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e: 직박구리에게 배우다
Author: 김은아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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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박구리에게 배우다

김은아 저 | 시와사람사 | 2024년 05월 30일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 판매지수 42 판매지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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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28쪽 \| 186g \| 1252008mm
ISBN13	9788956657219
ISBN10	8956657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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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김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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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 팔금면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였다. 201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2011년 [시와사람] 신인상,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시와사람시학회 시학상 수상,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하였고 시와사람시학회, 원탁시, 광주·전남 작가회의,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국제PEN광주, 신안문학,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시집 『흔들리는 햇살』, 『흰 바람벽』... 전남 신안군 팔금면 출생으로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하였다. 2010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2011년 [시와사람] 신인상, 전국계간문예지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시와사람시학회 시학상 수상, 광주문화재단 창작지원금 수혜하였고 시와사람시학회, 원탁시, 광주·전남 작가회의,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국제PEN광주, 신안문학, 시산맥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시집 『흔들리는 햇살』, 『흰 바람벽』, 『직박구리에게 배우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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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며칠째 폭설주의보가 내리고 신경을 곤두 선 초긴장 상태로 칼바람 사이 뚫고 출근한다 눈발은 바람에 어지럽고 외출한 가족의 안부가 불안하다 인생은 폭설의 연속이어서 늘 미끄러워 흔들리는 길, 천 번을 흔들려야 꽃이 피고 천 번을 흔들려야 엄마가 되고 천 번을 흔들려야 강을 건널 수 있다 푹푹 빠지는 발걸음 내딛으며 미끄럽고 흔들리는 길을 간다. --- 「흔들리는 길」 마당에 직박구리 한 쌍 찾아왔다 늘 함께하는 부부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대야에 받아 둔 물에서 날개를 펴고 어린아이 물장난치듯 건반 위 음표처럼 경쾌한 몸짓으로 서로의 악기가 되어 연주한다 허공에서 부리를 맞대기도 하고 날갯짓 맞장구 치며 길 없는 길 내며 온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나란히 가는 길 어느 순간도 같이하여 영원永遠이 된다는 것 직박구리 한 쌍이 가르쳐 주고 날아갔다. --- 「직박구리에게 배우다」 두모악 갤러리*에 그가 있었네 주인 없는 그리움 생각할수록 그리움은 커지지만 내 내면과 마주한 날 생각하지 않으면 그 생각은 없어 편하고 생각도 한 생각 생각이 잠들어 버리네 자연은 가장 오래된 경전이라 했네 사진 속에서 일렁이는 용눈이 오름 오름마다 누워있는 나신의 여인들 육신이 죽어가도 여인들의 온기를 부활했네 오래된 친구처럼 연인처럼 내 마음 속에 살아있는 그가 그 섬에 있었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고 김영갑 작가의 오름 사진집 이름. *두모악 갤러리 :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소재. ---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돌담에 기댄 벚꽃 핀 봄날, 정갈하게 비질한 듯 골목의 쓸쓸함을 지운다 바람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꽃이 피기까지 사람이 살아온 궤적과 같았으리 그러므로 그냥 꽃이 아니다 햇빛과 태풍과 눈보라가 피워낸 꽃이다 삶의 쓸쓸함이 깃든 사람이다 길에 떨어져 바람에 휩쓸리는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그 길을 걸어온 나는 꽃이었다 사월 첫 주 사람들은 꽃구경 나와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데 저 가녀린 꽃잎은 아픔이다 슬픔이다. --- 「그냥 꽃이 아니다」 가을 언덕에 그녀가 서 있다 들녘은 배부르고 따뜻한 모습인데 소중한 기억들은 하나둘 지워지고 어깨에 짊어졌던 바위 같은 짐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저물면 내려놓을 수 있으려나 햇살은 짱짱한데 그녀의 시선 끝에 촉촉하게 젖어오는 쓸쓸하게 걸어가는 모습 모든 것이 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의 이면에 켜켜히 쌓인 것들 아이처럼 펑펑 울며 모두 쏟아내고 싶어도 소리죽여 속울음 우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그 고생 잊지 않고 있다고 그녀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 「홀로 걷는 가을 길」 초록 나뭇잎의 광휘가 황홀한 봄날 나무의 감정을 느껴본다 보드라운 팔로 바람의 속삭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뭇잎을 안고 보니 나도 한때는 푸른 청춘이었지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 보이고 듣지 못한 것들 들린다 “흰 것이 씻어서 된 것이 아니며 검은 것이 물들여 만든 것이 아니듯”* 세상은 혼자서 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사 깨닫는다 나중에 피는 꽃이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늦게 일어난 짱짱한 햇볕을 보듬는다. *「능엄경언해」 출전 --- 「나이 들어가면서」 잎을 다 떨군 나뭇가지 끝에서 떨던 가을바람이 창문을 두드리고 아침 저녁으로 차가운 기운이 스미는 가을산은 수채화 물감을 풀어놓은 듯, 햇볕 받은 일렁이는 억새의 몸짓이 가볍다 천지는 풍요로움으로 넉넉하고 계절은 저물어가는데 푸르렀던 마음은 이다지도 야위어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걷는 발걸음은 어디쯤일까 지상의 모든 生들이 흔들리며 아프게 아프게 피어났겠지만 오늘은, 이정표 잃은 길 정처없다 쓸쓸한 생의 길에서 한때 빛나던 초록빛 생각들 어지럽게 뒹구는 날 은발의 억새꽃처럼 흔들리고 있다. --- 「가을 들녘에서」 한계절 울긋불긋 아름다웠던 단풍 절정을 끝으로 바람에 떨어져 무참히 짓밟혀 배수구가 막혔다 빗자루로 쓸어야 할 곳을 쓸고 단단하게 막혀버린 흙들을 파내야 하는데 동맥동화 환자의 혈관처럼 비가 오면 쓸려온 나뭇잎이 더 단단하게 막아 물이 길에 넘쳐 아수라장이다 나의 길은 오후를 지나 늦가을로 접어드는데, 길가에 뒹구는 낙엽의 최후를 보며 숨이 막혀온다. --- 「숨이 막힌다」 산책길 묘지 하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승의 목소리를 듣는다 사람들 기억 속에서 점점 잊혀져 가는 것처럼 봉분은 낮아지고, 잔디도 사라지고 한겨울 마삭만이 푸르다 돌보는 흔적이 없던 이곳에 누군가가 작은 돌탑 하나 쌓아 죽은 자의 존재를 규명하려는 듯 生이 덧없는 것이라고 말하는 듯, 평지로 되돌아가는 봉분이 풍화(風化)하고 있다.

---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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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生의 깊이와 생각의 깊이 - 김은아 시집 『직박구리에게 배우다』 _ 강 경 호(시인·한국문인협회 평론분과 회장) 1. 김은아 시인의 제3시집 『직박구리에게 배우다』는 첫 시집과 두 번째 시집에서 지향해 온 시적 경향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삶의 연륜이 깊어지는 만큼 시적 의미가 더욱 깊어지고 삶에 대한 깨달음과 통찰이 더욱 진지해졌다. 이는 삶을 대하는 시인의 태도가 더욱 진정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전 시집들이 보여주는 실존적 물음을 삶의 형식으로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까닭이다. 일상과 자연에서 얻는 깨달음의 시편은 그의 삶에서 던져지는 질문을 그가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생명성을 탐구하는 시편들 또한 한층 견고해져 생명성의 본질을 묘파하는데 익숙해져 있어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더욱 과묵한 연민의 모습을 띠고 있어 그가 시를 단순한 언술행위로만 보지 않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김은아 시인이 자신의 내면으로만 침착하지 않고 사회적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서정시가 대상 너머의 진실을 발견하는 것이라면 김은아 시인의 『직박구리에게 배우다』는 앞서 펴낸 두 권의 시집의 시적 경향을 더욱 심화시켜 형이상학적인 지점에서 발화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2. 인간은 보편적으로 세월의 연륜이 쌓여가면서 깨달음의 지혜를 갖게 된다. 그 깨달음은 자연과 사물, 그리고 일상의 사소한 정서적 사건에서 보다 나은 인간의 길을 체험을 통해 얻게 된다. 이러한 시의 변화가 김은아의 시집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좀체로 나타내지 않는 시인의 성정이지만, 시를 쓰는 가장 순수한 마음의 상태에서 시라는 장르가 지닌 여러 장치를 통해 자신의 체험을 객관화시킨다. 이는 시와 시인의 체험이 만나는 지점으로 이번 시집에서 보다 성숙한 면모를 보여준다. 마당에 직박구리 한 쌍 찾아왔다 늘 함께하는 부부이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대야에 받아 둔 물에서 날개를 펴고 어린아이 물장난치듯 건반 위 음표처럼 경쾌한 몸짓으로 서로의 악기가 되어 연주한다 허공에서 부리를 맞대기도 하고 날갯짓 맞장구 치며 길 없는 길 내며 온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나란히 가는 길 어느 순간도 같이하여 영원永遠이 된다는 것 직박구리 한 쌍이 가르쳐 주고 날아갔다. - 「직박구리에게 배우다」 전문 자연은 언제나 시인에게 영감을 준다. 영감은 상상력의 근원이 되어 새로운 이미지는 물론 정신적 깊이에 이르게 한다. 이 작품에서 화자이기도 한 시인은 마당에 날아와 대야에 받아둔 물에서 물장구를 치는 직박구리 한 쌍을 바라본다. 어쩌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정경이지만 화자는 깨달음에 이르는 순발력을 갖는다. 그저 대야의 물에서 물장구치는 직박구리 한 쌍의 즐거운 한때일 뿐인데, 그 모습에서 “날개를 펴고 어린아이 물장난치듯/건반 위 음표처럼 경쾌한 몸짓으로/서로의 악기가 되어 연주한다”고 한다.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이미지를 변용하여 직박구리 한 쌍의 행위를 서로에 대한 깊은 사랑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서로에게 악기가 된다는 것은 서로를 위한 아낌없는 사랑을 의미한다. 주지하다시피 악기는 음악을 연주할 때 사용하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자신들의 몸이 상대의 감정, 여기에서는 즐거움과 행복한 감정을 표출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이러한 직박구리의 행위는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늘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을 화자는 매우 구체적이고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허공에서 부리를 맞대기도 하고/날갯짓 맞장구 치며”가 바로 그것이다. 오직 상대를 위한 사랑의 몸짓이다. 이러한 직박구리의 행위에서 화자는 “앞서지도 뒤서지도 않는 나란히 가는 길”을 유추한다. 그런 까닭에 화자는 마침내 “어느 순간도 같이하여/영원永遠이 된다는 것”을 직박구리 부부로부터 깨달음의 메시지를 얻는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시 속에서 물장구를 치고 노는 직박구리 한 쌍을 지켜볼 뿐 전혀 개입하지 않는 관찰자일 뿐이다. 다만 부부새의 행위를 통해 깨달음에 이르고 있다. 인간도 직박구리 부부처럼 살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은아 시인의 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다음의 「홀로 걷는 가을 길」은 최근 김은아 시인의 정신지리를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이다. 가을 언덕에 그녀가 서 있다 들녘은 배부르고 따뜻한 모습인데 소중한 기억들은 하나둘 지워지고 어깨에 짊어졌던 바위 같은 짐 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저물면 내려놓을 수 있으려나 햇살은 짱짱한데 그녀의 시선 끝에 촉촉하게 젖어오는 쓸쓸하게 걸어가는 모습 모든 것이 꿈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의 이면에 켜켜히 쌓인 것들 아이처럼 펑펑 울며 모두 쏟아내고 싶어도 소리죽여 속울음 우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쓰다듬어 본다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 그 고생 잊지 않고 있다고 그녀는 그녀에게 말을 건넨다. - 「홀로 걷는 가을 길」 전문 이번 시집에서 김은아 시인의 시에서 왠지 모를 우수가 느껴진다. 앞만 보며 열심히 살아온 세월을 보내고 자식들을 키워 세상에 내보낸 뒤에 느끼는 허무랄까? 이 작품은 그런 그에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시제가 말해주듯 인간은 혼자서 스스로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는 단독자이기 때문이다. 그의 삶도 사계로 치자면 ‘가을’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가을은 풍요로움과 더불어 쓸쓸함이 공존하는 계절이다. 인생의 가을을 지나고 있는 시인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가을 언덕에/그녀가 서 있다”는 고백은 화자 자신이기도 한 그녀가 서 있는 장소이며 공간이다. 가을은 “배부르고 따뜻한 모습”이다. 그러나 여전히 “어깨에 짊어졌던 바위 같은 짐/아직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마음 속에 아직 내려놓지 못하는 짐이 있기 때문이다. 화자는 “그녀의 시선 끝에 촉촉하게 젖어오는/쓸쓸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여진다. 화자 자신의 모습이다. 그동안 지나온 시간들이 꿈결 같다. “생의 이면에 켜켜히 쌓인 것들”이 마음에 남아있다. 그런 까닭에 아직 부려놓지 못한 짐이 있다고 진술한 것이다. 그런 화자는 “아이처럼 펑펑 울며 모두 쏟아내고 싶”다. 그렇지만 “소리죽여 속울음” 운다. ‘아직도 내려놓지 못한 짐’이 무엇인지 이 작품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쓸쓸하게 걸어가는 모습”은 실존의 본질적인 어떤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화자 내면에 깃든 짐이 그를 속울음 울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녀의 손을 가만히 쓰다듬어”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것은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고/그 고생 잊지 않고 있다고/그녀는 그녀에게 말을 건”네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 작품은 생이 깊어지면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김은아 시인이 자신에게 건네는 위안의 헌사라고 할 수 있다. 「겨울 섬진강에서」는 보다 깊어진 김은아 시인의 정신지리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강은 추위에 익숙한 듯 차고 견고한 정신으로 투명하게 흐른다 강은 언제부터 흐르는 법을 알았을까 켜켜이 퇴적된 시간의 침묵 강을 닮은 사람들은 生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강물처럼 가슴에 저마다의 무늬를 새기고 제 길을 흘러간다 살아있는 목숨들은 아침이슬 같은 것이어서 오래된 강의 시간을 헤아릴 수 없지만 강물처럼 피투성이가 되어도 제 길을 가는 것을 알아 아무리 견고한 추위와 바윗덩이에 부딪쳐도 포기하지 않는다 문득, 겨울 섬진강에 와서 내 가슴 속에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었다. - 「겨울 섬진강에서」 이 작품엔 신난한 세월을 살아낸 시인의 시간이 켜켜이 쌓여있다. 더불어 존재의 근원과 본질을 묘파하고 있어 시인이 살아가는 방식과 생의 좌표가 여실하게 나타나 있다. 주지하다시피 흔히 ‘강’은 유장하게 흘러가는 역사와 온갖 시련을 극복하면서도 묵묵히 살아가는 인간의 의지가 깃들어있다. 화자는 겨울 섬진강에 와서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 겨울강이므로 “차고 견고한 정신으로 투명하게 흐른다”고 겨울강 풍경을 명징하게 노래한다. 강은 끊임없는 질문이어서 “강은 언제부터 흐르는 법을 알았을까”라고 강의 시원과 근원을 묻는다. 이러한 질문은 시간과 생명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다. 이는 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강과 인간의 생은 닮았다. 시간 속에 묵묵히 흘러가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화자는 “生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한다. “다만 강물처럼 가슴에 저마다의 무늬를 새기고/제 길을 흘러간다”고 한다.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 인생이지만 제각기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한다. 이 작품에서 화자는 ‘강’과 ‘인간’을 같은 존재로 비유하기도 하지만, 그러면서도 강에 비해 인간의 삶은 지극히 찰라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살아있는 목숨들은 아침이슬 같은 것”이라는 화자의 진술이 바로 그것을 말해준다. 그러면서도 ‘강’과 ‘인간’ 모두가 “피투성이가 되어도 제 길을 가는 것”이라는 멈출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즉 “아무리 견고한 추위와 바윗덩이에 부딪쳐도/포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화자의 이러한 인식은 오래 흘러온 강물과 지금까지 불굴의 의지로 강물처럼 흘러온 인간의 삶이 서로 닮아있으므로 겨울 섬진강을 바라보는 화자는 삶의 의지를 강하게 다짐한다. 그러므로 화자는 “내 가슴 속에 흐르는 강물소리를 들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김은아 시인의 삶의 지표를 읽을 수 있는 작품으로 「흔들리는 길」이 있다. 폭설주의보가 내려 칼바람 속에서 출근하는, 위태롭지만 삶에 충실한 화자의 모습과 폭설 속의 가족 안부를 걱정하는 모습이 강인하고 따스하다. 이렇듯 시련 속에서 이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천 번을 흔들려야 꽃이 피고/천 번을 흔들려야 엄마가 되고/천 번을 흔들려야 강을 건널 수 있다”고 한다. 「가방의 무게」에서는 가방의 무게를 인간이 진 짐으로 인식하기도 하지만, “생각에도 무게가 있으니/마음을 비워야” 한다는 ‘짐’에 대한 역설을 보여주기도 한다. 「묘지」는 삶과 죽음에 대한 시인의 생각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길가에 있는 묘지가 “사람들 기억 속에서/점점 잊혀져 가는 것처럼/봉분은 낮아지고,/잔디도 사라”진다고 한다. 아웅다웅 살다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의 섭리와 생의 덧없음을 노래하고 있다. 3. 김은아 시인의 첫 시집에서부터 끈질기게 천착하는 시적경향의 하나는 ‘생명성 탐구’이다. 이러한 그의 시적 관심은 자연에 대한 애정에서 연유한다고 봐야 한다. 자연을 노래한 시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특히 동양적 사유의 원천은 자연을 숭배해 온 우리 선조들의 삶의 태도에서 기인하였다. 자연보다 낮은 자세로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인식해 온 겸손의 미덕은 자연의 생태적 특징을 인간의 삶에 적용시켜 그것을 닮고자 하였다. 김은아 시인이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궤를 같이 한다. 지리산 천왕봉 오르는 등산로 구상나무 공동묘지 죽음의 전시장이다 ‘살아 백 년’이라는 구상나무가 하얗게 탈색되어 가는 몸부림 한반도에서 호랑이가 사라졌듯 토종 구상나무를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기온은 점점 뜨겁게 차오르고 눈이 오지 않아, 비도 오지 않아 나무도 사람도 숨쉬기 버겁다 불볕더위와 강풍, 건조한 날이 늘어 산불도 늘어간다 식수원이 고갈되고 있어 목이 마르다 높은 산에 깃든 우리들의 산신령 구상나무가 아프다고 한다. - 「구상나무가 아프다」 전문 화자는 등산로를 따라 지리산 천왕봉을 오르고 있다. 산을 오르다 보니 “구상나무 공동묘지”가 있다. 이것을 화자는 “죽음의 전시장”이라고 한다. 이 작품의 서두에서부터 ‘공동묘지’ ‘죽음의 전시장’이라는 섬뜩한 이미지가 불길하다. 이 불길함은 인간이 자초한 것이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지구환경을 오염시켜 기후온난화현상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원산지로 알려진 구상나무는 비교적 서늘한 고산지대에서 군락을 이루고 살아간다. 그런데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더 오를 수 없는 구상나무는 말라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풍경을 지리산에서 마주한 화자는 ‘구상나무 공동묘지’ ‘죽음의 전시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참으로 비극적인 현장이다. 구상나무는 기후온난화 때문에 죽어가고 있고 우리와 함께 오래 살아온 호랑이도 오래전에 이 땅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화자는 토종 구상나무를 영원히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불길함에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기온은 점점 뜨겁게 차오르고/눈이 오지 않아,/비도 오지 않아/나무도 사람도 숨쉬기 버겁다”. 뿐만 아니라 “불볕더위와 강풍, 건조한 날이 늘어/산불도 늘어”가고 있다. “식수원이 고갈되고 있어/목이 마르다”. 이러한 현상은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고 있어 푸른 별 지구는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이러한 일들은 일상이 되어가 지구의 미래는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 작품의 말미에서 화자는 구상나무는 ‘산신령’이라고 부른다. 산신령은 무속신앙에서 초월적인 힘을 지닌 상징적인 존재이다. 그런데 과학문명이 미신의 대상인 산신령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합리적인 과학이 한때 우리 믿음의 대상이었던 ‘산신령’을 죽이고 미신화되고 있는 것은 인간의 탐욕이 부른 참사가 아닐 수 없다. 화자는 ‘구상나무’ 즉 산신령의 부활을 위한 생명성을 옹호하고 있다. 다음의 「하얀 고양이」에는 늘 우리 주변에 있는 길고양이들을 연민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뜨거운 눈길이 있다.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는 남자가 있는 마을 까치도 전봇대에 앉아 밥을 기다리고 소란스럽게 목청 세우는 날이 많아졌다 우연히 사무실에 나타난 고양이 밥 달라고 하는 건지 가지 않고 야옹야옹 연신 울어댄다 먹다 남은 생선 주어도 제 집인 양 어슬렁거리다가 높은 지붕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고 울어댄다 나무로 발판을 만들어줘도 못 내려오는데 어쩌란 말이냐 퇴근해야 하는데 결국, 밥 챙겨주는 남자를 불러오자 조심조심 내려오는 겁 많은 하얀 고양이 치명적인 귀여움이 불러 일으키는 생명에의 연민. - 「하얀 고양이」 전문 흔히 ‘길고양이’라고 부르는 고양이들은 참으로 고단하게 살아가고 있다. 오래전 인간에게 순치되어 인간과 함께 살았지만, 인간에게 버림받아 길거리에 방치되었기 때문에 야생으로 떠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인간의 손길이 필요한 터다. 그런 길고양이들을 돌보는 사람들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남자’도 그런 사람이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변 전봇대의 까치도 함께 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남자는 여러 생명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셈이다. 인간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 길고양이가 “우연히 사무실에 나타”났다. “야옹야옹 연신 울어댄다” 길고양이의 마음을 읽을 수 없어 답답하다. 생선을 주기도 했지만 높은 지붕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고 울어대기만 한다. 화자는 저녁무렵이 되어 퇴근해야 하는데 길고양이가 밖으로 나가지 않으니 낭패다. 생각 끝에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던 남자를 불러오자 마침내 고양이가 내려온다. 이와 유사한 길고양이의 에피소드는 많을 것이다. 화자가 겪은 길고양이 사건은 어쩌면 사소한 일일 수 있다.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고양이를 애완동물, 또는 반려동물로 만들기 위해 순치한 인간의 욕망과 고양이를 길거리로 내몬 인간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이 작품의 화자는 길고양이의 돌출 행위에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마침내 높은 지붕에서 내려오게 하는 따스한 마음을 보여준다. 화자를 움직이게 한 힘은 길고양이의 “치명적인 귀여움이 불러 일으키는/생명에의 연민”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역설」은 지금까지 보아온 생명성 탐구와는 그 성격이 매우 다르다. 창녕 옛 고분 속에서 많은 귀금속이 출토되었어도 15세 어린 소녀는 아무것도 지닌 것이 없다 몸종으로 살았을 뿐인데 주인의 죽음에 독살되어 천오백 년을 죽지 못했다 주인의 뼈는 사라졌지만 독이 묻은 몸은 죽지 않고 잡 벌레 하나 범하지 못한 역설. - 「역설」 전문 이 작품은 1500년 전 가야 지배계층의 죽음에 함께 묻힌 몸종의 억울한 죽음이 깃든 역사성과 함께 몸은 죽었어도 오히려 “잡 벌레 하나 범하지 못한” 영원한 생명성을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현장은 “창녕 옛 고분 속”이다. 그곳에서는 무덤의 주인인 세력가를 암시하는 “많은 귀금속이 출토되었”다. 무덤에는 죽어서도 부귀를 누릴 수 있다는 내세관이 깃들어 있다. 15세 어린 소녀가 주인의 죽음에 내세에서도 몸종으로 주인을 모셔야 한다는 그 시대 사람들의 믿음에 의해 독살되었지만, 오히려 “천오백 년을 죽지 못했다” 주인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형체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소녀는 몸에 독이 있는 까닭에 신체를 보존했다. 그러므로 ‘죽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주인처럼 “많은 귀금속”을 갖지 못했지만 오히려 죽지 않은 역설을 통해 천오백 년 전 그대로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죽었어도 죽지 않은 생명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배경에는 신분의 차이를 보여주는 그 시대의 사회성과 풍속이 전제되고 있지만, 권력과 물질적 풍요를 가진 사람의 욕망이 어린 소녀까지 무덤으로 데리고 간 살인행위라는 폭력성이 엿보인다. 이 작품은 본질적으로 어떤 정신이 진정하고 영원한 생명인지를 말해주고 있어 근원적인 생명성과 가치를 노래하고 있어 주목된다. 또한 생태학적 상상력이 한계를 극복하고 생명시가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밖에 생명성을 탐구하고 있는 「잡초」는 인간의 이념에 의해 ‘잡초’는 제거해야 할 대상이지만 화자는 “잡초는 미천한 신분으로 대접하는/인간의 심사가 고약하고 불편”하다는 시인의 생명관을 보여주고 있다. 「봄 공원에서」는 생명성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을 그려내지 않았지만 봄이 되어 모든 생명체가 환호작약하는 날 “공원의 멧비둘기 한 쌍”이 열심히 먹이를 쪼는 모습을 바라보는 화자가 “괜히/기분이 좋아진다.”는 진술만으로도 생명의 환희가 느껴진다. 「지리산의 봄」은 다시 찾아온 봄 지리산 산비탈에서 고사리를 뜯으며 일생을 보낸 노인의 모습에서 “허리 펼 새도 없이 고사리 끊는 사이/관절 꺾어지는 줄 몰랐다”는 화자의 인식의 태도가 고사리 꺾어 자식들을 키운 노인의 삶 자체를 끈질긴 생명의 원동력으로 보고 있는 것이 생명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4. 고향애와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김은아 시인의 시편들은 아프고 애잔하다. 산업화의 뒤안길에서 쇠락해 가는 고향마을은 시인의 추억이 깃든 장소이자 공간으로 시인의 정신적 총체성의 근거가 된다. 이렇듯 추억의 장소가 사라져가는 것에서 시인은 상실감을 갖게 된다. 또한 어머니의 사랑을 노래한 시편들에서는 치매로 인해 아득한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어머니를 바라보는 시인의 심정은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연민으로 어머니를 바라본다. 더불어 늙어서도 자식들 끼니 걱정을 하는 모정이 커다란 사랑임을 깨닫는다. 한편 봄바다에 나가 감태를 채취하며 자식들을 키워낸 어머니의 굽은 허리에서 뜨거운 모정을 읽어내는 시인의 마음이 왠지 슬프다. 그것은 자신을 희생시켜 자식들을 위해 바친 일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정시는 고향과 어머니의 따뜻함을 과감없이 순수하게 드러내는 힘을 지녔다. 천사대교 놓여지면서 여객선이 끊기고 선착장엔 고요가 깊어간다 배를 타기 위해 줄 섰던 차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배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수평선을 바라보던 날들이 사라지니, 우연히라도 고향 사람들 보기 힘들어졌다 노둣길 따라 고둥과 소라 줍던 추억,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사람들 이주시켜 무인도가 되어버린 추억 깃든 거사도 대숲이 빈집들을 뒤덮었는데 돌담이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 아직도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폐허가 되어가는 뒷모습이 아프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파도는 허전한 마음을 뒤흔든다 해와 달이 품고 지켜주고 보듬어 주었던 팔금도의 따뜻한 봄날, 마음 한켠이 시려온다. - 「팔금도 3」 전문 팔금도는 김은아 시인의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다. 이곳에서 육지로 나와 살고 있는 시인의 기억 속에는 고향에 가기 위해 “배를 타기 위해 줄 섰던 차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배가 어디쯤 오고 있는가 수평선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고향사람들을 만나 안부를 묻기도 한 선착장은 설레임과 그리움이 교차하는 장소였다. 그런데 이제는 고향사람들 보기 힘들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버렸기 때문이다. 고향을 생각하면 “노둣길 따라 고둥과 소라 줍던 추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관광지로 개발한다는 미명 아래 사람들을 이주시켜 무인도가 되어버린 추억이 깃든 거사도의 이야기는 시인에게 슬픔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고향은 옛 고향의 모습이 아니다. “대숲이 빈집들을 뒤덮었”고, “돌담이 안간힘으로 버티고 있다”. 사람의 손길이 끊어졌다. “아직도 사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폐허가 되어가는 뒷모습이 아프다”. 여전히 파도는 밀려왔다가 밀려 가는데 화자는 마음이 허전하고 심란하다. 봄날이 되었어도 마음 한켠이 시려오는 이유이다. 사람들이 떠나가는 쇠락한 고향마을에 대한 슬픔과 더불어 김은아 시인의 또다른 마음 한켠에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 배어있다. 쌀독의 쌀이 자꾸 줄어든다며, ‘느그 오빠가 쌀을 퍼다가 팔아먹어야’ ‘엄마가 밥 해서 먹으니까 줄어드는 거여’ ‘내가 쌀이 줄어드는 것도 모르는 멍충이 인줄 아냐’ 평생, 혼자서 자식들 굶기지 않고 키우려고 고생하셨을 그 마음이 늙은 쌀독에 넉넉하다 풍요로운 세상이지만 쌀이 줄어드니 행여 자식들 굶주릴까 봐 마음이 편치 않다 엄마, 우리 밥 굶지 않고 잘 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아요 지금 쌀밥나무에 쌀밥이 주렁주렁 매달렸으니 이제 밥걱정 안 해도 돼요 하얀 쌀가루 가득 뿌린 쑥버물로 피어나니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멈춰버린 엄마의 시간 속에서 밥 달라고 우는 자식이 있었는갑다 처연하게 꽃대를 피우고 오래된 세월 계절 속을 혼자 걷는 이팝나무에게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전한다. - 「이팝나무」 전문 이 작품은 비유, 특히 ‘어머니’를 ‘이팝나무’로 은유화하고 있다. 객관적 상관물인 이팝나무와 어머니는 유사성을 지녔다. 풍성하게 꽃피운 이팝나무를 예로부터 쌀밥을 의미하는 ‘이팝’나무라고 불렀다. 어머니 또한 자식들에게 늘 밥이 되어온 까닭에 이팝나무와 어머니는 비유의 대상이 되곤 하였다. 가난한 시절 자식들 배고플까봐 어머니는 언제나 쌀걱정을 하였다. 치매에 걸려서도 “느그 오빠가 쌀을 퍼다가 팔아먹”는다고 한다. 배고픈 시절에서 시간이 멈춘 어머니는 “평생, 혼자서/자식들 굶기지 않고 키우려”는 생각에 집착한다. 기억을 잃어버렸어도 자식들을 굶기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마음은 쌀독처럼 넉넉하다. 오늘날, 모든 것이 풍요로워 넘치는 세상이지만 비록 기억이 사라져가고 있지만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화자는 ‘늙은 쌀독’이라고 한다. 이러한 어머니의 마음을 읽고 있는 화자는 “쌀밥나무에 쌀밥이 주렁주렁 매달렸으니/이제 밥걱정 안 해도 돼요”라고 어머니를 안심시킨다. 쌀밥나무는 화자의 생활의 넉넉함을 말해주는 ‘이팝나무’ 같은 풍요의 기표이다. 그러나 화자의 유년에는 어머니가 이팝나무 같은 존재였다. 이후 어머니는 “처연하게 꽃대를 피우고/오래된 세월 계절 속을 혼자” 걸어왔다. 그 이팝나무 같은 어머니에게 “‘걱정하지 말아요’라고 전한다.” 살펴본 것처럼 서정시는 시적 대상과 화자의 따뜻한 마음이 조응할 때 그 감흥이 배가 된다. 어머니에 대한 시인의 기억은 “세월로 짓고 땀으로 지은/어머니가 지은 밥상”(「어머니의 밥상」)을 회억한다.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 시골집에 계신다. 홀로 계신 어머니가 안 잊혀 “반찬 몇 가지 챙겨 시골집에” 간다. 정신이 흐려진 어머니는 자식인 화자가 양로원에 자신을 넣으려고 왔다며 불안해 하고, 그런 어머니를 위로한다.(「걱정마셔요」) 이러한 상황은 화자에게만 있는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사회적문제로 참으로 가슴아프기도 하지만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쇠락해 가는 고향을 노래한 「팔금도 3」처럼 「늙어가는 섬」 또한 노인들만 고향을 지키는 모습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 「늙어가는 섬」은 몸이 아파 성한 데가 없어 약으로 살아가는 고향 어른들의 모습을 명징하게 그려냈다. 시인은 그런 고향에 와서 “야속한 세월”과 더불어 어떤 슬픔의 정서를 읽어내고 있다. 5. 서정시는 시인이 살고있는 시대의 현실을 담아낼 책무가 있다. 시로써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적 상황을 가시화시켜 관심을 유도하고 어떤 본질을 제시할 수 있다. 김은아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 부분이다. 최근 지구촌 모든 사람이 겪은 코로나19 팬데믹과 광주민중항쟁, 세월호 침몰, 제주 4·3 사건 등 국가 폭력의 비극성과 그것들을 위로하는 시인의 노래는 때로는 처연하고 때로는 따스하다. 그 봄날 이후 팽목항 관제탑 주변, 갈매기의 목도 쉬었다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 관제탑은 바다만 바라본다 노란 리본들 바람에 펄럭이고 쓸쓸한 바닷가는 인기척도 없다 어린 것들을 수장시키고 가슴에 묻은 대한민국 꽃피는 봄날이지만, 환한 봄날이지만, 아무도 웃지 않는다 가슴에 깊이 박힌 못 언제 뽑을 수 있을까 어질어질 석양에 얼비치는 이름 모를 이름들 애써 그려보는 슬픈 봄날. - 「팽목항에서」 전문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수백 명의 어린 학생들이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가 침몰하여 희생당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우리에게 국가가 왜 존재하는지와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우리 사회의 한계를 확인하였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은 사고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팽목항으로 달려가 슬픔을 함께 나누고 분노하고 위로하였다. 화자 역시 팽목항에서 사람들이 매달아놓은 노란 리본을 바라보며 절망한다. 다시 봄이 와 “꽃피는 봄날이지만,/환한 봄날이지만, 아무도 웃지” 못하는 현실을 가슴아파한다. 화자는 희생자들을 알지 못하지만 “어질어질 석양에 얼비치는/이름 모를 이름들/애써 그려”본다. 사람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 시들해진 그 무렵 “노란 리본들 바람에 펄럭이고/쓸쓸한 바닷가는 인기척도 없다” 세월호가 침몰한 봄날 이후 온 나랏사람들은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 세월호 사건은 그것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들의 상처가 되었음을 인식한다. 심지어 “팽목항 관제탑 주변,/갈매기의 목도 쉬었다”고 노래한다. 앞에서 밝힌 것처럼 이 사건은 많은 문제를 노출시켰다. 국가의 존재성과 제도의 허점, 자본에 대한 욕망을 비롯한 여러 문제가 이 사건을 유발시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화자는 “어린 것들을 수장시키고/가슴에 묻은 대한민국”에서 보듯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와 이를 운용하는 시스템의 미비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그리고 아픈 마음으로 “해는 서산으로 기울어 가고/관제탑은 바다만 바라본다”고 쓸쓸하게 노래하고 있다. 「검은 그림자」는 지난 3년 동안 전지구적으로 인류 역사 이래 처음 맞은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해 그 실상과 불안한 정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화자의 내면에 감춰진 것은 인간의 탐욕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텅 빈 운동장 아이들이 두고 간 축구공만이 덩그마니 놓여있고 팽나무 그늘 의자 밑에서 참새 무리만 재잘거린다 예식장에도 장례식장도 감정을 잃어버린지 오래 마스크를 쓰는 일은 예의가 되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투명하고 검은 그림자들이 어른어른 서로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 오직 제 얼굴을 꼭꼭 가리는 일이 나를 단속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 적이 있었나 우리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어본 적이 있었나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폭처럼 우리 사이를 비집고 폭발하는 검은 그림자 오늘도 무사할 수 있을까. - 「검은 그림자」 전문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의 전환을 가져왔다. 서로 손을 잡고 얼굴을 비비던 행위는 더 이상 미덕이 되지 못한다. 가까이 가기보다는 서로 떨어지는 것이 상대에 대한 예의가 되고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 되었다. 사람들도 함께 모이는 것을 꺼려했다. 이런 변화에 대해 화자는 “텅 빈 운동장/아이들이 두고 간 축구공만이/덩그마니 놓여있”다고 한다. 장례식장은 물론 예식장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일은 예의가 되었다” 그러므로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곤 하였다. 서로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고 혹시 감염자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갖게 되었다. “오직 제 얼굴을 꼭꼭 가리는 일이/나를 단속하는 일이 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화자는 “우리가 서로 사랑한 적이 있었나/우리가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웃어본 적이 있었나” 하며 사랑하면 얼굴을 바라보며 웃는 것일진대 그렇지 못한 현실을 참담하게 노래하고 있다. 즉 코로나19 때문에 “오늘도 무사할 수 있을까.”라고 절망한다. 위의 작품은 코로나19로 인해 변해버린 생존방식의 비정함을 폭로하고 있다. 이 비극의 원인은 탐욕스러운 인간의 욕망이 불러온 것으로 비참한 현실을 형상화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인간의 탐욕에 대한 성찰을 기대하고 있다고 믿는다. 「주먹밥」은 1980년 5월에 일어난 광주민중항쟁의 상처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은 광주시민들의 용기를 노래한 작품이다. 거리에 솥을 걸고 밥을 지어 시민군에게 나누어주던 주먹밥 둥글게 밥을 지은 것은 주먹으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 그 주먹을 펴고 폭력에게 손을 내밀기 위한 포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둥근 마음들 밥풀처럼 찰지게 뭉쳐 하나가 된 주먹밥들 신군부의 진압에 맞서 한세상 이루었다 그 뜨거운 오월 단 한 건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은 광주의 마음 끈끈한 풀기로 주먹밥이 되었다. - 「주먹밥」 전문 광주민중항쟁은 국가 폭력에 대한 저항운동이다. 신군부의 권력욕과 유린받는 민주주의 수호, 정의로운 인간의 모습이 오버랩된 이 시민항쟁을 화자는 시민들의 용기를 형상화하고 있다. “거리에 솥을 걸고 밥을 지어/시민군에게 나누어주던/주먹밥”은 광주민중항쟁이라는 시민운동의 기저에 깔려있는 숭고한 정신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대목이다. 화자는 광주시민들의 용기와 정의로움과 더불어 주먹밥을 둥글게 지은 것에서 “주먹으로 하라는 뜻이 아니라/그 주먹을 펴고/폭력에게 손을 내밀기 위한 포즈”로 승화시키고 있다. 시민군이 신군부의 총칼에 대항하였지만, 민주시민들은 “밥풀처럼 찰지게 뭉쳐/하나가 된 주먹밥들/신군부의 진압에 맞서/한세상 이루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런 까닭에 광주민중항쟁 기간 동안 단 한 건의 범죄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주먹밥’으로 상징되는 “광주의 마음”이라고 하며 “끈끈한 풀기로 주먹밥이 되었다.”고 한다. 광주민중항쟁을 노래한 많은 시편들과는 달리 김은아 시인의 「주먹밥」은 광주민중항쟁의 의미를 한차원 높게 새로운 해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밖에 국가폭력으로 빚어진 「동백꽃」은 4·3 사건 75주년을 맞는 시인의 심정을 담아낸 것으로 무참하게 죽음으르 당한 여수·순천 시민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오랜시간 동안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야 했”는지 우리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재난문자」는 최근 비가 오지 않아 생활의 불편을 겪은 사건의 실상과 시인의 심정을 노래한 작품으로, 가뭄을 재난으로 인식하는 시인의 생각이 투사되어 있다. 「영웅이라고 부르지 마」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보여주는 시편들과는 거리를 두고 있는 작품으로 구국을 위해 침략원흉 이토히로부미를 암살하고 사형당한 안중근 의사의 의로운 행동에 대한 시인의 새로운 인식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모두가 그를 영웅으로 추앙하지만 안중근 의사가 자신이 영웅임을 부인함으로써 갖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고 있다. 이토히로부미의 심장을 쏜 것은 “제국주의의 양심으르 일깨”운 일이며, 감옥에서 항소하지 않은 것은 스스로가 죄인이 아니라는 역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중근 의사는 영웅이 아니지만, 오히려 더욱 위대한 영웅임을 시인은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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