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제 공동체의 형제들(수사들)은 처음엔 시편을 중심으로 노래를 불렀다. 로제 수사가 스위스출신의 개신교도였고 첫 공동체 수사들이 다양한 개신교 출신이었음을 감안해보면 이들이 초창기에 불렀던 노래들은 제네바 시편가의 전통을 잇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2차대전이 끝나면서 조셉 젤리노(Joseph Gelineau)의 시편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교회의 전례에 충실하면서도 보편적 개혁을 주장한 젤리노의 음악은 떼제 공동체와 조화를 잘 이뤘다.
조셉 젤리노는 1920년에 태어난 예수회 신부이며 작곡가이다. 가톨릭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회(1962-1965)에서야 라틴어가 아닌 지역언어의 전례를 허용했는데 그는 그보다 먼저인 1950년대부터 시편가를 개혁해왔다. 그는 히브리 원본에 가깝게 번역된 성경인 예루살렘 성경의 시편을 텍스트로 하여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선율의 시편을 작곡했다. 젤리노의 시편가는 이제 서방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될 만큼 널리 퍼졌다. 그의 "시23편"은 우리나라에서도 널리 불리고 있다. 젤리노는 시편가 뿐만 아니라 연도, 응답송들을 작곡했으며 가톨릭 전례의 발전을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해왔고 제2차 바티칸 공회에서는 전례개혁 부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떼제의 수사들은 1950년대부터 조셉 젤리노의 시편가를 받아들여 기도회에서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떼제의 절기전례, 미사성찬때 부르는 음악에는 젤리노의 곡이 많다. 그러나 오늘날 떼제를 연상하게 하는 독특한 노래는 쟈끄 베르띠에(Jacques Berthier)의 곡이 훨씬 더 많다.
쟈끄 베르띠에는 1923년 떼제가 있는 프랑스 부르군디 근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폴 베르띠에(Paul Berthier)는 유명한 파리 나무십자가 합창단(Little Singers of the Wooden Cross)을 설립한 작곡자이자 오르가니스트였다. 쟈끄는 아버지에게서 피아노, 오르간, 화성, 작곡을 배웠다. 2차대전이 끝나자 파리 세자르 프랑크 학교에 들어가 작곡, 오르간, 푸가, 대위법 등을 배웠는데 거기서 조셉 젤리노 신부를 만나게 되었다. 젤리노 는 그에게 시편가에 쓸 안티폰 시리즈를 작곡해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1955년부터 떼제의 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다. 당시 떼제에는 수사들이 스무 명 정도 밖에 없었고 이들은 4성부로 노래하고 있었다. 자끄 베르띠에가 처음 작곡한 곡은 떼제의 수사들만을 위한 것이었다. 1961년 그는 파리 로욜라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어 일하기 시작했는데 1975년 떼제의 수사들이 다시 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전세계에서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짧고 단순한 노래를 요청한 것이다. 자끄 베르띠에는 초창기 수사중의 하나였던 로베르 수사(Brother Robert)와 함께 오늘날 세계에 널리 알려진 떼제의 독특한 노래를 발전시켰다. 로베르 수사는 텍스트를 모아 특별한 형태의 방향성을 제시하여 쟈끄 베르띠에에게 보냈다. 베르띠에는 그 방향에 맞게 창의력을 발휘했고 오늘날 가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해 가장 광범위하게 불리는 기독교음악을 만들어낸 것이다.
조셉 젤리노와 쟈끄 베르띠에, 로베르 수사에 뒤이어서 몇 년 전부터는 떼제의 수사들이 곡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 이외에도 프랑크(M. Franck), 프래토리우스(M. Praetorius)등의 음악이 사용되고 있으나 우리에게 알려진 떼제의 음악은 조셉 젤리노와 쟈끄 베르띠에의 곡이 대부분이다. 떼제의 수사들이 만든 노래는 공동기도모임에서 여러차례 부르고 수정되면서 하나의 완성된 노래가 될 때 하나씩 하나씩 음반에 채택되고 있다. 현재 떼제의 음악은 대부분 위 두 작곡가들의 작품과 떼제 수사들의 작품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의 곡 중에서 수용된 것들이다. 앞으로도 떼제의 음악은 떼제가 지향하는 바대로 평화, 화해를 담은 내면적 기도를 반영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떼제의 음악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의 음악방향과 예배형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떼제 공동체를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은 그 음악을 전세계에 퍼뜨렸다. 떼제의 음악은 독특하다. 공동체의 평화와 화해라는 목적에 연결되어있기도 하고 또 각기 다른 언어를 쓰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한다. 그래서 순전하고도 단순한 짧은 소절의 노래가 쓰여졌다. 반복되는 후렴구에는 라틴어가 주로 사용되었는데 이는 전통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이국적으로 들려서 오히려 중립적인 언어가 됐기 때문이다. 라틴어 후렴구가 계속되면서 솔로이스트는 각 나라말로 노래를 반복한다.
떼제의 노래는 돌림노래, 합창, 응답송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모두 회중들이 계속반복하여 부르는 짧은 곡들로 이뤄졌다. 처음에는 엄격하게 4성부를 지켰고 라틴어의 강세와 음악의 리듬패턴이 잘 어울리도록 만들어졌다. 합창곡들에는 독창자들이 부르는 노래에 회중들이 화답하는 듯한 노래가 많다. 응답송은 보통 '알렐루야', '키리에', '고스포디' 같은 곡에서 독창자들이 노래할 때 회중들은 허밍을 하는 것이 많다. 이런 특징은 80년대와 90년대 들어서면서 조금씩 자유스러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떼제의 노래는 요즘 전세계에 널리 퍼져있는 '프레이즈 앤 워십' 운동의 물줄기를 댔다. 유럽을 비롯한 영어권에서 1960년대부터 일어난 젊은이들의 프레이즈 송들은 당시의 일반대중음악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그 근본에서는 떼제의 노래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었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에서 시작된 '프레이즈 앤 워십'은 미국에서의 카리스마운동과 맞물려 전세계적인 운동으로 번져갔다. 떼제의 노래가 기도이듯이 이 '프레이즈 앤 워십'송들 역시 예배이다. 또 떼제의 노래가 간결하고 반복적인 것처럼 프레이즈송들 역시 누구나 따라부르기 쉽고 후렴구가 반복되는 노래들이다. 물론 프레이즈 앤 워십송들은 일반 대중음악의 경향을 수용해서 악기사용과 템포 등에서 훨씬 자유스럽다. 이러한 영향 속에서 떼제의 음악도 훨씬 융통성 있게 변화하고 있다. 떼제의 노래는 오케스트라에서부터 단순한 기타반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프레이즈 앤 워십'만큼 음악적인 변화가 다양하게 일어나고 있지는 않고 있다. 떼제의 노래는 여전히 묵상과 기도이기 때문이다.
떼제의 노래는 이제 세계 각지에서 자국언어로 불리고 있다.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한국, 중국, 일본, 인도, 말레이지아, 버마... 등의 언어로 불리고 있다. 북미와 호주 등지에서는 예배음악으로 채용되어 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떼제 공동체는 몰라도 떼제의 노래는 아는 사람들은 많다. 우리나라에는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떼제공동체가 있는데 1979년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떼제의 형제들이 한국에 파견되어 다섯 명의 수사들이 머물고 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는 화곡동 떼제공동체를 개방하여 일반인들도 기도회에 참여할 수 있다.
떼제의 노래는 유럽과 북미지역에서 교회 합창단을 중심으로 녹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연주들은 떼제 공동체가 지향하는 바와는 다른 해석을 담고 있어서(떼제의 음악은 음악 자체가 목적이 아니므로 특별한 기교나 완성도를 우위에 두지 않는데다가 지휘자가 없기 때문에 다른 합창단이 지휘자의 의도에 따른 연주하는 것과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떼제에서 직접 레코딩을 시작했다. 처음엔 런던이나 파리의 대성당 모임에서 노래를 녹음했으나 90년대 이후부터는 떼제에 있는 '화해의 교회'에서 주로 녹음한다.
음반으로 나와있는 떼제의 노래는 대부분 공동기도를 녹음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알려진 떼제의 노래는 떼제의 기도모임에 참석한 젊은이들과 수사들의 연주인 것이다. 무반주로 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단순소박한 기타가 주로 이용되고 리코더, 플루트 등의 목관과 트럼펫 등의 금관악기가 뒤따르기도 한다. 금관악기가 따르더라도 오케스트라 스타일이 아니고 한 두 명 정도의 연주자로 그친다. 악기 연주는 기도모임에 참석한 젊은이들이 맡는다. 곡중 솔로는 대부분 떼제의 수사가 맡고 떼제에 온 젊은이들과 떼제 마을 어린이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떼제공동체에서 낸 앨범에는 전문 연주자의 연주는 없는 셈이다. 다만 떼제의 음악을 연주해 음반으로 낸 전문 합창단들은 상당수 있다.
'우비 까리타스Ubi Caritas'앨범 이후에는 여러 나라말로 녹음된 음반이 나오고 있다. 90년대 후반에는 스웨덴, 화란어 CD가 나왔다. 그러나 주제를 지니고 나온 오리지널 음반은 90년대 후반까지 대략 9종 정도로 파악된다. 대부분의 음반은 크리스토포러스(Christophorus)와 오비디스(Auvidis)레이블을 통해 보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