, 그리고 존은 그의 원본 데모곡들에서 조금씩 떼온 요소들을 가지고 또 해보는 그런 식이었다. 무척 다양한 개성들이 살아나왔고 마침내 이 세가지 접근방법들이 훌륭히 조합을 해서 이 결과물로 나타나게 되었다.
피터 가브리엘,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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