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요약집(Compendia)은 초창기 미국 한인사와 구한말 우리 외교 기본 문건의 하나입니다.
오래전부터 미국에 있는 우리나라에 관한 자료들을 모두 복사해 우리나라에 가져가서 우리 것으로 만들었으면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바로 이 미 의회 의사록(Congressional Record)에 실린 우리나라에 관한 기사의 복사 작업이었습니다. 그때 외교안보연구원 노재원대사, 이규호 문교부장관, 그리고 학술재단의 후원으로 1845년부터 1949년까지 미 의회 의사록에 실린 한국 관계기사를 1980년도에 복사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만 추려 우리말로 옮겨 이렇게 “미 의사록 한국 관계 기록 요약집: 1878~1949(Compendia of Korean Records appearing in the US Congressional Records, 1878~1949)” 만들었습니다.
미 의회 의사록(Congressional Record)은 비단 의회의 진행 기록일 뿐 아니라 미 의원들의 의회일과 아무 상관없는 사연도 실었습니다. 텅 빈 의회 회의실에서 연설하는 척 읽은 다음 원고를 의사기록원에게 넘기면 의사록에 싣는다고 합니다. 이 요약집에 실린 것들은 이런 절차를 밟아 Congressional Record에 실린 것을 매해 나오는 의사록색인 별책, 곧 Index volume에서 ‘Corea’ 또는 ‘Korea’ 조항에 따라 의사록의 원본을 찾아 복사해서 이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하다 생각되는 것만 골라 요약했습니다. 이 Compendia 체제 필요상 영문과 국문 두 부로 나눠 중복했습니다.
“일러두기”에 적은 것처럼 여기에 실린 우리나라 관계 기록은 이른바 ‘안건(Bill)’, ‘청문(Hearing)’, ‘문헌(Documents)’, ‘연설문(Speech)’, ‘결의안(Resolution)’ 그리고 국무성과 주한 미 공관과의 ‘왕복편지(Correspondence, Dispatch)’, ‘보고(Reports)’, ‘서류(Papers)’, 그리고 한-미 간 여러 조약의 안내 ‘목록’입니다. 또 ‘부록(Appendix)’으로 Congressional Record에 실린 조선 중국의 속국설 부인한 협판(協辦-차관급) 데니(德尼-Owen Nickerson Denny)의 논문 “중국과 조선(China and Korea)”의 원문을 실었습니다.
Congressional Record에 실린 우리나라에 관한 대표적 기록을 보면 주로 구한말 이홍장과 원세개의 조선흡수 음모사건; 3ㆍ1운동 때 일본 탄압 진상; 그리고 미국 재야인사들에게 보낸 이승만 박사의 독립호소문; 그리고 우리 사정을 동정한 미 의원들의 연설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특히 ‘원세개 음모사건’은 그때 임금의 고문으로 우리의 외교직을 담당했던 Owen N. Denny가 폭로한 것이며, ‘일본 탄압 진상’은 미국 선교회에서 입수한 3ㆍ1만세운동의 희생자 명단입니다.
우리나라 이름이 ‘Corea’로 Congressional Record에 처음 나타난 것은 1845년 “House Document,” no. 138인데 이것은 일본과 한국과 미국무역 권장한 것입니다. 그 뒤 33년 동안 우리나라에 대한 기사가 없다가 1878년부터 비로소 ‘Corea’로 나오는데 이는 1866년 General Sherman호 대동강 사건 뒤부터입니다[참고로 이때 강화도에서 약탈한 우리 군기(군대 깃발) 등이 아나폴리스 해군 사관학교 박물관에 있는데 우리 군기의 목록이 실린 Catalogue가 Embassy Archives에 진열되어 있습니다]. 이때 평양감사가 연암 박지원 손자요, 주미 박정양 공사 일가인 박규수(1807~1876)였습니다. 이건 그렇다 하고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내가 잘못 봤는지는 모르나 1882년 ‘한-미 조약’의 의회 비준 기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한-미 관계 기록은 오직 국무성 기록과 문서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때만 해도 미 의회활동에 제한됐던 것 같아 이제처럼 외교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미국의 외교는 주로 해군성이 주관했고, 국무성에는 절차상 사후에 보고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관한 국무성 기록과 문서는 이제 National Archives에 Microfilm으로(원본 안 보여줌) 보관되어 있는데 이 자료의 대출번호는 다음과 같습니다 : RG22, RG23, RG28, RG37, RG38, RG43, RG46, RG56, RG59. 참고로 적어둡니다.
내가 알기로는 한국 국회도서관을 포함하여 우리나라의 여러 학자 또는 기관들이 이 국무성 한국자료를 사 갔으며 구한말 외교 문서 : 미안 출판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교육받은 우리나라 학자는 많으나 이 영문자료를 ‘소화’할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자료 정리하는 일이 거추장스러워 학자들이 이러한 일을 꺼려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은 나라들에 있어서 그들의 자료 정리 Project는 국가의 기본 사업으로 이뤄집니다. 국가 기록을 정리하는 일은 이용과 보관을 떠나 한 나라의 걸어 온 Memory를 후대에 알리고 또 역사는 반복한다는 ‘Law of History’에 비추고자 한 경륜 있어이겠습니다.
이 “요약집(Compendia)”에 실린 ‘3ㆍ1만세운동 희생자 명단’은 정부 보훈처의 독립지사 표창에 참고될까 합니다. 3ㆍ1운동 때 우리 어린 남녀 학생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피 흘렸습니다. 어떤 어머니는 자기 아들이 죽으면 ‘복수’하겠다며 일본 순사에게 대들기까지 했습니다. 희생당한 이 젊은 피, 해외에서 독립 운동한 지사들과 함께 어찌 숭고하지 않습니까. 여기 실린 명단 서울, 평양, 부산, 함흥, 수원 그리고 여러 곳에서 희생당한 학생들입니다. 통일과는 상관없는 우리겨레 어린 혼 위령탑 남산 꼭대기에 세워 그들 넋 위로한다면 그들이 바로 우리 수호신 아닐까요. 3ㆍ1독립만세 사건 진상 여기 실린 Exhibit 1-VIII에 자세히 담겨 있습니다.
또 “청한론(淸韓論)”으로 알려진 데니의 논문 “China and Korea”, Congressional Record, Vol. 19, Pt 9, Senate 50th Congress, 1st Session, August 31, 1888, pp. 8136~8140에 실려 있습니다. 이 논문 가운데서 우리 외교를 담당한 분들에게 참고될 만한 대목만 골라 이를 간단히 그 뜻만 번역했습니다. 되풀이한 곳도 있는데 널리 알리고 싶어 일부러 그렇게 했습니다. 서툴다 보니 좀 어색한 번역 있습니다. 본문 참고하기 바랍니다.
특히 ‘데니’의 논문 “중국과 조선(China and Korea)” 이는 이홍장과 원세개 음모 이른바 ‘조선책(朝鮮策)’에 대한 변호입니다. 원세개 이 사명 띠고 1882년 조선에 와 1894년까지 12년 동안 자칭 감독관(Commissioner)이란 직함 명함 찍어 돌리며 조선에 군림, 위에 말한 것처럼 갖은 행패 부렸다 합니다. 1885년 2월 조선에 세관 감독으로 부임한 47살 미국 중년 변호사 데니(Owen N. Denny, 1838~1900) 1888년 그가 차관급 협판(協辦) 외교 고문으로 승진 그해 2월 “China and Korea”란 논문 썼습니다. 이는 조선 중국 속국설 국제법상 불법이란 획기적 논문인데 자기 주 Oregon 의원에 보내 미 의사록에 실리도록 했습니다.
자료보관이란 꼭 자료 그 자체 또는 이용가치 여부에 안 달려 있나 합니다. 개인이나 사회나 나라나 경험의 축적으로서만 성숙(Maturity)과 성년기(Majority) 가져오기 때문이겠습니다. 또 이용에 있어서도 많은 사람 열람 필요 없고 단 한 사람이라도 이를 이용하면 그 이상 바랄 것 없나 합니다. 바라긴 이 요약집으로 우리 민족 ‘고난사’ 아는 계기 됐으면 합니다.
이 요약집, 되도록 여느 때 쓰는 쉬운(Prosaic) 말로 쓰려 했습니다. 마치 Montaigne 그의 Essays에 파리 장터 아낙네 지껄이는 말투로 쓰고자 했다 한 것처럼! 이렇게 해본 건 내 딴엔 5백 년 동안 보배로운 우리 글 발달 안 한 것 보면 우리민족 “발달하는 두뇌 없다”한 귀화한 여동찬 신부 말 난 믿기 때문입니다. 이래 좀 다른 우리 글쓰기 ‘장르(Genre)’ 찾아볼까 한 내 나름대로 뜻한 바 있어 이렇게 썼습니다. 박제가 그의 북학의에 “다만 말과 글이 일치하면 족하다” 해 용기 얻었습니다(이 말 한문을 두고 말한 것이지만). - 저자 량기백 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