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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15년 12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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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732쪽 | 1,410g | 153*210*40m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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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4년째 진행 중인 독서모임 소울리딩클럽의 후기를 앞으로는 매달 작성하기로 했다. 이번 3월 모임은 김정운 저자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Editology, 편집학이라고 일컬어지는 키워드로 380페이지 가까이 풀어낸 이 책은 방대한 양에 한번 놀라고, 저자의 다양한 배경지식과 그 지식의 연계와 더불어 풀어내는 방식에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이 책이 2014년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지금까지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 김정운 저자의 흔치 않은 통찰력이 한 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책 중 하나인 <노는 만큼 성공한다>를 읽은 적이 있는데, 크게 공감하며 '놀기'의 개념이 비단 play가 아니라 내가 성장하고 나아가기 위한 철학이 되어주고, 결국 사람이 궁극적으로 일을 하기 위해서는 즐겨야 한다임을 알게 해 준 책이기에 이번 책 또한 기대치가 컸다.
3월 모임을 하기 전, 도서관에서 한번 훑어 본 경험이 있는 책이었지만, 다시 한번 읽었을 때 감회가 새로웠다. 그 당시와 지금, 내 생각과 이를 편집하는 능력의 차이였을까? 아니면 그만큼 비판하고 비평하는 안목을 키워서였을까?
이 책은 크게 총 세 장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로 나누어 구성되어 있다. 과학, 문학, 철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와 통섭의 결정체라 하는게 이 책을 표현하는 문구인 것 같다. 워낙 방대한 페이지이니 구구절절 서평을 남기는 것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발췌하여 기록을 남겨 보고자 한다.
'지식-정보-자극', 에디톨로지는 이 세 가지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정의에서 출발한다. 먼저, '지식 Konowlege'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다. 엄청나게 실용적인 정의다. (중략)
한번 구성된 지식은 또 다른 지식과 연결되어 '메타 지식 meta-knowlegde'을 구성한다, 물론 메타의 메타 지식, 그 이상의 메타 지식도 가능하다. 이 단위가 높아질수록 전문적 지식이 된다. 전문가들끼리의 이야기는 이 메타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 그래서 어려운 거다. 공부한다는 것은 이 메타 지식의 습득을 뜻한다. - 30페이지, 창조의 본질은 낯설게 하기다 中
지식의 습득 과정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리가 배운 뉴런, 신경계 구조와 비교하여 이 책의 내용을 토론하였다. 어릴적 모국어의 습득은 우리가 체감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쉽게 습득이 되는 반면, 어른이 되어 배우는 외국어의 습득은 왜 이리 어려운지, 더불어 정치관의 견해의 차이와 이를 수용하는 정도도 결국 지식을 받아들여 정보를 취해 자극을 변경하기까지 그 과정이 고단하여 바꾸기 쉽지 않음까지 다양한 논점들이 오고 갔다.
더불어 마우스를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는 도구로 표현한 말과 이 덕에 인간은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텍스트의 감옥에서 벗어났다는 것, 대학은 더 이상 지식권력의 결정판이 되어주지 않는다라는 점, 백화점의 탄생 이유 또한 소비자들의 편집 안목이 있었음을, 이제는 셀렉트샵이 백화점을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란 이야기 또한 공감이 되었다. 특히 1장 중 6번째 챕터였던 <노트와 카드의 차이는 엄청나다>의 전 문단은 저자인 김정운 씨가 필기의 혁명이라고 표현할 만큼 본인의 경험담을 재치 있게 풀어쓰고 한국 교육의 현실을 직면으로 비판해 놓아 통쾌하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난 아직도 노트 필기에 의존하는 사람 중 하나다.)
제 2장 중 6번째 챕터인 <공간 편집에 따라 인간 심리는 달라진다> 문단도 통으로 인상 깊었다. 사실, 지금 재직 중인 회사가 3층 연구소는 인테리어를 새로 하여 보다 더 업무 효율이 오르고 활력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겠다고 대표이사가 굳은 결심을 하고 자금을 결제했다. 4월이 되면 애플 못지 않은 사무실 공간이 탄생하는데, 내가 있는 9층은 아직 계획이 없다고............... 탁 막힌 벽과 책상, 그리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타이핑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좀, 배가 아프다.
제 3장 2번째 챕터인 <'나'는 내 기억이 편집된 결과다!>는 독서 모임 전 멤버가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한 문단이다. 내가 이야기하는 나는 과거의 나에서 비롯되었음을, 스티븐 잡스와 빌 게이츠의 연설의 비교 또한 흥미로웠다. 생각해보면 천재들은 사회성이 좀 떨어지는 듯...스티븐 잡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로 남았다고 해도 그의 사회성은 그리 본받고 싶지 않다.
그리고 마지막, 사진 옆 문구들과 키워드로 풀어낸 문장 중 인상 깊었던 것들을 따로 남겨 본다.
자신 있는 사람은 이야기가 짧다. 좌우간 이야기든 책이든, 쓸데없이 길면 뭔가 의심해야 한다.
근대 후기의 성과 사회는 각 개인을 끊임없는 '자발적 자기 착취'로 몰아넣는다' "넌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자기계발서의 함정이기도 하다. - 322페이지
엄마야말로 가장 위대한 편집자다! - 345페이지
'콤플렉스'라는 합리화가 없었다면 우리는 참 불행했을 것이다. - 353페이지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참고 읽는 것이 아니다! - 365페이지 (이 책이 그랬어요.....)
이 책을 읽고 나눈 멤버들과의 마지막 이야기는 바로 저자인 김정운 씨가 '난 놈'이라서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 였다. 여기서 '난'은 뛰어난, 평범치 않은 아우라를 품은 정도로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결국 평범치 않았기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고, 그 지식을 널리 공유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덤으로 아재파탈도.
개인적으로 궁금한 사항은 핑퐁처럼 예측할 수 없는 그를 잡고 사는 (?) 저자의 아내가 궁금했다. 난, 이런 남자 절.대. 못. 만. 난.다. 아니, 안. 만.난.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 심리학
김정운 작가의 글 - 때로는 강연 – 은 ‘배설’의 즐거움이 있다. 남들에게는 쉬이 말할 수 없는 감정의 깊은 골짜기를 ‘쪽 팔림’ 없이 드러낸다.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내고 질문을 던지는 화법은 그의 말대로 독자와의 멋진 ‘상호작용’을 탄생시킨다. 그런 면에서 그의 글은 좋은 ‘작품’이다.
본인의 우려대로 그의 글은 높은 품격을 지닌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외면당할 소지도 있다. 너무 ‘서민적’이기 때문이다. 지식과 철학은 언제나 고매한 ‘분들’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는 ‘분들’의 즐거움을 ‘놈들’의 즐거움으로 격상(!)시켰다. 그것은 분들로 분류될 뻔한 자신을 놈들로 자칭한 덕분이 아닐까
그의 성격은 고약하단다. 외모에 대한 자부심을 보더라도 그렇다. 고약한 성격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성격이 고스란히 담긴 삶의 모습은 담백하다. 담백한 이야기의 국물이 목구멍을 넘어가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몸이 따뜻해져 근육이 풀리고 남들 시선 신경 쓰지 않고 너저분하게 드러눕고 싶다. 그냥 그렇게 나른한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은 하나의 영혼이고 싶다.
구수한 외모와는 달리, 그의 관심사는 꽤 고상하다. 철학을 여행하고 그림을 맛보고 글을 입는다. 한국어 잘하는 것도 대단한데 영어와 독어, 일본어를 잘하고 또 공부한다. 그는 언어의 다름이 선사하는 사유의 넓은 영역을 예찬한다. 같은 말이라도 ‘맥락’이 다르다는 거다. 사상과 문화, 철학적 맥락이 다르다는 것은 새로움의 시작이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교수로 불리던 그가 교수는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학생들을 가르치던 일이 결국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었음에 염증을 느끼며 이제라도 자신의 진짜 삶을 찾아가겠다는 다짐은 교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겸손하다. 거짓 삶에 교만함을 대가로 진짜 삶에 겸손하기로 한 것이리라.
하지만 이 책은 결코 가볍지 않다. 고개를 쳐들고 훈계하는 대신 자신을 깔아 뭉개고 우습게 만든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다는 것이다. 바다가 고매한 것은 가장 낮은 곳에서 오랜 시간 먼 곳에서부터 달려온 모든 흐름들을 받아들이는 데에 있다. 그가 ‘뽀록 낸’ 자신의 하찮은 모습이 멋진 이유다.
글마다 부연해놓은 전문가적 지식의 소개도 마음에 든다. 경지에 이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의 찜찜함을 해결해주었다. 중간중간 드러낸 속된 마음도 괜찮다. 내 마음을 읽은 듯하다. 완벽한 ‘상호작용’에 나는 감사할 따름이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신경질적으로 이야기하던 그의 강연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는 이 책 덕분에 우아하게 붓질을 하다 야릇한 생각에 킥킥거리는, 가열차게 글을 써 내려가는 이 시대의 작가로 기억될 것이다.
2016.04.15
격한 외로움의 대가는 격한 부대낌
오랜 독수공방 후에 맞이한 ‘부비부비’야말로 황홀한 법
1. 저자 소개
김정운(金珽運)
문화심리학자이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 2015년 수료했다. 최종 학력은 전문대 졸업이다. 가장 자랑스러운 학위다.
2012년 만 오십이 되던 새해 첫날, ‘이제부터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며 저작 활동에 몰두했다. 4년간 『에디톨로지』 『보다의 심리학』(번역) 등을 출간했고, 『이어령 프로젝트』 『바우하우스』(가제) 등의 출간을 준비했다.
이 책은 일본 생활의 시작과 끝을 담은, 지난 4년의 결산이자 격한 외로움의 결실이다. 2016년 여수로 내려가 화실을 마련하고, 진돗개 두 마리를 기르며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이 꿈이다.
“한국 사회의 진정한 위기는 정치, 경제적 요인으로 야기되는 것이 아니다. 행복한 사람을 찾기 힘든 한국사회의 문화심리학적 구조 때문이다. 사는 게 재미없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라는 이야기다. 인내하며 견디는 방식으로 21세기를 앞서 나갈 수 없다. 사는 게 재미있는 창의적 인재들이 이 나라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
2. 차례
◆ 프롤로그 | 가끔은 정말 격하게 외로워야 합니다
PART 1.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팔굽혀펴기 열다섯 번이면 다 해결된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
달력, 원근법, 그리고 심리학
더 자도 된다, 조간신문은 좀 더 있어야 온다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이 가을, 통속하거나 외롭거나
PART 2.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한 해가 시작되는 진짜 이유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구체화할 수 없다면 가짜다
‘뒤로 자빠지는 의자’를 사야 한다
행복은 철저하게 음악적이다
가능한 한 부지런히 보고 다녀야 한다
흉내 낸다고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PART 3. 금지를 금지하라
금지를 금지하라
대한민국은 ‘시기사회’다
이분법은 나쁜 짓이다
오이디푸스, 아사세, 그리고 홍길동
아! 일본이 분단됐어야 했다
군대 축구, 독일 축구, 그리고 한국 축구
빨리 하시나요?
왜 그래, 아빠같이!
PART 4.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인간은 미숙아로 태어나기에 위대하다
기차를 타면서부터 우리는 불행해졌다
밤에 거울 보고 가위바위보를 했다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비데, 휴지, 그리고 마우스
난 ‘그 매기’가 ‘그 메기’인 줄 알았다
계속 공부할 거다
행복은 아주 느린 거다!
◆ 에필로그 | 갑자기 말馬을 키워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3, 공명 구절
P.6
스스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더 망가져 있습니다. 대한민국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다 만나봤습니다. 대부분 정상이 아닙니다. 본인만 모릅니다.
P.8
외로움은 그저 견디는 겁니다. 외로워야 성찰이 가능합니다. 고독에 익숙해져야 타인과의 진정한 상호작용이 가능합니다. ‘나 자신과의 대화인 성찰’과 ‘타인과의 상호작용’이 가지는 심리학적 구조가 같기 때문입니다. 외로움에 익숙해야 외롭지 않게 되는 겁니다. 외로움의 역설입니다.
P.13
나는 내 전문대학 학위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독일의 박사 학위보다 훨씬 신납니다. 내가 정말 좋아서 한 공부이기 때문입니다.
P.25
고독한 개인의 구원은 역설적으로 개인 내면에 대한 더 깊은 성찰로 가능하다. 고독할수록 더 고독해야 한다는 말이다.
P.36~37
무대 위의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화할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수적이다. 즉, 분장을 하고 분장을 지우는 ‘배후 공간’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무대 위나 무대 뒤의 어느 한쪽만 진짜 삶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서는 안 된다. 무대 위가 다양한 역할이 실재하듯 무대 뒤의 삶도 진짜라는 거다.
P.45
반복되는 것은 하나도 안 무섭다.
P.49
피투성은 ‘염려Sorge’를 통해 자각된다. “나는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하는 질문과 불안감에 사로잡힐 때 ‘나는 이 세계에 던져진 존재이며,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는 피투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제한되고 수동적인 삶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기획Entwurf’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P.58
노력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대출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자신의 작은 성공을 ‘열씨미’만으로 설명하지는 말자는 거다. ‘열씨미의 통제 강박’에 빠지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불안하지 않아야 성공한 삶이다. 잠 푹 자고, 많이 웃는 삶이 진짜 성공이다.
P.62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받아들일 때
사람은
…
성숙해진다.
P.65
고령화 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다.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identity’다.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 그 자체다. 불안은 원래 미래가 불확실한 젊은이들의 정서다. 경험과 연륜의 노인들이 불안해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할 때 한 사회의 균형을 잡으며 건강하게 버틸 수 있는 거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런 대책 없이 수십 년을 견뎌야 하는 ‘젊은 노인들’이 갈수록 늘어난다.
P.70
접근동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회피동기는 일을 치밀하게 한다. 창조적 능력이 발휘되려면 긍정적 정서를 동반하는 접근동기를 자극해야 한다. 놀듯이 일해야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이야기다.
P.79
떨어지는 낙엽에 늙어가는 것을 슬퍼할 일이 아니다. 이 가을에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것들만 기억해야 한다. 또 먼 훗날 즐겁고 가슴 찡하게 기억할 만한 것들을 죽어라 만들어놓아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라고 낙엽도 지고 단풍도 드는 거다.
P.82
문학과 예술은 산만하고 다양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지금과는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다. 아무튼 한 가지만 옳다는 확신에 찬 이들이 제일 무서운 거다.
P.94~95
인간이 가진 아름다운 정서는 ‘그리움’이다. 글과 그림, 그리움의 어원은 같다. 종이에 그리면 그림이 되고, 마음에 그리면 그리움이 된다. 고마움과 감사함은 그리움의 방법론이다. 고맙고 감사한 기억이 있어야 그리움도 생기는 거다. 분노와 원망으로 황폐화되고 파편화된 한국인의 집단 기억에 결여되어 있는, 고마움의 기억을 찾아나가는 한 해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든 찾아내야 한다. 그래야만 생각 차이, 의견 충돌도 견뎌낼 수 있다. 그래야만 함께 살아야 할 이유가 생긴다.
P.101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부화의 시간처럼, 창조적 해결을 위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옳다. 안 풀리는 문제를 계속 끌어안고 있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된다. 풀리지 않는 문제로 괴롭고 힘들면 무조건 그 문제로부터 잠시 벗어나야 한다.
P.106
마지막으로 ‘관심’을 바꾸는 것이다. 전혀 몰랐던 세상에 대해 흥미가 생기면 공부하게 된다. 새로운 사실을 깨치고 경험하게 되는 것처럼 기쁜 일은 없다. 긍정적인 게슈탈트 전환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관심을 바꾸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관심이 바뀌면 사람도 바뀌고 삶의 장소도 바뀌기 때문이다.
P.112
내가 원하는 것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돈은 아주 막연한 거다.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지 않으면 돈은 재앙이다. 사회적 지위도 마찬가지다. 그 지위를 가지고 내가 뭘 하고 싶은 것인지 분명치 않으니 다른 사람들 굴복시키는 헛된 권력만 탐하게 된다.
P.114
행복은 아주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이다.
P.123
숟가락을 잡으면 뜨게 되고, 포크를 잡으면 찌르게 된다. 도구가 행위를 규정한다는 말이다. 도구는 의식을 규정하기도 한다. 아주 편하고 기분 좋게 앉을 수 있는, 뒤로 자빠지는 의자로 규정되는 의식이란 바로 ‘소통과 관용’이다.
P.135
행복이란 강가의 부드러운 부드러운 물결에 기분 좋게 흔들리는 배와 같다. 내며 깊은 곳의 가볍고 즐거운 리듬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뒤집히는 엄청난 재미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런 재미는 오히려 삶의 리듬을 망가뜨릴 뿐이다. 다가올 내일의 작은 변화에 대한 기대로 오늘의 삶에 잔잔한 리듬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같은 기분 좋은 마음의 리듬을 ‘설렘’이라고 한다. 설렘으로 경험되는 행복은 철저하게 음악적이다.
P.143
그러나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두 눈으로 보는 세상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P.146~147
인류는 수만 년의 역사를 통해 겨우 얻어낸, 본질의 통찰 능력을 스스로 포기했다. 사물의 본질을 스스로 파악할 수 없으니 자신의 존재가 헷갈리는 건 당연하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스스로 세상을 해석해야 불안하지 않다. 그래야 제대로 사는 거다.
P.153
늙어갈수록 뒷모습이 폼 나야 한다.
P.157
나와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삶이 지속적으로 창조적이 된다. 삶은 나이 들수록 재미있어야 한다.
P.158
감정이입에 기초한 정서적 설득은 강력하다. 상대방의 정서적 반응을 이끌어내기만 하면 언제든 성공할 수 있다. 감정이입이란 ‘함께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함께’ 느낀 것이기에 논리적 설명은 오히려 구차한 것이 된다.
P.165
금지는 사람을 좌절케 한다. 모든 종류의 금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주체로서의 삶은 끝난다. 처음 금지를 당하게 되면 사람은 일단 저항한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심리가 바로 그것이다.
P.166
처음에는 심리적으로 저항하고 분노하던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금지에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외적 금지가 없어도 스스로 금지하고 체념하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빠지게 된다. 금지를 내면화하고 체념하는 것처럼 무서운 질병은 세상에 없다.
P.176
품격 있는 사회란 시기심의 세련된 관리를 의미한다. 분노와 적개심이 치밀 때마다, 이 분노의 근원이 과연 정당한 시기심인가에 관해 성찰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P.188
유머란 ‘어린아이와 같은 자아ego’에게 ‘어른과 같은 초자아super-ego’가 ‘지금 중요하게 여겨지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그런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라며 달래는 것이라고 프로이트는 설명한다 메타적 시선으로 여유롭게 보는 능력을 유머 감각이라 한다. 유머가 있는 사람이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훨씬 잘 이겨낸다는 것은 널리 확인된 사실이다.
P.210~211
통일된 독일 유럽연합을 주도적으로 이뤄내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분단의 상처를 성숙하게 견뎌냈기 때문이다. 우리의 분단이야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분단의 상처를 자기파괴적 분노와 적개심으로 풀어내서는 안 된다. 이 고통의 시기를 창조적으로 견뎌내야 우리에게도 새로운 리더십의 기회가 온다.
P.220
상징으로 매개된 활동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를 공유할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먹고사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문화가 필요한 거다.
P.233
‘굵고 짧게’라는 구호에 익숙한 한국 사회는 번아웃에 아주 쉽게 노출되는 문화다. 특히, 중년 남자가 그렇다. ‘가늘게 길게’는 뭔가 사내답지 못하고 비겁한 느낌을 준다. 대한민국 중년 남자의 돌연사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이 우연이 아니다.
P.240
상호작용이 가능해야 오래간다. 한동안 꽤 인기를 끌었던 미국식 자기계발서가 요즘 시들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려면 수십 가지 습관을 가져야 한다면 계몽하는 방식으로 독자의 시선을 계속 붙잡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계몽과 상호작용은 개념적으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P.253~254
좀 부족해 보이는 이들을 돌아보는 것은 정언적 윤리학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 존재론의 핵심이다. 미숙한 이들을 돌아보지 못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소통 불가능한 사회가 되고, 결국은 야만으로 전락하게 된다. 소통 부재의 원인을, 매번 아무 책임지지 않는 사회구조적 문제로만 설명하며 흥분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P.261
시간이 내면화되자 인간 의식은 지금까지 없었던 아주 치명적 위협에 노출된다. 시간이 되어야만 먹고, 시간이 되어야만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 인간은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젠 전혀 졸리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자야 하고, 전혀 배고프지 않아도 시간이 되면 먹어야 한다.
P.285
마주 보는 방식으로 공동체의 의미는 절대 만들어지지 않는다. 불을 피우고 둘러앉아야 한다. 단,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중간에 장작불을 걷어차고 먼저 집에 가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P.296
아, 그렇다고 A4적 사고가 더 이상 필요 없다는 건 아니다. 비데 나왔다고 휴지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휴지는 더 고급이 되어야 한다.
P.300
세로로 쓰인 일어 책을 읽으면 참 착해진다. 고개를 쉴 새 없이 끄덕여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까지 끊임없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살아왔다. 그래서 참 많이 힘들었다.
P.318
월급쟁이 생활을 때려치우기만 하면 바로 내 삶의 주인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큰 착각이다 평생 추구해야 할 공부의 목표가 없음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며 자신의 쫓기는 삶을 정당화하는 것 또한 참으로 비겁하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지 않을 관심의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주체적 삶이다. 우리가 젊어서 했던 ‘남의 돈 따먹기 위한 공부’는 진짜 공부가 아니다.
P.321
나와 다른 것들에 대한 두려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때 생기는 질투로 인해 눈을 부릅뜨고 적을 찾아내는 한국 사회다. 그렇게 ‘발명된 적’에 집단 린치를 가하며, 자신은 지극히 정의롭고 선한 존재로 합리화한다.
P.330
지난 몇 년간 내 삶이 하나도 행복하지 않았던 것은 너무 빨랐기 때문이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내 삶의 속도가 나를 슬프고 우울하게 했다는 이야기다.
P.334
“아니, 이런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막막한 자유로움에 ‘쫄고 있는’ 내게 조르바는 또 그런다. 그 따위 두려움은 “개나 물어가라지!”
P.339
그림과 함께 글을 쓰면, 글의 내용이 달라지는 걸 느낍니다. 일단 대세에 지장 없는 것은 건너뛰게 됩니다. 글의 빈틈이 많아진다는 이야기지요. 대신 글의 속도감이 생겼습니다. 내 글이 건너뛴 내용은 글 속의 그림으로 메워지기도 합니다. 독자들은 건너뛴 내용을 스스로 채워가며 읽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그림이 있는 글을 쓴 후로는 독자와의 상호작용이 더욱 활발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 일어나는 암묵적 대화의 폭이 사뭇 넓어진 것 같습니다.
P.340
모든 상호작용에는 서로 간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어야 합니다.
<에디톨로지>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신간이다. 그가 쓴 <남자의 물건>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이번 신간도 기대되었다. 특히 '에디톨로지'라는 제목이 새로워서, 제목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창조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한 것의 결과물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편집의 구체적 방법론을 에디톨로지라고 명명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에서는 마우스의 발명과 하이퍼텍스트가 핵심주제다. 마우스라는 도구의 발명이 인간의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중심으로, 지식과 문화가 어떻게 편집되는가를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했다. 2부 '관점과 공간의 에디톨로지'에서는 원근법을 중심으로 공간편집과 인간의식의 상관관계를 다뤘다. 3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는 심리학의 본질에 관한 설명이다. 먼저 심리학의 대상이 되는 인간, 즉 개인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편집되었는가를 살펴봤다. 아동과 청소년이란 개념의 탄생과정, 즉 개인의 편집과정에 역사발전이라는 근대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작용하과 있는가를 정리했다. 아울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성립과 몰락이 심리학이라는 근대학문 형성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메타적 관점에서 살펴봤다.
저자는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에서는 정보와 정보를 엮어 어떠한 지식을 편집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이에 따라 오늘날 지식인은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잘 엮어내는 사람'이며 천재는 정보와 정보의 관계를 '남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는 사람'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황우석 사건과 미네르바 사건을 통해서 지식이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저자는 종이 위해 쓰인 텍스트 중심의 논문식 지식편집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말한다. 에디톨로지에 기초한 '하이퍼텍스트' 시대, 즉 탈텍스트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황우석 논문의 문제를 파헤친 곳이 대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 최고의 대학교수들이 집단으로 공동저자로 등장하고, 세계적인 잡지의 전문 심사위원들이 검증하고 인정한 논물을 허위로 밝혀낸 곳은 인터넷의 취미 공간이었다. 국가가 황우석 교수를 영웅시 할 때, 취미로 모이는 인터넷의 한 사이트에서 황우석 논문에 관해 갑론을박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황우석 논문의 핵심은 최고의 생명과학 기술이 아닌, 허접한 포토샵 기술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지식권력인 대학의 붕괴는 이미 여러 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그 징조들이 황우석 사건을 통해 폭박할 것이다. 여태까지의 지식은 대학에서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지식은 대학이 정한 절차에 따라 논문이라는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교수는 지식을 심사하고, 그 결과에 권위를 부여하는 지식권력 시스템의 최정점이었다. 이 같은 국가공인의 지식권력이 보장하고, 세계적 지식권력에 의해 검증된 국가적 자부심인 황우석의 논문이 정체불명의 하찮은(?) 네티즌들에 의해 처절하게 붕괴된 것이다. 지식편집의 독점권을 가진 대학의 붕괴가 황우석 사건의 본질이라는 이야기다."
"미네르바 사건을 기억하는 이들은 미네르바가 '전문대졸 무직자'라는 사실만을 이야기한다. 지식권력의 붕괴를 은페하려는 시도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편집의 독점적 권한이 더 이상 대학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안다. 그 엄청난 충격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은 지금도 미네르바가 가짜라고 주장한다. 석박사 학위 없이 인터넷 검색만으로 그 엄청난 지식을 축적할 수는 없다는 거다."
저자는 '한국 학생들은 노트를, 독일 학생들은 카드를 쓴다'는 비교를 통해서 '편집가능성'의 차이를 이야기하여 흥미롭다. 카드는 자기 필요에 따라 다양한 편집이 가능한 반면, 노트는 편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는 방법에서도 편집을 얼마나 잘 활용하는가가 상당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독일 학생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공부한다. 정리하고 외우는 양을 따지면, 카드로 공부하는 독일 학생들의 학습량은 노트로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상대도 안 된다. 독일 역사, 유럽 문화 전반에 관해서도 한국 학생들이 훨씬 더 많이 안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이 따라갈 수 없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자기 생각이다. 독일 학생들은 모은 카드를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시 편집한다. 편집할 수 있기 때문에 카드를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달'이라는 개념과 관련된 프로이트, 피아제, 비고츠키, 융의 이론을 자기 기준에 따라 다시 정리한다. 이때 정리는 그저 알파벳순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설정한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 카드를 편집하는 것이다. 이렇게 편집된 카드가 바로 자신의 이론이 된다."
저자는 예능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이 그토록 오랫동안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자막의 힘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편집의 힘이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자막의 기술은 PD의 영역이다.(...) 수십 대의 카메라가 녹화한 화면을 오직 하나의 화면으로 편집해내야 하는 PD나 영화감독은 이 시대 최고의 편집자다. 뛰어난 에디톨로지적 능력을 발휘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제 7의 멤버'로 불리는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가 만드는 자막은 이제까지 우리가 봐웠던 예능프로그램의 자막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를 통해서 '창조는 편집이다'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읽었다. 저자가 말하고싶은 에디톨로지는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이다. 이 책은 편집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해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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