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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6년 11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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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50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88526606 |
ISBN10 | 8988526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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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재 산문집
북리뷰는 쓸 때 간혹 다른 이가 고민한 것에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곤 한다.
나보다 두 살 아래, 또래의 산문을 읽으면서 그런 기분이 들었다.
북리뷰는 그 글에 대한 내 생각을 쓰자고 하는데 시인의 산문을 읽고 나니 내 생각은 모두 그의 생각에 동화내지는 함몰되어 버렸다.
시인이 시만 잘 쓰는줄 알았는데 산문도 잘 쓴다.
어떤 사람은 잘 훈련된' 문체, '저널리즘적' 문체, '시'처럼 기름을 '쭉' 뺀 문체, 김훈 선생처럼, 지우고 또 지워서 연필로 '꾹꾹' 눌러쓴 문체라고 칭찬한다.
공감하면서 읽었다.
마눌님에게 일독을 권하는데 마눌님은 바쁘다고 한다.
그의 글에 나를 대입시킨다.
나는 이 땅의 산업화 시기와 일치한다.
나는 나 자신과 두절되었다. 그것은 곧 느린 삶, 생태적인 삶과의 단절이었다.
어부의 아들의 아들로 태어나 도시의 아들로 자란 나는 시인과 같이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달콤함과 씁쓰름함을 고루 맛보았다. 비생태적인 삶에서 우리가 살피는 디지털 문명의 그늘은 서늘하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넘어온 삶이 우리 땅의 여느 사람들과 다르지 않기에 그가 꿈꾸는 생태적인 삶을 공감한다. 생태적 삶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까웠던 날”, “‘나’와 자연이 가까웠던 날”, “‘나’가 온전히 ‘나’로 있던 날” 들이다. 라고 한다.
계속되는 열대야로 밤에 에어컨을 켤 수밖에 없다. 에어컨을 켜면서 이문재의 생각을 생각한다.
나는 시원하고 나의 바깥의 대기는 뜨겁다. 다른 이들에게 실외기의 열기가 전달된다는 것은 이기적이다.
시원함이란 방열의 대가로 내가 취득하는 것, 열기의 치환으로 뺏아 오는 것이다.
시인은 열역학 법칙을 이야기 하지 않고 기계문명과 나와 남 사이의 배려를 깨우쳐 주는구나.
첫장의 아날로그는 부채와 에어컨, 골목길, 음식, 휴대 전화, 디지털 카메라, 백화점등으로 급격한 변화에서 웧동화하지 못하는어정쩡한 스탠스를 그리면서 안타까워 하고 있다.
아날로그는 쯤에 의존적이고, 디지털은 쯤을 경멸한다. 나는 대강 철저히를 좋아한다.
나의 몸무게는 오늘 아침 디지털 저울에서 65.5Kg과 65.6Kg에서 왔다 갔다 한다. 디지털은 무수한 중간지대를 없애 버려 65.55Kg을 65.5Kg으로 정확히 액정화한다.
디지털은 노트와 메모와 펜을 사장시킨다. 그 많은 나의 펜들이 서랍에서 잠자고 있다.
요즘 아이들, 디지털 키드는 음식을 먹고 치아를 디카로 찍어 찌꺼기가 있는지 본다고 한다. 영악하다.
어머니는 평생을 기다리셨다. 우리 어머님도 친구의 어머님도 그러셨다. 지금도 그러신다.
디지털 시대에는 기다림이 없다. 디카, 휴대폰과 인터넷은 기다리지 않는다.
나의 일상은 전력의 하수인, 플러그를 꼽은 상태에서의 일상이다. 지금 나는 전기가 없으면 글을 쓸 수도 없고 디카를 촬영할 수도 없다. 맞다. 맞아.
나에게는 충전용 기기가 많아 아주 무척 꽤 헷갈린다. 니켈수소 전지, 니켈 이온 전지를 계속 충전중이다.
시인은 도시적 삶이 인간과 문학의 미래를 견인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당연한 말씀. 난 도시를 떠날 수 있을까?
여행이 사라지고 관광만 남아 있다. 구경하고 소비하는 모두를 질책한다. 멸망한 제국의 부여에서도 그걸 보았다.
시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 건축가는 고개를 자주 끄덕인다.
결론은 심플하다. 단순한 삶과 깊은 생각...........................................
우리가 가야 할 미래는 과거나 현재와 단절된 전혀 새로운 삶의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버린 것, 잃어 버린 것, 잊어 버린 것에서 창출되는 새로운 문화일 것이다.
나는 시인을 앞으로도 그윽하게 바라보기로 한다.
사진가 강운구는 그의 글이 좋아 소나무 흑백 사진을 제공했다고 한다. 사진은 영일군 구룡포, 1998년 , 영월군 서면 배일치, 1995년, 경주 외동, 2002년 ,경주 외동, 2002년, 보성 복내, 1997년 ,서울 북한산, 1993년, 합천 마현, 2003년, 경주 괘릉, 1995년, 서울 북한산, 1993년이다.
최후의 아버지, 최초의 아버지
-------------전략
아버지는 1909년생이고, 나는 1959년에 태어났다. 1989년에 돌아가셨으니, 아버지는 20세기를 고스란히 관통하신 것이었다. 아버지는 전근대의 끝에서 식민지를 거쳐, 해방 공간과 한국전쟁, 그리고 근대화 시기를 통과해 20세기 말엽에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는 그야말로 ‘너무 많은 시대’를 살다 가셨다. 아버지는 평생 농부였지만, 농부였다고 해서 저 시대와의 불화로부터 멀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근대는 거의 주입되지 않았던 것 같다. 옷만 해도 그렇다. 아버지는 평생 한복을 고집했다. 양복이 아예 없었다. 아버지의 옷에서 근대는 중절모와 구두까지만이었다. 몇 해 전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아버지를 생각한 적이 있다. 아버지에게 과연 ‘나’라는 것이 있었을까. 사회적 자아는 있었을지언정, 개인적 자아는 거의 없었을 것 같았다. 저 프로이트가 말하는, 서구 사회학과 심리학이 말하는 ‘주체’는 없을 것이었다. 아버지의 유전자는 전적으로 조선왕조의 유전자였다. 농경 공동체 문화, 가부장적 문화, 남성 중심적 문화를 그대로 전수받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지막 아버지였다. 물려받은 대로, 물려줄 수 있었던 마지막 아버지.
그러고 보니 나는 마지막 아들이자, 최초의 아버지였다. 나는 마지막 아버지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받은 마지막 아들이었지만, 물려받은 것을 내 아들딸에게 물려줄 수 없는 최초의 아버지였다. 이 사태는 매우 분열증적이다. 아버지는 족보로부터 시작해 관혼상제 일체를 고스란히 내게 전수했지만, 나는 그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차례와 제사가 아파트로 들어가고, 돌잔치나 결혼식, 이제는 장례식까지 ‘서비스 업체’에서 도맡는다. 특히 아버지의 권위. 내게는 아버지가 누렸던 권위가 전혀 없다. 나는 아내에게 꼼짝 못하는 좀스러운 남편이고, 아들딸의 핀잔 앞에서 속수무책인 허약한 가장이다.
한때 좋은 아버지가 되자는 캠페인이 벌어진 적이 있다. 저와 같은 캠페인이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분명하다. 최초의 아버지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역할모델이 없기 때문이었다. 근대화 프로젝트는 눈부셨지만, 그리하여 가족을 해체하고, 나고 자란 농촌을 버리고 모두들 거대도시로 빨려 들어갔지만, 새로운 형태의 가족은 그 새로움에 적응할 겨를이 없었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아들딸은 아들딸대로 ‘황무지’에 놓여졌다. 산업사회와 가족 사이에는 엄연한 시차가 있었다. 하지만 그 시차를 좁히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전무했다. 국가가 주도한 근대화는 국민들을 모두 도시로 끌어들여 놓고는 방치했다. 가족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니었다. 가족 구성원은 ‘산업전사’일 따름이었다.
3년이 지나면, 아버지가 나를 낳은 나이가 된다. 쉰. 그때 나는 또 한 번 아버지를 놓고 심하게 앓을 것이다. 나이 쉰에 나를 낳아놓고,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뒤늦게 둘째아이를 낳았을 때, 내 나이 서른여덟이었다. 분만실 앞에서 나는 손을 꼽고 있었다. 둘째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그러니까 앞으로 25년을 더 벌어야 하는구나, 60대 중반까지 죽어라고 일을 해야 하는구나라며 혼자 중얼거리고 있었다.
푸른빛을 띠던 아버지 손등의 힘줄이 눈에 선하다. 늘 수염에 가려져 있던 입술 왼쪽의 작은 혹도 떠오른다. 큰 코에 유난히 깊고 그윽했던 눈매며, 지포 라이터에서 나던 휘발유 냄새도 또렷하다. 두 아이는 나에게서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나는 두 아이에게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물려받았지만, 물려줄 것이 별로 없는 최초의 아버지는 고단하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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