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크게 3부분으로 나뉘어 전개된다. 현존하고 있는 불법 폭력조직인 코모라에 들어가기 위해 악당 짓을 열심히 하는 철부지 청년 둘의 이야기, 방직공장의 재단사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살인과 불법적인 독극물 투기사업을 벌이고 있는 범죄가문 코모라..
이 3가지의 이야기는 서로 연관되어 돌아가고 있다. 나폴리의 빈민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법 사업과 폭력조직을 늘 접하고 살아온 어린 소년들의 소망은 오로지 한 건 크게 해서 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것, 그 대가로 죽음은 있을 수 있는 일이며 친구도 가족도 조직보다는 한 수 아래의 세상이다. 사람의 목숨이 아무렇지도 않게 사라져가고 마치 꽃을 꺾듯이 목숨을 빼앗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공급되며 이 같은 수요와 공급을 위해 슬럼가의 남자 아이들은 이미 소년 시절부터 주워 듣고 보고 배운다.
영화엔 기승전결의 서술적 전형성이나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다. 관객은 인물들의 감정이입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단지 그저 사태의 관찰자로서 지켜보고 놀라며 충격을 받고 경악스러워 할 수밖에 없다. 결말 혹은 결론조차 도출되지 않는 영화의 말미에서 관객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그 참혹함, 그 이상의 감정이입도 허용되지 않는다. 방직공장 재단사의 이야기는 오히려 평범하면서도 충격적이다.
명품 짝퉁 제조업의 악덕 사장 밑에 일하던 재단사는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온 중국 업자의 공장에 기술 지도를 한다. 이 사실을 눈치 챈 악덕사장은 코모라에 의뢰하여 자신의 재단사를 스카웃한 중국 업자를 백주 대로에서 총으로 살해해 버린다. 그들은 그저 살아남기 위해선 구조적 모순이 누적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사회 체제에 적응해야 하며 생존을 위해선 그 어떤 행위도 정당성이 부여되고 저지르는 모든 죄악에 면죄부가 부여된다.
감독: 마테오 가로네
이탈리아 로마 출생. 미술계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그림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예술대학을 졸업한 후 수년간 촬영보조 기사로 일하다 화가로 활동을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1996년 첫 번째 단편영화 [실루엣] 이후, 세계 여러 영화제에 초대되었다. 첫 번째 극장 편인 [이민자들의 땅(테라 디 메조)]로 토론토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나폴리의 결혼 사진가] 역시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된 바 있다. 2002년작 [박제사(엠발메르)]로 드디어 비평가들 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부터도 사랑받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영화는 프랑스 레지스탕스들이 독일군으로부터 12 명의 포로를 구출해 놓고 보니 정체 모를 하나까지 13 명이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 된다. 도대체 이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스파이일까 , 그를 두고 서로 다른 시각을 표출하는 대원들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집요한 독일군 추격을 어떻게 피하고 물리치며, 내부의 이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하는 걸까 추격하는 독일군이 다가오자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결정이 내려진다.... 이 영화는 심오하게 그들의 갈등과 긴장감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충분히 의미가 있어 보인다.
감독: 코스타 가브라스
그리스 출신의 프랑스 영화 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자.
주로 정치적 사회적인 소재의 영화를 찍어 성공한 감독으로, 멜리나 메르쿠리와 마이클 카코야니스에 이어 가장 국제적으로 널리 이름을 알린 그리스 출신 영화인으로 꼽힌다.
콘스탄티노스 가브라스(그리스어: Κωνσταντ νο Γαβρ : 1933년 2월 12일-)는 그리스계 프랑스 영화감독이다. 좌익 성향으로 그 정치성이 분명한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대표작으로 그리스 독재 정권을 다룬 《제트》(1969년작,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수상), 댄 미트리오네 피살 사건을 다룬 《계엄령》(1972년), 찰스 호먼 실종사건을 다룬 《의문의 실종》(1982년, 황금종려상 및 아카데미 각색상 수상) 등이 있다.
아픈 동생 '다니라'를 치료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하는 거라곤 좀 도둑질뿐이었고 그마저도 다리 밑에서 먹고 자는 열악한 환경에서 지낸다. 이후 불법 체류자 단속반이 떴을 때 기지를 발휘한 덕에 능력을 인정받아 나름 좋은 대우를 받게 되지만 오래간만에 돌아간 고향에선 안 좋은 소식만이 기다릴 뿐이다. '아즈라'와 결혼한 후 이탈리아로 다시 넘어가지만, 아즈라가 아이를 낳고 사망하자 출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해 결국 아이를 버리게 된다. 몇 년 후 이탈리아에서 앵벌이를 하던 다니라를 기적적으로 찾는데 거기서 다니라가 자신의 아들도 돌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동생과 아들을 집으로 보낸 뒤 복수를 하기 위해 아흐메드를 찾아가 염력으로 포크를 던져 죽여 버린다.
하지만 아흐메드의 새로운 부인이 자신의 결혼식을 망쳤다며 도망치던 페르한을 총으로 쏴버리고 페르한은 기차 위에 떨어져 죽음을 맞이한다. 이때 하늘에서 하얀 칠면조가 날아오는 환상을 본다.
1933년 13대 달라이 라마가 서거한 뒤, 레팅 린포체('린포체'는 영적 스승을 의미하는 칭호임)는 고인이 된 라마와 역대 모든 달라이 라마의 대를 이어 관세음보살의 현신이 될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을 때까지 섭정직을 맡고 있었다.
어느 날 레팅은 환영을 보고 그 환영의 배경이 된 국경의 변방 지대에 소년을 찾으러 승려들을 보냈다. 오랜 탐색 끝에 후보자로 여겨지는 2살의 라모 된둡이 발견된다. 태어날 때 불교의 성조인 까마귀가 소년을 지켰으며 또한 티벳의 수도이자, 달라이 라마의 사원이 있는 라사에 가려고 한다는 소년.
승려들은 소년의 집으로 가서 똑같이 생긴 여러 개의 물건을 보여주면서 마지막 테스트를 했다. 각각의 물건에는 13대 달라이 라마가 사용하던 것이 들어 있으며 소년은 그의 물건을 집으면 되는 것이었다. 라모 된둡은 이 테스트를 통과했다.
바로 그가 14대 달라이 라마 '쿤둔'(The Presence, 고귀한 존재) 이었다. 불과 5세에 세상을 구원하는 쿤둔의 자리에 즉위한 이 소년은 그러나 가장 치열한 역사의 격동에 놓인다. 2차 대전 후, 중국이 일본에서 벗어나 혼돈을 겪고 있을 때 소년은 불과 열 두 살이었다.
공산화된 중국이 1957년 마침내 침공해오고 자신의 동포가 아무런 무기 없이 그들 앞에 무자비하게 죽어갈 때도 소년은 사춘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1959년 18세의 나이에 소년은 중국의 암살 위협을 피해 긴 망명길을 떠난다.
버트 헌터는 대서양에 접한 메인주의 해변가 휴양지인 파인 섬에서 아내 실비아, 아들 조니와 작은 호텔을 운영 중이다. 여름의 어느 날 버트 아버지 밑에서 일하다 지금은 백만장자가 된 켄 조젠슨이 아내 헬렌, 딸 몰리와 이곳을 방문한다. 실비아와 켄은 젊은 시절 연인이었지만 실비아의 어머니가 가난한 켄을 반대해 부자인 바트와 결혼시킨 것. 그 당시 바트는 부자였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하고 알코올중독자가 되어 겨우 작은 호텔을 운영 중이다. 켄은 실비아가 결혼하자 홧김에 충동적으로 까칠하고 보수적인 헬렌과 결혼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켄 조젠슨이 가족과 요트 여행을 와 바트의 호텔에 묵겠다는 편지를 받자 자존심이 상한 바트는 이를 거절하려 한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운 실비아는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던 두 사람은 다시 만나자 뜨거워지고
지금의 무의미한 삶을 지속하는 게 어리석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아들 딸인 조니와 몰리도 첫눈에 반해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그러던 중 조니와 몰리는 뱃놀이를 갔다가 거친 파도를 만나 무인도에서 하루 밤을 보내게 된다. 양쪽 부모들은 난리가 난다. 해양 경찰에 겨우 구조된 두 사람. 그런데 몰리의 어머니는 의사에게 딸의 몸을 검사하게 한다. 거기다 이 사고를 조사하러 온 경찰에게 남편과 실비아의 정사를 폭로한다. 버트도 이를 눈치채고 있었고. 지역신문들은 다투어 파인랜드 섬의 스캔들을 대서특필한다. 결국 두 부부는 이혼하게 되고 몰리는 기숙학교로 보내지고 조니는 버지니아의 고등학교에 가게 된다. 그렇게 혼자가 된 켄과 실비아는 결혼식을 올린다. 졸지에 연인에서 남매 사이가 된 조니와 몰리는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지만 마음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몰리의 학교를 찾아간 켄은 새로 맞은 가족과 함께 살길 권한다. 그렇게 조니와 몰리는 새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게 된다. 그러나 조니와 몰리의 사랑은 더욱 깊어져서 임신하게 된다. 두 사람은 결혼을 결심하고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리고 혼인신고도 하려고 하지만 남매 사이인 두 사람의 결혼식을 주관할 목사를 찾을 수 없다. 여러 주에도 결혼 신청서를 제출하지만 모두 거부당한다. 켄과 실비아는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아픔을 잘 알기 때문에 이제 두 사람을 갈라 놓을 수 없음을 안다. 결국 조니와 몰리는 켄과 실비아의 이해 속에 결혼이 인정된다. 조니와 몰리는 해변으로 돌아와 자신들의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험프리 보가트는 검사로서 필라델피아를 뒤흔든 범죄조직의 두목을 전기의자로 보내려 한다. 범죄조직 두목 멘도자를 어렵게 체포하기는 했는데, 증인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살인했는데 증인이 하나도 없다니, 험프리 보가트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멘도자는 살인을 비즈니스로 하는 거대 기업을 창조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 손으로 살인을 한 적은 없었다. 그는 늘 흑막에 숨어 히트맨들을 움직였다. 그러니 증인이 없을 수밖에...... 어렵게 확보한 멘도자의 똘마니는 증언을 하기도 전에 공포심에 광란에 빠져 스스로 자살하고 만다. 영화 처음 30분 정도는 이 똘마니와 험프리 보가트의 신경전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관객들은 똘마니와 험프리 보가트가 주인공인 줄 착각한다. 그런데 똘마니가 죽고 만다. 관객들도 험프리 보가트도 낙담한다. 바로 며칠 후 멘도자의 재판 일이다. 그때까지 멘도자의 살인을 증언할 증인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수년을 노력하고도 못 찾은 증인을 어떻게 며칠 만에 뚝딱 찾아낸단 말인가 험프리 보가트는 절망 속에서 필사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사건들을 찾다가 아주 사소한 사건을 하나 찾아낸다. 반쯤 미친 남자가 경찰서에 찾아와서 자기가 카르텔의 명령으로 자기 여자친구를 강제로 살해했다고 자수한 것이다. 남자는 죽고 싶다는 말만 되풀이하다가 자살하고 만다. 그런데 남자가 증언한 자기 상급자들 중에 멘도자의 부하 하나가 끼어있었던 것이다. 험프리 보가트는 절망 속에서 유일하게 남은 이 동아줄을 잡으려 한다. 그는 이 사건을 계속 추적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다. 영화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까지 롤러코스터처럼 엄청난 속도와 서스펜스를 가지고 질주한다. "거대한 범죄조직이 왜 하찮은 상점 여종업원을 히트맨을 시켜 살해했던가 도대체 왜 " 이 질문 하나를 가지고 끈질기게 사건을 추적해나간다. 그 끝에는 멘도자가 있기를 기대하면서...... 험프리 보가트의 남성적이고 터프한 매력이 잘 발휘된 영화다. 영화는 허술한 부분이나 없어도 좋을 부분이 하나도 없이 아주 단단하게 잘 만들어진 수공예품 같다. 다른 등장 배우들도 유명 배우들은 아닐 지 몰라도 연기력이 매우 뛰어난 배우들이라서, 적재적소에서 긴장을 만들어냈다 유머를 만들어냈다 하면서 아주 풍부한 에피소드들을 창조해낸다. 살해당해서 썩어 물 위에 떠오른 여인의 시체를 보여주는 등 당시로서는 잔인하고 쇼킹한 장면들이 있었겠지만 지금 보면 아주 점잖은 영화처럼 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탁월한 점은, 험프리 보가트의 터프하면서도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연기와 놀라운 각본일 듯하다. 막판의 놀라운 반전까지 흠잡을 데 없다.
험프리 보가트
미국의 배우. 트렌치 코트와 중절모를 쓴 탐정 캐릭터로 널리 알려졌으며, 미국 탐정의 대명사 샘 스페이드와 필립 말로 역을 모두 맡았던 하드보일드의 남자. 유명한 명대사는 영화 카사블랑카에서 남긴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가 있다.
필름 누아르에서 큰 활약을 펼쳤고 해당 장르를 개척한 배우로서 필름 누아르의 대표격으로 평가받는 배우이다. 미국에서는 Badass의 상징적 존재이자 사실상 영화 연기 내에서 쿨한 터프가이, 입체화 된 하드보일드 캐릭터를 처음 선보인 배우이다. 《카사블랑카》의 로맨틱한 터프가이나 《몰타의 매》의 하드보일드 이미지에서부터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에서 보여주는 탐욕으로 뒤틀려 망가져가는 추악한 모습이나 《케인호의 반란》의 퀴그 함장 같이 PTSD로 무너져내린 초라하고 옹졸한 인간까지 두루 연기하며 스타 이미지에 매몰되지 않는 생동감 있는 인물상들을 창조해냈다. 보가트 이전의 주연급 배우들이 주로 전형적인 착한 주인공이나 코미디 캐릭터들에 불과했다는 것만 봐도 영화 연기에 있어서 전환점이 된 인물이다. 어찌 보면 존 가필드를 거쳐 말론 브란도 이후 물밀듯이 쏟아져 나온 다양한 개성의 성격파 배우들의 큰 틀을 프레드릭 마치와 함께 미리 잡아준 배우라고 볼 수 있다. 훗날 AFI(미국 영화협회) 선정 가장 위대한 남배우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