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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7년 01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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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2쪽 | 488g | 143*218*30mm |
ISBN13 | 9788970129631 |
ISBN10 | 8970129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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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때 읽었던 구효서의 작품들 때문인지 몰라도 그가 올해 60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새삼 놀랐다. 가끔 내가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도 망각하는 일이 많아지는 터라 사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나이를 먹고 있다는 사실에 둔감해 질 때가 많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올 해 60이 되었다는 사실이 덜 놀라와 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십 대 때 그의 단편 소설들을 즐겨 읽었고, 30대 무렵에 그가 썼던 장편 소설들도 몇 편 챙겨 읽었다. 단편과는 달리 장편이 더 기억에 남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 기억에 남아있는 작품들이 없는 것으로 보아 내가 그의 장편 소설에는 그닥 흥미를 가졌던 것 같지는 않다.
제 41회 이상 문학상으로 구효서의 작품이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책을 주문했을 때만 해도 우선은 아직 구효서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기도 하고, 젊었을 때 좋아했던 작가가 이상 문학상의 수상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기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놀라움과 기쁨은 정작 그의 소설 <풍경소리>를 읽으면서 느낀 놀라움과 기쁨에 비교할 수는 없을 정도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작품의 의미를 찾으려고 책에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하고, 그렇게 소설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작품을 즐기기 보다는 퍼즐 맞추기를 하듯, 하나의 이론적 잣대를 세워놓고 작품을 재단하기도 하고, 아주 쉬운 이야기를 온갖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이야기를 끌어다가 되지도 않은 횡설수설을 하기도 했다. 그런 일이 반복되는 순간 소설 읽기는 즐거운 일이 아니라, 그야말로 내가 평생 해야 하는,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그런 일이 되어 있었다.
내가 구효서의 단편 소설 읽기에 흥미를 가졌다가 그의 장편들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아마 그건 소설에 대한 이런 나의 개인적인 취향과 관련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또한 굳이 그의 장편 소설들에서 내가 흥미를 느끼지 못한 이유를 또 하나 댄다면, 그건 아마 그의 장편 소설들이 또 다른 경지로 나아가지 못하고, 마치 나의 소설 읽기처럼 일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나의 억측일까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60이 된 작가가 보여주는 이 소설의 세계는 무엇을 더 잘 쓰겠다든가하는 세속적 욕망의 경지를 뛰어넘는 하나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예전의 작가라면 ‘이런 것을 쓰도 되나’고 망설였을 수많은 단어들을 작가는 작품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것이 시점이든, 성불사의 밤이라는 노래이든, 아니면 교묘한 언어유희든, 그것도 아니면 우리가 흔히 핸드폰에서 사용하는 이모티콘과 같은 표현이든, 정말 그것도 아니라면 30대의 윤대녕이 사용했던 심우도의 이미지이든, 마흔이나 쉰의 구효서라면 분명히 망설였을 그러한 표현들을 작가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작가의 경지는 그가 수상 소감에서 밝힌 솔직함과도 연결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수상 소감도 근년에 내가 읽은 어떤 수상 소감보다 좋았다는 것을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깜짝 놀랐습니다. 수상 소식을 듣는 순간 기쁨이 먼저 차올랐었다는 걸 숨기지는 못하겠습니다. - 중략 - 사실은 다른 사정도 있었습니다. 과연 내가 제대로 쓰고 있는 걸까, 내심 졸아 지내던 참이었으니까요. 슬슬 그런 때가 된 것입니다. 한때는 나도 웬만큼 쓰는데 왜 상을 안 줄까, 솔직히 방자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 중략 - 이제 큰 아이에게도 작은 아이에게도 돈 들어갈 일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기이한 소설가는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게 되었나 봅니다. 그저 평생 소설이나 열심히 쓰자, 잘 써보자, 그런 다짐뿐이었지요. 그런데 잘 안써졌습니다. 내가 써 놓고도 종종 자뻑으로 음흉하게 미소 짓던 때가 언제였던가. 정말 언제였던가. - 중략 - 이런 절박한 계제였으니 제가 심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상이라니요. 그렇겠습니다. 놀라움 없는 기쁨이겠습니까. 그리고 생명 연장의 기쁨을 이길 기쁨이 있을까요. 놀랐지만 고맙게 상을 받습니다. 십년감수가 아닌 십년가수가 되는 거네요. 정말 기쁩니다.
기쁘지만 기쁜 척 하지 않는 것. 자연스럽게 쓰고 싶은 것을 숨기고, 기존의 문법과 질서의 틀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벗어나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이 작가의 감상평이 바로 그가 수상한 <풍경 소리>를 있게 한 원천이 아니었을까
‘존재론적 물음’ - 이상 문학상 심사평에서 한 번도 빠지지 않은 이 구절은 올해의 수상 작품인 <풍경 소리>의 심사평에도 여전히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고 있다. 문학의 존재 이유가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는 것인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어디서 오셨습니까와 어디로, 가십니까의 구절을 만물의 시원에 대한 여정이라는 식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딘지 너무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문학의 존재 이유가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는데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면, 그렇다면 그러한 ’존재론적 물음‘을 어떤 방식으로 던지고 있는 지를 해명하는 지에 대한 논의로 이야기가 확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왜라고 묻지 않고, 그렇군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다. 왜의 세계는 이유와 논리, 이해의 세계다. 반면 ‘그렇군’은 공감과 연민의 세계이다. 그것은 마치 문태준의 시 <평상이 있는 국숫집>에서 사람들 사이에서 주고받는 ‘쯧쯧쯧쯧 쯧쯧쯧쯧’의 세계에 가깝다. 우리는 끊임없이 현실에서 왜라고 묻는다. 그것은 미와가 휴대전화의 전원을 넣게 되었을 때 그에게서 듣게 되는 소리다. 그런 점에서 왜라는 질문은 우리가 현실에게 가장 많이 사용하는 스마트 폰의 세계와 닮아 있다. 우리는 스마트 폰을 통해 끊임없이 타인에게 질문한다. 왜, 왜, 왜, 왜냐고,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으면 네이버 지식인에게 물어보든지, 답을 알기 위해 검색을 시도한다. 이 세계 앞에서 ‘그렇군요’라는 말은 과연 설 자리가 있을까? 아니 나부터라도 ‘그렇군요’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풍경 소리>를 읽고 예전에 그가 썼던 <나무 남자의 아내>라는 소설이 생각났다. 그 소설이 2000년의 어느 시절이 아니라 1997년의 작품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와 인연이 있었던 고창 선운사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더 기억에 남았다. 예전에 그 소설을 읽고 쓴 글도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썼던 글을 읽는 것보다 그 소설을 다시 한 번 읽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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