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무라 간조.

그 이름을 처음 접한 건 2008년에 받은 성경책의 한 모퉁이에서였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병들어도, 고통을 받아도, 죽어도 좋으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내 소원이다.' 기독교인 비율이 매우 적다는 일본에서 어떻게 이런 신앙의 거인이 나왔을까. 이후 우치무라 간조라는 이름은 내 머릿속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다가, 마침내 8여 년만에 이 책을 사게 만들었다. 

<구안록>은 신앙간증서이다. 내가 어떻게 구원받았나를 설명한 책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치무라 간조의 MBTI 유형이 INFJ라고 확신했다. 삶의 진리에 대한 끝없는 갈망, 다양한 경험을 통한 자기성찰, 신앙을 통한 만족 등. 그래서일까,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타인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보다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우치무라 간조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황한 과정을, 2부는 속죄와 신앙의 원리를 다룬다. 전자가 다소 경험담에 가깝다면 후자는 이론에 가깝다. 이런 구성, 기독교인이라면 낯설지 않을 테다. C.S. 루이스를 비롯해 신앙간증서는 대개 이런 형태를 띠고 있으니까. 진솔한 간증서가 그렇듯, 이 책도 평범한 내용에서 비범한 진실을 깨달을 수 있다. 

그것은 죄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하여 참 평안을 위해서는 죄 문제를 온전히 그리스도에게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 차라리 성서의 말씀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라. 나는 그처럼 밝은 빛을 견딜 수가 없다. (23)

내 인생은 스무 살을 기점으로 기독교인이냐 그렇지 않느냐로 나뉜다. 교회를 다니고 찬양을 하고 성경말씀을 읽는 건 변함이 없었지만, 20대를 맞이하기 전까지는 오로지 나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신을 섬겼다. 좋은 대학을 가고 열심히 공부하며 착한 일을 하는 이유, 누가 묻는다면 '주의 영광을 위해'라고 대답했겠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다. 내가 잘 되었으며 하는 소망. 내가 삶의 주인이라는 의식. C.S. 루이스의 표현대로, 그때는 하나님이 '낙하산'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지고 있으면 안전하고 든든하지만, 결코 사용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세상에 자기 죄를 깨달은 기독교 신자처럼 곤궁한 자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죄에 대해 무감한 기독교 신자처럼 강한 자도 없을 것이다. (26)

그러다 스무 살, 진짜 신앙을 알았다. 나는 스스로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게 아니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인간은 죄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 그걸 깨닫기까지 20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치무라의 저 탄식은, 죄의 본질을 알았을 때 내가 했던 탄식이기도 했다.

우치무라 간조는 자신의 힘으로 죄를 해결하는 노력들을 열거한다. 그 중에는 내가 한 방법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방법도 있었다. 중요한 건, 그 모든 일들이 결코 죄 문제를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죄에서 벗어나는 한 가지 방법은 죄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40)

선행이 나를 교만하게 만들면 그 선행은 내 원수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 자선이라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거의 회복 불가능이다. 근신하라. 너, 고아원을 세워 하나님과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자여. 세상이 당신의 자애심을 알아주고 사심 없는 자선가로 칭찬할 때, 바로 그때가 무간지옥에 떨어질 수 있는 위험한 때다. (54)

나는 구원을 얻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런데 도리어 영원한 절망으로 타락하는 문을 신학교 안에서 발견했다. (65)

생각할 수는 있지만 얻기는 어려운 것이 가정이다. 불평 없는 가정, 한숨 없는 가정, 근심 없는 가정. 아, 이런 가정이 세상 어디에 있단 말인가. (72)

낙천주의니 유니테리언이니, 신신학이니 이름은 달라도 주장하는 바는 대동소이하다. 곧 죄라는 관념을 경시하거나 아니면 순수한 기독교처럼 죄를 엄중히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 내가 병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병들지 않았다고 믿으라 한다. 내가 만일 낫기 위해서 이와 같이 믿는다면 그것은 거짓으로 믿는 것이지 신앙은 아니다. (83)

우치무라 간조의 간증서라 볼 수 있는 이 책을 읽으며, 신앙의 기본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것은 죄 문제의 해결이다. 영원히 살 수 없는 이유, 불안함과 죄책감이 엄습하는 이유, 죽음이 두려운 이유, 사람들과 화목할 수 없는 이유. 모든 것의 근원은 죄다. 그리고 죄 문제는 결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반항심도 생겼다. 나의 힘으로 세상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그깟 죄 문제라고! 하지만 나의 힘으로 구축해왔던 세상은 모래성과 같았다. 자그마한 일에도 흔들리고 무너지고 절망하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을 때 비로소 나는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인생은 내가 계획하고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그분의 계획하심을 따라 함께 동행하는 것. 때로는 곁길로 빠지기도 하고 뒤로 돌아가기도 하지만 결국엔 종착지에 이른다는 것. 이 간단하고도 심오한 진리를 깨닫고나니 세상 사는 게 무섭지가 않아졌다. 가끔은 흔들릴 때도 있고 두려워할 때도 있지만, 기도하고 말씀으로 동행하니 세상이 무섭지 않았다. 죽음과 죄의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철학과 과학은 신을 부정하고 시작한다.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인간의 세상. 난 그게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주어진 세계는 말 그대로 '진짜'다. 나름의 법칙과 인과관계와 사람 및 비사람들이 존재하는 진짜 세상. 그러니 인간의 눈으로 해석하는 세상이 틀렸다고 말할 순 없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도 마찬가지다. 신앙인에게 유물론을 강제할 수 없는 법. 결국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믿음의 싸움이란 말이다. 

간조의 <구안록>은, 신앙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한 이들에게 위안과 함께, 진정한 해답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