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한국 사회의 무엇인가?
삼성은 한국 사회와 경제를 지탱하는 세계 일류의 대기업 집단인가 아니면, 온갖 불법과 탈법 행위를 일삼는 범죄 집단에 불과한 것인가. 쉬운 대답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에게 삼성은 개인의 삶은 물론, 가족 구성원의 생계를 책임지는 직장이자 삶의 기반이다. 누군가에게 삼성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 꼭 입사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다. 누군가에게 삼성은 자신의 기업을 지탱해 주는 주요 고객사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삼성은 연매출 300조 원에 이르는 초일류 대기업으로, 한국 사회와 경제가 성정하는 데 필수적인 성장의 견인차이다. 반면, 누군가에게 삼성은 ‘사실상’의 고용자이면서도,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기만 하는 참 나쁜 기업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삼성의 작업 현장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그로 인한 산업 재해의 온상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삼성은 무노조 원칙을 기반으로 노동자들의 기본권조차 가로막는 불법 집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삼성은 감히 맞서 싸울 엄두조차 내기 어려운 거대한 힘 그 자체이다.
삼성은 과연 한국 사회의 희망인가, 아니면 문제인가?
이 책이 기획된 의도는 너무나 분명하다. 삼성의 ‘빛과 그늘’ 가운데 어두운 그늘을 걷어 내고 국민적 사랑을 받는 기업집단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이 책의 기획 취지이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삼성에 대한 따가운 비판이기도 하지만, 또한 따뜻한 비판이자 제언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의 필자들 가운데 여럿은 이미 2008년 한국 사회, 삼성을 묻는다(후마니타스)를 통해, 삼성 기업이 불법과 비리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삼성그룹의 지배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고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삼성은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과 이를 통해 비자금 조성 등 불법 비리 행위가 폭로되면서, 국민적인 비판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따라,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직접 나서 총수 일가의 경영 일선 퇴진, 전략기획실 해체, 차명 재산의 사회 환원 등을 언급하며 직접 사과한 바 있었다. 비록 이건희 회장의 사과 성명에 지배?경영권의 독점 세습과 무노조 경영 방침 등 삼성 재벌의 고질적인 악습을 폐기하겠다는 약속은 포함하지 않았지만, 미흡하나마 일정한 개혁 의지와 조치들을 약속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삼성그룹의 자정 기능에 대해 최소한의 신뢰나마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6년여가 흐른 지금, 이런 약속들 가운데 과연 얼마나 많은 것들이 지켜졌을까?
잘 알려졌듯이, 이건희?이재용 부자는 사과 성명 발표 후 2년 만에 다시 경영 일선에 더욱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복귀했다. 전략기획실은 해체되었지만, 그 자리에는 미래전략실이 다시 들어섰다. 불법 조성한 차명계좌에 대한 사회 환원 약속은 예의 그렇듯 여전히 환원되지도 않고 있다. 그 사이 무노조 원칙은 여전히 고수되고 있으며, 경영권은 아무런 탈 없이 3세에게 세습되고 있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삼성은 그 사이 불법과 비리의 그늘로부터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어둠을 걷어 냈을까?
이 책은 이런 질문들 속에서 다시 기획되었고 시작되었다. 삼성의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해 국가도, 언론도, 정치도 질문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시 학계와 노동운동 진영, 시민사회단체들의 활동가들이 다시 모여, 다시 삼성에게 묻고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삼성, 미래가 있는가?
이 책은 개인적 작업의 결과가 아니라 20명 이상의 연구자?활동가들이 만들어 낸 집합적 노력의 산물이다. 또한 순수 학술적 연구가 아니라 실천적 관심에 기초한, 실천적 활동을 담보한 학술적 연구라는 점이 또 다른 차별성이라 할 수 있다. 삼성노동인권지킴이와 함께 이 책의 출판을 위한 여섯 차례의 토론회를 공동 기획한 참여사회연구소, 함께하는시민행동,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그리고 이를 후원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삼성의 변화를 견인하기 위한 실천적 활동을 함께할 연대 단체들이다.
● 책의 구성
제1부┃삼성 재벌의 지배 구조와 축적 체제
삼성그룹은 어떻게 자본을 축적하며 총수 일가가 그룹과 계열사들을 지배하는지를 분석한다. 삼성그룹은 총수 일가의 지배?경영권의 독점?세습을 위해 불법?비리를 일삼고 있으며, 삼성그룹은 다수의 희생을 수반하며 경제적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혜택은 총수 일가를 중심으로 한 소수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1장 송원근의 “이재용 시대, 삼성 재벌의 지배 구조”는 이건희 이후 이재용 시대를 준비하는 삼성의 지배 구조의 변화가 ‘위기의 삼성’에 대처하는 삼성의 사업 구조 재편과 어떤 관련이 있으며, 삼성전자 중심의 사업 구조 재편이 삼성의 경영권 승계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살펴보았다. 나아가 그간 빠른 추격자로서 삼성전자의 기업 경영 방식, 혹은 삼성 웨이가 이재용 시대를 맞이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를 제시했다.
2장 이병천?정준호의 “삼성전자의 축적 체제 분석”은 2008년 이명박 정부 집권과 세계 금융 위기 이후 변화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축적(생산과 분배) 방식을 분석한다.
3장 조승현의 “법을 조롱하는 자”는 총수 일가의 지배?경영권 세습을 둘러싼 탈법행위와 특권들을 분석한다.
제2부┃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과 노동 인권 유린
삼성 재벌의 무노조 경영 방침이 생산 현장에서 어떻게 관철되며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분석한다. 삼성 재벌의 무노조 경영 방침은 철저한 노동자 감시와 억압적 노동 통제 방식과 함께 추진되고 있으며, 그 결과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은 유린되고 노동관계법 조항들은 무시되며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에 주목한다.
4장 조돈문의 “삼성의 노동 통제와 노동자 조직화”는 복수노조 합법화와 민주 노조 결성이라는 변화된 조건 속에서 삼성이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하는지, 무노조 경영 방침을 고수한다면 이를 관철하기 위해 어떤 노동 통제 전략을 구사하는지, 노동 통제 전략은 어떤 점에서 연속성을 보이고 어떤 점에서 변화를 보이는지를 분석한다.
5장 김진희의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현주소”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삼성 계열사 작업장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노동삼권의 부재와 열악한 노동조건을 분석한다.
6장 류성민의 “삼성의 성과주의 임금, 문제는 없는가?”는 삼성그룹의 성과주의에 기반을 둔 높은 임금수준의 이면에 숨겨진 두 가지의 문제점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개된 자료를 통해 심층적으로 살펴본다.
7장 권영국?류하경의 “삼성전자서비스의 인력 운영과 위장 도급”은 삼성전자서비스가 자사의 핵심 업무인 제품 서비스 업무를 협력 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있는데, 이런 하도급을 이용한 인력 운영 방식을 분석한다.
제3부┃삼성의 사회적 책임
삼성그룹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삼성그룹이 협력 업체와 지역사회 등 주요 이해 당사자들에 기여하고 납세자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를 검토하는 한편,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지속가능보고서??는 계열사들의 사회적 책임 경영 실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검토한다.
8장 김주일의 “삼성의 하도급, 상생인가, 기생인가?”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협력 업체와의 관계를 분석한다.
9장 한인임의 “삼성의 산업재해 발생과 지역 주민에 대한 영향”은 삼성그룹의 산업재해 실태를 확인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다.
10장 강병구의 “삼성?재벌의 세제 혜택”은 재벌 대기업에 집중된 세제 혜택의 실태와 변칙적인 상속 및 증여 행위를 분석하고 합리적인 세제 개편 방안을 모색한다.
11장 이승협?신태중의 “삼성의 지속가능보고서, 이대로 좋은가”는 삼성전자와 삼성SDI를 근간으로 하여 삼성그룹 계열사가 발간한 지속가능보고서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제4부┃삼성의 사회적 지배력
날로 강화되는 우리 사회에 대한 삼성의 지배력을 분석한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법조계에 대한 삼성의 지배와 엑스파일 사건을 검토하는 한편, 자금력과 광고를 매개로 삼성이 언론을 통제하고 지배 담론의 변화를 주도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12장 백주선의 “삼성의 법조 지배”는 삼성 재벌이 어떻게 법조계의 지배를 통해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왜곡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13장 박갑주의 “삼성 엑스파일 사건을 통해 본 삼성의 사회적 지배”는 삼성 엑스파일 사건을 통해 삼성그룹이 통제되지 않는 영향력과 지배력을 이용해 민주주의의 제도와 절차조차 왜곡?파괴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14장 김서중의 “삼성의 언론 지배 방식과 현실”은 삼성이 어떻게 언론을 관리하며 삼성에 호의적인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지를 분석한다.
15장 전승우?지주형?박준우의 “삼성 광고의 변천으로 살펴본 한국 사회 지배 담론의 변화”는 삼성의 텔레비전 광고를 분석해 한국의 사회 변화를 파악하고 이를 통해 다시 한국 사회에 대한 삼성의 이데올로기적 개입을 보여 준다.
제5부┃삼성의 지배와 사회적 비용
삼성의 지배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검토한다. 삼성이 그룹 계열사들의 이윤 축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의료 민영화를 주도하고 부동산 개발로 도시 주거 문화를 파괴하며 전력 다소비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삼성 성장의 비용을 사회화하고 우리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과정을 분석한다.
16장 송태수의 “삼성의 로비학”은 정부 정책 및 입법 등에 영향력을 행사해 의료 민영화와 유U헬스케어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삼성의 로비학을 분석한다.
17장 전규찬의 “아파트 공화국 삼성의 래미안 공간 지배”는 뉴타운 계획에 편승해 아파트 공화국의 건축을 선도하는 삼성물산의 래미안 아파트 건축에 관한 일종의 르포르타주이다.
18장 이보아의 “지속 가능 사회를 향한 삼성의 진심”은 삼성전자의 성공과 그에 대한 한국 경제의 높은 의존도가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에 큰 위협으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분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