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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05년 01월 0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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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무게, 크기 | 103분 | 130g |
연령제한 | 15세 이용가 |
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심봤다. 별 기대 없이 본 영화인데, 스토리와 캐릭터, 대사가 삼위일체가 돼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일부러 스파이 물을 고른 건 아니고 순전히 우연히 고른 작품인데. 1952년 작이니, 60년도 더 된 흑백작품임에도, 요즘 시점, '이석기'의원의 내란음모와 관련한 사건 때문에 어수선한 상황이라 더욱 스파이의 세계에 몰입하면서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이석기 사건에서도 이른바 R.O 모임에서 참석해 그 자리에서 오간 말들을 녹음해온 사람 역시나 그 조직원이었다고 한다. 아무리 기계가 정밀해지고 첨단 장비가 있다고 해도 정보전의 최전선에는 역시 스파이들의 암약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섯 손가락'은 This is a true story. 라는 자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실화에 기반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으로 출발한다. 영화적 허구를 첨가했지만 창작된 이야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긴 죽느냐 사느냐하는 전쟁판 스파이의 세계에서야 일반인들로선 상상할 수 없는 벼라별 일들이 다 벌어졌을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944년 2차 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때, 연합군과 독일군의 승패가 결정적으로 갈라진 중요한 시기무렵이다. 중립을 표방하던 터키,터키주재 영국 대사의 하인(이라고 자막에 나오는데, 하인보다는 비서,집사에 더 가까와 보였다) 디엘로는 일급 기밀을 독일대사관에 팔기 시작한다.
그는 전에 모셨던 상전의 부인이었던 다비스카 부인을 사랑해서 그녀에게 돈을 주고 나중에 남미로 함께 떠나기로 약속하게 된다.
다비스카 부인은 남편의 재력과 그녀의 미모로 유럽 사교계의 꽃같은 존재였던 모양이지만 이제는 남편이 죽고, 막대한 재산은 독일측에 압류된 상태였다. 프랑스로 돌아가자니 죽은 남편이 독일인이라 손가락질 받을 것이 염려돼 고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터키에 남아서 살자니 수중에 돈은 한푼도 없고. 있던 패물을 팔아 연명하는 처지, 궁지에 몰린 그녀는 독일 대사에게 스파이 노릇을 하겠다고 넌지시 운을 떼보지만 그것마저 거절당하고, 앞날이 캄캄한 상태에 몰린 것이다.
그런 그녀를 예전의 하인이었던 디엘로가 돈을 주며, 그녀밖에 없다고 나중에 함께 리오데자네이로로 함께 가자고 청을 한 것이다.
'다섯 손가락'에서는 디엘로가 잡힐 것인지 여부와 함께 흥미로운 것이 디엘로와 다비스카 부인 두 사람의 관계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이 두 이야기가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였다. 끝에 반전도 있고, 역시 시나리오가 탄탄하고 감독의 연출력이 뒷받침 되니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않고 보게 만드는 스릴 넘치는 작품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과거의 주인집 마나님과 하인 두 사람의 관계가 역전이 되고 남녀사이가 되는 그 과정,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캐릭터와 대사는 볼만했다. 콧대높고 자존심강한 다비스카 부인은 과거 하인에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도도하게 심부름을 시킨다. 그가 자신에게 돈을 주고 사랑한다고 말하자, 언감생심 자신을 넘보냐는 듯한 행동을 하다가 이내 그녀에게 자신의 이름이 에나임을 밝히며 에나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런 다비스카 부인에게 디엘로의 '술 가져와' 이 한마디는 두 사람의 역전된 관계를 선명하게 표현했다.
두 사람은 독일 대사관에 정보를 팔아 모든 거금을 갖고 리오데자네이로로 떠나 신분 세탁을 하고 새류운 생활을 할 준비를 차근차근히 해나가는데..
하지만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상황인데 디엘로의 스파이 행각이 묻힐 리는 없고, 영국 대사관에서는 정보가 새는 것을 감지하고 스파이 색출에 나서게 된다. 독일 측에서도 디엘로의 정보를 반신반의하게 되고..
디엘로에게 독일측이 붙여준 코드명은 '키케로', 영국의 철학자인데, 자신의 암호명을 들은 디엘로는 만족해한다. 하인임에도 자신만만하고 배짱 두둑하고 머리가 비상하기 이를데 없는 디엘로였기에 자신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대사가 대단히 좋다. 대사에서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디엘로가 그동안 살아온 상황이나, 왜 그가 스파이 노릇을 하게 되는지를 거기에 수준높은 유머를 갖추고 있어서 이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역량이 상당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인상적인 장면 중에 하나가,독일 장교가 디엘로에 왜 스파이 노릇을 하는지를 묻는 대목에서였다. 디엘로거 그저 돈이 필요했을 뿐이라고, 가난이 싫어져일 뿐이라 한마디로 답하자, 독일측 장교는 그것 외에 다른 것은 없냐고 묻는다. 애국심같은 대의명분을 재차 확인하려 들지만 디엘로는 그런 건 없다고 일축해버리는 것이었다.
처음에 독일 대사관에 제발로 독일 대사관에 찾아와 스파이노릇을 자청하며 거래를 텄던 디엘로, 처음부터 그는 확실하게 액수를 제시했고 에누리 없이 받아냈다. 누구처럼 애국심도 아니고 협박을 받는 상황이 아니니 제값 받겠다고 배짱 튕기며..
수 백만의 인명을 바쳐가며 전쟁을 벌이는 전시에 누가 이기는지에는 관심도 없고 오로지 돈만이 목적인 스파이라니 한마디로 전쟁에 대한 명분과 포장을 싹 걷어버리는 작가의 일침이 느껴졌다.
디엘로와 다비스카 부인은 잡히지 않고 무사히 리오데자네이로로 떠날 수 있었을까? 다비스카 부인 역시나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가진 것이 없으니 하인까지 넘보는 것이 기가 막혔던 것이었을까? 왕년에 부자집 명문가의 마나님, 사교계의 여왕이었던 그 콧대는 역시 낮아진게 아니었고다. 결국 디엘로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돼 버렸다. 더 나아가 독일 측과 영국 측 모두에게 쫓기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되는데
이 뒷 부분은 그야말로 엎치락 뒷치락이었다. 디엘로의 두둑한 배짱과 비상한 머리는 이럴 때 빛을 발하게 되는데..그리고 마지막 한 펀치까지. 사람 한명 죽지 않고 폭탄 한번 터지지 않는데도 정말 끝까지 눈을 뗄 수 없었던 작품이었다. 스파이 물이라면 두뇌전과 추격전이 이 정도는 돼야지.
이 작품의 결말에 대해 살짝 귀뜸하자면 리오데자네이로로 간 디엘로가 파안대소하는 장면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그 웃음이 승자의 여유인지, 패자의 쓴 웃음인지.. 어느 쪽일지를 보는 재미도 이 작품을 끝까지 지켜보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스파이라면 음모와 배신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해도 달리 할말이 없다. 스파이 세계는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고 피도 눈물도 없는 곳이고, 스파이 노릇도 아무나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나같이 머리 회전 느리고 간이 콩알만한 사람은 애초에 그 바닥에는 한 발자국도 디밀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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